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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증인이 아닙니다 아이앤북 창작동화 48
박현숙 지음, 권송이 그림 / 아이앤북(I&BOO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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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물론 엄마인 저랑 애아빠까지 진짜 재밌게 읽었답니다. 원치않는 상황에 처하는 것, 가까운 사람의 강요, 누군가를 의한/ 위한 거짓말, 정직을 선택하기 어려움 그러나 필요함 등 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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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로 철학하기
이원진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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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전공자라 블랙미러를 본 남편에게 수업에 다루면 좋겠다고 영화 추천 받은 터라 책이 있길래 구입했다. 책 판형이 단행본 판형은 아닌데 가격에 비해 작고 얇은 책이라 놀랐다. 내용이 가격에 값하는 책이길 바란다. 이런 판형과 두께의 책은 1만원 정도의 가격이 적정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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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 더 자유롭고 평등한 학교를 만드는 열 개의 목소리
홍혜은 외 지음 / 동녘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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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학교에 갈 우리 아이가 이런 선생님을 만나기 바란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이 아니라 사회적 평화와 연대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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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의 기억 이산의 책 23
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임성모 옮김 / 이산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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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710094237&section=04 

  "국민으로 살 것인가, 자유인으로 살 것인가?"

[철학자의 서재] 도마야마 이치로의 <전장의 기억>


기사입력 2010-07-10 오전 10:10:32

 

국민의례와 민중의례

2010년,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국외 출전으로는 역사상 최초로 16강에 진출했다. 월드컵이 국가적·국민적 축제일 수 있어도 개개인 모두가 거기 소환될 이유는 없기에, 또 국가적·국민적으로 조성된 흥을 구태여 일상의 에너지로 충전할 이유가 없기에, 나는 경기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의 시청 여부와 무관하게 한국이 경기하는 기간 내내 월드컵은 우리의 일상에 비선택적으로 개입해 들어왔다. 가령 일상적으로 듣는 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에서까지 월드컵 특집으로 출전국의 국가(國歌)를 소개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때 방송 진행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비장하게 애국가를 부르는 우리 선수들을 떠올렸는지, 자기네 국가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유럽 선수들을 짐짓 조롱했다. 평소 러시아를 포함해 유럽 문화를 흠모하던 그 진행자의 내면에도 어김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훈육된 신체의 기억이 작동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고등학교 정규 교육을 끝으로 더 이상 애국가를 부르(는 의례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문화 공간인 극장에서마저 국민의례를 강요했던 1980년대 후반을 떠올리면 정확히는 이미 십대 후반부터 일상적 국가 의례를 거부했던 셈이다. 그 대신 국민의례를 민중의례로, 애국가를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대체해서 참여하고 열렬히 부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형성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순국선열 대신 한국 현대사가 배제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자신을 바쳤던 민주열사를 추모하고, 영원하고 숭고한 국가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애국가 대신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행위야말로 폭압적 국민국가가 강요하는 정체성 바깥에 설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동질적 국민성을 소환하는 폭력적 일상의 재출현

따라서 오랫동안 나의 의식은 군부독재의 종식은 정치적 민주화이고, 정치적 민주화는 국가폭력을 제거하는 절대적 민주주의의 도래라는 단순한 등식을 이분법적으로 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실정과 한계를 노정했지만, 이어진 그 10년은 그야말로 한국식 민주주의를 선명하게 확보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즉, 김대중·노무현 시대야말로 국가 폭력의 과거를 청산, 치유하는 동시에 한국의 현대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미래 시간을 열 것으로 믿었던 것이 사실이다.

결국 외환 위기나 보수우익의 결집 등 내우외환의 장애가 더해 한국 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현재화하려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각자의 포부는 좌절됐다. 그러나 현재를 미래로부터 새로이 구성하려던 시도는 단순한 실패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현재가 여전히 끔찍한 과거 가운데 침윤돼 있음을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요구했던 촛불 집회 참여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사찰과 보복, 뒤이은 용산 철거민 살인은 물론이고, 다른 한편으로 광주항쟁 30주년 기념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금지, 천안함 침몰을 빌미로 한반도 긴장 조성 및 나아가 참여연대를 비롯해 정부와 이견을 내면 어김없이 테러하는 우익 집단의 군복 코스튬플레이와 가스통 퍼포먼스 등이 우리의 현재 일상 속에 과거적 국민성을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끊임없이 특정한 국민성을 요구하고 구미에 맞지 않으면 밥줄을 끊는 식의 극단적이고 치졸한 공권력이 유포하는 공포와 불안은 일상적 자기 검열의 언어적 선택과 자기 통제의 발화행위라는 실천을 낳고 있다. 정치적 공론장은 물론이고, 사적인 인터넷 접속에서도 친북/좌파/빨갱이라는 연결어가 반북/우파/국가주의의 대립항으로 떠돌면서 우리의 생각과 언어를 파고들고 분절화한다.

