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잠적할 때 들고가고픈 책'을 꼽으면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과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아침에 읽은 신문에서 공감하며 읽은 칼럼이 이 '오래된 정원'에 관한 것이어서 옮겨놓는다. 문화평론가 남재일씨가 쓴 기명 칼럼이다.

경향신문(07. 01. 19) '오래된 정원’ 누가 지켰나

마흔 살의 전문직 여성 K는 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가 운동권 주변을 오가다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인문학을 전공한 운동권이었다. 둘은 오랜 연애 끝에 ‘동지적 사랑’으로 결혼했다. 남자는 결혼 후 가정을 돌보지 않고 사회운동 언저리를 맴돌았다. 가계를 꾸려 나가는 것은 여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다. 여자는 불만이 없었다. 그게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지적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자는 여자가 벌어 주는 돈으로 공부를 하고 바람을 피웠다. 둘은 이혼했다. 여자는 현재 유통되는 ‘운동권’이란 말에 약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또 다른 386여자 Y는 학생운동을 하다 수배당한 경험이 있다. 그녀 역시 운동권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 초기 둘은 잘 지냈다. 남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여자 역시 안정된 직장을 구해 사회생활을 잘했다. 몇 년 뒤 둘은 이혼했다. 남자는 세월이 지나면서 여성스러움을 찾았고, 여자는 그럴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여자는 자신이 대학시절 여성스러움을 과도하게 억압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여자는 요즘 20대 여성들을 보면 부럽다고 한다.

주변에 있는 386 여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386 운동권’이란 말에 까칠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적지않다. 적당히 운동한 경험이 있는 여성일수록, 결혼이든 연애든 운동권 남성과 사적 관계를 맺은 여성일수록 그런 성향은 더 강하다. 아마도 진보를 표방하는 시대와 남자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이제 80년대를 여성에겐 매우 억압적인 시대로 인식한다. 남성의 경우는 다르다. 운동을 했건 안했건 80년대를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던 과거로 회고한다. 미디어에 재현되는 80년대의 이미지도 거의 예외없이 이 어조를 깔고 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정치민주화의 주역이 자긍심에 차서 뒤돌아보는 자신들의 청춘시절이 80년대다. 진보를 자처한 386세대에 유난히 여성들의 존재가 미미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상수 감독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오래된 정원’은 황석영 원작의 전형적인 운동권 후일담이지만 영화는 좀 다른 각도에서 80년대를 본다. 시국사범으로 수배중인 인물과 그를 숨겨주는 시골 학교 미술교사의 러브스토리인 이 영화의 초점은 여자 주인공에게 맞춰져 있다. 분신을 하는 인물도 여자이다. 그들은 남자에 ‘엮여서’ 운동에 참여한다. 반독재의 대의에는 동의하지만 운동의 방식은 철저하게 타인의 방식을 강요당한다. 그 방식은 남성의 방식이자 폭력의 방식이다. 그것이 시대적으로 불가피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영화는 시대의 요구에 이끌려 자신의 방식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386 여자들을 그린다. 그게 어디 여자뿐이겠는가. 반독재라는 대의와 투쟁이라는 방식의 부조화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 전 한 일간지에 학생회장 출신의 386 정치인 두 명과 기자의 대담이 실렸다. 거기서 두 정치인은 ‘386 진보이념은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살아보니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나는 참 웃겼다. 80년대 386세대의 노고가 몇몇 학생회장 출신 정치인들의 현재와 과거로 재단되다니. 실패한 것은 386의 이념이 아니라 386의 노고를 개인적 권력으로 전유한 정치판 386들의 미숙한 현실정치 일터인데도 말이다. 진보 이념은 일상적인 실천에 의해 사회속에 점진적으로 스며들지언정 ‘나의 단기적 성과’를 갈망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좀체 이룩되진 않는다. 정원을 오래 지키는 것은 무명의 잡초와 들꽃들인 모양이다.(남재일/ 문화평론가)

07. 01. 19.

