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들렀다가 종각역 지하의 반디앤루니스에 처음 들러보았다. 역시나 익숙한 매장이 아니어서 책들을 둘러보는 일도 좀 어색했는데 인문서 신간 매장에서 우연히 애니 스타브라카키스의 <라캉과 정치>(은행나무, 2006)가 출간된 걸 보았다. 이미 지난번에 숀 호머의 <라캉 읽기>가 출간되었을 때 근간으로 예고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빨리 출간될 줄은 몰랐다. 사실 원서 자체는 지난 1999년에 나온 것이므로 번역/소개 자체가 발빠르게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저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라캉의 정신분석>도 바로 나오는 것일까?).

 

 

 

 

<라캉과 정치>라고 옮겨졌지만, 역자의 해명대로 원제는 '라캉과 정치적인 것(Lacan and the political)'이며, 작년에 나온 폴 패튼의 <들뢰즈와 정치>(태학사, 2005)와 같은 시리즈의 책이다(참고로, 원저는 188쪽 분량이지만 국역본은 459쪽이다. 2배 이상 부풀려진 셈인데 그나마 가격마저 부담스러운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현재까지는 이 두 권만 소개됐지만, 루틀리지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이 시리즈에는 이미 <푸코와 정치>, <데리다와 정치>, <니체와 정치>, <하이데거와 정치>, <레비나스와 정치> 등 여러 권이 출간 목록에 올라와 있는 상태이다(나도 몇 권을 더 갖고 있다). 시리즈의 공동편집자는 <싹트는 생명>(산해, 2005)의 저자인 워윅대학의 키스 안셀-피어슨과 에섹스대학의 사이먼 크리칠리 교수이다. 각각 니체-들뢰즈, 데리다-레비나스 전문가로서 유명하다.

 

<라캉과 정치>의 저자인 야니 스타브라카키스 또한 에섹스대학 출신으로 급진적 민주주의론으로 유명한 어네스토 라클라우의 제자이다('Essex' 를 국역본의 필자소개에서는 '에식스'라고 표기했는데, 원래 발음이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에섹스'의 '어감' 때문인가? 뒷표지에도 '슬보예 지젝'을 '슬보예 지젝"이라고 오기했는데, 이것도 발음 때문일까?). 이름이 좀 희한한 것은 그리스 출신이어서이다(왜 있잖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같은 이름). 

라클라우의 제자란 말은 단순한 사실 이상으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이 책은 라캉의 기본적인 개념을 명확하고 완벽하게 설명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현재의 사회-정치 현상 연구에 적용하려는 지금까지의 시도 중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통찰력 있는 시도이다."라는 라클라우의 찬사를 뒷표지에 싣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스타브라카키스는 자신의 스승이자 동료인 라클라우/무페의 급진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라캉 정신분석학의 윤리 속에서 발견하고 있으니 라클라우로서는 어찌 대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라클라우와 무페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Verso, 2001, 2판)은 적어도 이 책 <라캉과 정치>와 같이 읽거나 미리 읽어두어야 하는 책이다. 책은 지난 1985년에 197쪽 분량으로 초판이 나왔었는데, <라캉과 정치>가 출간된 이후인 지난 2001년에 240쪽 분량의 증보된 2판이 출간됐다. 국역본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터, 1990). 물론 품절됐다. 한때 '포스트-마르크스주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문제적인 저작인데, 나는 민주주의론에 관한 책으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물론 내가 읽은 게 몇 안되지만). 어정쩡한 제목이 아닌 제대로 된 제목을 달고 조만간 복간되었으면 한다.

 

 

 

 

정리하자면, <라캉 읽기>와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두 권 정도는 <라캉과 정치>보다 먼저 읽어두는 게 좋겠다(예비적인 읽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책읽기가 더뎌질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읽어야 할 책은 지젝의 <이라크>(도서출판b, 2004).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Verso, 1989)을 통해 지젝이 '데뷔'할 때 후견자 역할을 하면서 서문을 써준 이가 라클라우이며 지젝은 당시만 해도 (급진적)민주주의론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했었다.

하지만 이후에 지젝은 점차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인/비판적인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며(최근의 영화 <지젝!>에서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내비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창피한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당연한 일이지만, 라클라우와의 이론적 동반자 관계가 이론적 긴장관계로 전이된다. 이러한 이론적 긴장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는 대목이 (내가 읽은 한도 내에서는) <이라크>의 2장(원서에서는 부록1)에 포함돼 있다. 그걸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샹탈 무페의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과 발리바르의 <민주주의와 독재>(연구사, 1988)를 참고문헌으로 덧붙일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그런 맥락에서 라클라우-스타브라카키스와 지젝은 이론적 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전선'은 라캉의 해석을 둘러썬 전선이다. 라클라우와 함께 지젝이 이 책의 (뒷표지에서) '추천사'를 쓰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라캉과 정치>는 명확하고 체계적이며 이해하기 쉽게 저술되었으며,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정치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즉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입장을 단호하게 보증해주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스타브라카키스의 책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논쟁의 용어들을 재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쟁'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라클라우와 지젝 간의 '논쟁'으로 다시 이해해보고자 하며, 그래서 제목을 '라클라우-라캉-지젝'이라 붙였다. 여기서는 논쟁의 구도만을 제시할 따름이고 그 내용은 차후에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당장 <이라크>의 국역본이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보이지 않는군). 사실 이 구도는 역자가 이 책의 의의를 거론하면서 해설에서 잘 짚어주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지젝의 <이라크>를 통해서 이 책과 지젝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논쟁점은 급진적 민주주의 기획과 정치경제학과 계급 적대를 유지하고자 하는 기획 사이의 논쟁일 것이며, 라캉의 윤리학과 급진적 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쟁일 것이다."(430쪽) 책은 "이들간의 논쟁점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이해의 발판을 마련해준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며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구도이다. 물론 책은 언제나 돌발적인 '발견', 우연한 마주침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책읽기는 정해진 경로만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그 '긴장'이 물론 독자의 즐거움인 것이고...

