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으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독일의 20세기 최고비평가로 꼽히는 벤야민의 '주저'이자 미완성 수고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이다. 일찍부터 '소문'은 무성했던 책인데, '드디어' 출현한 것. 지난주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구내서점에 책이 들어온 걸 보고 잠시 놀랐는데, 한국어판은 4권으로 분권돼 나올 예정이라고(4권이 양장본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분권으로 나오는 반양장본은 8권이 될 것이다). 아마도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인문학 번역서로서는 가장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지 않을까 싶다. 하니, 의당 친절한 안내서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그런 도우미로 정평있는 책이 수잔 벅 모스의 <시각의 변증법>이고, 알다시피 이건 이미 작년에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그만하면 풍성한 식탁이다.

간혹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번역에 대해서 불만을 표시하는 이들이 내 주변에도 있는데, 인문서 번역의 평균적인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투정'에 불과하지 않나 싶다. 원저와 대조해서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번역하기 까다롭지만 역자가 나름의 수완을 발휘한 대목들을 적잖이 찾아볼 수 있다. 내가 100여 쪽을 읽으면서 발견한 가장 두드러진 오역은 다음의 한 대목뿐이다(나머지는 사소하다). 91쪽의 맨마지막줄, "테크놀로지가 약속하는 '새' 자연에 대한 극단적 낙관 그리고 역사의 흐름에 대한 총체적 비관 - 이것이 없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결코 선사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이것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특징짓는 중요한 경향이다."(강조된 부분이 오역이다) 

내용상으로도 아주 '중요한' 대목인데, 원문은 이렇다: "Extreme optimism concerning the promise of the 'new' nature of technology, and total pessimism concerning the course of history, which without proletarian revolution would never leave the stage of prehistory - this orientation characterizes all stages of the Arcades project."(64쪽, 강조는 나의 것) 내용은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총체적 비관주의'가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를 특징지어준다는 것인데(도시 혹은 아케이드에 대한 벤야민의 매혹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역자는 'which without' 'without which'로 잘못 봄으로써 엉뚱한 오역을 범하고 말았다. 다시 옮기면, "'새로운' 성격의 테크놀로지가 약속하는 바에 대한 극단적인 낙관주의와 역사의 전개과정에 대한 총체적인 비관주의(역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없다면 내내 선사적 단계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이것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전 단계를 특징짓는 방향성이다." 이건 물론 사소한 실수이지만, 결과는 좀 문제가 되는 오역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이런 오역이 거의 드물다는 것이고, 우리의 번역 현실에서 이 정도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현실' 말인가? 가령, 작년에 재판 5쇄까지 찍고 있는 리처드 커니의 <현대유럽철학의 흐름>(한울) 같은 책을 보자(나는 이 조잡한 번역서가 아직까지 유통되는 까닭을 모르겠다). 벤야민에 관한 장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가? "보들레르는 벤야민에게 도시를 방황하는 일이 공간적 변화보다는 순간적 진보의 문제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177쪽; 내가 갖고 있는 책은 1995년 초판 5쇄이지만, 그 사이에 번역이 수정됐을 리는 만무하다) 보들레르가 벤야민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웅'인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벤야민이 보들레르에게 배운 것이 '공간적 변화'가 아닌 '순간적 진보'의 문제인가?

원문은 이렇다: "Baudelaire taught Benjamin that stray through a city was to discover how meaning is less a matter of temporal progress(chronos) than of spatial placement(topos)."(1994년, 2판, 152쪽) 그러니까 정확히 정반대, 즉 파리의 산책자 보들레르가 가르쳐준 것은 '시간적 진보(크로노스)'가 아니라 '공간적 배치(토포스)'가 갖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점은 벤야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시간의 공간화'이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벤야민 자신이 '관상학'을 얘기하고 '정지의 변증법'까지 말하겠는가?). 여하튼, 인용문과 같은 오역문들로 아주 범벅이 돼 있는 책이 대학가에서 내내 교양 철학서로 팔려나가고 있는 현실은 개탄스럽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이런 책을 철학강의의 참고문헌으로 올려놓는 강사/교수들도 없지 않은데,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는 파렴치한들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애꿎은 학생들의 머리는 왜 혹사시킨단 말인가?..