P.S. 필자는 기자 출신의 언론학자이며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평으로 잘 알려져 있다(나는 <씨네21>의 칼럼란을 통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듯하다. 김규항만큼 날카롭지는 않지만, 이 칼럼을 읽어보니 오버하지도 않는군). 대표작(?)은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강, 2006). 제목이 액면 그대로 저자의 포지션을 말해주는 듯하다. 작년에 구내서점에서 자주 보고 자주 지나쳤던 책인데, 언제 도서관에서 대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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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07-01-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드뎌 로쟈님 방주에 남재일이 등장했도다. 문체면에서 김규항이 (이오덕의 영향을 받아) 무만 넣은 동치미처럼 알싸하게 접근한다면, 남재일은 배나 밤 등속이 알맞게 들어간 백김치 같다고나 할까요?

'살아보니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요런 말 주절이는 자를 혐오하는 건 김규항이나 남재일이나 닮았네요. 실은 저도 조금 혐오해요. 로쟈님은?

춤추는인생. 2007-01-1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재일님의 대표작으로는 인터뷰집 나는 편애할때 자유롭다를 꼽고싶어요.
어떤부분에는 바늘처럼 날카롭고 때로는 한없이 부드러운 글쓰기의 표본을 보여주시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에 나와있는 감독 임상수 작가 김훈의 인터뷰가 꽤 인상적였어요 ^^ 오래된 정원은 개봉날 뛰어가서 보고왔는데요.
쿨하다
팔짱끼고 뒤에서 보는 시니컬함은 임상수감독의 색체 그대로더군요...

로쟈 2007-01-19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팬들이 많으시네요.^^ 저는 아직 책으로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살아보니 분배가 아니라 생산이 중요하다는 거였다'면, 자진해야죠...
 

오늘 주문한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라마찬드란 등의 <두뇌실험실>(바다출판사, 2007)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는데, 사전 주문을 하면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 2005)까지 끼워준다고 해서 '막판'에 주문을 넣었다. 그렇기도 하고 전작인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바다출판사, 2006)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바 있는 데다가 두어 달 전에 구하기도 해서 내친 김에 라마찬드란 컬렉션을 갖추기로 한 것(두 권이니까 컬렉션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저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인도 태생의 뇌과학자이고, <뉴스위크>가 뽑은 21세기 가장 주목해야 할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고 한다. 출간된 첫해에 <이코노미스트>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었다는데, 그 '첫해'란 지난 1999년을 말한다.

사실 뇌과학 내지는 대뇌생리학의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내는 저자의 원조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이다. 작년에 한 출판사에서 재출간됐지만, 나는 지난 93년 살림터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을 갖고 있었다(어디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때는 사실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책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화성의 인류학자>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일약 (준)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국내에서 최근 몇 년간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심리학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라마찬드란은 그 바톤을 이어받는 저자인데, <두뇌실험실>의 서문 또한 올리버 색스가 쓰고 있다. 그의 말: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은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신경학 책이다."

내용 소개를 읽어보면, 다 두뇌의 특정 부위 손상으로 말미암아 이런저런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의 임상사례집처럼 보인다. "사고로 한쪽 팔을 읽었지만 계속해서 환상 팔이 움직이는 생생한 감각을 느끼는 아마추어 운동선수, 뇌졸중을 겪은 후 웃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사서의 이야기. 또 머리에 끔찍한 중상을 입은 후 자신의 부모가 복제인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한 젊은이" 등. 

"뇌과학계의 ‘셜록 홈스’라고 불리는 라마찬드란은 이 책에서 그가 해결한 가장 이상한 사례들과 함께 그것들이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통찰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면봉이나 거울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이용해, 사라진 팔이 실재한다고 느끼는 환자에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환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경병 환자들을 연구한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과학자도 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인간 본성의 심오하고 미묘한 질문들에 답한다. 우리는 왜 웃거나 우울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며, 또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꿈을 꾸는가? 우리는 왜 신의 존재를 믿는가?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마지막 남은 의학적 미개척지에 대한 의학적 탐사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흥미로운 지점은 각각의 임상사례로부터 '인간의 마음'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 대한 탐사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뇌과학계의 '홈스'와 색스는 그 유력한 길잡이가 되겠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란시스 크릭은 이렇게 적었다: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음주면 나도 읽어볼 수 있겠다...

