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어느덧 9월의 마지막날이다. 지난번 연재의 글을 쓴 게 '그 여름의 끝'이었는데, 그 새 한달이 지난 것. 10월의 마지막 날(정확히는 '밤')만큼 운치가 있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9월의 마지막 날을 '기념'해서 몇 권의 책을 꼽아본다. 사실 지난 한달은 지난 2월에 귀국한 이래 나의 취향에  맞는 책이 가장 적게 출간된 달이기도 하다. 해서, 이 연재가 다소 늦어진 것은 나의 게으름과 무관하다는 걸 미리 알려드린다(소수의 애독자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첫손가락에 꼽고 싶은 책은 브라이언 매기의 <트리스탄 코드>(심산)이다. '바그너와 철학'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데, 소개에 따르면 "바그너의 음악에 미친 철학의 영향"을 주로 밝히면서 "그 영향이 그의 오페라 - '트리스탄과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파르지팔', 그리고 특히 '니벨룽의 반지' - 에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보여준다." 계속 옮겨오자면, "또한 지은이는 예술적 천재인 바그너뿐만이 아니라 역겨울 정도로 심한 편집증과 이기주의 성향을 지닌 바그너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바그너가 어린 니체와 나눈 길고도 친밀한 친교와 영향 관계도 다루고 있다. 그 다음으로 저자는 바그너가 가장 크게 오해받는 나치와의 연관이 허상이라는 해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알다시피 지난 토요일부터 어제까지 러시아의 거장 게르기예프의 지휘로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가 국내 초연되었다(4부작의 18시간짜리 공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규모나 지명도로 봐서는 '올해의 공연'으로 꼽힐 만한 대작이다. 이와 무관하지 않겠지만, 이 달에는 바그너와 그의 오페라에 관련된 책들이 몇 권 출간됐고, <트린스탄 코드>도 그 중 하나이다. 일단 시의성이 있는 책. 게다가 나로선 저자의 책들을 읽어본 경험이 있어서 친숙하고 또 600쪽이 넘는 분량도 미덥기 때문에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저자인 브라이언 매기는 전형적인 옥스포드 철학자라는 인상을 주는데, 내가 읽어본 그의 책은 <현대 철학의 쟁점들은 무엇인가>(심설당, 1989)란 두툼한 책과 <칼 포퍼>(문학과지성사, 1982)란 얇은 책이다(내가 읽지 않았지만, 철학입문서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시공사, 2002)도 나와 있다. 원제는 '철학 이야기'). <현대 철학의 쟁점>은, 기억에 여러 철학자/작가들과 나눈 방송대담인데, '철학과 문학'이란 주제에 대해서는 영국 최고의 지성파 여성작가 아이리스 머독과 나눈 대담을 기록하고 있다. 철학입문서로 추천할 만하다.

바그너의 음악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니체와의 관련(<바그너의 경우>)을 제외하면 바그너란 이름이 내게 떠올려주는 이는 대학 1학년때 교양영어를 강의하신 시인-교수님이다. 교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글이 괴물-천재 음악가 바그너에 관한 에세이였고, 그걸 빌미로 해서 바그너와 그의 음악세계에 대해 귀동냥을 했던 것이 바그너에 대한 나의 상식/교양의 8할을 차지한다. 나머지 2할?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주제음악(바그너와 영화음악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레퍼토리이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바그너'의 거의 전부인바, 작년에 나는 이 영화의 러시아판 비디오CD(감독판)를 사서 보기도 했다. 혹 10년쯤 후엔 <니벨룽의 반지>를 '경험'하고픈 욕심과 여유를 갖게 될는지 모를 일이다.(한편, 1952년에 독어본이 나왔던 아도르노의 바그너론이 <바그너를 찾아서(In Search of Wagner)>란 제목으로 1981년에 영역됐었고,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의 서문은 '오페라광' 슬라보예 지젝이 쓰고 있다).  

 

두번째 책은 미술에 관한 것이다. 스티븐 컨의 <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1840-1900>(휴머니스트). 원제는 '사랑의 눈길들: 1840-1900년 영국과 프랑스의 회화와 소설에 나타난 시선'이다. 원제는 책의 내용과 주제에 대해서 대부분을 이미 말해주는데, 작년에 나온 같은 저자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1880-1918>(휴머니스트)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저자는 "19세기 문화의 중심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회화와 문학 속 '남녀의 시선'에 주목"하며,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에서와 마찬가지로 "19세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전방위적으로 조명하는 솜씨를 보여준"다고.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조지 엘리엇, 토머스 하디, 샬럿 브론테 등의 시와 소설, 그리고 130여 점의 고갱, 르누아르, 드가, 마네, 밀레이, 로세티, 티소, 번 존스 등의 회화 작품들이 풍성하게 등장"한단다. 그러니 19세기 문화사 도감으로라도 서가에 꽂아둘 만하지 않은가? 참고로 20세기 프랑스 철학에서의 시선의 문제를 다룬 책으론 마틴 제이의  <내리깐 시선(Downcast eyes : the denigration of vision in twentieth-century French thought)>(1993, 632쪽)이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일종의 지성사. 마틴 제이는 <변증법적 상상력: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역사와 이론, 1923-1950>(돌베개, 1981)의 저자이다.

 

 

 

 

세번째 책은 세 권의 시집이다. <유랑시인>(한길사)은 "우크라니아의 역사와 시정(詩情)을 탁월하게 묘사해 우크라이나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타라스 셰브첸코의 대표 장시(長詩) 21편을 엄선해 묶은 책. 맑고 순수한 개인적 정서를 노래한 서정시나 환상적 담시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현실을 소재로 삼거나 억압적 정치 체제와 농노제를 반대하는 혁명적 정치사상을 담고 있는 주요 시들을 싣고 있다." 더불어 꽤 많은 분량의 충실한 해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평전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고. 작년인 2004년 겨울 '오렌지 혁명'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우크라이나는 얼마전 유센코(유시첸코) 대통령이 혁명의 동지이자 상징이었던 티모센코 총리와 갈라섬으로써 다시금 외신란에 오르내렸는데(정치의 꽃 또한 '화무십일홍'이다), <유랑시인>은 좀 다른 역사적 맥락과 시각에서 우크라이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줄 듯하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출신의 가장 위대한 작가는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지만, 그는 (우크라이나어가 아닌) 러시아어로 썼다. 그는 우크라이나 민속과 민담을 소재로 한 <지칸카 근촌 야화>(8편의 이야기 가운데, 6편이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만 절판됐다)로 러시아문단에 데뷔하게 되며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 <대장 불바(불리바)>를 쓰기도 했다(우리에겐 주로 '아동물'로 소개돼 있다). 드라마작가로서의 그의 대표작은 <검찰관>(1836)인바, 이 책은 얼마전에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조주관 역, 민음사). 그리고 이 작품은 10월에 러시아의 저명한 연출가 발레리 포킨이 이끄는 알렉산드린스키 극단에 의해 '(수원)경기도문화의전당'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포킨의 <검찰관>은 1910-20년대 혁신적인 연출가 메이에르홀드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메이에르홀드의 <검찰관> 초연은 지난 1926년 겨울에 있었고, 벤야민은 그 공연을 직접 본 소감을 <모스크바 일기>(그린비)에 간단히 적고 있다(이 '전설적인' 공연에 대해서 벤야민이나 당대 관객들은 다소 불만이었는데, 배우였던 메이에르홀드의 아내가 너무 '설쳤다'는 것도 불만의 한 이유였다). 나는 오늘 포킨의 공연을 예매했다. 

 

 

 

 

두번째 시집은 한국계 러시아 음유시인 율리 김의 내한공연에 맞춰 출간된 <율리 김, 자유를 노래하다>(뿌쉬낀하우스)이다. 공연은 10월말로 예정돼 있는데, 이번에 나온 시집에는 그의 음반 2장이 부록으로 포함돼 있다. 율리 김이란 이름을 나는 작년에 모스크바에 체류하면서 처음 듣게 되었는데, 한국계 가수로는 대중가요를 부르는 '아니타 최'(빅토르 최와는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이름 자체는 빅토르 최를 연상시킨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요절한 로커 빅토르 최는 러시안 록의 '전설'이다)와 함께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후반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음유시인은 아르바트거리에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한 오쿠자바(아꾸자바)이다. 그의 시집은 <나의 사랑, 나의 인생>(새미, 2001)으로 번역/소개돼 있다. 오쿠자바가 서정적이라면 내가 TV에서 자주 들은 율리 김의 노래는 경쾌하면서도 서정적이고 유머러스했다. 동시대 러시아 음유시인의 계보를 한국계 러시아인이 잇고 있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이다.

 

 

 

 

세번째 시집은 평론가를 겸하고 있는 권혁웅 시인의 <마징가 계보학>(창비)이다. 오늘자 한겨레의 북리뷰란에서 크게 소개된바 있으므로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겠다. 그 리뷰는 '산동네의 추억, 아픔 삭인 너스레'란 제목을 달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요즘시의 대표적인 경향이라고 하는 '추의 미학' 혹은 '엽기시'로부터 그의 시들이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걸 암시받을 수 있다. 최재봉 기자의 연상대로, 시집은 유하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같은 시집들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권혁웅은 '성북구 삼선동' 키드쯤 된다. 삼선동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70년대말 서울 산동네의 풍경이라는 것은 어림짐작할 수 있는 바다. 산동네 이야기라는 점에서 최기자는 이번 시집을 요절 작가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의 시적 버전이라고도 평한다. 아무려나 그 시절, 그 동네의 얘기가 마음을 잡아끌 만한 독자들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 권혁웅보다 내게 익숙한 건 평론가, 혹은 문학연구자 권혁웅이다. 나는 그의 학위논문이기도 한 <한국 현대시의 시작방법 연구>(깊은샘, 2001)를 좀 읽어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은유, 환유, 제유라는 세 가지 수사학(적 전략)으로 한국 현대시작법의 계통을 세우려고 시도했다. 적어도 나의 견문으론 우리시 연구에서 시의 의미론이나 주제론 이전에 통사론에 주목하고 이를 자세하게 분석해 들어가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그것이 전문연구서들을 그닥 많이 들여다보는 편이 아니면서도 그의 책을 사서 읽어본 이유이다.(한편으로 얼마전 나는 한 술자리에서 이 시인-평론가와 몇 마디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엽기시' 계열을 쓸 수 없을 것 같은, 푸근하고 마음씨 좋은 시인이었다. 단, '고스톱에 관한 보고서' 같은 제목의 시들로 미루어보건대, 그와 고스톱을 치는 것만은 삼가해야 할 듯. 짐작에 그는 마음좋게 피박, 광박 다 덮어씌울 '실력자'이므로).  

