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뱀
베르나르 뒤 부슈롱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유일신을 모시는 종교적인 개념으로 축복받은 이들은 천국에 가고 버림받은 이들은 지옥에 간다고 한다.   하지만 축복이라 생각하고 오른 원정길이 결국은 버림받은 위치로 격하되는 지경까지 간다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혼란스럽게 현실에 대처해야 할지도 모른다.

특정종교에서 불경시 하고 있는 뱀이라는 동물의 이름을 붙인 배이름(짧은 뱀)부터 수상하기까지 하며 지독한 원정길의 종착점에 도달해 하는 행동 또한 결국에는 불경스럽기 그지없다면 뭐라고 생각하야 하나.

3가지 시점으로 나누어진 이 책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과거의 모든 참상과 살육, 탐욕이 고스란히 나타내어 지고 있다. 3가지 시점에서 하나의 시점으로 표현되는 추기경의 시점에서 지금의 스킨디니바아 반도로 종교적인 원정을 감행하는 원정대에게 보내는 서신속에서 탐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대가 돌아오자 마자 그런 품목(여우와 곰의 가죽, 바다코끼리와 일각돌고래의 뿔, 고래 내장에서 추출한 용연향)들을 본인의 창고안에 즉시 채워놓도록 한다. 그대의 심신과 박애에 대해 은사를 배풀고 싶은 본인의 마음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겠으나, 미리 선불로 그대에게 내어준 일만 이천마르 은화를 상환하는 의미로 말이다."

종교의 포교보다는 결국 약탈로 인해 자신의 창고에 투자한 것에 버금가는 결과물을 바라는 속세적인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는 추기경의 시점이 이렇다면 막상 원정길을 떠나는 주교의 시점 역시 처절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 후 반인륜적인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 주고 있다.

혹독한 원정길에 식량이 떨어진 선원들이 결국에는 동상으로 떨어져 나간 자기 손과 발을 뜯어 먹는 장면에서 주교의 표현은 차라리 솔직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제서야 저는 먹고사는 문제의 결핍이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어느 정도의 나락으로까지 추락시킬 수 있는지 난생 처음 똑똑히 목격한 셈입니다."

이런 혹독한 원정길 후 도착한 곳에서 추기경의 창고를 그득 채워줄 이지역의 특산물(?)들은커녕 온갖 반인류적인 패륜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집단들의 교화에 힘쓰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이미 자신들의 종교를 일차적으로 전파하여 그 흔적(주교,사제,종교건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제라고 인물은 원주민 소녀와 세속적인 사랑을 탐닉하고 미리 정착한 주교라는 인물은 요한계시록의 암시라고 생각되는 원주민일가를 무참하게 도륙 했고, 어설프게 포교가 된 종교는 그 지방의 샤머니즘과 짬뽕이 되서 이도 저도 아닌 무속신앙으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속에서 원정길에 올랐던 주교는 자신이 추구하는 종교적인 방법으로 질서을 잡으려고 동분서주한다.

사제라 하더라도 화형에 처했고, 주교라 하더라도 참수형에 처했으며, 이단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주교의 잣대로 만들어진 처벌이 뒤따르게 된다.

"교의와 의식에 관련된 문제에서 교회의 권위를 일반 대중이 좌지우지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노라고, 이 몸이야말로 바로 그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라고 말입니다."

위와 같은 권위적인 생각과 지역 토착민의 나름대로의 문화에 대해서는

"장식과 허영과 사치란 오로지 부자의 것이어야만 하느님의 뜻에 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다니 참으로 딱한 인간들입니다. 부자는 아무리 겉치레를 화려하고 풍성하게 갖추고도 기본적인 문제에서 모자람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라는 식으로 자신만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외통수적인 모습으로 그가 말하는 질서를 잡기위해 발악하는 모습은 황당하다 못해 거북한 느낌마져 들게 만들어 주었다.