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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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1-18 23:08   좋아요 0 | URL
이거 교양선데요...

로쟈 2007-01-18 23:31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형기증'에도 오타가 있네요.^^ 좋은 아침 맞으시길...

비로그인 2007-01-18 23:34   좋아요 0 | URL
로쟈님 뇌과학에도 관심 많으신지요? 교양서 수준의 책들은 거의 범람할 정도인 듯한데 .. ( 읽어봐도 감흥이 오는 책이 별로 없어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 있길래 반색했었는데 품절이더군요;

로쟈 2007-01-18 23:42   좋아요 0 | URL
몇몇 저자들만 읽습니다. 아주 유명한 책이라든가.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뇌과학이나 인지주의쪽에도 시선이 가게 되네요. 아니 원래는 별개의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다치바나의 책은 갖고 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에바 2007-01-19 00:21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지젝의 <시차적 관점> 뒤에 있는 색인을 보니 조지프 르두의 이름이 보이던데 지젝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체없는 기관>에선 데닛에 대해 꽤 호의적인 것 같은데요? 물론 어려운 내용이라 이해는 잘 못했습니다. ㅜㅜ

로쟈 2007-01-19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시차적 관점>을 갖고만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르두에 대해서는 'Synaptic Self'란 책을 인용하면서 두 페이지 정도 할애하고 있네요. 데닛에 관한 대목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올리도록 하지요. 나중이라...

sommer 2007-01-19 01:05   좋아요 0 | URL
에바/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인지과학을 '자유'와 연관지어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대로 거칠게 말씀드리면, 자유를 자기 의식의 환상으로 설명하는 인지과학의 입장을 '자유와 필연성'의 일치로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운명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서 운명 자체에 이미 필연적으로 그 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예로 들고 있더군요...지젝에게 자유는 계속해서 리버럴한 것에 대한 부정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네요...

머큐리 2007-01-19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사전주문해서 화성의 인류학자를 받고 싶은데... 지금은 안하나여?

이네파벨 2007-01-19 09:21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사이언스올제라고..Scientific American의 한국판 번역에 참여할 때...라마챈드런 박사의 글(공감각에 관한)을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글을 재미있게 잘 쓰셨던걸로 기억...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이라는 잡지...정말 멋집니다. 한동안 구독해보다가..자꾸 밀려서 지금은 안보고 있지만...약간의 지적 소양을 갖춘 비과학자 일반 대중이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좋은 매체죠...단...염치없는 이야기지만...국내 번역판보다 영어로된 SA 를 읽는 편이 이해가 빠릅니다. ^^)

사전주문...지금도 유효한지 달려가봐야되겠네요~ 지가 공짜라면 사족을 못써요..호호

이네파벨 2007-01-19 09:23   좋아요 0 | URL
X...벌써 이벤트 끝났나봅니다.
책값도 비싼데...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봐야쥐..흥...

로쟈 2007-01-19 11:16   좋아요 0 | URL
제가 본문에 '막판'이라고 적어드렸는데요.^^;

린(隣) 2007-01-19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 이미 10년도 더 전에 철학동네에서 데넷 등의 인지이론을 통해 자유의 문제를 나름대로 제기한 책이 있지요. 이정원선생님께서 쓰신 <의식과 자유>(동녘)라고. 갠적으론 존경하는 선생님의 사모님이기도 하고, 전공쪽으로도 들뢰즈의 영화철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신 몇 안 되는 분들 중 한 분이죠. 당시로선 아주 앞선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더구나 윤리학 차원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지만, 스피노자의 행동학적 관점과 통하겠죠. 요즘 철학쪽에서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오래된 책은 잘 모르실거 같아 그냥 소개해요.

