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닉네임을 온라인상에서 검색해보는 걸 '허영검색'이라고 한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의 출간 이후에 그 허영검색이란 걸 종종 해본다. 책과 관련하여 나도 모르는 기사나 리뷰가 뜨기 때문이다(자주는 아니지만 의외의 리뷰를 만나면 반갑다). 어제는 '뉴스' 쪽에서도 관련기사를 읽을 수 있었는데, 블룩(blook)과 출판권력의 구조 재편을 다룬 주간한국의 기사였다. 그냥 읽고 지나치면 말 일이지만, "하루 70여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이라고 엉뚱하게 소개돼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최근 80만명이 넘어섰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총방문자수이다. '하루 70여만명'쯤 방문해야 '파워블로거'가 되는 거라면, 나는 아직 멀었다!..  

주간한국(09. 06. 17) 블룩(blook), 출판 권력 재편하나 

주부 김향숙(41ㆍ여) 씨는 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를 삶의 통찰과 연결짓는 에세이를 써왔다. 글을 쓰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도 정리되는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 자신이 쓴 글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방법을 잘 알 수 없었다. 기성작가도 아닌 일반인이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글쓰기 클럽을 발견한 것이다. 그도 고부간의 갈등을 비롯한 자신의 가족에 대한 고백적인 글을 나누기가 처음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모여 글쓰기 정보를 공유하고 비평하며 내공을 길렀다. 이들은 결국 공동저작의 책을 내기로 뜻을 모았다. 수익금도 ‘어린이 재단’의 결식 아동 돕기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공유’하기로 했다. 이들은 출판사에 찾아가 자신의 글을 부탁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한 가지 주제로 기획하고 쓴 글을 모아 출판사를 선택했다.  

지난달 4일 ‘지식노마드’에서 나온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가 그 결정체. 이 책은 김 씨를 비롯해 온라인에서 만난 글쓰기 블로그 회원 10명이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모아 엮은 것이다. 김 씨는 “책 출간이라는 꿈을 이뤄서 너무 기쁘다”며 “저술부터 출간까지 클럽 회원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 힘들기도 했지만 고생한 만큼 보람됐다”고 말했다.

블로그의 내용을 책으로 만든 ‘블룩(blook)’이 출판 권력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다. 출판의 중심이 제작자에서 소비자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작가와 일반인으로 나뉘는 출판 주체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블룩이란 ‘책(book)’과 ‘블로그(blog)’의 합성어로 블로그에 올라왔던 글을 묶어 낸 책을 일컫는 신조어다.

출판 순서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다. 출판사가 작가의 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이 블로그의 글을 먼저 선택한다. 경우에 따라 블로거가 출판사를 직접 선택해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출판사-저자-독자’에서 ‘저자/독자-출판사-독자’의 구조로 제작과 유통의 순서가 뒤바뀌는 것이다. 자연히 출판 권력의 방향 역시 변화한다. 출판의 무게 중심이 출판사에서 저자, 독자로 기울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중태 IT문화원 원장은 “옛날 같으면 책을 한 권 내려면 출판사의 간택을 받으려 노력해야 했지만 블룩의 출현으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며 “이 같은 변화는 창작의 주체로서 전업작가의 권위마저 위태롭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블룩, 출판의 중심을 출판사에서 일반인으로
출판사가 저자를 고르고 선택하며 중심에 서는 출판 관행이 블룩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 전문적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모여 글과 글 쓰기 방법을 공유하며 공동저작으로 책을 내는 일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지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습니다’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월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SNS)에서 만난 29명의 블로거들이 다양한 온라인 툴을 활용해 직접 만들어 낸 ‘2009년 블로그로 살아남다’가 대표적인 예. 이들은 출판사의 도움 없이 기획부터 집필, 디자인, 인쇄, 유통까지 출판의 전 과정을 자신들의 힘으로 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저자의 직업은 기업가, 마술사, 프로그래머, 응원단장, 마케터, 디자이너, 컨설턴트 등 다양하다.