이런 대목에 와서야 <전장(戰場)의 기억>(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임성모 옮김, 이산 펴냄)에서 도미야마가 지적하는 일상이 전장과 분리된 것이 아니고, 일상을 구성하는 신체적 실천이란 국민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신체적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주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 국민 국가와 그 속에서 주조된 정체성이란 특정한 정치 현실(군부 독재와 같은)을 극복하거나 대체한다고 쉽게 제거되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도미야마가 전장에서 희생된 오키나와인의 '일본인 되기'라는 동질화 과정을 중심으로 논의하고 있지만, 국민국가에 의해 육성된 우리의 일상적인 신체적(언어적) 훈육 역시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정치 역학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정체성도 직·간접적 전쟁 경험 및 전장 동원의 가능성과 유리되지 않기에 도미야마의 오키나와를 먼 이야기로 치부하기 어렵다.

그러나 도미야마가 개인의 다양한 일상적 실천이 국민적 정체성으로 기계적으로 환원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이 상상하듯이 균일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이란 이렇듯 나의 사회적 실천 가운데 무의식적으로 습관화되어 익숙해져버린 신체적 변용을 동반하기에, 그것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상이한 정치적 맥락 가운데 불시에 안착하는 악몽처럼 동거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역사적 맥락의 국민성을 지닌 자로 국가에 의해 소환되고 검증받는 가운데 그러한 국민성을 거부하는 이중적 지점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프란츠 파농이 묘사했듯이 식민지 공간에서의 정체성은 지배자/피지배자로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다. '식민주의자인 자기'와 '식민화된 타자'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둘 사이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양의적 정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반면, 내가 그토록 쉽사리 국민적 정체성의 외부에 설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은 폭력국가와 이항대립적인 숭고한 상상적 공동체(민주국가)를 내 정체성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가상적·이념적 근거의 배경에는 "꿈같은 무한한 미래를 한없이 확신하면서 자기 존재의 필연성을" 확보하려는, 즉 또 다른 균질적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욕망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그 결과 국민성을 폭압적으로 길들여 말하는 입을 막고 말을 가로채는 국가폭력과는 다른 곳에서, 역사 및 그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말을 특정한 방식(핍박받는 혹은 저항하는 민중)으로 재구성하고 "대신 말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은 아닐까. 파농의 말대로 하얀 가면 뒤에 흑인의 진정한 정체성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니듯이, 국민성의 이면에 순정한 민중성이 오롯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폭력적인 지배의 벡터에 대응하는 또 다른 벡터는 특정한 정체성으로 규준화·동질화하려는 시도를 벗어날 때라야 비로소 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 프란츠 파농. 그의 지적대로 식민지 공간에서의 정체성은 지배자/피지배자로 명확히 나누어지지 않는다. '식민주의자인 자기'와 '식민화된 타자'의 이항대립이 아니라 둘 사이의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양의적 정체성을 이룬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비-역사의 장 : 불확정적·반복적인 '수행적 시간' 속에서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정부는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영미권의 퇴역 군인들을 대거 초청해서 과거 전쟁을 되새기고 기념하면서, 종식되지 않은 전쟁을 새삼 확인하면서, 우리의 현재 위에 계속해서 과거의 전쟁 기억을 덧입히고 있다. 국가 전쟁에 동원되어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희생된 용사들의 정체성은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이야기로 각색된다.

더구나 보수 언론이 천안함 희생자들을 끊임없이 '영웅'으로 명명할 때, 그리고 천안함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발표가 상징적으로 '전쟁 기념관'에서 행해질 때, 어느새 우리는 전장 가운데 떠밀려 들어오게 된다. 그에 발맞춰, 소극적으로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빌미로 좌파의 도덕성을 문제 삼던 우익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북한 군부 세력과의 대치 국면을 조성하여 국민의 자격을 판정하려 한다.

