병원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동안 여러 상황들을 지켜보게 되고 간혹 남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몇 가지들이 있었다.
퇴원하게 되면 잊게 될 것 같아 퇴원 전에 기록해 놓아야겠다.싶어 몇 가지만 적는다.(근데 적고 보니 좀 길다.ㅜ)
1.
작년 연말 저녁 무렵이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이곳은 5시 넘으면 저녁이 시작된다.) 멍하니 오랜시간을 보낸 듯 해도 병원에서의 저녁시간은 너무 길다. 무료해 하시는 아빠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복도를 한 바퀴 도는 게 일과였었다. 물론 내가 훨씬 더 무료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그 때는 신경외과 쪽 입원병동에 있었는데 그 곳은 허리 디스크 수술 환자와 뇌수술 환자가 함께 입원 중이었다.
암튼 자가용 운전은 무서워서 못하지만 휠체어 운전엔 완전 능숙하다 못해 손바닥에 굳은 살이 배길 정도로 여기 저기 휠체어를 막 몰고 다니던 차, 그 날도 늘 가던 쉼터에 도착하였다.
나는 쉼터 의자에 앉고 아빠는 휠체어에 그대로 앉아 시내 야경을 구경했다.
저녁 무렵이라 퇴근 시간에 줄 맞춰 차도에 늘어선 자동차 불빛들은 꼭 크리스마스 트리에 장식된 전구처럼 알록달록 어찌나 예쁘던지....
퇴근 시간을 재촉하는 자동차 불빛들은 뭐랄까, 멀리서 지켜보는 자의 눈엔 아늑한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그 일상의 초조함이 때론 평화로워 보이기도 한다. 일렬로 쭉 늘어선 그 자동차 불빛들은 어둠의 경계를 오른쪽 왼쪽으로 나눠 양쪽으로 검은 개울물이 흐르는 듯 하다.
그리고 아파트의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같은 불빛들을 양쪽으로 나눠 마치 홍해의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을 어둠 속에서 재현시켜 주는 듯 하다. 비록 진두지휘하는 모세는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암튼지간에 저녁엔 자동차 불빛멍? 야경멍? 하기가 참 좋다.
내 곁의 아빠는 전망대 타워의 불빛을 또 어찌나 사랑하시는지!
매일 가서 보는데도 매일같이 예쁘고 훌륭하다고 감탄하시는 거다.
시골 사람들의 특징이지 않나, 싶다. 시골은 저녁에서 이른 밤이 되면 불빛이 드문드문하다. 특히나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으니 야경이란 걸 감상할만한 풍경이 전혀 없다. 그야말로 어둠과 고요한 침묵만이 함께 할 뿐이다. 암담하달까!
그러다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인 이 곳에서의 짧디 짧은 야경 풍경에도 아빠는 눈을 떼지 못하시는 것 같다.
물론 아빠의 호기심, 이러한 성격도 한몫하고 있기도 하겠지만...
암튼 의자에 앉아 각자의 의식 속에 빨려 들어 몽롱하게 취해 있을 때 곁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에 앉았을 때 바로 옆자리에 한 모자가 앉아 있는 걸 곁눈질 하긴 했었지만 곧 의식 속에서 사라졌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자의 대화가 들려온 것이다.
20대 중후반으로 되어 보이는 어린 아들과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신 듯한 연세가 있어 보이는 어머니는 삶은 계란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는 배가 부르다고 계란을 그만 먹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들은 하나만 더 먹으라고 계속 타이르고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엄마도 나 어릴 때 맨날 조금만 더 먹으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엄마도 계란 하나만 더 먹어봐봐.˝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셨다.
그 한숨 속에 모든 게 담겨 있어 순간 넘 우스워 마스크 속에서 ㅋㅋㅋ 혼자 웃었다.
하나를 더 드셨는지 어땠는지는 차마 왼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지 못해 직접 확인을 못했지만 아마도 아들의 성화에 못이겨 더 드시는 듯 했다.
모자의 대화를 몰래 엿들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나도 어릴 때 편식이 심했던지라 엄마가 조금만 더 먹어봐라, 한 입만 더 먹어봐란 소릴 자주 듣고 자랐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가 했던 그 소리를 나의 세 아이들에게 자주 했었고 지금도 그 소릴 하고 있다.
요사이는 아빠한테 늘 하고 있는 소리다.