 

 

 

 

 

다시 책얘기로 돌아와서, 네번째 책은 원로 철학자 박이문 선생의 <논어의 논리>(문학과지성사)이다. 그의 <노장사상>(문학과지성사, 2004, 개정판)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번의 '논어 이야기'에도 눈길이 갈 만하다. 저자가 비록 서양철학 전공자이긴 하나 글에서 논리(로고스)를 끌어내는 일에서 동서양의 분별은 사소하다. 고려대에서 동양철학을 가르치는 이승환 교수는 "나 자신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거울을 필요로 한다. 때로 거울은 내가 모르고 지내던 나의 모습을 드러내주기도 한다. 박이문 교수의 <논어의 논리>는 정작 우리 자신이 모르고 지내던 <논어>의 가치를 새롭게 드러내주는 거울과도 같은 책이다."라고 추천하고 있기도 하다. 너무도 많은 '논어'들 가운데, 분량이 가장 컴팩트하다는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우리도 때로는 얇고 투명한 책들을 읽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논리'를 다룬 책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김경만 교수의 <담론과 해방>(궁리). '비판이론이 해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국내에서 나온 책으론 드물게도 서구 사회학 이론과 정면으로 대결하고 있는 책이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지식인이 이론적 비판을 통해 사회.정치.문화적 변동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조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우리가 당연시하는 지식인들의 사회적.정치적 역할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상정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의 말을 좀더 옮기면, "우리는 이제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적 논의를 사회나 정치개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구실로 외면하면서 하버마스 같이 평생 고도로 추상적인 이론을 추구해 온 이론가들을 한편으로는 존경하고 대접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버려야 할 때가 됐다" 더불어, "독자적 한국사회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서양의 이론에 의존해왔다는 자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고, 그들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그들과의 '비판적 대화'를 유도해냄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비판적 대화'의 시도인 셈.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출간된 이 책에 대한 반응은 뜨거운 듯하다. 단적으로 대가급 철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추천사는 이렇다(바우만의 책들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김경만은 <담론과 해방>에서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사상가들이 극복하려고 했던 장애물들, 즉 그들이 제기했지만 결국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던 문제들, 또한 그들의 저작에서 제기되었어야 했지만 그들이 피하거나 간과했던 문제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폭넓게 분석하고 있다. 지식이 가지는 윤리적 영향력과 지식이 인간의 자유를 획득하는 데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진 어느 누구도 김경민의 분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를 풀려는 미래의 모든 시도는 이 책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비판적 대화'의 물꼬는 트인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만 교수의 다른 책으론 작년초에 나온 <과학지식과 사회이론>(한길사)과 번역서 <지식과 사회의 상>(한길사, 2000)이 있다. 그런 '전력'에서 알 수 있지만, 저자는 과학/이론 사회학에 정통한, 한국에서는 좀 희귀한 사회학자이다. 참고로,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도전적인 자세로 '이론 다시 읽기'를 시도하고 있는 책으론 두달쯤 전에 나온 산본마쓰의 <탈근대군주론>(갈무리)도 기억해둘 만하다. 나는 이 책의 번역서가 나오자마자 원서를 도서관에 주문해놓았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마도 겨울쯤에나 읽어보게 될 듯하다. 그래, 그렇게 또 겨울이 올 것이다. 이 가을이 지나가면...

05. 09. 30.

 

 

 

 

P.S. 다섯 권에 꼽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책 중의 하나는 로베르 마조리의 <동물원에서 사라진 철학자>(마티)이다.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는 책으론 좀 특이한데, "책에 실린 33개 항목들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이나 촌극을 찍은 즉석사진과도 같다. 그 안에서 철학자는 특정 동물들에 대해 말하는데, 때로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어리석은 소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나 개나 옴벌레를 묘사하면서 사상의 본질을 몇 마디 우화로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힐데가르트는 고래를, 칸트는 코끼리를 전설의 동물처럼 생각했다. 디오게네스는 낙지를 먹다가 개에게 물려죽었다는 일화가 있고, 루소는 오랑우탄을 일종의 유사 인류로 보았다. 소크라테스의 전기가오리나 니체의 사자는 그들의 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호라 할 만하다. 저자는 농담을 하는 척하면서, 한 철학자의 사상 세계를 슬쩍 일별하게 한다."(저자에 따르면, 들뢰즈/가타리는 '진드기', 데리다는 '고양이'와 짝지을 수 있다.) 

재치가 돋보이는 경쾌한 책인데, 프랑스에서 2005년 2월에 발간된 이 책은 2004년 7월 19일부터 8월 28일까지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 시옹'에 여름 특집으로 연재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얇은 분량이긴 해도) 굉장히 빨리 번역/소개되는 셈. 특별히 이 책이 눈에 띈 것은 책의 몇 장을 몇 달 전에 미리 읽어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인즉슨, '저명한' 역자께서 몇몇 장의 검토를 의뢰해오셨기 때문인데, 돌이켜 생각하면 과분한 일이었다. 내가 의견을 덧붙일 만한 여지가 없는 깔끔한 번역이었기에...

그나저나 '동물원에서 사라진 철학자'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이들을 다시 데려와야 하나? 이젠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수의학도 배워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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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30 22:20   좋아요 0 | URL
오늘도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마냐 2005-09-30 22:27   좋아요 0 | URL
지식동냥 잘하구 갑니다. 꾸벅.

Tamino 2005-09-30 22:48   좋아요 0 | URL
님의 부지런함이 부럽습니다. 덕택에 저같은 게으른 사람에게는 이책저책 사서 보고 실망하고 본전생각하는 일이 줄어드니 말입니다.

비로그인 2005-10-01 07:38   좋아요 0 | URL
오늘도 좋은 책소개 받고 갑니다. 꾸벅.

로쟈 2005-10-03 13:05   좋아요 0 | URL
찾아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는 체'하는 도리를 간간이 실천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이 또 하나의 '방앗간'을 이루어놓은 탓에 몇 마디 남겨놓기로 한다(가급적 간단하게? 짹짹!). 가장 먼저 꼽을 책은, 나의 선호와 맞물려, 단연 데리다의 <정신에 대해서>(동문선)이다('정신에 대하여'보다 낯선 표현이군. '-에 대해서'란 책제목이 있었던가?). 동문선 책이라면 가급적 소개를 삼가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역자 박찬국 교수가 하이데거 전공자인 분이어서 번역상의 문제점은 최소화되었으리라고 믿어지기에 주저없이 소개한다. '하이데거와 물음'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은 데리다가 1987년에 개최된 한 하이데거 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이며, 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은 1989년에 나왔고 139쪽의 얇은 책이다(강연한 내용이므로 그만한 분량 이상일 수도 없다). 국역본도 177쪽이니까 '노멀'하다(하지만 20,000원이다).

역자도 후기에서 인용하고 있지만, (영역본 뒷표지에 실린) 하이데거 연구자 데이비드 크렐의 표현을 빌면 '하이데거에 관한 책으로서 우리 세기에 이만한 책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데리다가 또 쓴다면 모를까'이다. 하이데거 전문가로서 역자 또한 거기에 전폭적인 공감을 표하고 있을 정도이니까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겠다(일반적으로 하이데거는 데리다에게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꼽힌다).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한번도 질문된 적이 없는 '정신(Geist)'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체/구축한다. 이런 '대결' 장면은 며칠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경기에서 표도르('효도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가 일어로 음역된 걸 다시 옮겨오면서 생긴 '괴상한' 이름이다)와 크로캅이 맞붙은 것만큼이나(나는 직접보지 못했지만 매니아인 후배로부터 생생한 '재방송'을 들었다)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그런 걸 놓쳐도 좋은 삶은 또한편 나름대로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다.

데리다가 하이데거와 '한판' 붙는다고 하니까 하이데거에 관해서도 배경지식을 갖춰두는 게 좋겠다. 박찬국 교수의 소개서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동녘, 2004) 정도가 별로 부담없이 참조할 만한 책 같다. 내가 읽은 책으로는 조지 스타이너의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가 번역도 훌륭하고 감동적이었다(비록 절판된 듯하지만). 하이데거의 저작으로 내가 언제나 추천하는 것은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이다. <존재와 시간>으로 막바로 들어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초보자라면 헤맬 가능성이 높다.  <형이상학 입문>은 그럴 때 아주 유익한 스파링 파트너이다. 하이데거의 '파워'를 슬쩍 맛보기로 보여주므로 맷집을 좀 키운 다음에 도전하면 되겠다.

 

 

 

 

두번째 책은 전방위 전업작가 장석주의 니체 읽기, <진리는 미풍처럼 온다>(북인)이다. 80년대에 잘나가던 출판사 청하의 대표로서 마광수 필화사건 때문에 옥고를 치르기던 했던 장석주는 청하판 니체전집의 기획자이기도 했다. 현재 간행중인 책세상판 전집이 나오기 전에 니체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주던 10권짜리 전집이 그의 '작품'인 셈. 그러한 '열정'에 견주어 본다면 이번에 나온 250여쪽의 '니체 읽기'는 '미풍'에 불과해 보이지만, '한국에서의 니체'에 그가 끼친 기여는 언급해둘 만하다.   

사실 니체에 관한 책으로 보다 본격적인 것은 지난 여름에 나온 백승영의 <니체,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자>(책세상)이다(저자가 7년 동안 집필했다는 이 책의 분량은 717쪽이다). 책세상 전집의 편집위원으로서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저자의 니체 공부를 중간결산하고 있는 듯한 책인데, 규모나 성취도 면에서 국내에서는 아직 이만한 책이 나온 적이 없었다. 니체 사망 100주기를 맞이하여 지난 2000년에 출간된 <니체가 뒤흔든 철학 100년>(민음사)는 한국 니체학의 수준을 정면에서 보여주는데('한국의 책 100권'에도 포함됐었다), 내가 '백승영'이란 이름을 처음 본 것은 그 책에서였고 1부 '니체의 생애와 사상' 파트를 도맡은 것으로 봐서 새로운 '강자'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여성 철학자라는 건 최근에야 한 인터뷰를 읽어보고 알게 되었는데, 그의 독일 유학기 한 토막은 이렇다.

"니체를 공부하겠다고 한국에서 온 그녀를 절망케 한 최초의 인물이 바로 울리히 교수였다. 독일 사람에게도 어려운 철학자를 외국인이 어떻게 정복하겠는가, 그런 걱정이었다. 세 번의 퇴짜를 맞고서도 뜻을 굽히지 않자 그는 조건부로 승낙했다. '다른 책 보지 말고 니체의 책 전부를 달달 외우고 나서 다시 와라.' 독일어판으로 39권 분량인 니체 전집을 2년 6개월 동안 여섯 번을 읽어냈다. '죽을 것처럼 답답했어요. 참고서를 보면 쉽겠는데, 그 원서를 완벽하게 읽기가 쉽지 않아 울기도 수없이 했어요. 그 괴팍한 교수 때문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기가 발동했어요.' 얼마나 읽어댔는지 어느 페이지 몇째 줄에 있는 ‘오자’까지 기억했다고 한다. 예전에 보이지 않던 니체가 보이기 시작하더란다. 학자로서의 삶의 일대 전환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서, 다른 건 몰라도 그 정도로 공부한 그가 니체 '전문가'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몇 권 읽고서 아는 체하는 '포스트모던' 연구자들과는 종류가 다른 것). 그런 그가 권하는 니체 공부법: "그녀가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읽으라는 것입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이끌어줄 것 같았던 그녀의 일갈이다.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렇다면 주부들이 좀 더 쉽게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읽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을 하면서 이해될 때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니체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조금은 야박한 듯한 그녀의 권유는 은사의 교육법과 닮아 있다." 그러니 그저 읽어보시라!..

