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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 드 히미코 SE (2disc) - (일반 킵케이스)
이누도 잇신 감독, 오다기리 죠 외 출연 / 와이드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고백하자면, 처음엔 시간 때우기로 보기 시작했다. 매장에 혼자 있었고, 날은 너무 추웠고, 손님도 없었고, 그래서 서재질 하면서 곁눈길로 영화를 보았는데, 그것도 거의 한시간 가까이를 1.5배속으로 보는 바람에 대사를 놓친 것도 꽤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상 속도로, 그리고 서재질도 멈추고 영화 속에 빠져드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금세 후회... 제대로 볼 것을...ㅡ.ㅡ;;;;
뒤가 궁금해서 다시 앞부터 보지는 못했지만, 벌써부터 아쉽고 미안하고 고마운 그런 기분.
사실, 영화에 대한 정보는 가진 게 없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의 감독이라는 것은 작품을 다 보고 나서 검색해서 안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게이가 등장하지?? 했었다...;;;;
확실히, 일반화 되었다거나 편견이 사라지거나,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이 눈에 띄게 늘어나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만화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과거에 비해서는 좀 더 사람들의 마음이 풀어진 기분이다.
꽤 오래 전인데, 내가 습작처럼 썼던 팬픽에 대해 누군가 야오이와 관련 있냐는 질문을 했을 때 꽤 불쾌했었던 일이 있다. 그리고 몇년인가 지났을 때에는 누군가 그런 시선을 던지는 것이 나름 즐거웠다. 나로서도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힘든 변화였다.
물론, 거기에는 야오이 만화들의 예쁘장한 그림들이 큰 몫을 해냈다. 얼마든지 미화 가능하고 포장 가능한 기술로, 그들의 이야기에서 '삶' 대신 '아름다움'을 뽑아낸 탓에.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참 신기했다. 오다기리 죠가 미청년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그를 제외한다면 배나오고 머리 벗겨진 할아버지, 한 건장하는 중년 아저씨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으니까. 여주인공도 사실 미녀 캐스팅은 아니었고... ^^
그리고 더 특별한 것은, 그럼에도 참 좋았다라는 것이다. 당장 눈이 즐겁지 않음에도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들의 감정과, 그들이 나누는 '소통'에 관심을 갖게 하니, 이 영화 제대로 만들었구나! 싶은 느낌이 팍팍 오는 것이다.
엄청 딱딱하게, 그리고 불편하게 시작했던 사오리의 감정도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관계를 맺어가는 메종 드 히미코의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파티에서 함께 웃긴 춤을 추는 장면에선 나 역시 너무도 즐겁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 춤사위를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애써서, 무리해서 이해할 필요도 없이, 억지로 인정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그래서 자연스레 공감하게 하는 이야기의 진행... 감독의 역량이 탁월하다고 밖에는 말 못하겠다. 연기자들의 연기도 참 편안하고 따스했다. 시종일관 유지되는 그 따스함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 불편함이 아닌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가 보다.
오다기리 죠가 방한했을 때 팬미팅에 1인당 1장씩만 준다던 그 표를 당첨되었던 누군가가 기뻐 소리질렀던 이유를 아주 뒤늦게 알 것 같다. 참... 멋지더라... 그 분위기가... 대사 없이 표정으로 눈으로 하는 이야기가.. 또 어디에 등장했지??? 좀 찾아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