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바쁜 일들로 제쳐두었던 일들을 주말에 밀린 빨래 해치우듯 해본다. 그간에 신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딱히 첫손가락에 꼽을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며칠 전에 그에 값할 만한 책이 나왔다. 아마도 이 연재를 즐겨 읽어보시는 분이라면 맞히실 수 있을 것이다. 맞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1>(한길사)이 그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화학>은 전4권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분량의 책이며, 말년의 레비-스트로스가 20년에 걸쳐 쓴 것이다. 해서 과연 언제쯤 국역본이 나올 것인가 궁금해 하던 차였는데, 생각보다는 빨리 책이 나왔다. 1권 '날것과 익힌 것'에 이어서 나머지 책들, 곧 2권 '꿀에서 재로', 3권 '식사예절의 기원', 4권 '벌거벗은 인간'도 곧 나오는 건지 궁금하고 곧 나오기를 기대한다. 내가 벌써 이 책을 읽어봤을 리는 없으므로 책에 관한 정보는 레비스트로스의 회고대담이나 2차문헌들에서 얻은 것이다. 대담이란 디디에 에리봉과 나눈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강, 2003)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 입문서로 가장 추천할 만하다(나는 개인적으로 '사상'과 그 '사람'을 분리시켜서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먼저,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은 <신화학>에서 다루어지는 재료들이 대부분 아메리키 신화라는 것이다(알다시피 지역별로 신화는 무궁무진하며, 거기에 대한 전문가들이 다 따로 있다. '세계의 모든 신화'의 전문가가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세계 모든 민족'의 민족학자/인류학자가 된다는 게 가능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령, 푸코의 스승인 뒤메질은 인도 신화 전문가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들을 사고의 재료로 사용하여 개별적인 것 너머에 있는 보편적인 구조를 발견하고 기술하고자 한다는 것. 그가 '구조주의' 인류학의 대가인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론을 무리하게 적용하다 보면 신화의 개별성을 무시한 억지를 부릴 수도 있겠다. 이러한 억지에 대해선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민음사, 1996)에서 제기된 비판이 신랄하며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렇다면,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은 '극복'의 대상이며, 극복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건 오이디푸스 신화의 구조에 대한 그의 분석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신화들을 구성하는 신화소들을 분리/추출해낸 다음에 그가 하는 일은 그 신화소-카드들을 악보처럼 배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매우 아름다운 '사유의 논리'가 구성되게 된다. 그 아름다움에 견주면 현실과의 유관성은 여기서 이차적이다. 요컨대, 신화학자 레비스트로스를 지운 자리에서도 우리는 아티스트, 혹은 작곡가로서의 레비스트로스를 읽어낼 수 있는 것(그 자신이 클래식 음악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신화학> 또한 음악의 악장 형식으로 구성돼 있어서 서곡에 이어서 변주곡이 나오는 식이다. 이러한 '형식'이야말로 가장 레비스트로스적인 것이다(이러한 '형식'의 기원은 그가 야콥슨에게서 시사받은 음운론이다). 해서 나의 제안은 신화학자나 인류학자로서보다는 음악가로서의 레비스트로스에 주목하는 것이 그의 <신화학>을 읽는 보다 재미있는 방식이 아닐까라는 것(신화들에 별로 관심이 없는 내가 굳이 이 책을 반가워하는 이유이다).

 

 

 

 