요즘 삶은 계란을 아빠 한 입이라도 더 드시게 해보려고 매일 반으로 자르고 있다. 삶은 계란을 좋아하지 않는 부녀는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반으로 잘라서 먹어보라며 서로에게 강요하고 있다. 계란 반 개를 억지로 먹으면서 그 날 저녁 다정한 모자를 떠올리곤 한다. 나는 그 아들이 한 그 말처럼 다정하게 건네진 않는다.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아빠한테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먹기 싫다고 하는 아빠!
할 수 없이 계란 단백질 하나가 오롯이 내 차지가 되는 날도 많아 나도 한숨 쉬며 먹는다. 그래서 나만 살이 찌고 있다.
보통 부모를 간병하는 보호자는 딸들이 주로 하는 편인데 간혹 아들이 보호자로 있는 곳도 보인다. 무뚝뚝한 아들도 있지만 다정한 아들도 있다. 그 날의 아들은 퍽 다정했다.
저런 아들도 있구나. 싶어 그 아들의 면상을 찾곤 했다.
복도를 지나다 그 모자가 머물고 있는 병실 호수를 발견했을 때 나는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며 그 집의 아들과 어머니를 안보는 척 하면서 꼭 확인하며 지나갔었다. 볼 때마다 아들은 어머니를 살뜰하게 챙기고 있었다.
아...내 아들도 저런 아들이 되었으면...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2.
지금은 뇌신경센타 병동에 머물러 있다.
주로 뇌질환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인데 그래서일까, 병동이 좀 조용한 편이다. 바로 옆의 재활병동도 연결되어 있어 복도 산책?을 하느라 자주 드나드는 편이다. 재활병동도 아주 조용하다. 저쪽 신경외과 쪽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다.
암튼 조용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복도에서 보호자들이 통화하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안들으려고 해도 다 들린다.
아빠랑 복도 산책을 마치고 꺾어 돌아오는데 어떤 보호자 아주머니의 통화를 엿들었다.
˝사람은 언젠간 죽는다.
아파서 모두가 죽는다.
아파서 죽지 않는다면 그건 사고로 죽는 거다.
그러니 너희들은 아버지 걱정일랑 말고 너희들 삶을 살아라.
내가 알아서 할테니......˝
저렇게 현실적인 통찰력이라니....쩜쩜쩜!!!
그리고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이라니...쩜쩜쩜!!!!!!
부모 돌봄은 아이들 육아 돌봄과는 비슷한 듯 좀 다른 세계다.
아빠를 돌봐 드리면서 꼭 초등학생적 아이를 돌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가 조금 손이 덜 가는 갓난 아기를 돌보는 느낌도 든다. 노인이 된 아빠는 너무나도 행동이 느리고 굼뜬다. 그런 아빠를 지켜보다 치료 시간이 촉박하면 차마 못기다리고 내가 모든 걸 손봐드리고 거의 끌고 가다시피 아빠를 부축하곤 한다. 하지만 간호사는 웬만하면 본인 의지로 일상 생활을 하시게 놔두라고 한다. 그래서 ‘혼자서 할 줄 알아야한다‘ 이것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인다만 좀 헷갈린다. 꼭 아이를 키우는 느낌이다. 묵묵히 기다려주기가 잘 안 된다.
며칠 전 재활병동에서 재활 운동 하나를 실행하시는 아빠를 기다리며 보호자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아빠가 재활 치료사의 손을 잡고 어깨를 쫙 펴고 걸어나오셨다. 자고 일어나면 또 구부정 80대 노인의 어깨가 되지만 늘 그 시간엔 어깨를 쫙 펼 줄 아시는 게 새삼 놀랍다. 그래서 늘 재활사들의 손이 참 시기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 바로 옆에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떤 딸이 내지른 감격의 도가니 비명소리였던 것이다.
˝엄마, 걸었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엄마를 주시했었고 함께 놀라워했다.
놀랍기도 했지만 나는 아빠한테 귓속말로 생색을 냈다.
˝아빠 처음 걸어서 나왔을 때, 나도 저렇게 놀라웠어요.˝ 아빤 반응이 없다. 듣는 귀가 어두운 오른쪽 귀에다 얘길 했던가 보다.
순간 몇 달 전 아빠가 걸어서 치료실을 나오실 때 광경이 떠올랐다. 나도 그때 분명히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리액션을 밖으로 막 표출하는 성격이 못되는지라 마스크 안에서만 ˝헉!!˝ 내 귀에만 들리는 비명?을 질렀다. 너무나도 놀라웠다.
