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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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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밀크맨은 1970년대 아일랜드 분쟁의 핵심 공간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 모를 도시에서 전쟁 같은 삶을 살아남아야 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공동묘지가 ‘일상적 장소’로 불리는 이곳에서 분쟁은 “우리”든 “저들”이든 진영에 상관없이 삶에 내재 되어 있다. 화자의 두 오빠는 “국가 반대자들”이었고 언니 하나는 “저쪽 편” 사람과 결혼해서 동네를 떠난 탓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폭탄 테러, 차량 납치는 일상의 일부이고, 무장조직은 동네 사람들의 뜰에 무기를 무단으로 파묻어 보관하며, 구역 입구에는 화염병이 있고, 하룻밤 사이에 군인들이 동네 개들의 씨를 말려버린 이 도시는 위험한 곳이 분명하다. 가족들은 불신을 키우고 이웃들은 루머와 공포에 사로잡혀있다. 불신과 증오, 위험에 대한 공포는 억압과 복종, 차별과 침묵을 낳는다.
화자는 “칼날 위에 선 시대, 원시적인 시대,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는 시대”로 당시를 회상한다. 답답함, 긴장과 불안을 전달하는 형용 표현들, 19세기 영국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수다스럽고 장황한 말씨와 북아일랜드 노동계급의 구어가 불협화음처럼 뒤섞인 화자 “가운데언니”의 언어는 공포 자체 대신 공포의 경험 서사를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익살스러운 모습과 행동으로 안도감과 희망을 언뜻 내비치는 주변 인물들의 등장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들을 통해 충성과 소속감은 전쟁의 바탕이자 자양분이 될 수밖에 없는 부조리한 행동임을 깨닫게 되는 우리는 종족 분쟁의 덧없음을 생각하게 된다. 운동보다는 요리가 더 좋은 “셰프”, 볼룸댄스에 인생을 걸고 “우리”를 떠난 “국제적인 커플”, 뜰에서 반대자들이 으레 마구 묻곤 했던 무기를 파내는 “진짜 밀크맨”이 보여주는 “상도를 벗어난” 삶에서 “가운데언니”는 안도감과 평화를 찾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히 아일랜드 분쟁을 주제로 하는 역사소설이 아니다. 특정 공간과 시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작가가 어느 영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이 작품은 그처럼 극도의 억압적 상황에 있으면서 폭력을 표준으로 간주하는 폐쇄적 전체주의 사회의 보편적 경험에 대한 소설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