07. 01. 05 - 06.

P.S. 내가 갖고 있는 이 책의 원서는 언젠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손수 복사한 것이다. 이 책에서도 자주 참조되고 있는 라쿠-라바르트와 낭시의 공저 <문자라는 타이틀(The title of the letter)>과 함께 복사해서 (비용절감을 위해) 합본으로 제본했었다. 이 책을 만지고 있자니 어느 해 겨울 도서관의 공기가 느껴진다. 나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수십 권의 책들을 그렇게 복사하곤 했다(스프링 제본을 해주던 아저씨와 안면이 생길 정도로). 그렇게 다 발품과 손품을 판 책들이라 애착을 가는 것. 어제 복사물 더미에서 책을 찾으니까 '서문' 정도를 읽은 것으로 표시돼 있다.

Cover: Language in Literature

원서를 찾자마자 가장 먼저 들춰본 페이지는 야콥슨의 은유와 환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국역본을 뒤적이다가 "은유와 환유는 그림(야콥슨에 따르면 큐비즘은 환유적인 반면에 사실주의는 은유적이다), 영화, 스토리텔링, 그리고 심리적 과정까지 포함하고 있는 모든 기호학적 체계의 형식 속에서 발견될 수 있었다"(150쪽)라고 한 대목이 아무래도 오역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사실주의가 은유적이라니?). 한데, 찾아보니 원서에서도 "according to Jakobson, cubism is metonymically oriented while  realism is metaphorically oriented"(58쪽)라고 돼 있는 게 아닌가. 

저자가 참조한 책은 야콥슨의 'Essays on Language of Literature"(1998)인데(이건 아테네에서 출간된 책이다! 국역본의 참고문헌에는 'Essay on  Language of Literature'로 탈자가 있다. 한가지 더 꼬집자면 '내어쓰기'를 하지 않은 참고문헌을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가? 편집자의 기본 혹은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 보다 대중적인 판본은 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온 'Language in Literature'(1987)이고 우리말로는 <문학 속의 언어학>(문학과지성사, 1989)으로 번역됐었다(완역은 아니다. 이왕 품절된 김에, 완역본이 재출간됐으면 싶다). 보다 구체적으로 거기에 들어 있는 '언어의 두 양상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 책엔 '언어의 두 가지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이라 옮겨진)이란 고명한 논문이 참조 대상이다.

아테네에서 나온 판본에는 뭐라 적혀 있는지 모르겠지만(<문학 속의 언어학> 또한 당장 옆에 있지 않아서 참조할 수 없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무래도 저자가 'surrealism'을 'realism'으로 오기한 듯싶다. 이 상식에도 맞지 않는 내용이 루틀리지의 편집자에게 걸러지지 않았고 국역본의 역자나 편집자에게도 간과된 것. 해서 교정된 번역은 "야콥슨에 따르면 큐비즘은 환유적인 반면에 초현실주의는 은유적이다"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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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1-06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쯤 빨리 완성해주세염..로쟈님^^ 제목만으로두 벌써 무슨 내용일찌 기대가 되는군용. 라캉과 정치두 몇일전 주문 했으니 내일쯤이면 받아볼수있을것 같구 ^^

로쟈 2007-01-0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우연히 책을 사게 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원서도 다시 찾아놨으니까 시간만 내면 되겠네요. 한데, 견적은 좀 나올 거 같습니다.^^

2007-01-06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영화의 자막파일은 제가 갖고 있는데(최종본은 아닙니다. 교정이 더 필요한 대목이 있어서), 이게 프린트아웃이 안됩니다(혹은 제가 못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볼 때는 자막생성파일를 통해서 불러들여 실행해야 하구요. 재미동에 비공식적으로 DVD 카피본을 구할 수 있는지 한번 문의해보시길. 혹은 자막생성파일을 갖고 계시다면 자막은 이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2007-01-06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07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디스 2007-01-0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팅만 하다가 첨으로 글을 남기네요...;; 로쟈님 안녕하세요...;;

지젝! (Zizek!, 2005) 영상 파일을 찾고계신 분이 있는 것 같아 올려봅니다. 이 영화 DVD를 국내에선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요. 토렌트(P2P 방식 파일공유 프로그램, 네이버에서 검색하시면 프로그램 다운방법과 사용방법을 알 수 있을 겁니다)에 영상 파일이 있습니다. 지젝이 쓴 글들과 지젝에 대한 글들 그리고 야니 스타브라카키스의 'Politics and Religion'도 pdf파일로 올라와 있습니다...;;

http://www.torrentz.com/search?q=Zizek%21

2007-01-08 1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보내드렸습니다...