제작부터 출판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한 달. 블로거 클럽의 한 회원이 블로그에 대한 글을 함께 쓰자는 글을 올린 뒤 많은 댓글과 토론글이 올라왔다. 50명의 회원이 주제별로 글을 써서 원고에 응모했다. 2번의 준비모임과 작업 끝에 책이 나왔다. 제작 과정의 중심 역시 출판사가 아닌 블로거였다. 출판할 글은 각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뒤 트랙백을 걸어 서로 연결했다. 디자이너가 MS오피스 퍼블리셔로 만든 표준 편집기로 각자가 글을 편집했다. 퍼블리셔 프로그램 사용법은 웹 카메라와 동영상 강의를 사용했다. 책의 표지나 표지시안은 구글 앱스(Apps)의 양식생성 기능을 썼다.  

생활ㆍ문화ㆍ시사, 담론의 주체 바꾸는 ‘블룩’
블룩의 출현은 출판권력과 저자의 변화를 통해 생활ㆍ문화ㆍ시사 담론의 주체를 전문가에서 일반인으로 역전시키고 있다. 일반인이 예술관련 비평이나 담론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분위기를 바꾼 것이다. 김홍기의 블로그, 문화의 제국(blog.daum.net/film-art)에 연재됐던 ‘하하 미술관(2009)’, ‘샤넬 미술관에 가다(2008)’ 등은 책으로 나와 더 인기를 끌었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는 미술을 통해 보는 패션의 숨은 이야기다. ‘하하 미술관’은 미술 심리 치유 에세이다. 이철우의 심리학 책인 '인관관계가 행복해지는 나를 위한 심리학(2007)' 역시 블로그 연재를 먼저 한 블룩이다. 



블룩의 유행은 정치비평 등을 통한 시사담론을 이끄는 오피니언 리더를 교수, 언론인 등 일부계층에서 일반인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하루 70여만 명이 방문하는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http://blog.aladin.co.kr/mramor)’의 주인 이현우(42) 씨는 문화 에세이 ‘로자의 인문학 서재(2009)’를 펴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다.
  

블로거 ‘MP4/13’과 김용민 시사평론가가 공동 집필한 책인 ‘블로거, 명박을 쏘다(2008)’도 화제를 일으켰다. ‘MP4/13’는 ‘고소영’ 라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유명 블로거다. 그는 지난 2007년 2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정부 고소영 라인이 뜬다’는 제목의 글을 써 하루 22만여 명의 방문자가 그의 블로그를 찾기도 했다. 의사인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2008)' 역시 블로그 글의 모음이다.  



특히 요리 관련 블로그 글의 출간은 블룩의 활성화를 견인했다. 김용환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요리법을 책으로 옮긴 ‘2000원으로 밥상차리기’는 지난 2003년 출간해 현재까지 70만여 부가 팔렸다. 이 책은 간단한 조리방법과 완성 사진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요리책과 달리 사진으로 조리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요리책인 ‘혜나네 집에 100만 명이 다녀간 까닭은(2006)’도 인기를 끌었다. 



여행ㆍ생활 부문에서도 블룩은 베스트 셀러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해왔다. 오영욱의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2008), ‘오기사 행복을 찾아 바르셀로나로 떠나다’(2006),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2005)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박성빈의 여행책 ‘그리우면 떠나라-Nova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별스크랩(2006)’도 있다. ‘황혜경의 ‘반나절이면 집이 확 바뀌는 레테의 5만원 인테리어(2006)’, 송민경의 ‘명품 다이어트 & 셀프 휘트니스(2005)' 등도 온라인에서 인기를 끈 글이 오프라인 책으로 나와 히트한 블룩 성공사례다.