로쟈 2007-01-19 13:21   좋아요 0 | URL
책은 알고 있습니다. 얇은 책이어서 그냥 넘어갔더랬는데, 깊이 있는 책이었나 보네요...

moonnight 2007-01-19 14:25   좋아요 0 | URL
앗.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색스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만 읽었어요. 무지 재미있었는데도 화성의 인류학자. 랑 나는 침대에서.. 는 사놓고 아직 못 읽었어요.; 두뇌실험실도 색스의 것만큼 재밌을까요? 로쟈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로쟈 2007-01-19 16:19   좋아요 0 | URL
색스가 추천하는 책이니까요. 한데, 제 리뷰를 기다리시면 안되는데요. 1년에 두어 개 쓰는 형편이라.^^;
 

<쿤/포퍼 논쟁>(생각의나무, 2007)이란 책이 출간됐다. 제목이나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닌데,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란 부제가 눈길을 끈다. 재작년에 출간된 원서의 표지에는 그런 부제가 붙어 있지 않으므로 국역본에 새로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도발적'이라니까 흥미는 끈다. 분량도 230여쪽이어서 부담없고(원서는 143쪽이다).

소개에 따르면, "1965년 7월, <과학혁명의 구조>로 명성을 떨친 토머스 쿤과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비판적 지성의 거장으로 주목받던 칼 포퍼가 만나 과학의 본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 한 번의 격돌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공적 토론의 중심 주제로 군림해왔으며, 거기서 쿤의 다원론적 시각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지은이 스티브 풀러는 논쟁의 주역들이 풀어놓은 이야기의 맥락이 완전히 오해되었다고 평가하며 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과 열광 속에 대중의 집단적인 판단 착오가 녹아있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대립한 쟁점은 과학철학뿐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풀러에 따르면 쿤은 과학의 개방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냉전의 압력에 맞닥뜨려 과학자들의 자율권을 지켜내려 애쓴 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퍼는 '열린 사회'를 옹호했던 그의 철학적 입장에 걸맞게 비판적 합리성의 기수로서의 과학을 옹호하며 나아갔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MIT의 '쿤 아카이브'를 연구 고찰한 풀러는 쿤의 과학적 변동 이론에서 철학적 감시를 찾아볼 수 없음을 피력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학자 사회에 지나치게 부여된 독자적 권한을 되찾아오고자 노력한다. 세기의 대결에 대한 이 급진적 평가서 속에는 쿤/포퍼 논쟁의 맥락을 짚어주는 섬세하고도 정교한 지침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책은 과학철학사의 이 세기의 논쟁을 일종의 추리소설로 재독해하는 재미를 줄 듯하다. 게다가 마지막 장의 제목은 '토머스 쿤은 미국의 하이데거인가?'이다. 별로 웃을 일이 없던 차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제이고 구성이다.

 

 

 

 

사실 이 주제/논쟁과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이전에 소개한 바도 있고). 먼저,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은 이 논쟁의 '원문'을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스티브 플러가 참조하고 있는 건 '쿤 아카이브'이며 이러한 공식적인 논쟁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탐색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쿤의 과학철학과 그 사회학에 관한 가장 읽기 쉬운 소개서이다. 이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제일 먼저 손에 들 만하다.

그리고 평전 <토머스 쿤>(사이언스북스, 2005). 소개에 따르면 "토머스 쿤 위에 두껍께 쌓인 오해의 먼지를 날려 버리는 책. 저자들은 토머스 쿤의 저술들을 조심스럽게 독해하여,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과학사와 과학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그리고 포퍼의 과학관/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의 에세이집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 2006). "눈부신 과학발전, 탐욕과 독선으로 빚어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등 21세기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산 지은이가 인생 마지막 25년 동안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간추"린 책이다.

 

 

 

 

쿤과 포퍼와 주요 저작들은 물론 번역/소개돼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 <과학으로 생각한다>(동아시아, 2006)는 한겨레에 연재됐던 글들을 모은 것인데,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에 해당하는 넓은 범위를 다룬다. "뉴턴에서부터 인공지능까지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자들의 사상을 다양한 학문 분야로 확장, 통괄하면서 펼치는 유쾌한 지적 파노라마. 과학자들이 세계를 보고 생각했던 다양한 방식을 인문학적, 사회적으로 되짚으며, 일상에서 어떻게 위대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출현했는지, 그 과학적 사상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다"루는 책으로 당연히 쿤과 포퍼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으며 이 논쟁의 배경이 될 만한 이야기거리들을 읽어볼 수 있다...  