물론 니체가 (거의) 인생의 전부이고, 세상의 전부라면(그런 이들이 없지는 않겠다), 읽고 또 읽는 일을 마다하지는 않겠다. 한데, 어디 사정이 그러한가? 나 또한 '니체 애호가'로서 니체의 '위버멘쉬' 모티브를 중심으로 짤막한 책을 쓰기도 했었지만(제목은 <탱고레슨>이었고, 지금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책이다) 다른 많은 책들을 무시할 만큼의 매니아는 아니다. 그런 만큼 얼마간 거리를 두고 니체를 (즐기며) 읽게 되는데(요즘 읽는 건 영역돼 나온 지아니 바티모의 <니체 입문>이다), 그런 독자의 관점에서 간혹 '전문가'들의 주장은 좀 오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령, "초인 사상이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이 말은 일본 사람이 번역한 말입니다. 대신 ‘위버멘시Ubermensch’라고 써야 합니다. 독일어 그대로 쓰는 거죠.”라는 저자의 주장에는(이건 책세상판 니체 전집 편집위원회의 결정이기도 한데) 동의하기 어렵다. 

허다한 철학용어들을 일본어 번역에서 갖다 쓰는 주제에 우리가 '일본 사람이 번역한 말'이라고 일방적으로 타박할 수 있을지 의문일 뿐더러('정신'은 어떻고, '주체'는 어떠하며, '사회'는 또 어떠한가?) 독일어를 그대로 쓰면 (아무런 오해 없이!) '이해'가 되는 건지 지극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저자는 독일 사람들만큼 독어가 유창하다고 하니까 '위버멘쉬' 대신에 '초인'이란 말을 쓰는 데 이질감이나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들도 과연 그러한가?(정 못마땅하다면, 김진석의 제안대로, '넘어가는 인간'으로 옮기는 건 불가능한가?) 그와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서라면, 니체는 (말 많고 탈 많은) 번역본으로 읽을 게 아니라 원어인 독어로 읽어야 한다(그런데, '위버멘쉬'로 읽는 독일 사람들이야말로 니체를 오독한 장본인들 아닌가? 그들은 '초인'이 아닌 '위버멘쉬'로 읽는데 어찌하여 니체와 나치즘의 불미스런 '연루'가 생겨난 것일까?). 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을 우리는 신뢰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다 믿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대충 주워듣는 우리의 무기는 전문지식이 아니라 '상식'이다).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 데리다가 하이데거의 극복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었다면, 하이데거가 표나게 내세웠던 건 니체철학의 극복이었다. 하이데거는 4권 분량의 니체론을 썼는데, 그 중 한 권이 <니체와 니힐리즘>(철학과현실사, 2000)이며 역시 박찬국 교수의 번역이다. 니체, 하이데거, 데리다가 다 얽혀들어간 해석의 문제에 대해선 앨런 슈리프트의 <니체와 해석의 문제>(푸른숲, 1997)이 훌륭한 안내자이다. 번역도 좋다. 이 '해석'의 문제에 대해서는 김상환 교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비사, 2002) 제2부도 참고할 수 있다. 슈리프트 이상의 훌륭한 해설이다.

 

 

 

 

 

세번째 책은 사드 후작의 <규방철학>(도서출판b). 이 책은 <안방철학>이라는 제목으로 한 차례 한국어로 번역된 바 있는데(나는 국립도서관에 있는 걸 복사했었다. 마광수 교수의 추천사가 붙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소개에 따르면 거기엔 "책의 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이번에 프랑스 문학 전공자가 상세하고 꼼꼼한 주석을 곁들여서 다시 옮겼다. 그래서 '완역비평판'이다. 목차를 보니 가라타니 고진의 해설도 말미에 붙어 있다. <소돔 120일>(고도, 2000) 정도면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지루하고 부담스럽지만(사드에게서 '섹스'는 '쾌락원칙 너머'에 있다. 그러니 어찌 고통이 아니겠는가? 가령, 포르노 배우들의 '장시간 노동'을 떠올려보라.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300쪽 정도의 <규방철학>이라면 읽어볼 만하겠다(<규방철학>의 한 구절이 지젝의 <이라크>에 인용돼 있으며, 그 '오역'에 대해서는 모스크바통신에서 이전에 지적한 바 있다). 내 생각에 가장 좋은 사드 입문서는 분량으로 보나 집약성으로 보나 절판된 <미덕의 불운>(한불문화출판, 1987)인데, 이게 왜 다시 나오지 않는지는 좀 의아하다. 혹 사드가 생소한 분이라면, 영화 <사드>(1996)를 먼저 보셔도 되겠다. 좀 싱거운 영화이긴 하지만 '분위기'는 대략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네번째 책(들)은 '1980년대 중국사상계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리저허우(리쩌허우)의 중국사상사론 3부작이다(이렇게 한꺼번에 나오는 건 '러시아식'만이 아닌 모양이다). 이전에 <고별혁명>(북로드, 2003), <역사본체론>(들녘, 2004) 등의 북리뷰들을 보면서 처음 이름을 기억해두게 됐는데(<미의 역정> 등의 미학서들을 갖고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중국학 연구자들이 이렇듯 공을 들여서 번역서들을 내는 걸 보면 필시 뭔가 있는 사상가이리라(이걸 언제 사둘 것이며, 언제 읽어볼 것이냐, 심히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미지들을 늘어놓으니 보기엔 좋다). 그 이상의 내막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 좋은 리뷰들을 보았으면 싶다.

 

 

 

 

덧붙임: 리저허우의 <학설>(들녘)도 출간됐다. "'중국 사상계의 1인자', '중국 사상계의 4대 금강' 등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리쩌허우가 중국의 전통사상(특히 유학)과 문화, 그리고 중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찰한 책. 앞서 출간된 사상사 3부작이나 미학 3부작 등의 저술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엮어 지은이 자신만의 학설을 세우고 있다."고 하는데, 230쪽 정도의 분량이므로 '입문서'로서는 딱인 듯하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겠다.

 

 

 

  

중국학 책들을 소개한 김에 러시아쪽 신간들도 끝으로 소개해둔다. 먼저, 이 동네의 성실한 연구자 이장욱이 쓴 <혁명과 모더니즘>(랜덤하우스중앙). 부제는 '러시아의 시와 미학'이며, 20세기 러시아의 주요 시인들과 이론가들을 소개하는 걸 목적으로 한 책이다. 6명의 시인과 4명의 이론가 그리고 3가지 주의(형식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모스크바 개념주의) 등이 다루어지고 있는데, '소개'를 목적으로 한 만큼, 품위를 유지하면서도 평이하게 씌어져 있다(잡지 등에 연재된 글들도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가 없다. '전문서'가 절대 아니니 오해들 마시길). 전공자들에겐 필독서가 되겠지만, 일반 독자들의 교양을 살찌우는 데도 유익해보인다.

사실 저자는 나의 친구이며 나는 이 책을 지난주에 우편으로 선물받았다(책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건 몇 달 전부터이다). 자주 만나는 형편은 못되지만 주변에 이렇듯 부지런한 친구들이 있다는 건 부듯하고 다행스런 일이다. 그의 책이 많이 나갔으면 싶다. 한편, 그는 시인이기도 해서 <내 잠 속의 모래산>(민음사, 2002)이란 시집도 갖고 있다. 최근엔 한 문예지에서 공모한 소설상에 당선되기도 했으므로 이젠 소설가까지 겸하게 됐다. 그의 비평문도 요즘 자주 눈에 띄는 걸로 봐서 아주 '작심하고' 쓰는 듯하다. 그런 의지와 재능을 반만 따라갔어도 내가 책 소개나 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그리고 지운다).

그리고 덧붙인 책은 우연찮게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러시아연방 전 총리 프리마코프가 쓴 국제정치 비망록' <테러리즘과 세계정치>(램덤하우스중앙)이다. 소개에 따르면 프리마코프는 "현대 국제정치의 거물이다. 비록 그의 이름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는 옛 냉전시절부터 최근까지도 주요 국제문제의 이면에서 조언가로, 중재자로, 때로는 협상의 당사자로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는 소련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지의 중동특파원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언론경험을 한 후 학계에 투신, 동방학 연구소와 세계 경제 및 국제관계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했다. 2005년 현재 러시아 상공회의소 소장으로 있으면서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 국정에 대해 자문하는 한편, 세계 주요 포럼과 토론회에 단골 연사로도 참가하고 있다."

작년 모스크바 체류시 간혹 언론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있지만 나는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뒷배경(마피아 연루여부 등)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을 올려놓은 것은 그 '희귀성' 때문이다. 소위 '테러시대'에 테러리즘과 국제정세에 관한 책들은 그간에 많이 나왔지만, 러시아쪽 시각을 보여주는 건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체첸문제를 떠안고 있는 러시아도 테러리즘의 변방이 아니며(대략 7-10건 정도의 크고 작은 테러사건이 해마다 터졌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무슨 '묘안'이 있는 건지 전직 러시아 총리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자는 것. 사실, 누가 대신 읽어주면 좋을 책이다. 

뒤늦게 생각난 책 한권은 러시아의 민담연구가 블라지미르 프로프(쁘로쁘)의 <러시아 민담연구>(한국외대출판부)이다. 프로프의 책으론 이미 <민담형태론>(새문사, 1987; 예림기획, 1998)과 <민담의 역사적 기원>(문학과지성사, 1990) 등이 번역돼 있고, <웃음의 시학> 같은 책도 번역돼 나올 예정이다. 서사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민담형태론>이 필독서이겠지만, 일반 독자나 고전문학 연구자라면 프로프의 민담연구서들은 그냥 편안하게 일독해봄 직하다. 물론 부피들이 만만찮지만...

05. 08. 31

P.S. 날짜를 적고 보니까 '그 여름의 끝'이군. 이젠 생각을 좀 해야겠다. 살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각만 잘 하면, 어떻게든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살벌한 현실이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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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1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브리티 2005-09-01 09:25   좋아요 0 | URL
아앗, 지금 알았습니다. [탱고레슨]의 저자가 로쟈님이군요. 옛날에 김정란 교수가 극찬했던 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집에 찾아보면 있을 듯)...--; 요즘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책 해설가가 이장욱 씨인데요. 정말 재밌게 잘 쓰세요. 근데 소설까지 쓰신다니...ㅜ.ㅜ

로쟈 2005-09-01 10:00   좋아요 0 | URL
<탱고레슨>에 대해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건 개인용 팜플렛이거든요(해서, 김정란 교수가 읽었을 리가 없습니다). 예, 이장욱씨가 해설들을 자주 쓰더군요. 재능들은 오래 묻혀 있지 않나 봅니다...