  

 

 

 

성질을 부려봐야 건강에 좋지도 않으므로 다른 책 얘기로 넘어가자. 이언 해킹의 과학철학서 <표상하기와 개입하기>(한울)가 출간됐다(또 한울출판사로군. 요컨대 이 출판사가 엉터리책만 내는 건 아니다). 부제는 '자연과학철학의 입문적 주제들'이고, 말 그대로 과학철학 입문서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자의 의견을 참고해보건대) '최고의' 입문서이다. 구내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됐는데, 나에게 '이언 해킹'이란 이름은 <왜 언어가 철학에서 중요한가>(서광사, 1989)의 저자로 각인돼 있다. 즉, '언어철학자'로. 그런데, 웬걸, 이 양반이 어느새(!) '과학철학'의 대가가 돼 있지 않은가?

게다가 영어권 학자로는 아주 드문 일일 텐데,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의 '과학적 개념의 철학과 역사'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  짐작에 그 자리는 푸코의 스승이기도 했던 캉키옘(캉킬렘) 같은 이가 맡았던 자리 아닌가? 어쨌든 저자의 '포지션' 하나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책일 텐데, 이 신간은 해킹의 대표작이면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와 비견될 만한 저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는 우선은 '두 번' 놀라면서 책을 손에 들 일이다. 읽는 건 나중에 '천천히' 읽더라도(역자의 서문 정도 읽어놓고)... 참고로, 역자는 신뢰할 만한 전공자이다. 훌륭한 저자와 역자가 패키지로 묶인 이런 류의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참고로, 토마스 쿤 덕분에 '대중화'된  과학철학에 대해서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최근 목요일판 한겨레 책/지성 섹션에 연재되고 있는 '과학속 사상, 사상속 과학'을 죽 훑어보시는 게 좋겠다. 그럼 대략의 개념/구도가 잡힐 것이다. 거기서 좀더 나아가고자 하는 독자라면, 쿤이나 포퍼, 라카토스('라카토슈' '러커토시'), 파이어아벤트 등을 읽으면 되는데, 자세한 서지는 '과학철학'을 검색하거나 <표상하기와 개입하기>의 역자 서문을 참고하는 게 좋겠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둘러싼 논쟁을 다룬 <현대과학철학논쟁>(아르케, 2002)이 좀 어렵지만 기본서이고, 국내 필자들의 쓴 것으론 <현대 과학철학의 문제들>(아르케, 1999)이 있다. 물론, 이렇게 두꺼운 책들만 읽어야 하는가란 푸념이 나올 수 있겠다. 요령이 없지는 않다.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분량대비' 최고의 입문서(내가 읽은 아이콘북스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읽을 만했던 책).

사실인즉, 그 유명한 <과학혁명의 구조>도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요즘은 고등학교 논술주제로도 자주 등장하지만). 내가 열아홉살, 대학 1학년때 읽기에 가장 어려웠던 책 두 권이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과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였다. 해서, 두 책에 대한 나의 이해는 대부분 2차 문헌들에 근거한다. 요즘은 두 책의 요지에 대해서 30분 정도씩은 강의라도 할 수 있지만, 정작 책을 펴놓고 한 구절씩 막힘없이 읽어나가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두 책을 덮은 지 10년도 더 됐기 때문에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을 테지만). 해서, 리라이팅 시리즈(그린비)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살림)에서 다루어짐직하다(<과학혁명의 구조>는 목록에 들어가 있는바, 책이 나오면 한번 다시 읽어봐야겠다).   