책의 역자는 임봉길 교수로 30년전 프랑스 유학시절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고 하는데, 그런 인연이 좋은 번역으로 결실을 맺었으면 싶다. <구조주의 혁명>(서울대출판부, 2000)의 한 장은 임교수가 쓴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인류학'이다. 참고할 만한 글이고, 레비스트로스 사상에 대한 자세한 해제는 (초보자가 읽기엔 좀 어렵지만) 김형효 교수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인간사랑, 1989)를 참고할 수 있다. 초보자에게 가장 쉬운 책은 주경복 교수의 <레비스트로스>(건대출판부, 1996)이다. 문고본이어서 분량이나 가격 모두 부담이 없다. 최협 교수의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풀빛, 1996)는 레비스트로스 입문서라기보다는 인류학 입문서로서 유용하며, 번역서 가운데에서는 에드먼드 리치의 <레비스트로스>(시공사, 1998)가 부담없다. 리치는 레비스트로스의 영국인 '제자'이며, <성서의 구조인류학>(한길사, 1996)의 저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영향? 친족/민족 연구의 권위자인 이광규 교수가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인류학자로 레비스트로스를 꼽은 적이 있다. 물론 그 경우는 <친족의 체계>라는 레비스트로스의 박사학위논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경우이겠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레비스트로스는 모방하기 어려운데, (예상할 수 있는 바이지만) 그의 방법론이 '음악적 재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책은 역시나 한길사의 그레이트북스로 나온 <왕필의 노자주>. 저자는 임채우 교수로 "왕필의 역철학 연구"로 학위를 받았고, 이미 <주역 왕필주>(길, 2000)를 역간한바 있다. 동양철학 책을 한두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왕필(혹은 왕삐)이란 이름을 모를 수가 없는데(나는 김용옥의 책들에서 처음 소개받았다 '아마데우스 왕삐'!)), 삼국시대를 살았던 이 '천재'는 비록 23살의 나이에 요절했지만, 노자에 대한 가장 형이상학적이면서 권위있는 주석을 남겼다(비록 요즘은, 특히 재야에서 그의 주석을 비판하는 이들이 많아진 듯하지만).

이 <노자주>에 대해서는 이미 김학목의 번역으로 <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홍익출판사, 2000)가 출간돼 있는데, 해석상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겠다. 책세상에서 새로 나온 <노자> 번역/주해에서 저자인 임헌규 교수는 홍익출판사본에 대해서도 "왕필의 주석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번역해놓은 책"이라 평하고 있다. 함께 읽어볼 만한 책으론 김형효 교수의 <사유하는 도덕경>(소나무, 2004)가 있다. 오래전에 나온 <데리다와 노장의 독법>(정신문화연구원, 1994)의 업그레이드본인데, 역시나 임헌규 교수에 따르면, "<노자> 전체를 수미일관한 철학적 사유로 읽으려고 시도한 책"으로서 "다소 무리한 해석도 있지만, 근래에 연구된 가장 의미있는 연구서 중의 하나"이다. 아울러 백서본, 곽점본, 왕필본 등 주요 노자판본에 대한 비교주해는 이석명의 <백서노자>(청계, 1993)를 참조할 수 있다.

<노자>는 가장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다고 말해지면서도 분량이 부담없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해석과 주석에 도전해보는 책이다. (내가 더 좋아하는 책은 <장자>이지만) 나도 그런 축에 들어서 한때는 <노자> 영역본을 사모으기도 했었다(4-5권을 구했던 듯하다). 작년에 러시아에 있으면서 러시아어본 <도덕경>을 기꺼이 구해들었던 것도 그런 때문이다(이 책에도 상당한 분량이 주석이 포함돼 있다). 아직 여유가 좀 있지만, 아주 늙기 전에 모아놓은 텍스트들을 읽으며 <도덕경>에 대한 나의 생각도 적어두고 싶다. 이건 학구적 바람이기보다는 호사가적인 바람이다(*한길사의 신간 <왕필의 노자주는 생각해보니까 이미 나왔던 책이다. <왕필의 노자>(예문서원, 1997)가 그것이다. 나는 그 책을 갖고 있는데, 알라딘 검색만을 의지하다가 깜박 신간으로 착각했다. 수정된 사항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세번째 책은 소설로서 중남미소설 선집인 <붐 그리고 포스트붐>(예문). 이 분야의 전문가인 송병선 교수의 번역이다. 우리가 알 만한 중남미 작가들이 대거 망라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인데, 피서지에서 한번 읽어봄 직하다. 상식적인 문학용어로 알아두어야 하지만, "'붐(Boom)'이란 20세기 후반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급부상한 중남미 현대소설을 일컫는다." 붐세대 작가들이란 말도 쓰는 듯한데, 그 다음 세대가 포스트붐이 되겠다. 교양함양 차원에서도 필독서. 이 책과 함께 꼽고 싶은 것은 열린책들에서 새로 나온 줄리안 반즈의 소설들이다. 반즈는 영국의 중견작가인데, 이전에 동연출판사에서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 말 좀 들어봐>와 <10과 1/2장으로 쓴 세계역사>가 나온 적이 있고, 나는 이 책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태양을 바라보며>를 포함해서 새로운 푸대에 담겨 출간된 것. 나는 그의 책들을 드문드문 읽었지만, 반즈는 유머가 있으며 신뢰할 만한 작가라고 생각한다(이른바 '돈되는 작가'인 것이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문학동네, 1998)까지 포함해서 한번쯤 반즈의 세계에 푹 빠져보시길...