니브리티 2005-09-01 10:03   좋아요 0 | URL
아..그런가....-_-;; 전 깜짝 놀랬습니다. 로쟈님이 소설 쓰시나 하고..OTL

주니다 2005-09-01 17:28   좋아요 0 | URL
그 여름의 끝과 함께 개강이군요. 더 바빠지실 듯...ㅎㅎㅎ
그렇다면 주부들이 좀 더 쉽게 니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읽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을 하면서 이해될 때까지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 니체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신문에서 이 기사를 봤었는데, 좀 황당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팔자 좋은 주부가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어차피 니체를 모른다한들 세상사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겠지만....(내가 그정도 공부를 한 상태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면서 ㅎㅎ)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어쨌든 그 분의 책은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투지가 생깁니다. ㅋㅋㅋ

로쟈 2005-09-01 18:00   좋아요 0 | URL
'어떤 팔자 좋은 주부'들이 없지야 않겠지만 드물겠지요. 니체 철학의 '옳고 그른' 이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실 이차적이라고 봅니다. 그건 판관으로서의 철학에 대한 이미지를 고수할 때 가능한 것인데, (너무나도 비체계적인) 니체 철학도 '철학'인가란 논란이 일었던 때도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니체 철학의 체계'까지 운운되는 요즘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요는 니체 '전공자'들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에겐 우리에겐 없는 '앎'이 있다는 것이죠(그에 따라 '사회적 배려'가 요구되는 것이고). 냉소적인 얘기는 아니고, 부르디외적인 시각을 조금 가져와봤을 뿐입니다. 신은 죽었지만, (부르디외의 말대로) '사회'라는 신은 건재하니까요...

주니다 2005-09-06 11:45   좋아요 0 | URL
지식인 먹물분자가 자신의 앎을 타인에게 베푸는 '사회적 배려'를 잊어서는 안될 뿐만 아니라 그런 베풂을 통해 공부는 온전한 지식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는 취지의 말씀을 로쟈님께서 지난번에 하셨었죠. 공감하는바 컸습니다. 그나저나 니체는 한국에서 나름대로 호사를 누리는 듯 합니다.
"정신에 대해서"는 서점에서 아주 잠깐 훒어봤는데, 좀 불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부디 기우기를 바라며 자세한 서평은 로쟈님에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혁명과 모더니즘"이 가장 땡기는 책이네요. 조만간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다면 주변에도 몇권이라도 강매를...
로쟈님도 어서 책을 내셔야 제가 세일즈를 열심히 해 볼텐데...(물론 러시아 관련 전공서적은 제외임다 하핫)

armdown 2005-09-01 18:46   좋아요 0 | URL
앨런 슈리프트의 <니체와 해석의 문제>(푸른숲, 1997)는 번역이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특히 생략하고 축약한 부분이 많지요. 영어로 읽는 것이 훨씬 명료하고 또 속도도 빠릅니다. 장석주의 책을 따라 왔다가, 잘 모르는 분들의 오해가 있을까 해서 한 마디 적습니다.

로쟈 2005-09-02 12:37   좋아요 0 | URL
주니다님/ <정신에 대해서>는 이달 안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저도 뭘 쓰고는 싶은데, 밀린 논문과 번역들 때문에 당체--; 암다운님/ 오래전 기억에 의존해 별무리 없는 번역이라고 적어놓았는데(사실 제가 번역에 '민감'해진 게 비교적 최근이라서), '거짓말'친 게 됐나요?^^ 원서는 저도 갖고 있고 부분적으로 같이 읽어보았었는데, 나중에 다시 한번 대조해봐야겠군요. 지적은 감사합니다...

2007-04-03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03 08:51   좋아요 0 | URL
**님/ 프로프의 민담연구는 방대합니다. <민담형태론>은 분석방법에 관한 이론적인 저작으로 얇은 책입니다. <러시아 민담 연구>는 그 '실제'에 해당하고 더 많은 연구서들을 남겨놓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읽는 건 좀 퍽퍽합니다...

2007-04-05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최근에 나온 신간 <들뢰즈 커넥션>을 읽고 있지만, 아직 다른 책들이 다 차지 않은 까닭에 이 신간 소개 연재를 미루어두고 있었는데, 드디어 반가운 책이 한 권 나왔고 그걸 빌미로 50번째 '책 수다'를 시작한다(대개 너무 말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 내가 유일하게 수다스러울 때가 책얘기들을 늘어놓을 때이다). 호기심에 언제 이 연재를 시작했는지 찾아봤더니 2002년 12월 20일로 돼 있다(*다시 확인해보니 10월이다). 대략 2년 8개월만에 50회를 채우는 건데, 작년 러시아 체류 기간을 제외한다면, 실질적으로는 1년 9개월 정도만이다. 이를 스스로 기념하여 맨처음 소개했던 책 다섯 권을 다시 꼽아본다.

 

 

 

 

지젝의 <향락의 전이> 개역판(인간사랑, 2002),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푸른숲, 2002), 에른스트 마이어의 <이것이 생물학이다>(몸과마음, 2002), 김상환의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창비사, 2002),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동식 <프래그머티즘>(아카넷, 2002)가 그 다섯 권의 책들이다. 이 다섯 권의 책을 나는 모두 소장하고 있고, <이것이 생물학이다>와 <프래그머티즘>을 제외한 세 권의 책을 읽었다. <향락의 전이>의 원서는 내가 '지젝'에 빠져들도록 만든 책이면서, 동시에 그 번역본은 오역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책이다(오역의 진창에서 살아남는 일은 마치 전장을 방불하게 한다. 나를 단련시키지 않으면 살아남을/읽어낼 수 없었는바, 나의 독해력을 키워준 건 8할이 오역서들이다. 나의 친애하는 적들인 셈). 나머지는 모두 훌륭한 책들이다. 그런 책들과의 '첫'만남을 나는 이런 누추한 자리에서나마 기억해두고자 한다. 그것이 이 연재의 소임이다.

 

 

 

 

이번에 다룰 첫번째 책은 <이기적 유전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신간 <악마의 사도>(바다출판사)이다. 언젠가 드나들던 도킨스의 홈피에서 이 책이 출간된 2003년쯤에 이와 관련한 얘기를 얼핏 본 듯하다. 하지만, 러시아에 1년 가 있으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말 번역본이 '알아서' 출간된 것. 마치 생일선물을 받은 듯이 반갑다. 번역도 전문번역가의 작품이라 신뢰가 간다. 책은 일종의 에세이집인데(우리의 경우 최채전 교수가 잘 쓰는) 소개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리처드 도킨스가 썼던 기고문과 연설문, 회고록과 논설문, 서평과 헌사 가운데서 정수만을 가려 뽑아 엮은 책"으로서 "다윈주의나 과학 전반을 다룬 글, 도덕을 다룬 글, 종교와 교육 및 진리와 과학사를 다룬 글,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글 등 종횡무진한 32편의 에세이가 담겨있다."

나는 <확장된 표현형>(을유문화사, 2004)를 제외한 그의 책들을 모두 읽었으며, 아직 번역되지 않은 그의 책 <풀리는 무지개(Unweaving the Rainbow)>는 원서로 갖고 있다. 그러니 애독자로서의 자격은 충분하다고 본다(<이기적 유전자>의 경우 나는 동아출판사에서 나온 초판 번역과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개정판 번역을 모두 읽었다). 그런 자격으로 도킨스 입문서를 들자면, 물론 <이기적 유전자>부터 읽어나가는 게 제일 간편한 지름길이지만, 분량이 많다 싶은 독자는 에드 섹스턴이 쓴 <도킨스와 이기적 유전자>(이제이북스, 2002)를 먼저 읽어볼 수도 있겠다. 그보다 좀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독자라면 킴 스티렐리의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도 유익하다. 책의 원제는 '도킨스 vs. 굴드'이니까 이 두 스타과학자에 대한 예비지식을 갖고서 읽는 게 좋겠지만(곁말을 덧붙이지면, 이 책은 알라딘에서 '도킨스'란 검색어로 뜨지 않는다. 어정쩡한 우리말 제목이 책의 성격을 드러내주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책이 안 팔려도 당연한 일). 잠시 홍보를 하자면, 이 책은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라는 두 석학의 주장을 통해, 지난 수십 년 동안 현대 진화생물학계에서 벌어진 논쟁을 다룬다." 읽어볼 만하다. 

反도킨스를 표나게 내세운다는 점에서 굴드와 한편에 서고 있는 이가 그의 동료 닐스 엘드리지인데, 도킨스가 못마땅한 이라면 그의 책  <우리는 왜 섹스를 하는가>(조선일보사, 2004)을 참조할 수도 있다(나는 아직 못 읽어봤다). 책의 부제는 '이기적 유전자의 성이론에 대한 반박'으로 노골적이다. 내 기억에 굴드와 엘드리지는 단속평형론이라는 진화론을 공동으로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한 도킨스의 반박은 <눈먼 시계공>(민음사, 1997)이 강력하다. 도킨스에 대한, <이기적 유전자>에 강력한 옹호로는 최재천 교수의 해제(동아일보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해제)가 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권의 책 때문에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내게는 <이기적 유전자>가 바로 그런 책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인생관, 가치관을 조금 바꿔준 책 몇 권을 꼽아본다. 나대로의 대학 신입생 추천도서 목록인데(신입생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일은 자신이 얼마나 '밥통'인가라는 사실이며,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은 비스듬히 고개를 숙여서 돌자갈 같은 관념들을 말끔히 비워내는 것이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문예출판사), <장자>(현암사) 등이 그것이다(장자의 경우는 특히 '내편'). 물론 이 목록은 들뢰즈식의 '연결접속'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 같은 책들이 그 추가적인 접속의 대상들이다. 주체로서의 '나'는 그 책들이 통과해간 어떤 '자리'를 지칭할 따름이다. 이러한 목록에 한국책들이 앞자리에 놓이지 않은 것은 나의 '편식' 탓이겠다.  뭐하면, 대학 1학년때 제일 처음 읽은 책 중 하나인 정진홍 교수의 <종교학 서설>(전망사, 1984)을 슬쩍 올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절판된 책이라 이미지는 비슷한 성격의 책 <종교문화의 이해>(청년사, 1995)를 가져왔다). 그런 책들을 읽었고, 읽고 있으며, 읽을 것이다.