이 모든 상황은 분단의 일상이라는 객관적 현실 인식을 넘어서, 선제 공격의 실질적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쟁 동원에 응답할 국민성을 소환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적 동일성과 타자성을 이분화, 강화하는 것 이외의 어떤 다른 결과에 이를 수 있을까(물론 이 동일성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충족시키는 신자유주의적으로 선진화된 국민이 더해질 것이다).

이 옴짝달싹하기 힘든 정치·경제적 상황이 만드는 '한국인'에 이제 꼼짝없이 포박당해야 하는 걸까. 반복하는 역사의 교훈은 무엇일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치하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이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안에 연착륙하면서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 재건을 내세워 자신들의 흠결을 지우고 저항 세력을 단죄했던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온갖 탈법을 저질렀던 이들이 권력을 쥐고 국민의 자격을 검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역사적 반복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는 길이 필요하다. 도미야마가 계속해서 참조하듯이, 파농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서 우리와 너무나 닮은 알제리의 식민주의 시대를 서술하면서 어떤 특권적인 편에서 봉인하고 포장한 고유한 민족성(민족문화)으로 환원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서술한 한국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소환한, 선진 글로벌 스탠더드가 요구하는 국민성 바깥으로 나와서 우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들을 때, 어떤 설명자나 해석자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을 인식하는 주체는 역시 교도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파농은 스스로 의사-치료자-교도자로서의 고정된 일방적 역할을 해체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가.

파농이 임상 치료를 통해 수행하는 것은 진찰을 해서 환자의 내부에 병근(病根)을 발견하거나 그것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즉, 자신의 욕망을 타자성(백인)에 의해 잠식당한 환자 앞에서 '그런 꿈을 포기하게 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동기가 한번 해명되면 그가 갈등의 진정한 근원을 행해서, 즉 사회구조를 향해서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파농에게 "임상 치료란 사회를 새롭게 열어가는 힘을 계속 끌어내는 일"이다. 그때 치료의 과정은 제도적·폭력적 정체성 규정에 시달리면서 그 규정성이 낳은 흔적들(그것은 내부의 폭력, 불안이나 공포 같은 정신 장애, 작게는 자기 검열과 통제 같은 것들이 될 것이다)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또 다른 힘을 이끌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

또 그 과정은 미리 규정된 정체성 바깥에서 매 순간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수행적(performative)"이며, 식민주의적 역사건, 분단적·이데올로기적 역사건 기존의 역사적 장에서 새로운 관계와 역사를 열어간다는 점에서 우리를 "비-역사"로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폭력적 힘이 조성한, 우리에게 이름(정체성)을 부여하는 "유일하며 당위적인 역사를 벗어나서 그러한 힘에 계속 대항하면서 거슬러 오르는 운동"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거슬러 오르는 운동 가운데 우리는 기존의 지배적 관점으로는 "지각할 수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제도적 폭력과 도식적 힘에 저항하는 길은 단지 "'여기-지금'에 고정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분해와 죽음의 충격을 받아들이면서 투쟁하는 '나'"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이야말로 또 다른 고정된 자기 찾기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 성으로 이행해 나가는 과정을 열어줄 것이다. 
 

     

/김명주 부산대학교 비정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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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춤추다 - 서울-베를린, 언어의 집을 부수고 떠난 유랑자들
서경식 & 타와다 요오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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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관계(關係)하고 있습니까?’ 조금 낯설게 들리는 질문입니다. 보다 일반적인 표현은 질투 어린 혹은 서운한 투의 ‘도대체 우리는 어떤 관계냐?’, ‘우리가 정말 연인(혹은 부부)이냐?’는 관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물음들이겠지요. 우리는 이미 설정된 관계를 확인하려(identify)고 할 뿐입니다. 우리가 관계맺고 있다는 것은 니가 알고 내가 안다, 즉 ‘우리’라는 배타적 관계가 이미 전제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쉽사리 타인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잖아!”라고 판정해버리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도대체 우리는 어떤 관계냐?’라는 질문은 안정적인 관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에서는 제기되지 않습니다. 관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 관계의 불안과 균열을 반증하는 것이지요. 변심한 애인이나 배우자에게나 이렇게 물으니까요. 이처럼 매번 관계를 확인하는 것은 상대를 자신과 묶으려는 지배 전략이므로 그 관계는 이미 서로에게 비극일 겁니다. 유동하는 상대의 마음을 이런 물음으로 구속하길 꿈꾸지만 알다시피 그 꿈은 이루어지기 힘들겠지요.