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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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18 16:52   좋아요 0 | URL
로쟈님 페이퍼만 보면, 관심만 있고, 손 못대고 있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_- 관심과 욕심만 많아가지고.

로쟈 2007-01-18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손만 댑니다.^^

나비80 2007-01-18 18:37   좋아요 0 | URL
인기 많은 학자들이라 논술시장 들썩이겠네요. 요즘은 그 쪽 업계가 최신경향을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랍니다.^^

로쟈 2007-01-18 18:40   좋아요 0 | URL
<과학으로 생각한다> 말씀이시군요. 생각의 폭은 넓혀주는 교양서일 텐데, 구체적으로 논술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학생들은 생각 이전에 문장도 안되는 형편이어서...

나비80 2007-01-18 19:00   좋아요 0 | URL
그뿐 아니라 '토머스 쿤'이나 '칼 포퍼'란 학자 자체가 워낙 대중적(?)으로도 알려져 있어 깊이 있게 읽히기 보다 다이제스트 식으로 핵심정리되는 것을 줄 곧 보아 와서요. '문장도 안되는 학생들'에게 가라타니 고진이라든지 지젝을 주입하고 어떤 논술문을 기대하는 건지... 사실 대학도 별반 다를 바 없죠. 학부생들 레포트 제대로 자료 정독하고 써냅니까. Ctrl+c, Ctrl+v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요.

로쟈 2007-01-18 19:06   좋아요 0 | URL
"데카르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머릿속에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철학을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라고 합니다."이게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학년을 위한 '철학동화'에 들어 있는 '해설'입니다. 이 '똑똑한' 어린이들이 자라면 좀 달라질까요?..
 

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놓은 책들을 한번씩 점검하고 있는데,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도 그 중 한권이다.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에 옮겨놓은 건 오마이뉴스의 리뷰이고 필자는 우연찮게도 정민호 기자이다. 며칠전 <금지를 금지하라>에 이어서 연이어 정기자의 글을 옮겨놓는 셈이 된다(그가 밤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는다는 게 허언은 아니겠다). 책상맡에 책이 놓여 있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 보니 나는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내주쯤에나 관심있는 장들을 좀 훑어볼 참이다. 마음가짐을 다잡는 차원에서 리뷰도 다시 읽어본다.  

오마이뉴스(07. 01. 02) 미국을 향한 미국 역사학자의 냉철한 비판!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가 있다. 바로 자유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자유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유의 나라라고 말이다. 동시에 부정하고 있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는, 미국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그 의미는 언제나 변했을 뿐더러, 또 미국을 좋아한다고 해서, 미국에 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중심에 있는 자들만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아무리 자유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누구나 그것을 누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소개되는 에릭 포너는 우리에게 낯선 학자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인정받은 실력파 역사학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이란 매카시즘이 풍미하던 그때, 소위 '빨갱이' 집안의 자식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색안경 낀 사람들은 그를 미국을 망치는 인물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요 역사학 단체의 회장을 지내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편견을 뛰어넘는 실력이 있다는 말일 게다.

그 실력이란, 사각지대를 볼 줄 아는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에릭 포너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공산당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흑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 흑인의 인권에 관심을 갖던 이가 누가 있었겠는가. 이것은 성장한 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남들과 달리,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다.

에릭 포너가 이야기 하는 진정한 '자유'
앞에서 언급된 '자유'로 생각해보자. 미국이 자유롭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미국인들이 스스로 자유롭다는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자유와 반대되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즉 '자유의 땅, 미덕의 현장, 피압박자의 피난처'라는 주장을 펼치게 하려면 상대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바깥 세계를 과장해서 부정적으로 그려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 미국을 특별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운동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독립 전쟁을 "인류 역사에서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건"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미국과 나머지 인류의 차이를 부각"되는 계기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 옳든 그르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이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에릭 포너의 답이다. 그는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자유가 무엇인지 강의하려고만 들지 말고 바깥 세계에도 뒤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유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자족적인 독백에 그치지 말고, 바깥세계와 주고받는 대화가 돼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요즘의 미국의 행동을 본다면, 특히 권력의 나팔수가 된 이들의 말이 무성할 때에, 이 말의 의미는 그렇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미국엔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 외에도 진지하게 탐구할 것들을 던져주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날 때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이뤄졌다고 알려진 '화해'는 사실 백인들끼리만 했다는 것, 또 흑인들을 차별하면서 모순적으로 자유를 주장하는 태도를 탐구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이제껏 흑인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은 많았다. 그렇기에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뭐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다른 의미가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날카롭다는 것이다.