    

 

 

  

두번째 책은 이미 언급한, 라이크만의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연구)이다. 역자의 기준대로 하자면, 저자 라이크만과의 인연은 나름대로 '깊은' 편이다(여기에 이어서 어제 한시간 반쯤 쓴 글이 날아갔다. 그때그때 '등록'을 안해둔 탓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다시 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절반으로 줄여서 쓸 작정이다). 그가 쓴 <미셸 푸코: 철학의 자유>(인간사랑, 1990)을 (비록 원서는 아니었지만) 나도 읽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드레피스/라비노우의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나남, 1989)와 함께 가장 좋은 푸코 입문서로 꼽히던 책이다. 게다가 라이크만의 <진리와 에로스: 푸코, 라캉, 윤리의 문제>와 <들뢰즈 커넥션>의 원서를 진작부터 복사해서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다시 <들뢰즈 커넥션>의 번역서를 마주하게 되니 '감회가 남다르다.' 비록 들뢰즈의 사상에 대한 적절한 입문서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역자에 따르면 "이 책은 한국에서 중요한 입문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특히 예술과 미학을 다루는 6장은 이 책의 백미다. 들뢰즈의 철학은 바로 미학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6장까지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나는 현재 3장까지 읽었다) '백미'를 읽어본 소감은 아직 적을 수 없겠다. 하지만, 경험론과의 관계를 다룬 2장(실험), 3장(사유)은 충분히 읽을 만했다. 물론 역자의 '독자적인' 역어들에 먼저 익숙해져야 하는 애로사항은 감수해야 한다. '들뢰즈 전공자'의 번역으로 책의 표지도 훌륭하지만 책의 편제는 그닥 '프로'답지 않으며(너무 많은 외국어 병기가 오히려 가독성을 떨어뜨린다), 군데군데 오역(실수)들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점. 이에 대한 자세한 검토는 나중에 다른 자리에서 다루겠지만, 일례를 지적하자면 이런 식이다.

52쪽에서 "들뢰즈의 독창성은(...) 철학에서 개념들의 고름이나 정합성이 있기 위해서는 문제들에 의존하게 되고, 이 문제들은 사물들이 동의에 '정착'해서 그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르기 전에 도래하는 '바깥'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말해다는 데 있다."고 돼 있는데, 원문은 이렇다: "An originality of Deleuze is (...) to say that the consistency or coherence of concepts in philosophy owes its existence to the problems introduced by an 'outside' that comes before things 'settle' into agreements and persists within them."(20쪽) 내용은 단순한데, 다만 역자는 'persists'의 주어를 '바깥(outside)'이 아닌 '사물들(things)'로 잘못 보았다. 다시 옮기면, "들뢰즈가 독창적으로 주장하는바, 철학에서 개념들의 일관성 혹은 정합성은 (철학의)'바깥'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빚지고 있다. 이 '바깥'은 문제가 동의점들로 고정되기 전에 도래하여 거기에 계속 존속한다." 

<들뢰즈 커넥션>과 함께 나온 책이 대담집 <디알로그>(동문선)이다. 라이크만의 책의 들뢰즈 저작 약어표에 보면, D(='Dialogues')로 돼 있는 책인데, 불어본은 1977년에 나왔고 나도 갖고 있는 영역본은 1987년에 나왔다. 기존에 번역돼 있는 <대담 1972-1990>(솔, 1994)과는 다른 책이며 분량도 얇다. 영미문학쪽 얘기가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이로써 들뢰즈의 책은 흄을 다룬 들뢰즈 최초의 저작 <경험론과 주체성>(1953)을 제외한 거의 모든 책이 번역돼 나온 듯하다(이 가운데 최악은 <비평과 진단>인데, 거기에 견줄 만한 책이 더 있는지 모르겠다).  

 

 

 

 

세번째 책은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아카넷). 나는 분량으로 보아 <도덕 형이상학>이 출간된 줄로 알았으나 목차를 보니 흔히 <도덕형이상학의 정초>로 불리던 그 책이다.  이 책은 물론 <도덕 형이상학을 위한 기초놓기>(책세상, 2002)로 번역돼 나온바 있다. 일반독자로선 <실천이성비판>의 다이제스트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다이제스트'란 말 그대로 보다 이해하기 쉽고, 소화하기 쉬운 책. 더구나 두 권에는 모두 자세한 '해제'가 붙어 있으므로 칸트 도덕철학에 대한 입문서로서 적격이라 할 만하다. 아마 '윤리형이상학'의 원어는 'Metaphysik der Sitten'이며, 흔히 'metaphysics of morals'로 영역된다. 그런데, 칸트에게서 '도덕'이란 게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과는 달리 실질적으론 '윤리'의 뜻을 갖는다(도덕과 윤리의 차이에 대해선 고진의 견해 참조). 역자인 백종현 교수는 그런 의미에서 아예 (기존의 번역관행과는 달리) '윤리형이상학'이라고 '의역'한 듯하다. 일리가 없는 건 아니나, 그 또한 칸트식의 어법이므로 나름대로 존중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게 내 생각이고, 나로선 보다 친숙한 제목인 '도덕형이상학'에 더 애착을 갖는다. 이러한 칸트 윤리학에 대한 가장 '자극적인' 입문서는 내가 읽은 한도 내에서 고진의 <윤리21>(사회평론, 2001)과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도서출판b, 2004)이다. 후자의 부제는 '칸트와 라캉'이다.

 

 

 

 

네번째 책은 터키문학의 거장이라는 아샤르 케말의 작품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문학과지성사)이다. 케말의 다른 작품이 번역된 것 같지 않으므로 최초로 소개되는 게 아닌가 싶다. 소개에 따르면, "표제작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납치혼과 명예살인이라는 전통에 희생되는 여인의 삶을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어머니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복잡한 심정과 처절한 가족사, 사람들의 질투와 증오가 간결한 문체로 그려진다. 치밀한 심리 묘사와 추진력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 명예살인, 혹은 복수를 다룬다는 점에서 당장에 연상되는 소설은 알바니아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문학동네, 1999)이다. 역시나 "알바니아 북부 고원 지대에 남아 있는 관습법(카눈)의 전통을 소재로 인간 실존의 비극을 형상화한 장편 소설"로서 "소설의 중심 소재는 알바니아의 북부 고원 지대에 남아 있는 옛 관습법(카눈)의 전통이다. 카눈이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알바니아 고유의 관습법으로 피는 피로써 갚는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는 박찬욱 감독이 복수 3부작을 찍으면서 이 '변방'의 소설들을 참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복수의 색깔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본다(<올드보이>에서 이물감이 두드러지지만, '복수'는 한국적인 정서가 아니다. 그닥 '독한' 민족이 아니어서).


 

 

  

마지막 책은 '휴식' 같은 책으로 골랐다. 이란 영화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디자인하우스). 소개에 따르면, "197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시를 수록"한 책이다. "흑백의 간결한 프레임 안에 그의 영화를 통해 익숙해진 이란의 다양한 자연경관을 담아"냈고, "시적인 정취를 드러내는 사진들 사이사이로 짧고 담백한 시들이 아련하게 등장한다"고 한다. 그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고상하고 고답적인 '문자들'에 멀미가 날 무렵 마음을 비우는 의미에서 한번쯤 뒤적여볼 만하겠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 3부작에서 <체리향기>(이 영화를 아직 안 봤군)까지의 '소박한' 그의 영화세계는 한때 영화의 '오래된 미래'란 평을 듣기도 했다. 아마도 영화는 박찬욱의 복수 3부작과 키아로스타미의 이란 3부작 사이에서 좀더 진동하겠지만... 

05. 8. 24-25.  

P.S.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라>의 영어제목은 'Walking with the Wind'이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바람이 우리를 또 어딘가로 데려갈 때까지 오늘도 나한테 주어진 책들을 읽어가야겠다...

P.S.2. 케말과 관련하여 나귀님의 서재에서 퍼온 자료.

<메메드>(홍진주 옮김, 학원사, 1988 중판)

야사르 케말의 책으로는 아마도 국내 "최초" 번역본인 듯한 <메메드>. 모두 4부로 구성된 작품 가운데 제1부이다. 본래 이 책은 1982년에 주우(학원사)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한 권으로 출간되었다. 지금 사진에 보이는 것은 훗날 단행본으로 "방법"해서 다시 만든 것이다. 이번에 나온 <독사를>의 작가 연보에는 "메메드"가 아니라 "메흐멧"으로 되어 있었다.
 
SEAGULL, (tr. by Thilda Kemal, NY: Pantheon Books, 1981)

터키에서는 1976년에 나온 소설이라는데, <메메드>와 <독사를>의 작가 연보에는 원제인 Al Gozum Seyreyle Salih 에 해당하는 작품이 없는 듯했다. 과연 무엇일꼬. (여기서 Salih 는 주인공 이름인 듯.) 표지에 US Army Young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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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24 23:04   좋아요 0 | URL
지금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를 읽고 있는데 수능만 끝나면 진화생물학(사회생물학)서적들도 좀 손을 봐야겄습니다. 로자님 책 소개는 늘 유익하네요.

비로그인 2005-08-24 23:04   좋아요 0 | URL
아참 저 그리고 질문이 하나 있는데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 좀 자세하게 알려면 무엇을 읽는게 좋은가요? 박병철 교수의 개론서는 읽었는데 좀 아쉬운 점이 많아서...

로쟈 2005-08-25 12:26   좋아요 0 | URL
수능도 보기 전에 '데리다'를 읽는다구요? 천재신가 봅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선, 저도 아직 안 읽었지만, 전기 <천재의 의무>(문화과학사)가 평판이 좋은 책입니다. 번역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주니다 2005-08-25 16:45   좋아요 0 | URL
다음부턴 꼭 '등록'을 수시로 하시길...업데이트가 늦었던 사정이 있었군요.^^ 전 인터넷 게시판에 긴글을 쓸 때는 워드 프로그램에서 문서를 작성한 후 따다 붙이는 방법을 씁니다. 힘들여 쓴 글 날아가면 대책없이 슬퍼집니다.ㅜ.ㅜ 더군다나 이젠 기억력도 신통찮고...동문선에서 나온 '디알로그'는 이제 거의 본능적으로 걱정이 앞서는군요. 책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대단한 동문선...

로쟈 2005-08-25 17:12   좋아요 0 | URL
이미지 등록 때문에 알라딘에 바로 쓰는데, 가끔 그런 일을 당하게(!) 되네요.^^

armdown 2005-08-26 02:43   좋아요 0 | URL
지적하신 부분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잘못되었다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더 정확시 지적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들뢰즈 커넥셕' 역자 올림.

yoonta 2005-08-26 02:44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스캔에 김재인님의 실수가 또 잡혔군요.. 번역의 꼼꼼함을 늘상 주장하시는 그분으로써는 상당히 뭐 팔리는 일이겠네요..^^ 내용상으로도 개념의 외부가 가지는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인 것 같은데..김재인씨의 번역은 무슨 선문답같아서 도무지 알아 먹을수 없는 문장이 되어버렸군요..실수라고 하기엔 너무 사소하지 않은 부분에서 실수한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저런 문장들이 책 읽다가 가끔씩 튀어나와 버리면 돌아버리죠..(읽는 내가 머리가 나쁜줄 알고) ^^

yoonta 2005-08-26 02:46   좋아요 0 | URL
앗..그사이 역자께서 댓글을 다셨군요..로쟈님의 댓글을 기대하면서...^^

로쟈 2005-08-26 11:58   좋아요 0 | URL
역자께/ 제가 지적한 것은 아주 단순한데, "...'outside' that comes before things 'settle' into agreements and persists within them."에서, 반복하자면 persists의 주어가 번역하신대로 things가 아니라(그렇다면 동사가 3인칭 단수가 될 수 없겠죠) outside여야 하고, 문맥상으로도 그게 맞습니다. 사실, 오역은 번역의 '필요악'이며 다만 우리로선 언제나 긴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다른 대목들은 책을 마저 읽은 다음에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armdown 2005-08-28 21:53   좋아요 0 | URL
지난번에 술먹고 써서 보이지 않았었군요. 명백한 오류네요. 번역을 수정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들뢰즈의 독창성은(...) 철학에서 개념들의 고름이나 정합성이 있기 위해서는 문제들에 의존하게 되고, 이 문제들은 사물들이 동의에 '정착'하기 전에 도래하여 그 안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바깥'에 의해 도입되었다고 말해다는 데 있다." 번번히 신세(?)를 지게 되네요. 앞으로도 많은 질정 부탁드립니다.

einbahnstrasse 2005-08-29 03:13   좋아요 0 | URL
케말의 '메메드'가 80년대 초반에 번역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로쟈 2005-08-29 11:39   좋아요 0 | URL
암다운님/ 신세(?)는 더 좋은 번역으로 갚으시면 되겠죠. <안티 오이디푸스>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앙겔루스 노부스님/ 케말의 다른 번역에 대해서는 몇 분이 지적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5-08-29 18:03   좋아요 0 | URL
오타 났네요.^^ 이스마엘 카다레는 "알바니아" 사람입니다.