걷는 게 새삼 놀랄 일인가! 싶겠지만 병원에서 수술환자들이 누워 있다가 자리에 앉게 되는 걸 보면 1차로 놀라게 되고(헉!), 침대에서 일어서면 2차로 놀라게 되고(헉!!), 그러다 걸음마를 떼면 완전 감격의 도가니탕이 된다(헐!!!!!).
아이가 일어나 앉고, 일어서고, 걸음마를 떼면서 놀라고 감격하는 그 순간들이랑 비슷한 경험을 다시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감격은 햇빛 찬란한 미래를 꿈 꾸고 기대하며 느끼는 기쁨의 감동이라면, 편찮으신 내 부모를 돌봐드리며 느끼는 감격은 뭐랄까, 가슴 한 쪽에 찌르르 통증이 동반되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를 키워준 엄마가 또는 아빠가 다시 걸을 수 있다는 건 안도 섞인 기쁨인 것이다.
아침마다 <인간극장>을 본다. 그 전엔 <인간극장>을 보고 싶어도 언제, 어디서 하는지 몰라서 못봤는데, KBS 1 TV 아침 7시 50분쯤 하더라. 아침 먹고 식판 퇴식 사물함에 가져다 놓은 후 시청하면 딱이다.
이번 주 내용은 ‘엄마의 102번 째 봄‘(맞나?)이란 제목으로 102세가 되신 어머님을 돌보는 내용이 전개된다. 100세가 넘으신 어머님이 계시다니....다섯 째 딸이 어머님을 돌봄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현재 치매를 약하게 앓고 계셨다.
시청 중 문득 딸과 지인의 대화가 귀에 확 들어왔다.
부모를 돌봄한다는 건 시간이 정해져 있는 돌봄이라고 했다.
물론 이 시간이란 건 그 끝을 알 수 없다.
10년, 20년이 될 수도 있고, 내년 또는 바로 다음 달이 될 수도 있다.
이별의 끝을 향해 걸어가는 돌봄이라고 했다.
부모의 돌봄은 이별을 준비하는 돌봄이라니...
그래서 순간 순간 버겁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이러면 안되겠구나!
생각을 고쳐 먹곤 한다.
아빠는 내가 <인간극장>을 쳐다보는 걸 썩 내켜하지 않으신다.
줄곧 부모를 간병하거나 돌봄하는 내용들을 다루다 보니 영 싫으신가보다.
아빠는 물려줄 게 없어 아픈 아빠를 간병하는 걸 물려줬다고 내내 궁시렁 대신다.
암튼 그 딸은 엄마가 걸어서 치료실을 나온 그 감격을 주체못해 본인의 아빠한테 동영상을 걸어 이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아빠도 좋아서 웃는 모습이 핸드폰 화면으로 다 보였다. 그렇게 딸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펴보다 보니 나는 넘 무뚝뚝한 딸이구나! 새삼 깨닫는다. 저 집의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눈 앞에 그려져 흐뭇하게 바라봐졌다.
3.
엄마가 돌아가신지 올 해 9년 째가 된다.
그동안 살면서 길거리를 지나가다 혹시라도 엄마를 닮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다.
최근엔 그 생각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엄마와 비슷하신 분을 만났다.
지난 번 신경외과 병실에서 그것도 아빠 침대 바로 오른편 침대에 입원하신 어르신의 보호자 아주머니였다. 나는 그게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아주머니 얼굴을 자세히 뜯어 보면 또 그렇게 엄마와 닮았나? 좀 갸웃거리게 되지만 처음 봤을 때 얼굴형이 엄마와 비슷한 이미지였다.(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그 때 아빠는 음식을 삼키기 힘든 상황이라 콧줄로 액체 영양액을 주입하던 시기였었다.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아빠 옆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게 참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병원에서 나오는 식사만 먹고 다른 음식들은 일부러 먹지 않았다. 그러니 냉장고에 음식을 가져다 넣지 않아서 편했고, 살도 절로 빠져 은근 기분 좋았다.(덕분에 그동안 나의 뱃살의 주범은 간식살이었다는 걸 확인했다.)
그런데 냉장고에 먹을 걸 챙겨 넣지 않은 걸 눈치 채셨던 아주머니는 자꾸만 나에게 간식을 챙겨 주셨다.
아빠 수술하고 급하게 병실 온다고 먹을 것을 제대로 못 챙겨온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듯 했다. 아니라고...아빠 옆에서 음식을 안 먹으려고 일부러 안 가져왔다곤 차마 말은 못하고(아빠가 들으면 마음 아파하실까봐.) 그렇다고 주시는 빵이랑 음료수랑 과일들을 거절도 못하고 처음엔 받아만 놓다가 할 수 없이 하나씩 아빠 몰래 먹었다. 참 고마웠었다.