흑인이 차별받았으며, 또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은 우리만 해도 자주 듣고 있다. 그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또한 그들을 이상하게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식 속에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미국인이라고 믿는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 하지만 에릭 포너는 오랜 역사부터 거슬러 오면서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는 현존하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 착각이 어울릴 때, 이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들이 자유에서 배제된 문제들은 지나간 역사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중요한 것은 흑인만 그런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아닌 모두가 흑인처럼 대우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말이다. 흑인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셈인데 이 책은 그것을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눈길을 끄는 것으로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는가?'하는 주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 유럽만 하더라도 사회주의가 있다. 그들은 선거에 나서서 꽤나 큰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랬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미국은 그 단어와 거리가 멀다.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에릭 포너는 그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풀이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지금껏 떠올리던 미국과는 다른 모습이 보이는지라 몇 번 놀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요즘 유행하는 역사책들과 달리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룬 것은 아니다. 흥미와는 거리가 먼, 오랫동안 생각해야 할 것들을 던져주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미국하면 떠올리던 이미지들, 특히 맹목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던 그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접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정민호 기자) 

07. 01. 18.

P.S.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란 주제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책은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란 부제를 가진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립셋의 논의들은 포너 자신도 참조하고 있는데, '미국 사회주의의 역사'에 관해서라면 권위자가 아닌가 한다. 예전에 관련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 작년에 나온 미국학 관련서들 가운데에서는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과 함께 나대로는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아두고 있다(한데 전자는 아직 구입을 못했다. 목돈이 나올 구멍을 알아봐야겠다).

참고로,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란 질문은 독일의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처음 던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사치와 자본주의>로 소개된 사회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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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1-18 16:28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 항상 감사합니다..언젠가는 읽어야지요.불끈 !!!
물론 제돈 주고 사서요..ㅎㅎ

드팀전 2007-01-18 17:10   좋아요 0 | URL
왜 없다고 했더라? 읽으면 잊어버리니 ^^ <미국예외주의>에서..대략...이민사회의 특수성이 계급 갈등을 민족갈등 형태로 바꾸었다는거,일찍부터 자리잡은 양당제도가 계급적 불만을 자체적으로 포섭했다는 것,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사회적 부가 형성되어서 중류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자본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제국주의적 팽창책을 쓰면서 내적 통일을 이루기 쉬웠다는 점 등등....또 몇가지 있었는데...루이스 매넌드<메타피지컬 클럽>이 관심이 가네요.책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보관함만 무거워지네요.핑핑..

로쟈 2007-01-18 17:17   좋아요 0 | URL
파비아나님/ 예, 제가 못 보태드립니다.^^
드팀전님/ 올려놓으신 리뷰 읽어봤습니다. 저보다 한참 부지런하신데요, 뭐...
 

기분도 날씨만큼이나 울적한 김에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올려둔다. 미겔 에르난데스(1910-1942)의 '비행'. 시집 <양파의 자장가>(솔출판사, 1995)에 실려 있다. 10년도 더 전에 좋아하던 시이긴 한데, 나는 아침마다 일어나서 이 시를 중얼거리곤 했다. "쏠로 끼엔 아마 부엘라. 뻬로 끼엔 아마 딴또. 께 쎄아 꼬모 엘 빠하로 마쓰 레베 아 푸히띠보?" 스페인시는 낭송하기에도 좋고 듣기에도 경쾌하다. 무슨 뜻이냐고? 아래에 영역과 우리말 번역도 같이 옮겨놓았지만, "사랑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

Vuelo
de Miguel Hernandez

Sólo quien ama vuela. Pero ¿quién ama tanto
que sea como el pájaro más leve y fugitivo?
Hundiendo va este odio reinante todo cuanto
quisiera remontarse directamente vivo.