전문 작가들도 변화에 발맞추기 시작, 외국에서는 이미 대세
전업작가들도 일부지만 이런 변화에 발맞춰 블룩의 대열에 동참을 시도하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먼저 올리고 책 출간을 나중에 하는 식으로 변화에 발맞추고 있는 것이다. 출판권력의 변화는 일부 출판사의 전횡에 시달리던 문단이 더 바라던 바일 수도 있다. 정도상 소설가는 신작 장편소설 ‘낙타’를 8일부터 문학동네 인터넷 커뮤니티(http://cafe.naver.com/mhdn)에 일일 연재하기 시작했다. 황석영은 ‘개밥바라기 별(2008)’을 블로그에 출간보다 먼저 연재한 바 있다. 박범신도 블로그에 ‘촐라체(2008)’를 연재했다.

아마존 (www.amazon.com)에서는 블룩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게 더 이상 이변이 아니다. 블로거가 책 창작과 유통의 중심이 돼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즈니스 위크’에 따르면 블룩은 2005년 미국 출판계 베스트 셀러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MS 프로그램 관리자 출신의 미국인 조엘 스폴스키는 경영에 관한 자신의 블로그(www.joelonsoftware.com) 글을 묶어 ‘조엘 온 소프트웨어(2005)’를 펴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독일인 필립 렌센은 자신의 블로그인 ‘구글 블로코프(blog.outer-court.com)’에 올린 글을 모아 ‘구글을 재밌게 사용하는 55가지 방법(2006)’을 내놓기도 했다. ‘블룩’이라는 출판의 방법이 구글을 즐겨 쓰는 평범한 사람을 화제작의 저자로 바꿔놓은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도 언제든 출판계의 강자로 떠오를 수 있는 세상이다.(김청환기자) 

0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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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룩의 시대와 출판의 향방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11-12 12:29 
    올 한해 출판계를 결산하는 한국일보의 연재기사에서 '블룩(blook)'을 다룬 꼭지를 옮겨놓는다. 블록에 대해서는 나도 한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인데, 기사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다. 더불어, 자세히 보니 관련이미지가 '로쟈의 저공비행'이기도 하다. 다시금 바닥이 좁구나란 생각이 드는데, 내년에는 더 많은 블로거들의 더 풍성한 '블룩'이 햇빛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흠, 나부터도 어서 2, 3탄을 준비해야 할까...   한국일보(09. 11
 
 
드팀전 2009-06-18 12:19   좋아요 0 | URL
최근에 제가 좋아하고, 자주 펴보는 블룩이...'산타벨라'분의 책입니다.ㅋㅋ
워터코인을 토양 위에 하는 수경재배로 완전히 성공시켰다는...이 만족감.
하나는 뚝배기에 하나는 못쓰는 법랑 주전자에...

로쟈 2009-06-18 14:07   좋아요 0 | URL
대단한 블로거들이 참 많은 듯해요.^^ 블룩 판매량이 의외일 정도로...

2009-06-18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1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게으름뱅이_톰 2009-06-22 18:22   좋아요 0 | URL
출판까지 한달! 놀라워요. 글쓰는 블로거들의 로망이 아닐까요? 블룩. ^^

로쟈 2009-06-22 23:11   좋아요 0 | URL
'로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쉬워진 듯해요.^^
 

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서평칼럼을 옮겨놓는다. 가와이 쇼이치로의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를 읽은 소감을 현 시국과 연관지어 적은 글이다.  

교수신문(09. 06. 15) 헤라클레스 되기를 포기한 햄릿의 운명에서 ‘고귀함’을 보다  

가와이 쇼이치로의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시그마북스, 2009)를 흥미롭게 읽었다. 셰익스피어만큼 유명한 작가가 없고, 또 『햄릿』만큼 유명한 작품이 없는데 ‘무슨 수수께끼란 말인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이 작품이 품고 있는 수수께끼가 아직 다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독자나 관객을 매혹시키는 게 아닐까. 

저자는 ‘우유부단하고 허약한 철학청년’이라는 햄릿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상’으로 치부하면서 그를 헤라클레스 신화와 연관지어 새롭게 해석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헤라클레스란 키워드가 없다면 『햄릿』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러한 해석은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 셰익스피어학계에서도 제출된 적이 없는 독창적인 견해라 한다.  