로쟈 2005-08-29 18:1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렌티우스 2006-12-09 15:21   좋아요 0 | URL
네 맞지요. 우리말 들뢰즈의 '디알로그'는 일단 다음을 번역한 책이고요
초판 Dialogues avec Claire Parnet. Paris, Flammarion, 1977, 184 p. ;
2판 2e éd. 1996, coll. « Champs », 187 p. ('L'actuel et le virtuel'에 대한 부록이 추가).

이전 솔 출판사의 '대담 1972-1990'은 다음을 번역한 것인데 잘 아시다시피 완역이 아니지요. 아래에 각 불어원본 및 우리말 번역본을 보시면 잘 알 수 있고요...

Pourparlers 1972 - 1990, Les éditions de Minuit, Paris, 1990.

‑‑‑‑‑ Table des matières ‑‑‑‑‑

I. De L’Anti-Œdipe à Mille plateaux :
1. Lettre à un critique sévère –
2. Entretien avec Félix Guattari sur L’Anti-Œdipe –
3. Entretien sur Mille plateaux

II. Cinéma :
4. Trois questions sur Six fois deux (Godard) –
5. Sur L’Image-mouvement –
7. Doute sur l’imaginaire –
8. Lettre à Serge Daney : Optimisme, pessimisme et voyage

III. Michel Foucault :
9. Fendre les choses, fendre les mots –
10. La vie comme œuvre d’art.
11. Un portrait de Foucault

IV. Philosophie :
12. Les intercesseurs –
13. Sur la philosophie.
14. Sur Leibniz –
15. Lettre à Réda Bensmaïa, sur Spinoza

V. Politique :
16. Contrôle et devenir –
17. Post-scriptum sur les sociétés de contrôle.

1. '반-외티푸스'에서 '천개의 세트'까지
1) 어느 가혹한 비평가에게 보내는 편지
2) '반-외티푸스'에 관한 이야기
3) '천개의 세르'에 관한 이야기

2. 영화
1) 상상에 대한 의혹
2) 세루쥬 다네에게 보내는 편지 : 낙관, 비관 그리고 여행

3. 미셸 푸코
1) 푸코의 초상화

4. 철학
1) 조정자들
2) 철학에 관하여
3) 라이프니츠에 관하여
4) 레다 벤마이아에게 보내는 편지 : 스피노자에 관하여

5. 정치
1) 통제와 생성
2) 추신 : 통제 사회에 대하여

로쟈 2006-12-09 12:16   좋아요 0 | URL
저도 두 책의 영역본을 따로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독일의 20세기 최고비평가로 꼽히는 벤야민의 '주저'이자 미완성 수고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이다. 일찍부터 '소문'은 무성했던 책인데, '드디어' 출현한 것. 지난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구내서점에 책이 들어온 걸 보고 잠시 놀랐는데, 한국어판은 4권으로 분권돼 나올 예정이라고(4권이 양장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분권으로 나오는 반양장본은 8권이 될 것이다).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인문학 번역서로서는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 하니, 의당 친절한 안내서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런 도우미로 정평있는 책이 수잔 벅 모스의 <시각의 변증법>이고, 알다시피 이건 이미 작년에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만하면 풍성한 식탁이다.

간혹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번역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데, 인문서 번역의 평균적인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투정'에 불과하지 않나 싶다. 원저와 대조해서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번역하기 까다롭지만 역자가 나름의 수완을 발휘한 대목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내가 100여 쪽을 읽으면서 발견한 가장 두드러진 오역은 다음의 한 대목뿐이다(나머지는 사소하다). 91쪽의 맨마지막줄, "테크놀로지가 약속하는 '새' 자연에 대한 극단적 낙관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한 총체적 비관 - 이것이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결코 선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이것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특징짓는 중요한 경향이다."(강조된 부분이 오역이다) 

내용상으로도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원문은 이렇다: "Extreme optimism concerning the promise of the 'new' nature of technology, and total pessimism concerning the course of history, which without proletarian revolution would never leave the stage of prehistory - this orientation characterizes all stages of the Arcades project."(64쪽, 강조는 나의 것) 내용은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총체적 비관주의'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특징지어준다는 것인데(도시 혹은 아케이드에 대한 벤야민의 매혹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역자는 'which without' 'without which'로 잘못 봄으로써 엉뚱한 오역을 범하고 말았다. 다시 옮기면, "'새로운' 성격의 테크놀로지가 약속하는 바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역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비관주의(역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없다면 내내 선사적 단계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전 단계를 특징짓는 방향성이다." 이건 물론 사소한 실수이지만, 결과는 좀 문제가 되는 오역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이런 오역이 거의 드물다는 것이고, 우리의 번역 현실에서 이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현실' 말인가? 가령, 작년에 재판 5쇄까지 찍고 있는 리처드 커니의 <현대유럽철학의 흐름>(한울) 같은 책을 보자(나는 이 조잡한 번역서가 아직까지 유통되는 까닭을 모르겠다). 벤야민에 관한 장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가? "보들레르는 벤야민에게 도시를 방황하는 일이 공간적 변화보다는 순간적 진보의 문제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177쪽;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95년 초판 5쇄이지만, 그 사이에 번역이 수정됐을 리는 만무하다) 보들레르가 벤야민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웅'인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보들레르에게 배운 것이 '공간적 변화'가 아닌 '순간적 진보'의 문제인가?

원문은 이렇다: "Baudelaire taught Benjamin that stray through a city was to discover how meaning is less a matter of temporal progress(chronos) than of spatial placement(topos)."(1994년, 2판, 152쪽) 그러니까 정확히 정반대, 즉 파리의 산책자 보들레르가 가르쳐준 것은 '시간적 진보(크로노스)'가 아니라 '공간적 배치(토포스)'가 갖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점은 벤야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시간의 공간화'이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벤야민 자신이 '관상학'을 얘기하고 '정지의 변증법'까지 말하겠는가?). 여하튼, 인용문과 같은 오역문들로 아주 범벅이 돼 있는 책이 대학가에서 내내 교양 철학서로 팔려나가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런 책을 철학강의의 참고문헌으로 올려놓는 강사/교수들도 없지 않은데,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파렴치한들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애꿎은 학생들의 머리는 왜 혹사시킨단 말인가?..

  

 

 

 

성질을 부려봐야 건강에 좋지도 않으므로 다른 책 얘기로 넘어가자. 이언 해킹의 과학철학서 <표상하기와 개입하기>(한울)가 출간됐다(또 한울출판사로군. 요컨대 이 출판사가 엉터리책만 내는 건 아니다). 부제는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이고, 말 그대로 과학철학 입문서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자의 의견을 참고해보건대) '최고의' 입문서이다. 구내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됐는데, 나에게 '이언 해킹'이란 이름은 <왜 언어가 철학에서 중요한가>(서광사, 1989)의 저자로 각인돼 있다. 즉, '언어철학자'로. 그런데, 웬걸, 이 양반이 어느새(!) '과학철학'의 대가가 돼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영어권 학자로는 아주 드문 일일 텐데,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의 '과학적 개념의 철학과 역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  짐작에 그 자리는 푸코의 스승이기도 했던 캉키옘(캉킬렘) 같은 이가 맡았던 자리 아닌가? 어쨌든 저자의 '포지션' 하나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책일 텐데, 이 신간은 해킹의 대표작이면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비견될 만한 저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는 우선은 '두 번' 놀라면서 책을 손에 들 일이다. 읽는 건 나중에 '천천히' 읽더라도(역자의 서문 정도 읽어놓고)... 참고로, 역자는 신뢰할 만한 전공자이다. 훌륭한 저자와 역자가 패키지로 묶인 이런 류의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참고로, 토마스 쿤 덕분에 '대중화'된  과학철학에 대해서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최근 목요일판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 연재되고 있는 '과학속 사상, 사상속 과학'을 죽 훑어보시는 게 좋겠다. 그럼 대략의 개념/구도가 잡힐 것이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고자 하는 독자라면, 쿤이나 포퍼, 라카토스('라카토슈' '러커토시'), 파이어아벤트 등을 읽으면 되는데, 자세한 서지는 '과학철학'을 검색하거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의 역자 서문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 <현대과학철학논쟁>(아르케, 2002)이 좀 어렵지만 기본서이고, 국내 필자들의 쓴 것으론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아르케, 1999)이 있다. 물론, 이렇게 두꺼운 책들만 읽어야 하는가란 푸념이 나올 수 있겠다. 요령이 없지는 않다.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분량대비' 최고의 입문서(내가 읽은 아이콘북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읽을 만했던 책).

사실인즉, 그 유명한 <과학혁명의 구조>도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요즘은 고등학교 논술주제로도 자주 등장하지만). 내가 열아홉살, 대학 1학년때 읽기에 가장 어려웠던 책 두 권이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과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해서, 두 책에 대한 나의 이해는 대부분 2차 문헌들에 근거한다. 요즘은 두 책의 요지에 대해서 30분 정도씩은 강의라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책을 펴놓고 한 구절씩 막힘없이 읽어나가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두 책을 덮은 지 10년도 더 됐기 때문에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을 테지만). 해서, 리라이팅 시리즈(그린비)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살림)에서 다루어짐직하다(<과학혁명의 구조>는 목록에 들어가 있는바, 책이 나오면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세번째는 역사분야의 책으로 먼저, 프랑스의 혁명가 로베스 피에르의 평전,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교양인). 저자는 장 마생이고, 책은 로베스피에르 평전이 고전이라고. 물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로베스피에르 평전"이다. 752쪽의 분량도 어느 정도 신뢰감을 준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중심 인물이자 프랑스 혁명 자체와 동일시되는 인물,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바스티유 함락에서 국왕 처형, 혁명의 몰락에 이르는 프랑스 혁명의 숨가쁜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요컨대, 로베스피에르란 문제적 인물을 통해서 프랑스혁명사를 읽고자 하는 것(지난주 한겨례의 서평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부터 '최교수' 운운하고 있었는데, 책의 머리말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최갑수 교수가 썼다). 