아주머니께 정말 감사한 일이 있었다.
중환자실에 며칠 계셨던 아빠가 병실로 옮겨온 첫 날 밤부터 며칠은 아빠의 섬망 증상들과 가래도 심해서 밤에 잠을 거의 못 잤다. 초저녁쯤 되면 아빠는 꿈나라로 빠졌고 12시쯤 되면 깨셔서 낮인 줄 착각하셨다. 초저녁에 못 주무시게 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잘 안됐다. 포기하고 나도 곁에 누워 말똥말똥 눈을 뜨고 누워 있었다. 커텐 밖으로 아주머니가 뭐 하나? 지나가며 들여다 보시는 듯 하더니 나의 왼쪽편의 환자 어르신과 보호자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시는 거였다.
˝옆 환자 수술하고 올라와 어젯밤에 이 집 딸이 아버지 간병한다꼬 잠을 한숨도 못자데예. 지금 잔다고 누워 있는 것 같은데 좀 쉬게 해주입시데이. 사실 우리도 잠을 못자긴 했십니더.˝
커텐이 얇디 얇아 다 들렸다.
옆 침대도 얘길 들어보니 내일의 어르신 디스크 수술을 앞두고 부자가 이런저런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던 차, 아주머니의 말씀으로 대화가 뚝 끊겼다.
깜짝 놀란 나는 민망하기도 해서 누워 있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어 꼼짝도 못했다. 아...... 어떡해야 하지? 못들은 척 하자! 눈을 꼭 감고 자는 척을 했다.
자고 있는데 눈물이 계속 흐르는 거다.
이런 것도 인연인가?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였건만 그저 ˝울 친정 엄마를 많이 닮으셨어요!˝ 그 한 마디에 정말 나를 딸처럼 대해주다니...
너무 고맙고 황송하였는데도 미처 감사하단 말씀을 제대로 못드렸었다. 아빠랑 재활치료 병동을 다녀온 그새 퇴원하신 빈 침대를 보며 아주머니를 더 이상 못뵙는다는 그 섭섭함은 오래도록 남았다.
어쨌든 남자 병실이지만 또 보호자는 대부분 여성들이어서(간병인분도) 제법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낯가림이 심해서 커텐을 딱 치고 생활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아빠가 연세가 많아서인지 커텐을 자꾸 걷을 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간이나마 정을 나누게 되는 보호자 어르신들이 종종 있었다.
그 중 엄마를 닮은 그 아주머니는 줄곧 생각나는 아주머니다.
4.
퇴원하려면 이번 주 한 주를 잘 견뎌야 한다.
읽던 책을 다 읽었기에 딸들에게 엄마가 읽었으면 싶은 책 두 세 권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더니 몇 권 가져다 주긴 했다.(<달려라 토끼>, <산책자>, <느끼고 아는 존재> 세 권)
누가 하라고 하면 갑자기 하기 싫듯 책도 읽으라고 정해서 가져다 주니 아무리 딸들이어도 갑자기 싫은 거다.
그래서 주말 아빠 주무시는 동안 외부 서점에 들러 책을 두 권 사가지고 왔다. 그래서 갑자기 일주일에 다섯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책冊무가 생겼다. 책탑을 쌓고 보니 좀 부담스럽다.
딸과 부담이란 이야기가 나오니 몇 주 전 막내가 나를 부담스럽게 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녀석은 뜬금없이 나와 남편 뒤에서 ˝엄마, 아빠 혹시 내 운명이 바뀔만한 숨겨둔 비밀이 없나요?˝
응? 없는데....했더니 한 가지라도 말해 달란다.
그래서 늘 하던 거짓말을 들려줬다.
실은 너희들은 쌍둥이가 아녔지. 누가 자신의 아기를 대신 좀 키워달래서 데려오다 보니 쌍둥이가 된 거다!!!
몇 번을 일러줬더니 요즘은 콧방귀도 안 뀐다.
그것 말고 좀 SF적으로다 운명이 바뀔만한 숨겨온 비밀을 들려달라는데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는 걸까?
˝넌 사실 사람이 아니다.....˝
.............또 콧방귀도 안 뀐다.
이제 서서히 10대를 마무리할 정신 연령에 도달하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저런 질문을 하는 걸 보면 아직 먼 것 같은데....
어쨌든 이젠 정말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뭘로 하나?
병원에서의 이번 주 책탑 사진으로 마무리 하련다.
공든 책탑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