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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한때...TV 브라운관를 뜨겁게 달궜던 시리즈물이 있었다.
X파일이라는 이 시리즈는 아마도 전세계에 하나의 이슈덩어리가 되었고 암암리에 떠돌고 있었던 "음모론"의 집대성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약간은 어둡고 칙칙한 이야기들로 시즌이 종영되는 그 순간까지 그 분위기를 이끌어 갔었다.
마블코믹스가 원본인 X맨이라는 영화가 있다.
보통 인간으로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인류들.일종의 돌연변이들이 선과 악이라는 개념으로 두패로 나누어서 한쪽은 인류의 말살 후 뮤탄트들의 세상을 만들자는 측과 기존의 인류와 공생해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팽팽하게 맞서는 내용이였다.
내용이 내용인지라..앞서 말한 두가지의 이야기들은 엄청난 스케일을 내포하고 있다.
FBI에다가 외계인,국가위기론,인류말살론, 마인드 콘트롤 등등..금문교를 들었다 놨다 하는 어마어마한 능력까지...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리가 없는 이야기들을 요리조리 잘도 포장해서 상품으로 내놓고 이에 심취한 대중들이 집단으로 모임을 결성하고 갑론을박 난상토론 및 시간보내기 딱 좋은 화제거리 만발의 대중매체로 성장했었다.
그에 비해 이 책..그러니까 무사안일한 공기업 연구소에 낡아빠진 13호캐비닛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초라하기 그지 없다. 기껏해야 오랜시간 잠들어 있는 이야기, 혀 대신 도마뱀을 집어넣고 사는 여자.. 남들에겐 수십개월이지만 본인에겐 단 몇분의 시간밖에 안 지난 이야기.. 고양이로 변신하고 싶은 남자..손가락 끝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등등..인류에게는 전혀 위해가 안되고 해를 끼치지 않는 평범하지 않는 별스런 인간들의 이야기가 토막토막 나열되어 있는 정도니까. 거창하게 국가가 행하는 음모나 인류말살론 따위같은 묵직한 이야기는 한토막도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에 나오는 선풍기 아줌마 라던지 일주일동안 또각또각 자전거를 끊어 먹는 아저씨 정도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자극적이고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수없이도 접한 이러한 특이사항적인 소재를 작가는 제법 심각하고 묵직하게 주절주절 책에 기술해 나가고 있다. 시종일관 칙칙하게 일관했다면 읽다가 심드렁해지는 당연한 수순을 밟았겠지만, 작가의 필력은 칙칙함 가운데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블랙이라는 이름의 코미디를 요소요소에 잘도 배치를 해주는 기발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간에 갑자기 붕 떠버리는 듯한 결론은 순간 어랍쇼?를 내지르게 해줬지만, 이어 터진 막판 뒤집기는 읽는이의 뒷통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컷 약올리고 메롱 혀를 내밀고 도주하는 어린시절 친구의 그것과 비슷할 정도의 얄미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심토머 혹은 뮤턴트 들의 이야기 속에 불쾌하게 자리잡고 있는 인류라는 종족의 혐오감과 권력으로 묘사되는 기업의 집착등등 진중하게 생각하자면 끝도없이 심각해지는 명제까지 살짝살짝 짚고 가는 모습까지..
작가의 수상 후기까지 읽어버린 지금...작가의 귀싸대기를 올릴 이유는 적어도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술 한잔이라면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