사실 단서가 없지는 않았다. 1막 2장에 나오는 독백에서 햄릿은 숙부이자 계부인 클로디어스를 평하면서 “내 아버지의 동생. 그러나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르다. 나와 헤라클레스의 차이만큼이나”라고 말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근거로 흔히 햄릿을 헤라클레스와는 대척점에 놓인 인물로 인지하게 되지만 저자는 뒤집어서 읽는다. 애초에 ‘나는 헤라클레스와 다르다’고 시인한 햄릿이지만 차츰 헤라클레스처럼 행동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이 작품에서 햄릿은 숙부의 범죄를 알게 된 이후에 헤라클레스와 같은 영웅이 되고자 하며, 그에 따라 변신하게 된다.     

하지만 어째서 그의 결심은 자꾸 유예됐는가. 사실 햄릿은 격정의 인간이기도 하다. 3막 4장에서 왕비인 어머니의 침소 휘장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를 “어, 이건 뭐야? 쥐새끼냐?”라고 외치며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은 그의 제어되지 않은 격정이 표출된 사례다. 햄릿은 그러한 격정이 잘못된 상상과 판단, 그리고 행위를 낳을까 염려한다. 그래서 이성에 따라 참을 것인가(To be), 격정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not to be)를 고민한다. 유령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도 거기에서 비롯한다. 때문에 그가 진정한 행동으로 나서는 데는 또 한번의 변신이 요구된다. 그 변신은 그가 헤라클레스와 같은 행동을 포기하고 모든 일을 신의 뜻에 맡기고자 할 때 달성된다. 그것을 잘 말해주는 것이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데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있는 법”이라는 햄릿의 대사다.  

그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햄릿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의 채찍’이 돼 천벌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만약에 이 작품이 진정한 복수극이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한번 더 유령이 등장하는 것이 합당할 테지만,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다. 햄릿은 헤라클레스가 되려는 시도를 포기하며 모든 것을 다만 순리에 맡기고자 한다(Let be). 이러한 변신에 따라 ‘To be, or not to be’라는 햄릿의 고민은 ‘Let be’라는 깨달음으로 바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진정한 ‘고귀함’은 인간이 가진 한계를 아는 데, 그리고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에서 자세히 분석하고 있는 햄릿의 저 유명한 대사 “The time is out of joint.”를 다시금 환기하자면, 우리는 시간이 경첩에서 빠진 시대, 이음새에서 풀려난 시대, 그래서 제멋대로 가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가와이 쇼이치로의 새로운 해석에 기대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헤라클레스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다만 순리에 따라 행동하면 될 따름. 그리고 “나머지는 침묵.” 

09.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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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9-06-1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쥐'만 나오면 그 분이 생각나서...폴로니어스마저도...지난 번 소개로 저 책을 가지고 있는데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 '신의 채찍'으로의 '자기 변용'에 약간의 두려움이 생기긴합니다.슈바니츠의 <햄릿> 역시 기다리고만 있구..쯥

로쟈 2009-06-16 13:28   좋아요 0 | URL
네, 셰익스피어는 모든 걸 다 써놓았죠.^^ 장문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근접조우했었는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꼬마요정 2009-06-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만 존 에버릿 밀레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죠. 저 책의 표지에 있는 녹색 수초에 쌓인 처연한 여인 오필리어요.. 제 노트북 배경도 이 그림이랍니다. 사람들이 보더니 저더러 미쳤다고 하죠..^^;;

로쟈 2009-06-20 08:34   좋아요 0 | URL
네, 속으로만 맘에 드셨다고 해야겠어요.^^
 

지난 '6.9 작가선언'에는 "촌스러워서 살 수가 없다"는 한줄선언도 포함돼 있었는데, 정말로 촌스러운 일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너무도 자주, 게다가 '강압적'으로 벌어지고 있어서 감정의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이젠 '촌스러운'보다도 몇 단계 아래인 '명박스러운'이라고 해야겠다). 어제는 국세청 게시판에 내부 비판의 글을 올린 직원을 파면시켰다는 기사가 뜨더니 오늘은(내일자) 경찰이 좌파서적 판매동향 파악에 나섰다는 기사가 또 할말을 잊게 한다. 물론 상투적인 '좌파 프레임'으로 시국을 재단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이런 일들이 어이없는 작태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들려는 '음모'가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다(이젠 '상식 이하'가 '상식'에 돼가고 있는 것 아닌가). 정말로 두려운 건 이제 이런 행태가 '일상화'되는 것, 더이상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다! 

