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포퍼 논쟁>(생각의나무, 2007)이란 책이 출간됐다. 제목이나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닌데,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란 부제가 눈길을 끈다. 재작년에 출간된 원서의 표지에는 그런 부제가 붙어 있지 않으므로 국역본에 새로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도발적'이라니까 흥미는 끈다. 분량도 230여쪽이어서 부담없고(원서는 143쪽이다).
소개에 따르면, "1965년 7월, <과학혁명의 구조>로 명성을 떨친 토머스 쿤과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비판적 지성의 거장으로 주목받던 칼 포퍼가 만나 과학의 본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 한 번의 격돌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공적 토론의 중심 주제로 군림해왔으며, 거기서 쿤의 다원론적 시각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지은이 스티브 풀러는 논쟁의 주역들이 풀어놓은 이야기의 맥락이 완전히 오해되었다고 평가하며 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과 열광 속에 대중의 집단적인 판단 착오가 녹아있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대립한 쟁점은 과학철학뿐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풀러에 따르면 쿤은 과학의 개방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냉전의 압력에 맞닥뜨려 과학자들의 자율권을 지켜내려 애쓴 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퍼는 '열린 사회'를 옹호했던 그의 철학적 입장에 걸맞게 비판적 합리성의 기수로서의 과학을 옹호하며 나아갔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MIT의 '쿤 아카이브'를 연구 고찰한 풀러는 쿤의 과학적 변동 이론에서 철학적 감시를 찾아볼 수 없음을 피력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학자 사회에 지나치게 부여된 독자적 권한을 되찾아오고자 노력한다. 세기의 대결에 대한 이 급진적 평가서 속에는 쿤/포퍼 논쟁의 맥락을 짚어주는 섬세하고도 정교한 지침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책은 과학철학사의 이 세기의 논쟁을 일종의 추리소설로 재독해하는 재미를 줄 듯하다. 게다가 마지막 장의 제목은 '토머스 쿤은 미국의 하이데거인가?'이다. 별로 웃을 일이 없던 차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제이고 구성이다.
사실 이 주제/논쟁과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이전에 소개한 바도 있고). 먼저,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은 이 논쟁의 '원문'을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스티브 플러가 참조하고 있는 건 '쿤 아카이브'이며 이러한 공식적인 논쟁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탐색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쿤의 과학철학과 그 사회학에 관한 가장 읽기 쉬운 소개서이다. 이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제일 먼저 손에 들 만하다.
그리고 평전 <토머스 쿤>(사이언스북스, 2005). 소개에 따르면 "토머스 쿤 위에 두껍께 쌓인 오해의 먼지를 날려 버리는 책. 저자들은 토머스 쿤의 저술들을 조심스럽게 독해하여,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과학사와 과학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그리고 포퍼의 과학관/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의 에세이집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 2006). "눈부신 과학발전, 탐욕과 독선으로 빚어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등 21세기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산 지은이가 인생 마지막 25년 동안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간추"린 책이다.
쿤과 포퍼와 주요 저작들은 물론 번역/소개돼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 <과학으로 생각한다>(동아시아, 2006)는 한겨레에 연재됐던 글들을 모은 것인데,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에 해당하는 넓은 범위를 다룬다. "뉴턴에서부터 인공지능까지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자들의 사상을 다양한 학문 분야로 확장, 통괄하면서 펼치는 유쾌한 지적 파노라마. 과학자들이 세계를 보고 생각했던 다양한 방식을 인문학적, 사회적으로 되짚으며, 일상에서 어떻게 위대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출현했는지, 그 과학적 사상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다"루는 책으로 당연히 쿤과 포퍼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으며 이 논쟁의 배경이 될 만한 이야기거리들을 읽어볼 수 있다...
07. 0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