비단 역사를 읽을 때, 반드시 '문제적 인물'의 시선과 행적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가 광복절이었지만, 해방 6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여러 종의 책 가운데 <8.15의 기억>(한길사)을 꼽아두고 싶다. "책은 KBS 광복 60주년 프로젝트팀이 '8.15의 기억 -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제작하면서 채록한 구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마침 나는 그 프로그램을 TV에서 봤다. 인상적이었다(특히 일본군 포로들과 함께 시베리아에까지 끌려가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분들도 있었다). 형식상으론 일종의 '구술사'인데, 이러한 살아있는 증언들은 (진리뿐만 아니라) 역사도 '구체적'이라는 걸 새삼 말해준다.

 

 

 

 

네번째 책은 오사와 마사치의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그린비). 저자에 대해서 나는 아는바 없지만, '언어'나 '화폐' '커뮤니케이션' 등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걸로 봐서 가라타니 고진의 자장권 안에 있는 학자인 듯싶고, 그런 경우 대략 읽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제목의 '선정성'에 기대를 건 독자라면 실망할 테지만. 역자는 고진의 <윤리11>, <일본정신의 기원> 등을 번역한 송태욱씨이다. 책은 출판사의 안목을 따른 것인지 역자의 안목을 따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믿을 만한 역자라는 게 일단은 안심. 박해일, 강혜정 주연의 영화 <연애의 목적>이 지난주에 비디오로 출시됐던데, 조만간 '연애의 목적'을 주시하면서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해 숙고해봐야겠다...

 

 

 

 

 

마지막 책은 아옌데와 함께. 칠레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신작 <세피아빛 초상>(민음사)이 번역돼 나왔다. "<영혼의 집>, <운명의 딸>을 잇는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여섯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역사를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칠레의 대표적인 작가로 군림하고 있지만, 아옌데의 작품을 나는 아직 읽은바 없고, 다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영화 <영혼의 집>(1993)을 10년도 더 전에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신작을 꼽은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책의 역자가 친구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그(녀)가 아옌데의 소설을 한 권 번역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간혹 만날 때마다 일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다. 알고 보니 이 책이었던 것이다(생각보다는 두껍군!). 개학을 하게 되면, 점심 한끼 사주고 책을 건네받아야겠다(이렇게 홍보까지 하고 있으니 점심도 얻어먹을까?). 그나저나 책이 좀 팔려야 나중에 한 턱 내라고 할 텐데...

05.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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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8-16 18:06   좋아요 0 | URL
책 소개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대단하세요.

로쟈 2005-08-16 18:33   좋아요 0 | URL
대단한 건 제가 아니라 책들이죠...

galapagos55 2005-08-17 07:28   좋아요 0 | URL
헉. "세피아빛 초상"은 개인적으로 몇년동안 언제 번역판이 나오나 싶어 끊임없이 민음사를 들락거리게 했던 책인데요; 역자가 친구분인데다가 진행상황에 대해 중간보고까지 받으셨었다니, 부럽습니다!^^ 얼른 읽으러 가야겠네요.

로쟈 2005-08-17 10:49   좋아요 0 | URL
아옌데 '마니아'시군요.^^
 

한동안 바쁜 일들로 제쳐두었던 일들을 주말에 밀린 빨래 해치우듯 해본다. 그간에 신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며칠 전에 그에 값할 만한 책이 나왔다. 아마도 이 연재를 즐겨 읽어보시는 분이라면 맞히실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1>(한길사)이 그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화학>은 전4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책이며, 말년의 레비-스트로스가 20년에 걸쳐 쓴 것이다. 해서 과연 언제쯤 국역본이 나올 것인가 궁금해 하던 차였는데, 생각보다는 빨리 책이 나왔다. 1권 '날것과 익힌 것'에 이어서 나머지 책들, 곧 2권 '꿀에서 재로', 3권 '식사예절의 기원', 4권 '벌거벗은 인간'도 곧 나오는 건지 궁금하고 곧 나오기를 기대한다. 내가 벌써 이 책을 읽어봤을 리는 없으므로 책에 관한 정보는 레비스트로스의 회고대담이나 2차문헌들에서 얻은 것이다. 대담이란 디디에 에리봉과 나눈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강, 2003)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입문서로 가장 추천할 만하다(나는 개인적으로 '사상'과 그 '사람'을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먼저,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은 <신화학>에서 다루어지는 재료들이 대부분 아메리키 신화라는 것이다(알다시피 지역별로 신화는 무궁무진하며, 거기에 대한 전문가들이 다 따로 있다. '세계의 모든 신화'의 전문가가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 모든 민족'의 민족학자/인류학자가 된다는 게 가능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령, 푸코의 스승인 뒤메질은 인도 신화 전문가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들을 사고의 재료로 사용하여 개별적인 것 너머에 있는 보편적인 구조를 발견하고 기술하고자 한다는 것. 그가 '구조주의' 인류학의 대가인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을 무리하게 적용하다 보면 신화의 개별성을 무시한 억지를 부릴 수도 있겠다. 이러한 억지에 대해선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민음사, 1996)에서 제기된 비판이 신랄하며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렇다면,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은 '극복'의 대상이며, 극복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건 오이디푸스 신화의 구조에 대한 그의 분석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신화들을 구성하는 신화소들을 분리/추출해낸 다음에 그가 하는 일은 그 신화소-카드들을 악보처럼 배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매우 아름다운 '사유의 논리'가 구성되게 된다. 그 아름다움에 견주면 현실과의 유관성은 여기서 이차적이다. 요컨대, 신화학자 레비스트로스를 지운 자리에서도 우리는 아티스트, 혹은 작곡가로서의 레비스트로스를 읽어낼 수 있는 것(그 자신이 클래식 음악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신화학> 또한 음악의 악장 형식으로 구성돼 있어서 서곡에 이어서 변주곡이 나오는 식이다. 이러한 '형식'이야말로 가장 레비스트로스적인 것이다(이러한 '형식'의 기원은 그가 야콥슨에게서 시사받은 음운론이다). 해서 나의 제안은 신화학자나 인류학자로서보다는 음악가로서의 레비스트로스에 주목하는 것이 그의 <신화학>을 읽는 보다 재미있는 방식이 아닐까라는 것(신화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굳이 이 책을 반가워하는 이유이다).

 

 

 

 

책의 역자는 임봉길 교수로 30년전 프랑스 유학시절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고 하는데, 그런 인연이 좋은 번역으로 결실을 맺었으면 싶다. <구조주의 혁명>(서울대출판부, 2000)의 한 장은 임교수가 쓴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인류학'이다. 참고할 만한 글이고, 레비스트로스 사상에 대한 자세한 해제는 (초보자가 읽기엔 좀 어렵지만)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인간사랑, 1989)를 참고할 수 있다. 초보자에게 가장 쉬운 책은 주경복 교수의 <레비스트로스>(건대출판부, 1996)이다. 문고본이어서 분량이나 가격 모두 부담이 없다. 최협 교수의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풀빛, 1996)는 레비스트로스 입문서라기보다는 인류학 입문서로서 유용하며, 번역서 가운데에서는 에드먼드 리치의 <레비스트로스>(시공사, 1998)가 부담없다. 리치는 레비스트로스의 영국인 '제자'이며, <성서의 구조인류학>(한길사, 1996)의 저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영향? 친족/민족 연구의 권위자인 이광규 교수가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류학자로 레비스트로스를 꼽은 적이 있다. 물론 그 경우는 <친족의 체계>라는 레비스트로스의 박사학위논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이겠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레비스트로스는 모방하기 어려운데,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의 방법론이 '음악적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책은 역시나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로 나온 <왕필의 노자주>. 저자는 임채우 교수로 "왕필의 역철학 연구"로 학위를 받았고, 이미 <주역 왕필주>(길, 2000)를 역간한바 있다. 동양철학 책을 한두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왕필(혹은 왕삐)이란 이름을 모를 수가 없는데(나는 김용옥의 책들에서 처음 소개받았다 '아마데우스 왕삐'!)), 삼국시대를 살았던 이 '천재'는 비록 23살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노자에 대한 가장 형이상학적이면서 권위있는 주석을 남겼다(비록 요즘은, 특히 재야에서 그의 주석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아진 듯하지만).

이 <노자주>에 대해서는 이미 김학목의 번역으로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홍익출판사, 2000)가 출간돼 있는데, 해석상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책세상에서 새로 나온 <노자> 번역/주해에서 저자인 임헌규 교수는 홍익출판사본에 대해서도 "왕필의 주석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번역해놓은 책"이라 평하고 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책으론 김형효 교수의 <사유하는 도덕경>(소나무, 2004)가 있다. 오래전에 나온 <데리다와 노장의 독법>(정신문화연구원, 1994)의 업그레이드본인데, 역시나 임헌규 교수에 따르면, "<노자> 전체를 수미일관한 철학적 사유로 읽으려고 시도한 책"으로서 "다소 무리한 해석도 있지만, 근래에 연구된 가장 의미있는 연구서 중의 하나"이다. 아울러 백서본, 곽점본, 왕필본 등 주요 노자판본에 대한 비교주해는 이석명의 <백서노자>(청계, 1993)를 참조할 수 있다.

<노자>는 가장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다고 말해지면서도 분량이 부담없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해석과 주석에 도전해보는 책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책은 <장자>이지만) 나도 그런 축에 들어서 한때는 <노자> 영역본을 사모으기도 했었다(4-5권을 구했던 듯하다). 작년에 러시아에 있으면서 러시아어본 <도덕경>을 기꺼이 구해들었던 것도 그런 때문이다(이 책에도 상당한 분량이 주석이 포함돼 있다). 아직 여유가 좀 있지만, 아주 늙기 전에 모아놓은 텍스트들을 읽으며 <도덕경>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적어두고 싶다. 이건 학구적 바람이기보다는 호사가적인 바람이다(*한길사의 신간 <왕필의 노자주는 생각해보니까 이미 나왔던 책이다. <왕필의 노자>(예문서원, 1997)가 그것이다. 나는 그 책을 갖고 있는데, 알라딘 검색만을 의지하다가 깜박 신간으로 착각했다. 수정된 사항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세번째 책은 소설로서 중남미소설 선집인 <붐 그리고 포스트붐>(예문). 이 분야의 전문가인 송병선 교수의 번역이다. 우리가 알 만한 중남미 작가들이 대거 망라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인데, 피서지에서 한번 읽어봄 직하다. 상식적인 문학용어로 알아두어야 하지만, "'붐(Boom)'이란 20세기 후반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중남미 현대소설을 일컫는다." 붐세대 작가들이란 말도 쓰는 듯한데, 그 다음 세대가 포스트붐이 되겠다. 교양함양 차원에서도 필독서. 이 책과 함께 꼽고 싶은 것은 열린책들에서 새로 나온 줄리안 반즈의 소설들이다. 반즈는 영국의 중견작가인데, 이전에 동연출판사에서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 말 좀 들어봐>와 <10과 1/2장으로 쓴 세계역사>가 나온 적이 있고, 나는 이 책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태양을 바라보며>를 포함해서 새로운 푸대에 담겨 출간된 것. 나는 그의 책들을 드문드문 읽었지만, 반즈는 유머가 있으며 신뢰할 만한 작가라고 생각한다(이른바 '돈되는 작가'인 것이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문학동네, 1998)까지 포함해서 한번쯤 반즈의 세계에 푹 빠져보시길...