기인 2007-03-0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 오옷 라깡 역시, 다시 봐야 겠군요;;

2009-08-25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년 한해를 돌이켜볼 때 가장 인상적었던 경험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상반기에 일군의 미술작가들과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고, 하반기에는 우연히도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과 교우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에 사람들과 대면할 일이 많지 않은 터라 교제의 폭이 넓지 않은데, 작년엔 몰아서 한 10년치의 교제를 나눈 듯하다.

아이의 방학숙제를 겸하여 낮에 인사동거리를 거닐다가 중간에 혼자만 학교로 빠져나왔는데, 돌아오는 전철에서 읽은 기사에서 낯익은 얼굴과 이름을 발견했다. '한국비평의 뉴웨이브' 혹은 '누벨바그'라고 지칭되는 일군의 젊은 비평가들이 최근 2-3년동안 괄목할 만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데(최근 문학평론가 복도훈씨가 수상한 현대문학상 평론부문의 후보자들 대다수가 이 '뉴웨이브'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젊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2007 문화계 주목 이사람'이란 연재물이 그를 다룬 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하지만 그의 실제 비평은 놀랍다. 그 재치있는 문체와 세련된 논리에 맛을 들이면 다시 찾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올 여름엔 첫비평집이 나온다고 하니까 고대해볼 일이다.

한국일보(07. 01. 05) 문학평론가 신형철

약력은 짧다. 본인 말마따나 아직 박사 학위도 없고, 책 한 권 낸 적 없다. 그런데 실하다 싶은 시집, 소설책의 뒷면에는 수월찮게 그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에게서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 작가가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제2의 김현’이라는,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찬사도 들린다. 데뷔 2년도 안 된 신예 문학평론가 신형철(31)씨.

2005년 봄 계간 <문학동네>로 평론활동을 시작한 그는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래서 종종 비평가의 잡무로 여겨지는 해설을 소중히 끌어안는 평론가다. 최근 시인 남진우 김병호 이병률, 소설가 이기호 오현종 이해경의 작품 해설을 썼으며, 지금도 누군가의 해설을 쓰고 있고, 써야 할 해설도 수북하다.

“해설 좀 그만 쓰고 묵직한 글을 쓰라고 충고하는 선배들도 있어요. 하지만 비평이 활발해져서 좀 더 가까이 독자와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급적 청탁이 들어오는 해설을 모두 쓰려고 합니다.” 그는 “독자들이 해설을 보는 건 뭘 몰라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라고 숫되게 말했다.

“그 첫 대화 상대가 바로 해설이에요. 전 이렇게 읽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독자에게 말을 거는 거죠.” 독자였던 시절 그는, 좋은 시나 소설을 만나면 나중에 먹으려고 아끼는 음식처럼 끝까지 해설을 남겨두었다가 작품을 다 읽고 나서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춰봤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평론가가 꿈이었어요. 작품을 읽고 나면 늘 평론가들은 어떻게 썼나 궁금해서 찾아 읽었는데 작품보다 비평이 더 좋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죠.”

그의 글은 해박하면서도 따뜻하다. 평론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 문체를 가졌다는 평을 듣는 그의 비평은 문장에서 감수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그래서 ‘제2의 김현’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모양이라고 물으니,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후폭풍이 두렵다”며 손사래를 쳤다. “제 글이 그나마 덜 딱딱해서 그런 얘기를 하는 듯한데, 김현 선생님은 아직도 전범이고 신화예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죠.”

작가의 단점보다 장점에 주목하는 그는 “좋은 비평은 멋진 비판이 아니라 멋진 칭찬”이라고 말한다. “작가를 이해하려는 태도가 있으면 굳이 ‘주례사’를 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장점들을 쓰게 되고, 독자들에게 그걸 말하고 싶어져요. 비판할 점은 눈에 쉽게 보이지만, 장점은 그를 이해해야만 보이는 거니까요.”

근래 보기 드물게 시 비평과 소설 비평을 아우르는 그는 “마치 시 독자, 소설 독자가 따로 있는 것처럼 분화한 비평 풍토가 문학을 크게 조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며 “능력이 되는 한 이 둘을 병행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평단이 너무 국문과 위주라 동시대 외국문학과의 비교와 소통이 거의 없는 것도 비평의 황금기로 돌아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아직은 당대 한국문학을 따라가기에 벅차 손을 못 대고 있지만 언젠가 ‘하루키론(論)’ 같은 외국 작가론도 써보고 싶어요.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논리적으로 맞서 문학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를 계발하는 것도 제가 매진해야 할 과제구요. 비평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70, 80년대처럼 그 자체로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비평을 통해 비평 독자들을 확보하고 싶습니다.”(*비록 나는 그게 '논리'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생각하지만.)

올 여름 그는 <몰락의 에티카>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쓴 글들을 묶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박선영 기자)

● 내가 본 신형철

신형철이 출현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문단에 퍼졌다. 비평이 지쳐 있고 허덕이기까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어서 그의 출현은 반가운 것이었다. 몇 달 전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의 가방에서 뭔가 삐져나온 것이 있어 뭐냐고 물었더니 주섬주섬 누군가의 제본된 시집 원고를 꺼내 보여 주었다. 쓸 원고에 대해, 비평할 작품에 대해 그냥 원고뭉치가 아닌 직접 제본을 해서 읽는다는 그, 비로소 그가 보였다. 그를 본 것뿐만 아니라 그의 단단한 세계를 보았다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그의 시평을 아끼는 것은, 그 비평이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해서 오히려 시를 더 시적이게 하는, 어떤 면에서 몸으로 애정으로 시를 껴안은 채로 뛰어 넘어서는 (비상하는!) 미덕 때문이다. 작가와 비평가, 서로의 가슴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을 때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입지 않는가.