 

세계일보(09. 06. 15) 경찰, 좌파서적 판매동향 긴급파악 나서 배경에 관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학계, 시민사회의 시국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최근 인터넷 서점 업체에 좌파적 시각을 담은 서적들의 판매 동향을 일일이 점검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 인터넷 서점 업체 A사 측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1일과 12일 서울 본사와 출판 공장 등에 잇따라 전화를 걸어 서울대 김수행 교수의 저서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시대의창)와 ‘자본론 1·2·3’ 시리즈(비봉출판사),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시대의창) 등 소위 좌파 서적을 특정하며 이들 서적의 최근 판매 현황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했다.   

인터넷 서점 A사에 전화한 경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시국이 어수선한데 좌파 서적 판매량이 요즘 많이 늘어났느냐”며 특히 ‘자본론’ 시리즈 등 3권의 판매 추이를 집중적으로 물었다고 A사 관계자는 전했다. 특히 경찰은 “최근 정부로부터 공문이 내려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좌파 서적의 판매고 현황을 급히 파악 중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등 정보·사정 기관이 최근 시국 선언 정국에서 이명박 정부에 반하는 좌파 세력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A사 관계자도 “경찰이 이른바 반 정부 세력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며 동향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 시장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열기에 힘입어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가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전국의 온·오프라인 서점 11곳에서 지난 5일∼11일 판매된 부수를 종합한 결과, 노 전 대통령의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가 6월 둘째주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올랐다. 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도 14위에 올라 출간 7년 만에 20위 안에 들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나쁜 사마리아인들’, ‘지상에 숟가락 하나’, ‘대한민국사’ 등 23권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으나,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오히려 판매량이 평소보다 7배 이상 늘어나는 등 급증한 바 있다. 당시 네티즌들은 “2003년 MBC ‘느낌표’ 선정도로서 뽑혔던 현기영 작가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나 작고한 아동문학가 권정생씨의 글을 모은 ‘우리들의 하나님’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하는 현실이 이해가 안 간다”, “누구의 머리 속에서 ‘불온’의 기준이 정해지는지 궁금하다”, “이 참에 좋은 책들 소개해줘서 고맙다”며 정부를 비난했다.(김형구기자) 

09. 0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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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6-14 19:23   좋아요 0 | URL
토 나오네용;;

로쟈 2009-06-15 08:08   좋아요 0 | URL
식전에 읽으면 안되겠네요.--;

비로그인 2009-06-14 20:12   좋아요 0 | URL
파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덤에서 일어난 시체들이 정권을 잡으니
이렇게 웃을 일도 생기는군요

로쟈 2009-06-15 08:07   좋아요 0 | URL
좀비들인가요...

게으름뱅이_톰 2009-06-14 21:10   좋아요 0 | URL
하아아아... 촌스러움의 강도로 말하자면
촌스러움 <<<<<<<<<<<<<<넘사벽<<<<<<명박스러움

정부에서 공문이 내려와...를 보다가 멍해졌어요. 기도 안 막히네.

로쟈 2009-06-15 08:07   좋아요 0 | URL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 과장인 줄 알았어요...

바람돌이 2009-06-14 22:27   좋아요 0 | URL
왜 또 좌파서적 리스트 만들어 좌악 돌리면 되겠네요. 판매량 증가을 위해...
mb가 싫어하면 모든 국민이 좋아하잖아요.

로쟈 2009-06-15 08:06   좋아요 0 | URL
30% 지지자는 빼고요...