 

 

 

 

네번째 책은 다다이즘 예술가 만 레이의 '자화상'  <나는 Dada다>(미메시스). 나는 이름으로만 접해본 작가인데, 소개에 따르면 " 세잔과 피카소의 그림, 브란쿠시의 조각 등을 접하며 유럽 현대 미술에 매혹되었고, 1913년 아머리 근대 미술전에서 유럽의 첨단 회화 유파들의 그림을 보고 결정적으로 유럽 예술의 선진성에 경도되기 시작" "초기에는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은 회화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가 마르셀 뒤샹과 프랑시스 피카비아와의 만남을 통해 점차 다다이즘에 접근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문학적 다다이즘에 관심이 있어서(가령, Deridada는 어떤가?)  <다다와 초현실주의>(한길아트, 2001) 등을 사보기도 했다.

사전적 소개에 따르면, 다다이즘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성과 합리주의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믿음이 무너지자, 젊은 예술가들은 기성세대들의 편견과 인습에 도전하여 반예술적 부정과 파괴를 표현수단으로 하여 태동시킨 예술유파"이다. 철학자들 가운데는 무정부주의적 인식론을 주장한 과학철학자 파이어아벤트가 다다이스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선 하모니즘과 함께 다다이즘은 예술의 기본정신이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충분했던 것 같지 않다. 만 레이의 자서전을 한번쯤 읽어보고 싶은 건 그런 정신의 시대사적 맥락을 구경해보기 위해서이다.

 

 

 

 

이제 마지막 한 권을 꼽아보기로 하자. 분야별 안배 차원에서 헬렌 피셔의 <왜 우리는 사랑에 빠지는가>(생각의나무)로 낙착. 우선 믿을 만한 학자들이 추천하고 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번뜩임과 구체적 경험을 원한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중심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에드워드 윌슨) 그리고, "헬렌 피셔는 독자에게 인간의 열정, 그리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극도의 환희와 절망들을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인류라는 존재에 대해 지금껏 씌어진 가장 매력적이고 과학적으로 탄탄한 저서 중 하나다."(데이비드 버스)

사실 헬렌 피셔와는 구면인데, 나는 그녀의 <사랑의 해부학>(하서출판사, 1994)도 읽었고, <성의 계약>(정신세계사, 1999)도 읽었다. 데이빗 부스(=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백년도서, 1995), 사라 홀디의 <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서운관, 1994) 등도 그맘때 같이 읽은 책들이다(*서해문집에서 다시 나왔다). 모두 영장류 학자들이거나 인류학자들이다(버스는 성심리학자이면서 진화심리학자). 이번에 개정판이 나온 <제1의 성>(생각의나무)만 읽지 않았을 따름인데, 그건 자세한 리뷰들을 읽는 걸로 대체했기 때문이었다. 짐작에 신간은 <사랑의 해부학>의 업그레이드 버전인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사랑과 같은 우리의 강렬한 감정과 뇌의 생리학적 변화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곧 소개에 따르면 "주로 책은 바로 알 수 없는 사랑의 매커니즘을 실험과 조사를 통해 분석해낸다. 책은 일단 흥분, 변덕, 나른함, 집착 등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은 시공간과 성별을 초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 전 인류에 공통된 뇌의 작용에 따른 현상이기 때문이라는 것.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나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고, 마찬가지로 사랑이 변한다면 그것은 나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란다." A10신경이나 암페타민, 도파민 등의 호르몬 얘기들도 아마 자주 나올 법하다. 

