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줏어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인류학자 혹은 그와 비슷한 학문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했던 말이였던 것 같다. 지금의 인류는 시각적인 정보에 많이 의지하면서 손을 많이 쓰지만 발은 의외로 많이 안쓰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진화해 나가면서 눈과 머리는 커지고 손가락은 길어지고 다리는 가늘어진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책에서나 나올 법한 외계인의 모습으로 진화해 나갈 것이다 라는 내용이였다.

하긴 요즘 사회를 보면 시각적으로 조성된 정보가 대부분이며 연령이 젊을수록 이러한 정보에 더욱 더 광적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인류가 문명이라는 것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시각적인 것에 많이 의존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요즘 시대는 그 정도는 그 옛날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의존지향적이라 판단된다.

이런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력기구인 눈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가정으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시작한다. 분명 답답하고 기가막힐 상황의 전개가 예상되기에 앞서 요즘 책들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모습이 발견된다.

빽빽하게 페이지마다 여백이라고는 한줌도 허용하지 않는 그 갑갑함과 숨막힘.....시력을 잃는 이야기의 전개를 맞이하기에 앞서 읽는 사람의 눈의 피로가 먼저 방문하게 되는 일종의 에피타이저라고 해야 할까. 아니나 다를까 답답한 시력으로 활자를 쫒아가면서 읽어 내려간 내용 역시 참담 그 자체다.

시작은 단 한사람의 백색의 공포라고 불리우는 정체불명의 시력상실에 걸리면서 이 남자와 접촉하는 사람들이 핵분열마냥 혹은 전염병마냥 번져간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눈 시퍼렇게 뜨고 벌어졌던 악질적인 사회문제, 독재와 파쇼의 모습은 똑같은 모양으로 복각되어 눈먼 자들의 생명과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재료는 달라도 똑같은 틀에 넣고 찍으면 모양만큼은 똑같은 공산품들처럼....

그렇다고 꼭 극악으로 치닫는 모습만을 접했다면 난 이 소설을 심드렁하게 놨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촘촘한 활자의 답답함 때문에 심호흡을 하면서 읽어 내려간 내용에는 극악, 최악의 인류 종말의 모습만을 보여주진 않는다. 나쁘게 말하면 교활하게 좋게 말하면 현명하게 새로운 현실에 새로운 질서와 방법을 제시하는 인간들의 모습도 보였으며, 좌절만이 남아있을 암담한 사태에 시각이라는 비교적 자극적인 매체에 매달리지 않으며 근본적인 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까지.. 소설이 거의 끝나갈 무렵 보는 각도에 따라 종교의 부정적인 모습마져도 경험하게 되었다.

책 제목에서 보여 주듯이 단지 눈이 멀었을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싶었다.
눈이 멀었다는 재앙보다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질적인 인간의 모습만큼은 변질되지 않는다 라는 사실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공포보다 더 무섭고 소름 끼친다. 극악으로 치닫는 전개에 치우치지 말아달라는 듯 긍정적인 인식표까지 여기저기에 심어준 작가의 노련함이 빛나는 한권의 책이였다.

단, 야한 책도 아니면서 그 빽빽함 때문에 숨이 가빠지는 단점만큼은 꼬집어 주고 싶다.
(좋게 생각하면 양심적이라고 해야 할지도..두권으로 만들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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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9-14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백 늘렸으면 얇은 페이지로 두권 가능했겠죠. 이 책 참 독특해요. ^^

Mephistopheles 2006-09-1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굴이라는 책도 사놨는데...좀 쉬었다가 읽어야 겠습니다..이 책역시 엄청 빽빽하더라구요...

Mephistopheles 2006-09-18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땡스 투씩이나요..그냥저냥 평범한 리뷰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