마늘빵 2009-06-14 22:35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건 뭐. 이제 책 판매량 검열까지 하는군요.

로쟈 2009-06-15 08:06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고 욕먹을 텐데요...

비연 2009-06-15 00:11   좋아요 0 | URL
판매량 늘리고 싶은 책들 리스트업해서 보내줘야겠어요. 불온서적으로.

로쟈 2009-06-15 08:0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출판계가 불황인데, 나름 애써주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0:19   좋아요 0 | URL
한나라당이 여당이 되더니 역시 민정당이 되는군요.오늘은 김대중 전대통령이 정권타도 지침을 내렸다고 주장하네요.1980년에 내란음모 사건을 통해 김대중에게 사형선고 내리던 기세와 비슷합니다.

로쟈 2009-06-15 08:05   좋아요 0 | URL
5공 청산이 아직 안된 것이죠...

게슴츠레 2009-06-15 10:40   좋아요 0 | URL
'반정부세력'을 찾으려면 굳이 이런 뒷조사까지 하지 않아도 시청이나 용산에만 가도 쉽게 볼 수 있을텐데요...어쩌면 그분들은 뒤에 '배후''음모'가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의 공포를 외면한 채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모든 재앙이 시작되었다는 음모론 식으로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보다는 그렇게 '나쁜 사람들'의 존재를 상정하는 게 그쪽에서는 나름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합니다.

로쟈 2009-06-15 15:27   좋아요 0 | URL
'음모론'을 서로 공유하고 있는 건가요?^^

가을산 2009-06-15 15:25   좋아요 0 | URL
자신들이 오른쪽 끝에 있으니
자기들보다 왼쪽에 있는 자들은 온통 좌파로 보이나봅니다.

로쟈 2009-06-15 15:27   좋아요 0 | URL
오른쪽도 아니죠. 그냥 무지와 편견과 탐욕의 복합체죠...

가을산 2009-06-15 15:57   좋아요 0 | URL
그건 현실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끔찍한 표현이잖아요.... ㅡ,ㅡ

그나저나... 쿠폰 할인 받으려고 새로 번역된 자본론 시리즈 구입을 늦추고 있었는데, 이거 빨리 사야 하는걸까요?
잘못하면 출판마저 금지되겠네요.

로쟈 2009-06-16 13:29   좋아요 0 | URL
길에서 나온 <자본>도 있는데 그건 미처 체크가 안되나 봐요.^^

노이에자이트 2009-06-16 16:19   좋아요 0 | URL
인터넷으로도 자본 영역본을 볼 수 있는데 이건 어떻게 단속할런지...

로쟈 2009-06-17 08:20   좋아요 0 | URL
거긴 터치 안하죠.^^
 

이번주 한겨레21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시 읽어주는 남자' 꼭지를 옮겨놓는다. 어제 검찰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는데, 역시나 기대할 것 없는 용두사미였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60233.html). 민주주의 위기에 대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우려성 발언에 "김대중씨도 자살하라"는 말이 오고가는 게 현 정부와 그 겁없는 지지자들의 수준이다. 무얼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준다.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는 시구절을 읽으며, 버린 눈을 씻는다.    

» 1990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김영삼 민주당 총재의 3당 통합 연설 중 항의하고 있다.  

한겨레21(09. 06. 12)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 

순결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이미 많아서 누추한 말 보태기가 버겁다. 그러나 아니 할 수가 없다. 고인을 ‘미화’하지 말라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들이 있다. 미화는, 없는 아름다움을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일이지만, 고인은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마음들은 이해할 만한 마음들이다. 고인의 잘잘못을 냉철하게 따지지 않고서는 고인을 추모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일정 부분 업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잘못을 범했으니 무작정 감상에 젖지들 말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옳다. 그들은 늘 옳다. 그래서 싫다. 그저 내가 아는 바와 믿는 바를 쓰겠다.  