신형철의 출현을 환영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그의 비평이 단연 발랄하고 튀며, 젊고 신선할뿐더러 재미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작가의 작품과 비평가의 시선, 그 사이에 독자의 시각을 배치시키는 재주가 남다른 데다 텍스트를 애정으로 장악하고 있다는 점 또한 큰 매력인데, 친절하고 맛있기까지 한 그의 비평에서 애정을 넘어선 순정을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분명 비평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평론가다. 평론가의 업이 시선으로 문단을 풍요롭게 해 주어야 하며, 진득한 애정으로 문단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라면 신형철 비평의 품격은 오래도록 졸고 있는 문단의 칙칙함을 깨우기에 충분하단 생각이다.(이병률 시인)

07. 01. 15.

 

 

 

 

P.S.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만,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신형철이 최근에 작품해설을 시집/소설집들이다. 모아놓으니까 이미지들만으로도 다채롭고 재기발랄하다. 그의 바람대로 비평의 독자들이 다시 확보/집결될 수 있을까? 젊은 비평가들의 행보를 눈여겨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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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0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누군지 궁금하네요. 글 한번 보고 싶어요.

기인 2007-01-05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오오! 형철이형. 역시 대단하네요. :)
퍼갑니다. ㅎ
 

아침에 내가 자주 들로는 카페에 들렀다가 나와 무관하지 않은 펌글을 읽었다. 여기에 다시 옮겨놓는다. '책의 오피니언 리더'로 다음카페 '비평고원'과 알라딘서재를 소개하고 있는 기사인데, 쑥쓰럽게도 '로쟈'란 이름의 그 '리더'의 하나로 거명되고 있다. 물론 그 리더는 '책벌레'들의 리더이다.

한겨레(07. 01. 05) 책의 오피니언 리더 ‘인터넷 서평꾼’

밥을 먹듯 책을 파먹고 숨을 쉬듯 문자를 호흡하는 이들. 인터넷상을 어슬렁거리는 책벌레들이 있다. 새 책에 관한 정보를 재빨리 잡아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책의 내용을 평가하며 책의 허점을 일러준다. 열렬히 옹호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냉정히 외면하는 책도 있다. 책에 관한 한 이들은 인터넷상의 안내자이며 파수꾼이고 정보의 허브다. 책에도 여론주도층이 있다면 이들이야말로 익명의 바다에서 등대 노릇을 하는 책의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의 집합처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 포털 다음의 카페 ‘비평고원’이다. 책의 숲이라 할 이곳은 저마다 무림의 고수를 자처하며 갈고 닦은 내공으로 일합을 겨루는 공간이다. 일본의 최근 소설에서부터 프랑스 현대 철학까지 막 출간된 책들이 품평의 대상이 된다. 서슬 퍼런 칼날이 책의 허점을 찌르고 오래 쌓은 지식으로 책의 특장을 증명한다.

지난 2000년 문을 연 이 카페의 회원은 줄잡아 3천명에 이른다. 매일 500여명이 이곳에 들어와 책의 정보를 얻어간다. 이 무림에서 돋보이는 고수는 30~40명 정도다. 대다수가 문학·철학·정신분석학 등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 박사과정이다. 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고서 매번 새로운 초식을 선보인다.

이들 가운데 특히 돋보이는 사람이 러시아 문학 전공자로 알려진 필명 ‘로쟈’다. 로쟈의 강점은 문학·역사·철학·사회서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 나온 책은 거의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개해준다는 점이다(*한때는 그랬다). 로쟈의 순발력은 전광석화급이다. 책이 나오면 즉각 해당 책의 내용과 배경을 설명해주고 저자의 다른 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중요한 서평을 끌어다 덧붙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 책과 관련이 있는 해당 분야의 다른 책들도 성격별로 정리해 소개해준다. 말하자면 로쟈는 최근에 나온 책의 지도를 그려주는 사람이다. 로쟈의 지도는 오차가 적을 뿐더러 군더더기가 없고 신속한 편이어서 책 정보 전달꾼으로서 그의 지위는 확고하다. ‘비평고원’의 초기화면에는 로쟈가 운영하는 코너 ‘책의 바다’가 떠 있다.