3번째 시점인 전지적인 작가의 시점에서 이 책에서 벌어진 사건의 모든 진실에 비교적 가깝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추기경과 원정길에 오른 주교의 시점은 세속을 가장한 종교적인 신성함으로 과대포장되어 있는 반명 작가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모든 서술은 결국 질서를 잡기 위해 화형과 고문 처벌을 일삼던 주교 역시 그가 이곳에 상륙해 처음으로 처벌한 사제의 죄목과 똑같은 죄를 저지렀음을 암시해 준다. 한계상황에 도달한 후 결국 귀환의 길을 택하는 주교일행의 약탈과 비겁한 행위 또한 책의 마지막에 직설적인 진실에 도달하게끔 만들어주고 있다.

전혀 두껍지 않은 책속에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패륜적인 죄악과 신성함으로 위장한 탐욕의 흔적이 가득하다. 역겹고 원초적인 표현속에 교묘하게 장치되어 있는 조롱과 비아냥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을 위해 이런 원초적인 표현방식이 에피타이저의 역활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아울러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기에 현재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문제 또한 직. 간접적으로 묘사한 부분을
마주치는 재미도 쏠쏠하지 않았나 싶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 2006-09-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새 읽으셨어요?? 대단대단.

Mephistopheles 2006-09-29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별로 안두껍답니다 반딧불님..^^

로드무비 2006-09-29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스케일이 큰 책이군요.
세 번째 시점인 전지적인 작가 시점이라니 좀 어려븐 책 같다는 생각이...
아무튼 추천이여라우.
섭섭하게시리(?) 오자도 안 보이는군요.^^

2006-09-29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09-3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책은 얇아도 배경이나 설정자체는 좀 크긴 커요...^^
그런데 어렵진 않은데요....^^
속삭이신 분 //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받아쓰기 95점 정도 아닐까요..ㅋㅋ

산사춘 2006-10-24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지세여. 덕분에 접수드갑니다.

Mephistopheles 2006-10-2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산사춘님 제가 멋진 겁니까 책이 멋진 겁니까...^^
그리고 접수는 무슨 접수씩이나...황공할 따름이네요..^^

파란여우 2006-10-30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 리뷰도 조목조목 선을 긋고 각도를 계산하고 분석을 하는군요
음, 나도 집을 한 채 짓고나면 요리 된단말이죠? 그럼 아자!
내일은 개미집이라도 지을테야욤!^^

Mephistopheles 2006-10-3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그게...직업적인 면 보다는....성격적인 면 때문...일텐데....
개미집 안지으셔도 되요 파란여우님..^^
 
카페의 역사
크리스토프 르페뷔르 지음, 강주헌 옮김 / 효형출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1990년대에 길거리마다 널려 있던 하얀색 간판과 짙은 고동색 간판의 커피전문점들이
생각난다. 이름하여 하얀색 간판은 사카 라는 이름이였고 짙은 고동색 간판은 자뎅이라
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커피 한잔을 시켜서 오랜시간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공간. 혹자는 카페...혹자는 일본에서 건너온 커피전문전에서 그 당시 지인
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 혹은 진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던 시간이 생각난다.

커피라는 이 시커먼 음료가 유럽이라는 지역 그러니까 콕 찝어내라면 프랑스라는 나라에
상륙을 하면서 발생한 문화공간에 대해서 아직까지 존재하는 곳은 고풍스런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천연색 사진으로 그리고 그때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발췌했을 흑백톤의
사진이 책 여기저기에서 자태를 뿜어내고 있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책이다. 1차적으로 이러한 사진들이 눈의 사치를 한껏 누리게 해주었다면 책속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활자라는 이미지로써 또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단지 프랑스에서 커피
혹은 술을 파는 공간인 카페의 역사와 유례만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화의 모든 것을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나
할까. 문인 혹은 화가, 음악가...심오한 정신세계를 뇌속에 간직하고 있는 철학자들...아울러
그당시 격동의 사회의 소용돌이 중추에 있었을 사상사들의 모습까지....

더불어 그나라의 일개 평민과 소시민들의 여가모습까지 259페이지에 빼곡하게 묘사를 한
이책을 통해 표면적인 멋스러움과 약간은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파리지엔느들의 모습들이
(그러니까 야외테이블에서 한껏 멋을 부리면서 커피를 홀짝거리는) 다소는 가깝게 느껴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뱀꼬리 : 책장을 살펴보니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제법 눈에 띄었다.
그중에 한권이 바로 이책이였다는......이 책을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를 안돌려주고
다분히 독선적인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부정적인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
다소 희석되었을지는 몰라도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리스 2006-09-24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이군요. ㅜ.ㅡ

똘이맘, 또또맘 2006-09-25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뎅에서 알바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없어졌답니다. 법원 앞에 있어서 다양한 손님들이 오갔는데, 언제나 같은자리에서 책 펴놓고 두세잔씩 커피 리필하던 중년의 정체모를 부인이 생각나네요.