고졸 출신 변호사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정치판에 나가 자신을 내던져가며 지역구도와 싸웠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들과 싸웠고, 권력을 국민에게 넘겨주고 권위마저 잃어버려서는, 그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비판을 모조리 감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고, 자신이 지켜온 가치가 무너지자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어 그렇게 살았고,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죽어야 하는지를 마침내 알게 되어 그렇게 죽었다. 나는 늘 문학은 ‘성공’을 찬미하는 세계에 맞서 ‘몰락’의 의미를 사유하는 작업이라고 믿어왔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간 노무현의 몰락이 내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문학적이다.

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개의 인간에게는 그의 삶을 떠받치는 척추 같은 것이 있다. 고인의 그것은 ‘깨끗함’이었을 것이다. 권력은, 한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 바로 그 척추를 하나씩 부러뜨렸다. 뜻을 함께했던 동지들을 잡아들였고 가족들을 소환해 목을 졸랐다. 가족과 측근이 돈을 받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그의 말을 나는 믿는다. 억울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목을 조였을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주변이 고통받는 것을 묵인해야만 했고, 죄책감을 덜려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해야 했을 것이다. 진퇴양난이었을 것이다. 억울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해결하는 길은 자살뿐이라고, 5월23일 새벽에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 밤이 나는 아프다.

“아마 그는 그 밤에 아무도 몰래 울곤 했을 것이다/ 어느 시인은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고 말했지만/ 세상은 이제 그가 조용히 울던 그 밤을 기억하려 한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흐느껴본 자들은 안다/ 자신이 지금 울면서 배웅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울음이라는 사실을/ 이 울음으로/ 나는 지금 어딘가에서 내 눈 속을 들여다보는 자들의 밤을/ 마중 나가고 있다고// 그리고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것이라고.” 시인 김경주가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발표한 추모시 ‘그가 남몰래 울던 밤을 기억하라’의 전반부다. 이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 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시간이 올 것이다.”

아마 많이들 그러했으리라. 5월23일 저녁이 되어서야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를 생각하다가 ‘누가 그를 죽였을까’로 생각이 바뀌면서였다. 비열한 권력과 그 하수인들이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러워서, 그들 밑에서 백성 노릇 하는 일이 수치스럽고 서러워서 울었다. 그날 내가 마음속으로 조문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욕할 자격이 내게 있는지 모르겠으나 무릅쓰고 말하거니와, 그날 죽은 것은 머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 영혼이 없는 검찰과 심장이 없는 언론이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그들을 내 안에 잔혹하게 장사 지냈고 조문하지 않았다. 역사가 그들을 부관하고 참시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하나씩의 정부, 하나씩의 검찰, 하나씩의 언론이 되어야만 하나.(신형철 문학평론가) 

09. 06. 13. 

P.S. 후렴 삼아 적어둔다. "그날 죽은 것은 머리가 없는 이명박 정부와 영혼이 없는 검찰과 심장이 없는 언론이다. 그날 하루 동안, 나는 그들을 내 안에 잔혹하게 장사 지냈고 조문하지 않았다. 역사가 그들을 부관하고 참시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다들 살아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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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할 일
    from 실낱처럼 2009-06-14 00:45 
    김대중도 자살하라는 막말이 오고 가는 시절. 68 혁명과 6.10 항쟁을 기억하며 6.9 작가선언을 해야 하는 시절. 나 먹고 사는것도 급급한 세월이지만 이 땅이 창피하고 속상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웅얼거리고야 마는 순간들. 그럼에도 살아 남아야 한다고, 언젠가 역사가 부관, 참시할 때 함께 해야 한단다. 내가 무얼 알겠는가. 내가 아는 정치
 
 
2009-06-13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4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4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14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9-06-14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호 이 '시 읽어주는 남자' 꼭지를 종이잡지로 읽고 나서, 이건 지금까지 <한겨레 21>에 실린 신형철의 원고 중 나름 '절창'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후배의 자격으로 형철 선배께 감사의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더랬습니다. 저도 저 '후렴구'를 몇 번이나 되뇌어 보았답니다... 꼭 살아남아서 저 역사의 부관 참시에, 참관인의 자격으로나 집도의의 자격으로나, 반드시 참석하고 싶어졌습니다.

