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유명하다는 김영하씨의 소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읽는 속도는 평균적이였고, 몰입감을 가지기에는 충분했으나, 약간의 산만한 느낌만큼은 지워버릴 수 없는 정도였다. 하긴 24시간의 이야기를 한권의 책에 나름대로의 긴박감을 유지시키면서 끌고 나가다 보면 약간은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 정독의 의미보다는 다음장은 다음장은 어떻게 되나..하는 조급함을 가지게 한다고나 할까.

키퍼 서덜랜드 주연의 `24'라는 드라마의 형식을 따왔을 법한 챕터 나눔의 익숙함이 눈에 먼저 띄게 된 김영하의 신작 소설 `빛의 제국'은 시간단위로 쪼개진 각각의 상황에 기영이라는 퇴물 남파 간첩의 주변사를 이야기 하고 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소설의 시작점과 그 다음날 아침 7시로 끝을 맺는 24시간동안의 주인공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주변인물들은 남들이 하루동안 겪기에는 과분하고 묵직한 경험의 연속 속에 내팽개쳐 진다.

이 세명의 가족(기영,마리,현미)은 참으로 다사다단하다.

끊 떨어진 연처럼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남파간첩 기영은 이메일을 통해 갑작스런 귀환명령에 표현되지 않는 패닉상태에 빠지면서 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은 복잡하게 물려나간다. 냄새를 맡은 남한의 정보부 요원들과 옛날 대학시절 하룻밤을 같이 보낸 소지, 그리고 어느면으로 보나 무능하고 비사교적인 성곤과 자신과 별반 다를바가 없는 또다른 남파간첩 2명까지.... 마치 기영의 그 귀환명령으로 인한 그 파극효과는 기영뿐만이 아닌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도 적잖은 파장과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그의 아내 마리는 또 어떠한가. 가정을 가졌으면서 허울뿐이고 겉멋들은 20대초반의 애인의 트리플 섹스의 요구에 몸이 뜨거워 지고, 기득권층의 전형적인 부패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직장 사장의 그늘에 예속이 되어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역도산과의 동질성을 찾고자 하는 아버지가 주축으로 되어 있는 가정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하는 보이지 않는 반항적인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처받는 40을 바라보는 여자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남편의 고해성서에 가족을 위해 북으로 복귀하라는 냉정한 모습까지 보이기까지 한다.

이 둘의 딸 현미는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상처의 흔적이나 고통은 안보이는 모습을 보이나, 실상은 직간접적으로 그 또래 학생들이 극단적으로 부딪치는 사건과 사고의 언저리에 서있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인다. 인터넷을 통해 가슴이 노출된 동영상 유출로 학교라는 틀에서 부적격자로 낙인 찍힌 친한 친구 아영과 두개의 인격과 그또래 남아들이 가지고 있는 과잉된 성적충동이 삐질삐질 나오기 시작하는 진국이라는 친구까지...

현대 핵가족의 표본을 보여주는 가족구성인 세명으로 이루어진 이 가정은 결코 평범하거나 평탄하지 않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주고 있다.

각각의 가족구성원이 가지고 있던 아킬레스 건이 서서히 노출되다가 마침대 틱~! 소리는 내면서 끊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나, 이러한 회복불능의 가정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존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영과 마리가 젊은 시절 분쇄하고자 거품을 물었던 단체. 통제와 규제와 색출이 존재이유
전부라 해도 이견이 없는 국가 기관에 의해 관리되고 조율되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잔뜩 벌려논 복잡미묘한 모든 상황이 허무하게도 일순간에 매듭을 지어버리고, 손 탁탁 털고 이젠 끝났어~!
라고 선언하고는 마지막에 하지만~!...... 을 넣어버린 허무한 결말을 접하게 되었다고 할까. 소설의 인물들이
끊임없이 회상되어지고 이야기되어지는 짜여진 각본(영화, 책,스포츠엔터테이먼트)과 별반 다를바 없는 책속의 인간군상들.... 그게 또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땅의 사람들과 별반 차이점이 없다는 느낌으로 인한 한숨 속에 책을 덮은 내 마지막 감상이라 하고 싶다.

책을 다 읽고 기영이 이 책의 시작점에서 표현되어지는 두통이라는 고통이 전염이라도 되듯이 나에게 와버렸다. 재미있게 읽었으나 개운하거나 깨끗한 기분은 결코 들지 않을 책이라 생각되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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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8-26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 자체가 개운한 느낌을 가지기에는 어려울듯 하군요. ^^;; 김영하씨는 검은꽃을 보면서 꽤 괜찮은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도 관심이 가네요.

야클 2006-08-26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기존 소설들과는 좀 많이 다른 느낌의 책이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냥 작가를 모른채 책만 읽었다면 글쓴 사람이 김영하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Mephistopheles 2006-08-26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 다음번 김영하씨의 책은 검은꽃을 볼려고 합니다...^^
야클님 // 저번에 라디오프로에서 나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그때 작품 이야기 할때만 하더라도 이런내용들은 아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나머지 작품들을 읽어보고 비교해봐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