건우와 연우 2006-09-2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앗긴 문화재는 속이 터지지만, 그들의 문화는 부러워요....^^
수다에서 토론까지......^^

Mephistopheles 2006-09-2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 아..예...옛날에 사놓고 책꽂이에서 고이고이 잠들어 있던 책인지라...^^
똘이맘님 // 그때 길거리에 자뎅과 사카는 많이도 있었어요.. 특히 대학교 앞에는
어김없이 존재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건우와연우님 // 그들의 문화가 부러운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자신들의 입으로 최고 최고..를 운운하는 모습을 별로 보기좋진 않더라구요..^^ 더군다나 맛의 기준은 나라마다 인종마다 다 틀린데..자신들의 식재료로 세계 3대 진미라고 추켜세우는 모습은 꼴사납게 보이기까지 하더라구요..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줏어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류학자 혹은 그와 비슷한 학문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했던 말이였던 것 같다. 지금의 인류는 시각적인 정보에 많이 의지하면서 손을 많이 쓰지만 발은 의외로 많이 안쓰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진화해 나가면서 눈과 머리는 커지고 손가락은 길어지고 다리는 가늘어진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외계인의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라는 내용이였다.

하긴 요즘 사회를 보면 시각적으로 조성된 정보가 대부분이며 연령이 젊을수록 이러한 정보에 더욱 더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인류가 문명이라는 것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시각적인 것에 많이 의존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요즘 시대는 그 정도는 그 옛날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의존지향적이라 판단된다.

이런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력기구인 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가정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작한다. 분명 답답하고 기가막힐 상황의 전개가 예상되기에 앞서 요즘 책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모습이 발견된다.

빽빽하게 페이지마다 여백이라고는 한줌도 허용하지 않는 그 갑갑함과 숨막힘.....시력을 잃는 이야기의 전개를 맞이하기에 앞서 읽는 사람의 눈의 피로가 먼저 방문하게 되는 일종의 에피타이저라고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답답한 시력으로 활자를 쫒아가면서 읽어 내려간 내용 역시 참담 그 자체다.

시작은 단 한사람의 백색의 공포라고 불리우는 정체불명의 시력상실에 걸리면서 이 남자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핵분열마냥 혹은 전염병마냥 번져간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눈 시퍼렇게 뜨고 벌어졌던 악질적인 사회문제, 독재와 파쇼의 모습은 똑같은 모양으로 복각되어 눈먼 자들의 생명과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재료는 달라도 똑같은 틀에 넣고 찍으면 모양만큼은 똑같은 공산품들처럼....

그렇다고 꼭 극악으로 치닫는 모습만을 접했다면 난 이 소설을 심드렁하게 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촘촘한 활자의 답답함 때문에 심호흡을 하면서 읽어 내려간 내용에는 극악, 최악의 인류 종말의 모습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교활하게 좋게 말하면 현명하게 새로운 현실에 새로운 질서와 방법을 제시하는 인간들의 모습도 보였으며, 좌절만이 남아있을 암담한 사태에 시각이라는 비교적 자극적인 매체에 매달리지 않으며 근본적인 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까지.. 소설이 거의 끝나갈 무렵 보는 각도에 따라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마져도 경험하게 되었다.

책 제목에서 보여 주듯이 단지 눈이 멀었을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싶었다.
눈이 멀었다는 재앙보다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질적인 인간의 모습만큼은 변질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공포보다 더 무섭고 소름 끼친다. 극악으로 치닫는 전개에 치우치지 말아달라는 듯 긍정적인 인식표까지 여기저기에 심어준 작가의 노련함이 빛나는 한권의 책이였다.