윌슨의 주장대로, 이러한 대뇌생리학적 환원이 "인간 본성의 중심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는데 요긴하며 필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윌슨의 주장대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번뜩임과 구체적 경험을 원한다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우리의 열정이 암페타민과 연관된다는 걸 피셔의 책은 말해주지만, 정작 그 암페타민이 분비되도록 해주는 건 (책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의 대상들이다. 책이 우리를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건 그럴 만하다고 쳐도 책이 우리를 (사랑만큼) 흥분에 빠뜨리지 못한다는 건 씁쓸한 일이다(이젠 옛날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 걸 생각해보라). 해서 우리의 책들은 보다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 암페타민 발산제라도 먹이든지, 주사하든지 하여간에...(우리의 떠나간 연인들이 되돌아올 리 없으므로...)

05. 08. 06. 

 

 

 

 

P.S. 본문에서 아깝게 거명되지 않은 책은  장 뤽 낭시 등이 쓴 <숭고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이다. 장 뤽 낭시나 라쿠-라바르트는 '데리다 사단'에 분류되는 철학자들로서 '알튀세르 사단'의 랑시에르와 함께 앞으로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책은 낭시가 편집한 것인데, "1984년에서 1986년 사이에 잡지 「포에지」에 발표된 일련의 '숭고 분석'에, 또 다른 네 편의 논문을 첨가한 총 여덟 개의 글을 싣고 있다. 숭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 그리고 숭고의 개념과 관련된 질문들을 다시 돌아본다." 흥미롭지만, 책의 가독성의 대해서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에 장담하지 못하겠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칸트의 <판단력 비판>(책세상) 발췌역이 나왔다는 것(아무래도 박영사판 <판단력 비판>보다는 읽기 편하겠다). 특히, "미의 분석론"과 "숭고의 분석론"이 번역된바, 미학(특히 요즘 주목받는 숭고론)에 관심을 둔 이라면 반드시 읽어두어야겠다(같은 시리즈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도 <판단력 비판>의 단초를 보여주는 것으로 참고할 만하다). 칸트의 숭고론에 대해서는 리오타르의 강의 <칸트의 숭고미에 대하여>(현대미학사, 2000)도 참고할 만하지만 철학에 대한 소양을 좀 필요로 한다. 교양수준에서라면, '숭고'와 '시뮬라크르'를 다루고 있는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아트북스, 2003)이나 숭고에 대한 통시적인 안내를 시도하고 있는  안성찬의 <숭고의 미학>(유로서적, 2004)이 더 유용하겠다.

더불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책은 지젝 등의 <성관계는 없다>(도서출판b, 2005)로서 성적 차이에 대한 라캉주의적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성적 차이가 칸트의 숭고론에 대한 재독해, 즉 성별화된 숭고론의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것(남성이 역학적 숭고에 대응한다면, 여성은 수학적 숭고와 매치될 수 있다). 특히 조운 콥젝과 지젝의 논문은 필독의 가치가 있다...

 

 

 

 