비평고원 회원인 최성희(37·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씨는 “로쟈처럼 책에 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올려주는 회원도 있지만, 회원들의 다수는 책 자체를 놓고 평가하고 토론하는 일을 주로 한다”고 이 카페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글 쓰는 이들이 주로 대학 박사과정급 이상이기 때문에 전공 지식이 풍부하고 그러다 보니 논쟁이 일며 격렬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한번 싸움이 붙으면 몇 달씩 진행되기도 하고 논쟁에서 졌다 싶으면 아예 카페에서 탈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논쟁은 저자의 주장에 대한 평가가 많지만, 외서의 경우 번역의 질을 놓고 벌어지기도 한다. 잘못된 번역을 문제 삼아 품평이 오고가는데, 때때로 번역자가 직접 들어와 항의하다가 일대 격전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최성희씨는 “비평고원은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좋은 번역서를 추천하고 질 나쁜 번역서를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 곳”이라며 “대학에서 강요하는 답답한 논문식 글쓰기의 대안을 찾아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상에서 필명으로 교류하지만 1년에 한두 번씩 오프라인 모임도 연다. 지난 연말에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 10여명이 서울 종로 맥주집에서 모여 송년회를 열기도 했다. 이 카페를 만든 운영자 조영일(서강대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씨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많다”며 “책에 관한 수준 높은 담론을 원하는 네티즌들이 물어물어 이곳으로 찾아들다보니 지금은 인문학 책을 소개하고 토론하는 곳으로는 가장 다채로운 곳이 됐다”고 말했다.

비평고원이 인문학 연구자들의 자생적 모임이라면, 인터넷서점 알라딘의 ‘나의 서재’는 서점에서 북마니아들을 위해 만들어준 방이다. 로쟈를 포함해 비평고원의 주요 필자 가운데 일부가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 글을 쓰는 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알라딘의 인문서 담당 김현주씨는 “‘나의 서재’는 서점을 찾는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해줄 수 있는 필자들이 주로 사용한다”며 “2003년 8월에 문을 연 뒤 3만~4만명이 서재에 필자로 가입했고 그 가운데 40여명이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현직 일간신문 기자로 알려진 필명 ‘딸기’, 대학 3학년 때부터 3~4년째 활약하고 있는 ‘평범한 여대생’, 계간지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서평을 쓰는 ‘바람구두’, 단국대 의대 교수로 재직중인 ‘마태우스’ 등이 알라딘 독자들의 주목을 받는 대표급 필진이다. 김현주씨는 “이분들은 책이 서점에 깔린 직후에 번역이나 내용을 꼼꼼히 따져 품평하기 때문에 일종의 검증장치로서 기능한다”며 “특히 인문서의 경우엔 이들의 평가가 초반 판매량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고 말했다.

알라딘은 이들이 쓴 글을 읽고 책을 구입할 경우 책값의 1%를 적립해주는 인센티브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장 영향력 있는 필진은 한달이면 1만원 이상의 적립금을 받기도 한다고 김현주씨는 말했다. 적어도 100명의 독자가 필자의 글을 읽고 책을 선택했다는 얘기다. 이들의 의견이 책을 선택하는 데 기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인데, 말 그대로 책의 오피니언 리더들인 셈이다.

또다른 인터넷서점 예스24도 알라딘과 유사한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리뷰를 전문으로 쓰는 사람들을 위해 독자칼럼란을 두고 있는데, ‘시라노의 주책잡기’는 한동안 인기를 끈 난이었고, 요즘 가장 조회수가 많은 칼럼난은 ‘정군의 책 대 책’이다(*이 분은 우리의 '정군' 아닌가? 양다리를 걸치시다니). 이 칼럼의 필자인 ‘정군’은 1주일에 한두 번씩 두 권의 책을 선정해 비교 분석해준다. 예스24에서 블로그 관리를 담당하는 심현숙씨는 “40명 정도가 개인 블로그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적으면 1주일에 한두 편, 많으면 하루에 한 편 정도 책 리뷰를 올린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 필자들 가운데 특히 인기가 있는 필자에게 따로 코너를 마련해주기도 하는데, 정군의 코너가 바로 이 경우다. 심현숙씨는 “주목도 높은 필자들의 글에는 적어도 열 건 정도의 댓글이 달린다”며 “대다수 댓글이 좋은 정보를 고맙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교보문고도 알라딘·예스24처럼 서평자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바야흐로 인터넷 책 오피니언 리더의 시대다.(고명섭 기자)

07.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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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01-05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멋져요.^^

마냐 2007-01-0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아침에 기사 보고...인사 드리려 했슴다. ^^

비연 2007-01-05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멋지심!

조선인 2007-01-05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물만두 2007-01-0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경!!!

다락방 2007-01-05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잖아욧!

저 이 페이퍼 퍼갔어요. :)

드팀전 2007-01-0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신문에 이름을 올리신 고수 분들과 함께 있다는 자부심까지 ..^^ ㅋㅋ.
딸기님은 기자셨구나..그리고 평범한 여대생님은 이름 바꾸었는데 .히히..

파란여우 2007-01-0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 제가 아는 분들에욧!^^

멜기세덱 2007-01-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한 방 딱~~ 찍어서 내보내면 좀 좋아...ㅋㅋ '로쟈' 그 이름만 들어도 떨려요..;;'' 대단하세요..!!

비로그인 2007-01-05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의 책들이 많이 팔리는데 일조하고자 몸을 바치렵니다=3=3=3

수유 2007-01-0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의 본명과 직업은 공개되질 않는군요^^ 물론 많은 분들이 알고 있겠지만.

가을산 2007-01-0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정군님, 딸기님..... 그리고 파란여우님! (/^-^)/

yoonta 2007-01-05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활발하게 글을 쓰는" 서평꾼?이 적군요. 4000만명이 넘는 인구중에서 40여명이라니..-_- 한국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안읽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지...