Amar... Pero ¿quién ama? Volar... Pero ¿quién vuela?
Conquistaré el azul ávido de plumaje,
pero el amor, abajo siempre, se desconsuela
de no encontrar las alas que da cierto coraje.

Un ser ardiente, claro de deseos, alado,
quiso ascender, tener la libertad por nido.
Quiso olvidar que el hombre se aleja encadenado.
Donde faltaban plumas puso valor y olvido.

Iba tan alto a veces, que le resplandecía
sobre la piel el cielo, bajo la piel el ave.
Ser que te confundiste con una alondra un día,
te desplomaste otros como el granizo grave.

Ya sabes que las vidas de los demás son losas
con que tapiarte: cárceles con que tragar la tuya.
Pasa, vida, entre cuerpos, entre rejas hermosas.
A través de las rejas, libre la sangre afluya.

Triste instrumento alegre de vestir: apremiante
tubo de apetecer y respirar el fuego.
Espada devorada por el uso constante.
Cuerpo en cuyo horizonte cerrado me despliego.

No volarás. No puedes volar, cuerpo que vagas
por estas galerías donde el aire es mi nudo.
Por más que te debatas en ascender, naufragas.
No clamarás. El campo sigue desierto y mudo.

Los brazos no aletean. Son acaso una cola
que el corazón quisiera lanzar al firmamento.
La sangre se entristece de batirse sola.
Los ojos vuelven tristes de mal conocimiento.

Cada ciudad, dormida, despierta loca, exhala
un silencio de cárcel, de sueño que arde y llueve
como un élitro ronco de no poder ser ala.
El hombre yace. El cielo se eleva. El aire mueve. 
 


Flight

(CXXXV: From ‘Cancionero Y Romancero De Ausencias’)

 

Only he who loves, flies. But who loves enough

to be like the slightest and most fugitive bird?

It goes eastwards sinking, commanding hatred, all that

might have wanted to rise again, direct and alive.


To love... But who loves? To fly... But who flies?

I will conquer the blue, eager for plumage,

but love, always beneath, is saddened

at not finding the wings that sure courage gives.


An ardent being, clear of desires, winged,

wanted to ascend, to have freedom in which to nest.

He wanted to forget that men move away in chains.

Where they lacked feathers put valour and oblivion.


Sometimes he flew so high, that the sky shone

over his skin, under his skin, the bird.

Being, you who were once confused with a lark,

others, like weights of hail, brought you down.


You know already the lives of the rest are flagstones

to cover you: prisons to swallow what’s yours.

It passes, life, among bodies, behind bars of beauty.

Through the bars, the blood flows free.


Sad instrument happy to be worn: urgent

tube for desiring and breathing fire.

Sword devoured by constant use.

Body in whose closed horizon I unfold.


You will not fly. You cannot fly, body that wanders

through these corridors where the air is my knot.

No matter how hard you struggle in ascending, you are wrecked.

You will not cry out. The field is what follows, deserted and mute.


The arms do not flutter. Perhaps they are tail-feathers

that the heart wanted to launch into the firmament.

The blood is saddened at fighting on alone.

The eyes turn saddened from knowledge of evil.


Each city, sleeping, waking crazy, exhales

the silence of prison, of sleep that burns and rains down,

like a hoarse insect having no power to take wing.

The man lies down. The sky lifts itself. The air moves. 

 

 

비행

사랑하는 사람만이 날 수 있다. 그렇지만, 누가
그토록 사랑하는가?
가장 가볍고 날쌘 새처럼 될 만큼 사랑하는가?
곧바로 살아서 날아오르고 싶어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것에 퍼진 이 증오가 가라앉아간다

사랑한다... 그렇지만 누가 사랑하는가?
난다..... 그렇지만 누가 나는가?
깃털에 목마른 푸르름을 나는 정복하리라
그러나, 확실한 용기 주는 날개가 없음을
사랑은 언제나 아래에서 슬퍼한다

불타는, 욕망으로 빛나는 날개 달린 존재는
오르고 싶어했다. 둥지에 자유를 갖고 싶어했다
사람이 줄줄이 멀어져감을 잊고 싶어했다.
깃털이 필요한 곳에 용기와 망각을 놓아주었다

이따금 너무 높이 날아
그 가죽 위로 하늘이, 아래로 새가 반짝이곤 했다
언젠가 네가 종달새와 혼동했던 존재
때로는 거친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던 존재.