 

 

 

 

네번째 책은 다다이즘 예술가 만 레이의 '자화상'  <나는 Dada다>(미메시스). 나는 이름으로만 접해본 작가인데, 소개에 따르면 " 세잔과 피카소의 그림, 브란쿠시의 조각 등을 접하며 유럽 현대 미술에 매혹되었고, 1913년 아머리 근대 미술전에서 유럽의 첨단 회화 유파들의 그림을 보고 결정적으로 유럽 예술의 선진성에 경도되기 시작" "초기에는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회화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가 마르셀 뒤샹과 프랑시스 피카비아와의 만남을 통해 점차 다다이즘에 접근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문학적 다다이즘에 관심이 있어서(가령, Deridada는 어떤가?)  <다다와 초현실주의>(한길아트, 2001) 등을 사보기도 했다.

사전적 소개에 따르면,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성과 합리주의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믿음이 무너지자, 젊은 예술가들은 기성세대들의 편견과 인습에 도전하여 반예술적 부정과 파괴를 표현수단으로 하여 태동시킨 예술유파"이다. 철학자들 가운데는 무정부주의적 인식론을 주장한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가 다다이스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선 하모니즘과 함께 다다이즘은 예술의 기본정신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충분했던 것 같지 않다. 만 레이의 자서전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건 그런 정신의 시대사적 맥락을 구경해보기 위해서이다.

 

 

 

 

이제 마지막 한 권을 꼽아보기로 하자. 분야별 안배 차원에서 헬렌 피셔의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생각의나무)로 낙착. 우선 믿을 만한 학자들이 추천하고 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번뜩임과 구체적 경험을 원한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중심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에드워드 윌슨) 그리고, "헬렌 피셔는 독자에게 인간의 열정, 그리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극도의 환희와 절망들을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인류라는 존재에 대해 지금껏 씌어진 가장 매력적이고 과학적으로 탄탄한 저서 중 하나다."(데이비드 버스)

사실 헬렌 피셔와는 구면인데, 나는 그녀의 <사랑의 해부학>(하서출판사, 1994)도 읽었고, <성의 계약>(정신세계사, 1999)도 읽었다. 데이빗 부스(=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 사라 홀디의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서운관, 1994) 등도 그맘때 같이 읽은 책들이다(*서해문집에서 다시 나왔다). 모두 영장류 학자들이거나 인류학자들이다(버스는 성심리학자이면서 진화심리학자).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제1의 성>(생각의나무)만 읽지 않았을 따름인데, 그건 자세한 리뷰들을 읽는 걸로 대체했기 때문이었다. 짐작에 신간은 <사랑의 해부학>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사랑과 같은 우리의 강렬한 감정과 뇌의 생리학적 변화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곧 소개에 따르면 "주로 책은 바로 알 수 없는 사랑의 매커니즘을 실험과 조사를 통해 분석해낸다. 책은 일단 흥분, 변덕, 나른함, 집착 등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시공간과 성별을 초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전 인류에 공통된 뇌의 작용에 따른 현상이기 때문이라는 것.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나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고, 마찬가지로 사랑이 변한다면 그것은 나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란다." A10신경이나 암페타민, 도파민 등의 호르몬 얘기들도 아마 자주 나올 법하다. 

윌슨의 주장대로, 이러한 대뇌생리학적 환원이 "인간 본성의 중심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데 요긴하며 필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윌슨의 주장대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번뜩임과 구체적 경험을 원한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우리의 열정이 암페타민과 연관된다는 걸 피셔의 책은 말해주지만, 정작 그 암페타민이 분비되도록 해주는 건 (책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의 대상들이다. 책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건 그럴 만하다고 쳐도 책이 우리를 (사랑만큼) 흥분에 빠뜨리지 못한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이젠 옛날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 걸 생각해보라). 해서 우리의 책들은 보다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 암페타민 발산제라도 먹이든지, 주사하든지 하여간에...(우리의 떠나간 연인들이 되돌아올 리 없으므로...)

05. 08. 06. 

 

 

 

 

P.S. 본문에서 아깝게 거명되지 않은 책은  장 뤽 낭시 등이 쓴 <숭고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이다. 장 뤽 낭시나 라쿠-라바르트는 '데리다 사단'에 분류되는 철학자들로서 '알튀세르 사단'의 랑시에르와 함께 앞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책은 낭시가 편집한 것인데, "1984년에서 1986년 사이에 잡지 「포에지」에 발표된 일련의 '숭고 분석'에, 또 다른 네 편의 논문을 첨가한 총 여덟 개의 글을 싣고 있다. 숭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 그리고 숭고의 개념과 관련된 질문들을 다시 돌아본다." 흥미롭지만, 책의 가독성의 대해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에 장담하지 못하겠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책세상) 발췌역이 나왔다는 것(아무래도 박영사판 <판단력 비판>보다는 읽기 편하겠다). 특히, "미의 분석론"과 "숭고의 분석론"이 번역된바, 미학(특히 요즘 주목받는 숭고론)에 관심을 둔 이라면 반드시 읽어두어야겠다(같은 시리즈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도 <판단력 비판>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으로 참고할 만하다). 칸트의 숭고론에 대해서는 리오타르의 강의 <칸트의 숭고미에 대하여>(현대미학사, 2000)도 참고할 만하지만 철학에 대한 소양을 좀 필요로 한다. 교양수준에서라면, '숭고'와 '시뮬라크르'를 다루고 있는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아트북스, 2003)이나 숭고에 대한 통시적인 안내를 시도하고 있는  안성찬의 <숭고의 미학>(유로서적, 2004)이 더 유용하겠다.

더불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책은 지젝 등의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b, 2005)로서 성적 차이에 대한 라캉주의적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성적 차이가 칸트의 숭고론에 대한 재독해, 즉 성별화된 숭고론의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것(남성이 역학적 숭고에 대응한다면, 여성은 수학적 숭고와 매치될 수 있다). 특히 조운 콥젝과 지젝의 논문은 필독의 가치가 있다...

 

 

 

 

P.S. 오늘자(8월 8일) '한겨레' 문화란(17면)에 <신화학1>에 대한 리뷰가 실렸다. 지난 금요일에  대한 타블로이드판 북리뷰(책/지성 섹션)란에서는 신간으로 간단히 처리된 책이 갑자기 크게 다루어진 이유는 모르겠다(웬 뒷북?). 담당기자가 늑장을 부린 것인지도. 그런데, 늑장을 부린 원고 치고 좀 부실하다. 보도자료 이상의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운데다가 사실관계를 왜곡한 내용도 포함돼 있어서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레비-스트로스의 저술로는 <슬픈 열대>, <보다 듣다 읽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등이 있다."고 했는데, <야생의 사고>(한길사, 1996)이 빠진 건 유감이다. 앞에서 나열한 책들이 '이론적인 저작'이 아니어서 "그의 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 '정수'를 전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다."라는 진단은 <야생의 사고>를 고려했더라면 다소 완화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기자는 "반면 레비-스트로스의 본격 연구서인 <친족의 기본구조>를 비롯해 <오늘날의 토테미즘> 등은 아직 번역되지 못했고, <구조인류학>은 1950년대에 잠시 출판됐다가 절판된 상태다."라고 했는데, <토테미즘>은 주저라고 하기엔 소략한 책이며(이미 번역돼 있는 <신화의 의미>나 <인종과 역사> 같은 부류이다), <구조인류학>은 김진욱의 번역으로 1987년에 종로서적에 출간된바 있는 책이다(즉,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할 수 있던 책이다). 웬만한 대학도서관에는 다 비치돼 있는 책에 대한 서지정보를 모르고 있다는 건 기자로서 직무유기다.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인 '주저'라 할 <구조인류학>은 2권 분량인데(나는 영역본을 갖고 있다), 김진욱본은 제1권만을 옮기고 있다. 해서 레비스트로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은 <구조인류학>이 완간되는 것이다. <신화학>은 매년 1권씩 나온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구조인류학> 2권도 껴서 나왔으면 싶다.

정리하면, 레비-스트로스의 주저는 <친족의 기본구조>를 제외하면, <야생의 사고>, <구조인류학>, <신화학> 등이다. 한국어 레비-스트로스는 40% 정도를 카바하고 있는 셈. 이런 상황에 대한 기자의 결론? "그러니까 90년대 이후 한국 지성계를 휩쓸고 있는 구조주의 이론가 가운데, 유독 레비-스토르스만은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등과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던 셈이다." 출간된 주저들을 견주어보건대 그렇다는 얘기인가? 그런데 라캉의 책은 무엇이 나와있는지? 좀 허술한 번역의 <욕망이론>(문예출판사) 말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무슨 '대접'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국 지성계를 휩쓸[다]' 같은 문구도 교양없는 표현이다. 게다가 '구조주의'에 대한 무슨 붐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무얼 산출해냈는가? 알튀세르는 저서도 얼마 안되지만, 푸코의 책들이 좀 출간된 걸 가지고 '휩쓸다'라고 하는 것인지? 또, 휩쓸어서 무얼 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이번 <신화학>이 "명성은 있는데 그 실체는 분명치 않았던 레비-스트로스를 제대로 이해할 조건"을 마련해주었다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나로선 '이해할 조건'이 아니라 '음미할 조건'이라고 고쳐말하고싶지만). 그리고 "<신화학1>은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학술서"라는 데에도 동의한다(이면에서 얘기하는 건 책을 기자도 안 읽었다는 뜻이겠지만). 한데, 그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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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06 17:00   좋아요 0 | URL
<신화론>이 나오다니 레비-스트로스 마니아로서 정말 기대됩니다. <야생의 사고>와 <슬픈 열대>만큼이나 감동을 줄 것을 큰,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봅니다.

로쟈 2005-08-06 17:03   좋아요 0 | URL
'마니아'이시라면 벌써 읽으셨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는 게 반가운 일이지요...

알고싶다 2005-08-06 17:08   좋아요 0 | URL
아니 로쟈님, 제 외국어실력을 너무 믿으시는군요. ^^;

로쟈 2005-08-06 17:16   좋아요 0 | URL
외국어도 그렇지만, 사실 '턱없는' 분량이지요.^^ 1년을 꼬박 읽어도 모자를...

로즈마리 2005-08-07 06:58   좋아요 0 | URL
저도 <신화학>이라는 제목에 눈이 확 떠지네요..^^
칸트의 <판단력 비판> 해제 도 눈에 들어오구요...번역과 해제 쓰신 분이 제 선배거든요..ㅋㅋ

로쟈 2005-09-10 11:29   좋아요 0 | URL
"훨씬 이해하기 쉽고, 명확한 도덕경"을 내시거나 보시거든 꼭 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