단, 야한 책도 아니면서 그 빽빽함 때문에 숨이 가빠지는 단점만큼은 꼬집어 주고 싶다.
(좋게 생각하면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지도..두권으로 만들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09-14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백 늘렸으면 얇은 페이지로 두권 가능했겠죠. 이 책 참 독특해요. ^^

Mephistopheles 2006-09-1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이라는 책도 사놨는데...좀 쉬었다가 읽어야 겠습니다..이 책역시 엄청 빽빽하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6-09-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땡스 투씩이나요..그냥저냥 평범한 리뷰인데요.^^
 
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유명하다는 김영하씨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읽는 속도는 평균적이였고, 몰입감을 가지기에는 충분했으나, 약간의 산만한 느낌만큼은 지워버릴 수 없는 정도였다. 하긴 24시간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에 나름대로의 긴박감을 유지시키면서 끌고 나가다 보면 약간은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 정독의 의미보다는 다음장은 다음장은 어떻게 되나..하는 조급함을 가지게 한다고나 할까.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24'라는 드라마의 형식을 따왔을 법한 챕터 나눔의 익숙함이 눈에 먼저 띄게 된 김영하의 신작 소설 `빛의 제국'은 시간단위로 쪼개진 각각의 상황에 기영이라는 퇴물 남파 간첩의 주변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소설의 시작점과 그 다음날 아침 7시로 끝을 맺는 24시간동안의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인물들은 남들이 하루동안 겪기에는 과분하고 묵직한 경험의 연속 속에 내팽개쳐 진다.

이 세명의 가족(기영,마리,현미)은 참으로 다사다단하다.

끊 떨어진 연처럼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남파간첩 기영은 이메일을 통해 갑작스런 귀환명령에 표현되지 않는 패닉상태에 빠지면서 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은 복잡하게 물려나간다. 냄새를 맡은 남한의 정보부 요원들과 옛날 대학시절 하룻밤을 같이 보낸 소지, 그리고 어느면으로 보나 무능하고 비사교적인 성곤과 자신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 또다른 남파간첩 2명까지.... 마치 기영의 그 귀환명령으로 인한 그 파극효과는 기영뿐만이 아닌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적잖은 파장과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의 아내 마리는 또 어떠한가. 가정을 가졌으면서 허울뿐이고 겉멋들은 20대초반의 애인의 트리플 섹스의 요구에 몸이 뜨거워 지고, 기득권층의 전형적인 부패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직장 사장의 그늘에 예속이 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역도산과의 동질성을 찾고자 하는 아버지가 주축으로 되어 있는 가정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보이지 않는 반항적인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처받는 40을 바라보는 여자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남편의 고해성서에 가족을 위해 북으로 복귀하라는 냉정한 모습까지 보이기까지 한다.

이 둘의 딸 현미는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상처의 흔적이나 고통은 안보이는 모습을 보이나, 실상은 직간접적으로 그 또래 학생들이 극단적으로 부딪치는 사건과 사고의 언저리에 서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가슴이 노출된 동영상 유출로 학교라는 틀에서 부적격자로 낙인 찍힌 친한 친구 아영과 두개의 인격과 그또래 남아들이 가지고 있는 과잉된 성적충동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하는 진국이라는 친구까지...

현대 핵가족의 표본을 보여주는 가족구성인 세명으로 이루어진 이 가정은 결코 평범하거나 평탄하지 않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가족구성원이 가지고 있던 아킬레스 건이 서서히 노출되다가 마침대 틱~! 소리는 내면서 끊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나, 이러한 회복불능의 가정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영과 마리가 젊은 시절 분쇄하고자 거품을 물었던 단체. 통제와 규제와 색출이 존재이유
전부라 해도 이견이 없는 국가 기관에 의해 관리되고 조율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잔뜩 벌려논 복잡미묘한 모든 상황이 허무하게도 일순간에 매듭을 지어버리고, 손 탁탁 털고 이젠 끝났어~!
라고 선언하고는 마지막에 하지만~!...... 을 넣어버린 허무한 결말을 접하게 되었다고 할까. 소설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회상되어지고 이야기되어지는 짜여진 각본(영화, 책,스포츠엔터테이먼트)과 별반 다를바 없는 책속의 인간군상들.... 그게 또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땅의 사람들과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느낌으로 인한 한숨 속에 책을 덮은 내 마지막 감상이라 하고 싶다.