마노아 2007-01-0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이름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워요. ^^

마립간 2007-01-05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맑음 2007-01-0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지도를 그려준다는 말에 100% 공감, 그래서 다들 로쟈님의 서재를 방문하는 게 아닐까요.^ㅅ^

딸기 2007-01-05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아흐아... 미치겠당

로쟈 2007-01-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가 제 최다 댓글을 갱신하겠군요. 댓글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답글을 달지는 못하지만(저는 마태님이 아니랍니다.^^), 여하튼 찾아주신 분들께 두루두루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동료 '벌레'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올해는... 부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염원과... 우리 책벌레들의... 무사안일과...

마늘빵 2007-01-05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로쟈님. ㅎㅎ 저도 퍼갑니다. 추천 꾹이에요.

Mephistopheles 2007-01-05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리 싸인이라도 받아놔야 겠습니다...^^

구름의무게 2007-01-0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무심코 신문읽다가 보고는 안면도 없으면서 혼자 반가워했답니다. ^^

뽀송이 2007-01-0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멋지군요!!
님의 유명세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처음 인사 드려요~^^*
저도 기사보고 반가웠어요!!

비로그인 2007-01-0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이름을 괜히 바꿨나 라는 생각을 잠시;;; 근데 제 실력에 이 기사에 들어가도 되나 민망합니다-_-

로쟈 2007-01-0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갓 책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뿐인데, 덕분에 책을 구입하거나 읽으시는 분들에게 유익하다면 보람이 없진 않겠습니다.
평범한 여대생님/ '평범하지 않게 된' 닉네임 대신에 고르신 '괄츠'는 좀 특이하네요.^^
 

방학중인 아이에게 과제도서를 읽히기 위해서 동네도서관에 갔다가 문학잡지들을 훑어보게 되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짐작에 한국은 전세계에서 (전국단위) 문학잡지가 가장 많이 출간되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그 잡지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문인-필자들의 수에 있어서도 단연 세계 수위권이 아닐까 싶고. 역설적인 것은 그러한 양적인 팽창의 이면에서 문학/비평의 영향력을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행물 열람실에 스무 명 넘게 앉아들 있었지만 문학잡지를 기웃거리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아이 때문에 오래 버티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고, 다만 겨울호 시잡지들에 지젝과 정신분석에 관련한 글들이 게재된 걸 보았다. 많이들 읽기는 하는가 보다.   

집에 돌아와 아이가 피아노학원에 간 틈에 나는 미루어두었던 책 주문을 넣었다. 이전에 한번 소개한 거 같은데, 노튼(W. W. Norton)출판사에서 내는 '어떻게 읽을 것인가(How to Read)' 시리즈의 <라캉> 편이 이번 달에 출간됐다(작년에 나는 <데리다>를 구했었다). 저자는 슬라보예 지젝. 작년까지는 선주문을 넣을 수 있었을 뿐인데, 이젠 온전하게 주문을 넣을 수 있다. 아마존의 소개를 빌면 이렇다.

"The How to Read series provides a context and an explanation that will facilitate and enrich your understanding of texts vital to the canon. These books use excerpts from the major texts to explain essential topics, such as Jacques Lacan's core ideas about enjoyment, which re-created our concept of psychoanalysis."

그러니까 자크 라캉 입문서로서 더없이 유익하고 요긴해 보이는 책이다. 분량도 128쪽이니까 전혀 부담이 없다. 이 달안으로 책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참고로, 주문을 하진 않았지만 지젝이 편집하고 서문을 쓰는 버소출판사의 새 시리즈 '혁명(Revolution)'도 눈길을 끈다. 이달부터 책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마오쩌둥의 <모순론/실천론>과 로베스피에르의 <미덕과 테러>가 일착으로 나왔다. 마오쩌둥의 책은 우리의 경우 두레와 범우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는데 현재는 모두 품절됐다. 이 참에 이 새 시리즈를 번역해내는 건 어떨까? 

<라캉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와 함께 덩달아 주문한 책은 작년에 출간된 전기 <자크 데리다>이다. 컨티뉴엄(Continuum)출판사에 나왔고, 분량은 250쪽. 내가 알기엔 최초의 전기이며 평도 나쁘지 않다. 한데, 작년에 왜 주문하지 않았을까? 짐작에는 내가 검색해볼 당시에 아직 미간이었던 듯하다. 혹은 예정보다 출간이 늦어졌든가. 아마존의 소개는 이렇게 돼 있다.

"At the time of his death in 2004, Jacques Derrida was arguably the most influential and the most controversial thinker in contemporary philosophy. Deconstruction, the movement that he founded, has received as much criticism as admiration and provoked one of the most contentious philosophical debates of the twentieth century. Jacques Derrida: A Biography offers for the first time a complete biographical overview of this important philosopher, drawing on Derrida's own accounts of his life as well as the narratives of friends and colleagues. Powell explores Derrida's early life in Algeria, his higher education in Paris and his development as a thinker. Jacques Derrida: A Biography provides an essential and engaging account of this major philosopher's remarkable life and work."(강조는 나의 것)

The Cambridge Companion to Pushkin

지젝과 데리다 관련서와 함께 전공 관련서들도 두어 권 주문했는데, 가장 반가웠던 책은 캠브리지대학의 컴패니언 시리즈로 나온 <푸슈킨>. 이 또한 이달에 첫선을 보인 책이다. 한 인터넷서점의 소개는 이렇다.