그런데 이런 변경 가능성이 모든 관계에 전제돼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것은 지옥일까요, 아니면 매일 매일이 새로운 자극일까요? 사실 우리가 안정화된 관계를 요구하는 이유는 내 정서와 생각을 무리없이 관리할 수 있고 그것이 생활에 유용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지루함을 잘 참지 못하지만 자극과 파격도 일상의 지루함을 제거하는 선에서만 요구할 뿐입니다. 일상이 파괴되는 강도 높은 충격을 겪는다면 그건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지요(그것은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감당해야 할 뿐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안정된 관계에서 이탈한 이들이 있습니다. 󰡔경계에서 춤추다󰡕에서 우리는 고향을 떠나온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서경식 선생은 재일(在日)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1)적 시각으로 예술과 국민 그리고 국가에 대해서 줄기차게 이야기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는 재독(在獨)일본인 소설가 타와다 요오코와의 왕복서신 교환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이유에서 겪은 (서로 다른)고향 상실이 역설적으로 이들을 관계맺게 한 것이지요. 사실 안정된 관계를 요구하고 조절할 수 있는 나는, 그만큼 안정된 정체성을 지닌 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범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 아무도 내게 시민임을, 국민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신원 확인을 요구받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 나는 거주가 확실한, 곧 정체성(Identity)이 분명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기저에는 거주 및 국적과 인종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고 구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누가, 끊임없이 확인하고 구분하려고 할까요? 그는 타인을, 자신이 알아볼 수 있도록 특정하고 고정된 방식으로 위치시키려는 자일 것입니다. 이렇게 인종, 민족, 국민, 거주 등의 소속의 경계가 분명한 자들만이 누구인지 확실합니다. 처음 만나더라도 그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동향(同鄕) 친구, 동일한 자들이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결국 소위 정체성이 불분명한 이들은 확실하게 파악되지 않는 낯선 사람, 이방인들로 구분될 뿐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같은 집이라도 그 안에 들어가서 뿌리를 내리고 편히 쉬는 사람들에게는 ‘거주(居住)’ 공간이지만 동베를린에 살고 있는 타와다씨는 ‘집이란 가족도 건물도 아니고 문화와 친구들로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재독일본인이라는 정체성에 더해 동베를린이라는 불안한 도시를 거처로 삼았습니다. 그 도시는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변경지대로서 불안정한 상황을 거듭했지요. 그녀가 거주하는 집 역시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집이란 안정된 거주를 위한 굳건한 건축물이라기보다 오히려 “역사를 조망하는 전망대 같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안에서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밖을 보기 위한, 밖과 관계를 맺기 위한 전망대 말입니다. 말하자면, 들어가긴 했지만 다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이 집이 되는 것이지요.2)

이런 식으로 자신의 거처에서 매일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을 하나의 이름(정체성)으로 붙들어 매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우리는 부모에게서 받은 이름을 평생 유지하지만, 그래서 우리의 정체성은 고정되고 일관된 것일까요? 사실 현대인은 나고 자란 곳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디아스포라적 성격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오고, 공룡같은 메트로폴리스가 벌이는 철거와 재개발로 인해 다시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고,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타국의 궂은일을 찾아 이주 노동자로 모국을 떠나야 합니다. 원치 않는 이동과 내쫓김 가운데 디아스포라의 삶은 자본의 논리와 이방인을 배제하는 동일성의 폭력이 가한 상처 가운데 재구성될 뿐입니다. 안정된 정체성의 경계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우리의 이름도 내적 균열을 거치겠지요. 왜냐하면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나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름은 “역사가 할퀴어놓은 상처 같은 것”이 되고, 이 상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쩌면 나 아니었던 것들, 나의 정체성 바깥의 것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입니다. 즉, “그 상처를 응시하고 있으면 어떤 국가나 일정한 언어권 내부에 갇혀버린 역사가 아닌, 또 하나의 역사가 조금씩 보이”게 되는 그런 과정 말입니다.