 

 

 

 

세번째는 역사분야의 책으로 먼저, 프랑스의 혁명가 로베스 피에르의 평전,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교양인). 저자는 장 마생이고, 책은 로베스피에르 평전이 고전이라고. 물론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로베스피에르 평전"이다. 752쪽의 분량도 어느 정도 신뢰감을 준다. 소개에 따르면, 책은 "프랑스 혁명의 중심 인물이자 프랑스 혁명 자체와 동일시되는 인물,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바스티유 함락에서 국왕 처형, 혁명의 몰락에 이르는 프랑스 혁명의 숨가쁜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요컨대, 로베스피에르란 문제적 인물을 통해서 프랑스혁명사를 읽고자 하는 것(지난주 한겨례의 서평은 밑도 끝도 없이 시작부터 '최교수' 운운하고 있었는데, 책의 머리말은 서울대 서양사학과의 최갑수 교수가 썼다). 

비단 역사를 읽을 때, 반드시 '문제적 인물'의 시선과 행적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어제가 광복절이었지만, 해방 6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여러 종의 책 가운데 <8.15의 기억>(한길사)을 꼽아두고 싶다. "책은 KBS 광복 60주년 프로젝트팀이 '8.15의 기억 -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를 제작하면서 채록한 구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마침 나는 그 프로그램을 TV에서 봤다. 인상적이었다(특히 일본군 포로들과 함께 시베리아에까지 끌려가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분들도 있었다). 형식상으론 일종의 '구술사'인데, 이러한 살아있는 증언들은 (진리뿐만 아니라) 역사도 '구체적'이라는 걸 새삼 말해준다.

 

 

 

 

네번째 책은 오사와 마사치의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그린비). 저자에 대해서 나는 아는바 없지만, '언어'나 '화폐' '커뮤니케이션' 등을 키워드로 삼고 있는 걸로 봐서 가라타니 고진의 자장권 안에 있는 학자인 듯싶고, 그런 경우 대략 읽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제목의 '선정성'에 기대를 건 독자라면 실망할 테지만. 역자는 고진의 <윤리11>, <일본정신의 기원> 등을 번역한 송태욱씨이다. 책은 출판사의 안목을 따른 것인지 역자의 안목을 따른 것인지 모르겠지만, 믿을 만한 역자라는 게 일단은 안심. 박해일, 강혜정 주연의 영화 <연애의 목적>이 지난주에 비디오로 출시됐던데, 조만간 '연애의 목적'을 주시하면서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해 숙고해봐야겠다...

 

 

 

 

 

마지막 책은 아옌데와 함께. 칠레 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신작 <세피아빛 초상>(민음사)이 번역돼 나왔다. "<영혼의 집>, <운명의 딸>을 잇는 3부작의 마지막 편으로, 여섯 세대에 걸친 여성들의 역사를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칠레의 대표적인 작가로 군림하고 있지만, 아옌데의 작품을 나는 아직 읽은바 없고, 다만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영화 <영혼의 집>(1993)을 10년도 더 전에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신작을 꼽은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책의 역자가 친구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그(녀)가 아옌데의 소설을 한 권 번역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간혹 만날 때마다 일의 진행상황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다. 알고 보니 이 책이었던 것이다(생각보다는 두껍군!). 개학을 하게 되면, 점심 한끼 사주고 책을 건네받아야겠다(이렇게 홍보까지 하고 있으니 점심도 얻어먹을까?). 그나저나 책이 좀 팔려야 나중에 한 턱 내라고 할 텐데...

05. 0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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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08-16 18:06   좋아요 0 | URL
책 소개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대단하세요.

로쟈 2005-08-16 18:33   좋아요 0 | URL
대단한 건 제가 아니라 책들이죠...

galapagos55 2005-08-17 07:28   좋아요 0 | URL
헉. "세피아빛 초상"은 개인적으로 몇년동안 언제 번역판이 나오나 싶어 끊임없이 민음사를 들락거리게 했던 책인데요; 역자가 친구분인데다가 진행상황에 대해 중간보고까지 받으셨었다니, 부럽습니다!^^ 얼른 읽으러 가야겠네요.

로쟈 2005-08-17 10:49   좋아요 0 | URL
아옌데 '마니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