타인들의 삶이 너를 가둘 무덤임을 너는 안다
너의 삶을 삼켜버릴 감옥임을 너는 안다
삶이여, 육체들 사이로 아름다운 철책들 사이로 지나가라
철책들을 통해, 마음껏 흘러들어라

즐겁게 치장하는 슬픈 기구
불을 탐내고 호흡하는 성급한 管
계속되는 사용으로 부서진 칼
육체, 그 세계 속에서 꼭 닫힌 채 내가 펼쳐쳐있는 육체

너는 날 수 없으리라, 너는 날 수 없다
나를 속박하는 대기의 회랑 사이로 방랑하는 육체여
네가 아무리 기를 쓰고 올라가도 너는 조난당하고 말리라
너는 외치지 못하리라. 평원은 계속해 황량하고 말이 없다

팔은 펄럭이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가슴이 창공에 던지고픈 꼬리이리라
피는 홀로 몸부림침에 슬퍼진다.
눈은 불행한 인식으로 슬퍼진다

잠든, 깨어있는 미친 도시들은 저마다 감옥의 침묵을,
날개가 될 수 없는 거친 초시류의 날개처럼 불타고
비 내리는 꿈의 침묵을 발산한다
사람이 누워있다 하늘이 올라간다 대기가 움직인다.

 

 

07. 01. 17.

 

P.S. 가끔은 이 시가 사랑에 인색한 내게 변명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나도 사랑을 해봐서 아는데, '날아갈 듯한' 기분까지는 비교적 쉽게 도달하지만, 정작 날아가는 건 정말 어렵다. 두 발이 땅에서 떼지지를 않는 것이다(해서 주변의 사랑타령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엄청난 분발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덧붙이는 약간의 변주. "아마르... 뻬로 끼엔 아마?"("사랑해, 아니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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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겔 에르난데스의 시와 명예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10-12 08:36 
    스페인 시인 미겔 에르난데스(1910-1942)에 관한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번역된 시집 <양파의 자장가>(솔, 1995)가 절판된 지 오래인데, 나는 거기 실린 '비행'이란 시를 꽤나 좋아했었다(예전에 만든 페이퍼를 링크로 걸어둔다). 기사 덕분에 상기하게 된 사실인데, 에르난데스는 프랑코 독재시절에 탄압을 받고 31살에 요절했다. 올해, 그리고 이번달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라 한다. 그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마음
 
 
나비80 2007-01-17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죠. 사랑.

아놔키스트 2007-01-1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았다가 가볍게 착륙할 수만 있다면야.. 근데 대개는 날다가 추락하지요.. 떨어지는 충격이 무서워서리... 암튼, 시 좋군요.. 퍼가도 될까요?(허락은 나중에 받고 일단 퍼갑니다.. 안 된다 하시면 다시 갖다 놓을게요..^^)

연우주 2007-01-18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가도 될까요? 라고 말씀드리고 저는 퍼갈래요. ^^ 시도 멋지고 아래 로쟈님의 글도 멋지네요.

로쟈 2007-01-18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셔도 저는 축나지 않는답니다.^^

라로 2007-01-18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ost fugitive bird....안타까와요,,,,공기는 겨우 숨을 쉴 수 있을 만큼일까요~. 딸꾹

로쟈 2007-01-1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날쌘 새'로 번역돼 있는데, 그 정도로 재빠르지 않으면 중력에 덜미를 잡히는 탓이겠죠(그러고 보니 nabi님도 날아다니시는 종류네요). 공기가 부족하신가요?^^

로쟈 2007-01-1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폐활량이 적어서 공기를 덜 축내긴 합니다.^^

mini74 2020-01-17 1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같이 올려주신 샤갈그림이랑 어울리는 시네요 참 좋아요. 마티스의 이카루스 그림도 생각나네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