이렇게 떠나온 자들, 경계를 벗어나 상처입은 자들에게 거주란, 이제 여행(旅行)과 구분되기 어렵습니다. 자기 집으로 되돌아갈 때마다 거주를 확인받아야 하는 서경식 선생의 처지는 본질적으로 ‘난민’ 상태와 다름없지요. 선생에 비해 우리의 처지가 크게 다를까요? 우리 역시 고향을 떠나왔거나 이미 안정된 거주가 파괴됐습니다. 고향은 때로 벗어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지만 살아온 삶의 터전을 버려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 곳에서 계속 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이들과 떠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나누고, 같은 도시에서도 계급에 따라 다른 생활공간을 영위함으로써 없는 사람들을 주변인, 국외자를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다행이라면, 삶과 의미란 그 시스템이 한정하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디아스포라의 불안정한 주변적 상황이 또 다른 관계를 발생시키는 계기이듯이 말입니다. 타와다씨의 ‘말놀이’가 그 사례로 보입니다. 말놀이는 언어와 언어 사이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찾아내고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 줍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호명하는 사회의 논리는 사실 우리를 삶의 방식에서나 생각의 차원에서나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사회가 부여하는 논리를 내면화하게 되면 우리는 화석화되고 시스템에 포획돼 버립니다. 타와다씨가 제의하는 말놀이는 그런 시스템을 벗어나는 하나의 대안으로 보입니다. 즉 제도적 언어가 의미를 가두고 생각을 차단한다면, 말놀이는 “그것을 흔들고 풀어내어 손에 들고 바라보고 던져올리고 응시하면서, 씩씩하고 밝고 건방지게, 영리하게, 자유롭게 생각하고자 하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런 말놀이는 놀이지만 상처받은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배적인 언어의 방식을 벗어나서 다른 의미들과 접속할 수 언어적 감수성이 없다면 우리는 상투성에 지배돼 버리지요. 결국 나를 상처 입힌 언어들로 나를 표현하는 기이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약한 입장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삶과 놀이의 구분을 벗어나 경계에서 놀이하는 마음으로 언어를 춤추게 하면서 삶의 낡은 틀을 깨어버려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서경식 선생과 타와다씨의 왕복서신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는 그들에게 정주자/이민자라는 이분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이민자로서의 그들의 처지는 그대로지만, 그들은 그런 정체성과 관계에 구속돼 있지 않기에 고정된 호명에서 비껴 있습니다. 고향, 혈연공동체(가족), 국가라는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의식은 한편으로는 취향과 정서의 일체감이라는 안정된 관계망을 형성시켜주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질적인 정체성을 지닌 타인을 구분하고 배제함으로써만 성립하는 폭력적인 시스템입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우리의 선택 앞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왕복서신이 모아지지 않고 반향하면서 여러 결로 흩어지듯이 우리 각자의 삶도 완결되지 않고 성찰을 거듭하는 가운데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니까요.  


  1)  디아스포라(Diasphora)는 보통 ‘이산자(離散)’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거의 번역하지 않는다. 원래는 초기 기독교 박해 때 떠나온 유대인 난민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현재는 고향을 상실한 민족 집단은 물론이고 개인들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2)   이런 맥락에서 보면 거주의 근본 특성을 자신을 평화롭게 보살펴주는 안정된 울타리로 보는 하이데거의 사유가 어떤 정체성에 근거하는지 드러난다. 그는 거주를 건축된 사물과 함께 사유하는데 여기서 건축은 구획되고 배치되지 않던 이질적인 풍경을 자신을 중심으로 재배치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다리는 강, 강가 그리고 토지를 서로 이웃이게끔 엮어준다. 다리는 강주변의 풍경으로서의 땅을 결집하며 모아들인다.” 그래서 결국 하이데거는 거주할 능력과 곧 건축할 수 있음을 등치시킨다. 모든 이질적인 것들과 낯선 것들을 자신과 관련시키고 동일시하는 가운데, 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운데 하이데거는 상실된 고향을 본질적으로 되찾는다. 마르틴 하이데거,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 󰡔강연과 논문󰡕(신상희 외 옮김, 이학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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