P.S. 오늘자(8월 8일) '한겨레' 문화란(17면)에 <신화학1>에 대한 리뷰가 실렸다. 지난 금요일에  대한 타블로이드판 북리뷰(책/지성 섹션)란에서는 신간으로 간단히 처리된 책이 갑자기 크게 다루어진 이유는 모르겠다(웬 뒷북?). 담당기자가 늑장을 부린 것인지도. 그런데, 늑장을 부린 원고 치고 좀 부실하다. 보도자료 이상의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운데다가 사실관계를 왜곡한 내용도 포함돼 있어서이다. "국내에 번역 소개된 레비-스트로스의 저술로는 <슬픈 열대>, <보다 듣다 읽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 등이 있다."고 했는데, <야생의 사고>(한길사, 1996)이 빠진 건 유감이다. 앞에서 나열한 책들이 '이론적인 저작'이 아니어서 "그의 지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긴 하지만, 그 '정수'를 전하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다."라는 진단은 <야생의 사고>를 고려했더라면 다소 완화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기자는 "반면 레비-스트로스의 본격 연구서인 <친족의 기본구조>를 비롯해 <오늘날의 토테미즘> 등은 아직 번역되지 못했고, <구조인류학>은 1950년대에 잠시 출판됐다가 절판된 상태다."라고 했는데, <토테미즘>은 주저라고 하기엔 소략한 책이며(이미 번역돼 있는 <신화의 의미>나 <인종과 역사> 같은 부류이다), <구조인류학>은 김진욱의 번역으로 1987년에 종로서적에 출간된바 있는 책이다(즉,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구할 수 있던 책이다). 웬만한 대학도서관에는 다 비치돼 있는 책에 대한 서지정보를 모르고 있다는 건 기자로서 직무유기다.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인 '주저'라 할 <구조인류학>은 2권 분량인데(나는 영역본을 갖고 있다), 김진욱본은 제1권만을 옮기고 있다. 해서 레비스트로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은 <구조인류학>이 완간되는 것이다. <신화학>은 매년 1권씩 나온다고 하는데, 그 사이에 <구조인류학> 2권도 껴서 나왔으면 싶다.

정리하면, 레비-스트로스의 주저는 <친족의 기본구조>를 제외하면, <야생의 사고>, <구조인류학>, <신화학> 등이다. 한국어 레비-스트로스는 40% 정도를 카바하고 있는 셈. 이런 상황에 대한 기자의 결론? "그러니까 90년대 이후 한국 지성계를 휩쓸고 있는 구조주의 이론가 가운데, 유독 레비-스토르스만은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등과 전혀 다른 '대접'을 받았던 셈이다." 출간된 주저들을 견주어보건대 그렇다는 얘기인가? 그런데 라캉의 책은 무엇이 나와있는지? 좀 허술한 번역의 <욕망이론>(문예출판사) 말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무슨 '대접'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국 지성계를 휩쓸[다]' 같은 문구도 교양없는 표현이다. 게다가 '구조주의'에 대한 무슨 붐이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무얼 산출해냈는가? 알튀세르는 저서도 얼마 안되지만, 푸코의 책들이 좀 출간된 걸 가지고 '휩쓸다'라고 하는 것인지? 또, 휩쓸어서 무얼 하는 것인지?

어쨌거나 이번 <신화학>이 "명성은 있는데 그 실체는 분명치 않았던 레비-스트로스를 제대로 이해할 조건"을 마련해주었다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나로선 '이해할 조건'이 아니라 '음미할 조건'이라고 고쳐말하고싶지만). 그리고 "<신화학1>은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학술서"라는 데에도 동의한다(이면에서 얘기하는 건 책을 기자도 안 읽었다는 뜻이겠지만). 한데, 그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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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싶다 2005-08-06 17:00   좋아요 0 | URL
<신화론>이 나오다니 레비-스트로스 마니아로서 정말 기대됩니다. <야생의 사고>와 <슬픈 열대>만큼이나 감동을 줄 것을 큰, 희망을 가지고 기대해봅니다.

로쟈 2005-08-06 17:03   좋아요 0 | URL
'마니아'이시라면 벌써 읽으셨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요?!^^ 아무리 그래도 우리말로 읽을 수 있다는 게 반가운 일이지요...

알고싶다 2005-08-06 17:08   좋아요 0 | URL
아니 로쟈님, 제 외국어실력을 너무 믿으시는군요. ^^;

로쟈 2005-08-06 17:16   좋아요 0 | URL
외국어도 그렇지만, 사실 '턱없는' 분량이지요.^^ 1년을 꼬박 읽어도 모자를...

로즈마리 2005-08-07 06:58   좋아요 0 | URL
저도 <신화학>이라는 제목에 눈이 확 떠지네요..^^
칸트의 <판단력 비판> 해제 도 눈에 들어오구요...번역과 해제 쓰신 분이 제 선배거든요..ㅋㅋ

로쟈 2005-09-10 11:29   좋아요 0 | URL
"훨씬 이해하기 쉽고, 명확한 도덕경"을 내시거나 보시거든 꼭 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