로쟈 2009-06-14 11:2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잡지가 안 와서 늦게야 읽었습니다. '집도의' 람혼님의 역할도 기대가 됩니다.^^
 

'인간은 업그레이드된 물고기'란 페이퍼를 올려놓고 보니 생각나는 시가 있다. 역시나 95년 여름에 쓴 것인데, 제목이 '물고기는 죽는다'이니 <내 안의 물고기>란 책 제목과 맞물려 얼추 연상됨 직하지 않은가. 그래서 옮겨놓는다. 

  

물고기는 죽는다

한 줌의 비가 흩뿌리고 물고기는 눈을 뜬다
몇 채의 집이 먼지처럼 떨어진다 물고기는
헤엄을 쳐야 한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 공간
물고기는 물결들을 뒤로 뒤로 밀어내며
하나의 이념처럼 눈알이 붉다 새벽이 멀다
물고기는 다만 헤엄을 쳐야 한다
몇 채의 집이 먼지처럼 무너져 앉고 물고기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쪽에 입을 맞춘다

한 줌의 비가 흩뿌리고 물고기는 눈을 뜬다
물고기는 눈을 뜨고 죽는다 

 

09. 06. 13. 

P.S. 20대 후반에 쓴 시작메모를 보니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다: "(...) 나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고 그림도 그릴 줄 모른다. 달리기도 잘 못하고 수학도 잘 못한다. 고작 책읽는 걸 나는 주로 해왔을 뿐이다. 대학이란 곳이 책읽는 것과 관계가 있어서 나는 그럭저럭 이곳에서 버텨왔다. 그러나 가끔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아직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새벽이 멀기 때문이다. 계속 헤엄을 치고는 있지만, 나는 내가 늙어갈 거라는 걸 알고, 언젠가 힘이 빠질 거라는 걸 안다. 자손을 많이 퍼뜨릴 만한 위인도 못 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럴 듯한 유언들을 남기는 일이다. 내가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이 지상에서 인간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책이 되는 일이다." 책이 못 된다면 저자라도 될 일이다.(나는 저자가 되고 싶었다. '저자의 죽음'이란 얘기가 떠돌 때는 나도 따라서 죽고 싶었다.)"   

 

흠, 그러다 결국 '저자'가 되긴 했다. 이젠 무얼 더 해야 할까.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의 에필로그에서 인용한 시오랑의 말. "우리는 모두 어릿광대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으니까." 이걸 조금 비틀어볼 수 있을 듯하다. 물고기 버전으로. "우리는 모두 물고기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헤엄을 쳐야 하니까." 눈을 뜨고 죽을 때까지. 요즘 같아선 눈을 부릅뜨고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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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09-06-1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 가르치셔야죠...^^;;;

로쟈 2009-06-14 13:47   좋아요 0 | URL
제가 아직 '학생' 수준입니다.^^; 배우기 위해서 가르칠 따름이에요...

Sati 2009-07-1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읽은 로쟈님의 글이 http://blog.aladdin.co.kr/mramor/842940 이건데, 2004년에 아직 모스크바에 있을 때 읽은 것 같아요. 도블라토프 검색하다가 찾았는데, 누군가 펌질한 것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뭐랄까, '참 친절하신 분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로쟈님 시 가끔 올려주시는 것들도 참 친절함이 느껴져요 알알이. 예쁜 시집도 내주시길 기대합니다.

로쟈 2009-07-12 21:17   좋아요 0 | URL
시집은 제가 낼 수 있는 건 아니고, 아직 제안해오는 곳이 없습니다.^^;

Sati 2009-07-13 12:47   좋아요 0 | URL
시집 나오면 제가 10권은 살 거예요, 선물하게.

로쟈 2009-07-13 23:02   좋아요 0 | URL
네, 기억해 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