Alexander Pushkin stands in a unique position as the founding father of modern Russian literature. In this Companion, leading scholars discuss Pushkin’s work in its political, literary, social and intellectual contexts. In the first part of the book, individual chapters analyse his poetry, his theatrical works, his narrative poetry and historical writings. The second section explains and samples Pushkin’s impact on broader Russian culture by looking at his enduring legacy in music and film from his own day to the present. Special attention is given to the reinvention of Pushkin as a cultural icon during the Soviet period. No other volume available brings together such a range of material and such comprehensive coverage of all Pushkin’s major and minor writings. The contributions represent state-of-the-art scholarship that is innovative and accessible, and are complemented by a chronology and a guide to further reading.

편자는 앤드류 칸이라는 비교적 젊은 러시아문학 연구자이자 옥스포드대학의 조교수이다. 책은 그다지 두껍지 않지만, 아래의 목차를 보면 (적어도 러시아문학 전공자라면) 가벼운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List of illustrations Page.ix
  List of contributors viii
  Acknowledgements ix
  Note on the text x
  Chronology xi
  Map xv
 
  Introduction 1
  Andrew Kahn
 
  part I Texts and Contexts
1   Pushkin’s life 11
  DAVID BETHEA AND SERGEI DAVYDOV
 
2   Pushkin’s lyric identities 26
  ANDREW KAHN
 
3   Evgenii Onegin 41
  MARCUS LEVITT

 

 

4   Pushkin’s drama 57
  CARYL EMERSON
 
5   Pushkin’s long poems and the epic impulse 75
  MICHAEL WACHTEL

 

 

6   Prose fiction 90
  IRINA REYFMAN
 
7   Pushkin and politics 105
  OLEG PROSKURIN
 
8   Pushkin and history 118
  SIMON DIXON

 

 

9   Pushkin and the art of the letter 130
  MIKHAIL GRONAS
 
10   Pushkin and literary criticism 143
  WILLIAM MILLS TODD III
 

 

part II The Pushkinian tradition

 
11   Pushkin in music 159
  BORIS GASPAROV

 

 

12   Pushkin and Russia Abroad 174
 
  ROBERT P. HUGHES

 

 

13   Pushkin filmed: life stories, literary works and variations on the myth 188
  STEPHANIE SANDLER
 
14   Pushkin in Soviet and post-Soviet culture 202
  EVGENY DOBRENKO
 
  Appendix on verse-forms 221
  Guide to further reading 224
  Index 228

아무튼 조만간 몇 권의 책들이 장서 목록에 오르게 되겠다. 애서가들에게 새해를 맞는 '보람'은 다른 데 있지 않다...

07.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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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05 11:15   좋아요 0 | URL
저로선 좋은 번역서를 기다려봐야겠네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젝'이나 '라캉'이라면 곧 나올수도 있겠지만.. 좋은 번역서를 기다려봅니다.
 

연초부터 각 매체마다 책읽기에 유난한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의 '사회적 독서' 운동에 이어서 한국일보에서는 '우리시대의 명저 50' 시리즈를 연재한다고 한다. '명저'라고는 돼 있지만 목록을 보면, 당대의 베스트셀러들도 많이 망라돼 있다. '명저'라는 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책이란 뜻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한 듯싶다. 아무튼 이 50권에 대한 해제가 다 게재되면 올 한해도 다 가는 게 아닌가 싶다(하냥 섭섭할까?). 50권의 면면들을 구경해볼까라는 '무모한' 욕심도 품어봄 직하지만, 이미 펌글에 도서(상품) 이미지를 집어넣지 말도록 재차 당부를 받은 터라 자제하기로 한다(이러한 펌글도 가급적 자제할 예정이다). 맨숭맨숭하긴 하지만, 목록만을 한번 일람해보는 것으로 '책구경'을 대신해야겠다(시간이 남아서 좋긴 하군).  

한국일보(07. 01. 04) 우리시대의 명저 50

우리 저술의 숲은 건강하고 우람했다. 지성의 숲을 거니는 일은, 굳이 한 그루 한 그루의 결을 더듬고 껴안아보지 않고서도, 황홀하고 뿌듯했다. 책의 전문가들이 전해온 목록의 갈피에서 밀려오던 희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또 저자와 책이 갖는 이름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기획팀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 고통마저도 행복했다.

추천ㆍ자문단과 기획팀은 선행 연구로 불모의 땅을 일군 선구적 저서와 학문적으로 고전의 무게를 지닌 책, 지식 대중화를 선도한 책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또 특정 저서의 가치 못지않게 해당 저자가 우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높이 산 경우도 있다. 시대적 담론과 이슈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저작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심했다.

식민지 사관과 실증 사학을 넘어 지배집단의 교체라는 독자적 사관으로 한국사를 정립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고난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로 나아가고자 했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양 신학과 전통 종교사상을 대비하며 우리 문화의 보편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한 유동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재야 학자로서 학문적 엄밀성과 함께 역사의 빈틈을 성실히 메워준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 서양고대철학 연구의 수원지로 여전히 마를 기미 없이 푸르게 출렁이는 박홍규의 <희랍철학논고>, 우리 역사에서 ‘자생적 근대화론’ ‘자본주의 맹아론’의 학술적 근거를 실증해 그 문제 의식을 지금까지 이어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 해당 분야에서 아직도 이들의 업적을 넘어서는 저작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김두종, 전상운, 김용준, 유민영 등의 노작들이 그렇게 선정됐다.