책을 다 읽고 기영이 이 책의 시작점에서 표현되어지는 두통이라는 고통이 전염이라도 되듯이 나에게 와버렸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개운하거나 깨끗한 기분은 결코 들지 않을 책이라 생각되어 진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6-08-2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 자체가 개운한 느낌을 가지기에는 어려울듯 하군요. ^^;; 김영하씨는 검은꽃을 보면서 꽤 괜찮은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도 관심이 가네요.

야클 2006-08-2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기존 소설들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냥 작가를 모른채 책만 읽었다면 글쓴 사람이 김영하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Mephistopheles 2006-08-2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다음번 김영하씨의 책은 검은꽃을 볼려고 합니다...^^
야클님 // 저번에 라디오프로에서 나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그때 작품 이야기 할때만 하더라도 이런내용들은 아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나머지 작품들을 읽어보고 비교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팔묘촌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간만에 추리소설 한권을 읽어버렸다 그것도 가뿐하게.....
즐겨 봤던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이 언제나 사건을 해결할 때 마다 주문처럼 외우는 대사 한마디..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이 사건을 해결해 보겠어..!!'

그가 사건(주로 연쇄살인사건)에 봉착할 때 마다 기합과 주문을 함께 넣는 의미인지 이 대사를 힘차게
날리고 추리에 추리를 거듭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대체 애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들먹거리는지 그 실체가 궁긍해지기 시작했었다.

내가 처음 만난 `킨다이치 코스케'는 글쎄..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어 주었다. 외손자가 그렇게 존경
해 마지 않는 이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느낌은 뭐랄까 기대했던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번에 읽은 이 `팔묘촌'이라는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닌 등장인물 중 가장 큰 축을 이
루는 나 라는 존재에서 모든 사건을 기술하고 풀이해 나갔기 때문이 아니였나 생각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
스럽게 명탐정(?) 킨다이치 코스케는 주축이 되는 모습보다는 순간순간 중요한 장면에 불쑥 튀어나와 마침
표나 쉼표를 찍어주는 감초적인 역활로써 이책에서의 소명을 다하고 있다. 마치 엄청난 인물이 의외의 영화
에 비중이 낮은 의외의 배역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사라지는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이렇게 명탐정의 비중이 작다고 책의 내용이 들뜨거나 허술하지는 않는 묘한 발란스를 잡아 주고 있다.
이건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이라고 감히 판단하고 싶은 부분이다. 암울하고 비극적인 설화나 전설이 현실이
되었을 때, 비근대적인 지역의 주민들이 겪게 되는 공포와 다지미 가문의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전개는 충분한 몰입감을 주었다. 특히 하나의 살인이 진행될때마다 고조되는 긴장감은 계속해서 책을 잡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단지. 등장하는 주연격의 여인들이 어찌 그리 쉽게도 한 대상의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약간의 우연성은 옥의 티라면 티라고 할 수 있다. (순간 착각한 것은 나 라는 주인공은 절대미남꽃미남이라는상상을 하게 만들어 버린다.)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아마도 킨다이치 코스케가 등장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이
앞으로의 구매리스트에 1순위 2순위를 다투게 된 것도 팔묘촌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여덟 무사의 저주의 시작이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면서 킥킥거려 본다. (이래서 내가 추리소설 안잡을려고 했는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물만두 2006-08-2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것이 긴다이치가 등장하면 나오는 법칙입니다. 김전일도 등장하면 여자들이 모두 좋아라하잖아요^^

paviana 2006-08-2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전일이보다 그 형사가 좋아요.ㅎㅎ

chika 2006-08-2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은 여자가 아닌가부죠. =3=3=3

Mephistopheles 2006-08-2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 아무리봐도 작가가 여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나 봅니다...^^
파비님 // 그 전일이 라이벌로 나오는 뾰족하게 생기고 안경낀 엘리트요.?
치카님 // 엥...왠 갑자기 뜸금없는 여자가 아닌가 부죠..?? 라뇨..^^

아영엄마 2006-08-23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 잘생긴 형사!! 파비아나님, 저두요~~ ^^*

Mephistopheles 2006-08-2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너무 샤프한 척하고 엘리트 티 팍팍 내는 모습이 좀 재수 없던데...^^=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