암울한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비판적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지성의 균형점을 잡아준 리영희, 1980년대의 질곡에 <민중신학>이라는 독보적인 신학적 응답을 제시했던 안병무, <전태일 평전>으로 1970년대와 80년대 변혁운동의 맥을 이어준 조영래, 마당극이라는 전통 연희의 현대적ㆍ변혁적 연구와 실천으로 당대 문화의 큰 정신을 구축했던 채희완, 억압의 시절을 몸으로 살았고 몸의 고백으로 시대를 움직인 서준식 정수일 홍세화의 저작들도 놓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명저로 꼽혔다.

경제학이 강단을 벗어나 어떻게 현실과 만날 수 있는지를 가슴으로 보여준 정운영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고도의 과학 전문 연구분야를 대중적 글쓰기로 선도한 최재천의 <개미 제국의 발견>, 20세기 신화 열풍을 주도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동양미술의 오주석, 서양미술의 이주헌, 한시의 정민, 미학의 진중권 등은 인문학 대중화의 전범으로 꼽혔다. 또 우리 글과 우리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아프게 일깨운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학의 오랜 딜레마였던 ‘근대’의 숙제를 성실히 풀고자 한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등도 목록에 들었다.

기획팀의 어두운 눈과 선택의 편의로 막판에 누락된 소중한 책들도 수두룩하다. 이들 책에 대한 응당한 예우는 눈 밝은 독자들의 몫으로 넘기고자 한다. 우리는 저자들이 먼저 닦은 저 편한 길을 최대한 힘들여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고자 한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지성의 독자들과 함께.

● 추천 위원 기고: 무엇이 책을 숨쉬게 하는가

광복 이후 '나라 세우기'와 상응하는 '학문의 토대 쌓기'는 광복 직후의 혼란상과 한국전쟁의 상흔 탓에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등이 대표적이다. 수용자, 즉 독자 측면에서 보면 60년대는 전집 출판의 전성기였다. 외판원에게 구입한 문학이나 사상 전집을 거실에 꽂아두는 허영심이 팽배했으나, 그 허영심이란 바꿔 말하면 일종의 지적 허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의 60년대는 배만 고팠던 게 아니다.

특기할 만 한 것은 1970, 71년에 나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내발적(內發的) 근대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김현, 김윤식의 <한국문학사>도 김용섭의 연구 성과에 크게 자극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근대화의 기치 아래 개발 독재와 정치적 억압으로 점철된 시대였고, 출판과 책도 그러한 시대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의 시대로도 불리는 1980년대에는 좌파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많은 지식인들이 정당성 없는 권력의 폭압적 전횡에 맞서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되찾은 우리 글과 말로 토대를 쌓고 틀을 짓는 시기, 어떤 의미에서는 각 분야에서 개척자적 노력이 요구되었던 시기가 1950, 60년대라면 1970, 80년대는 학문과 출판과 책이 시대와 현실의 요청에 충실히 응답하려 했던 시기다. 무너뜨려야 할 우상도, 싸워야 할 대상도, 이뤄야 할 목표도 분명했던 시대, 그래서 일종의 전선(戰線) 시대라 칭해도 좋을 그런 시대였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전선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잃은 것은 전선이었고 얻은 것은 다양성이었다. 우리 출판과 책의 지형도는 매우 다채로워진 것은 물론 훨씬 더 독자 지향적으로 바뀌었다. 개성 넘치는 문장 스타일, 입말에 가까운 글쓰기, 엄숙한 강의가 아니라 정겨운 수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저자들이 부각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미학 오디세이>의 진중권이 그러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윤기가 그러했다.

최근 들어와 많은 이들이 책을 걱정한다. 그들이 보기에 독자들은 더 이상 책의 존엄을 경외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의 얼개와 뜻을 깊이 파고드는 책은 좀처럼 환영 받지 못한다. 책의 위기, 책의 죽음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출판과 책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책은 위기였다. 다만 위기 속에서도 시대의 중추를 정확히 건드리며 한 획을 그은 소수의, 아니 극소수의 책들이 있었기에 책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다.(표정훈 출판평론가)

07.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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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04 09:41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강만길 등'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네요. ㅎ 사실 '외'라는 표현은 참여한 학자들의 이름을 생각해봐도 너무 '소외'시키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공저는 '등'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요.
ㅋ 근데 고미숙 선생의 책이라니! 재미는 물론 있지만, 결국 연암의 글은 '우리시대'가 될 수 없다는 걸까요.
'우리시대'라는 것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항상 '우리'라는 게 누구일까 궁금하게 합니다.

로쟈 2007-01-04 10:28   좋아요 0 | URL
이건, 말 그대로 우리시대(동시대) 저자들이 산출해낸 책들을 가리키는데요. 해방이후 현재까지...

biosculp 2007-01-04 18:23   좋아요 0 | URL
죽 보니 읽거나 가지고 있는 책이 21권이군요.
개인적으로는 김용옥, 정운영, 최장집 책이 제일 애착이 가는데

로쟈 2007-01-04 18:57   좋아요 0 | URL
저도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정도군요. 90년대 이후의 책들이 목록의 절반 가량인데, 좀 과대평가된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보다 직접적인 의미의 '우리시대'이긴 하나 선자들의 연령대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