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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가슴 - MBC 드라마 12부작 박스 세트, 2006년 2월 비트윈 드라마 할인
오경훈. 고동선 외 감독, 김동완. 배두나. 신성우. 김창완. 배종옥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과거 드라마 왕국이라 불렸던 MBC는 색깔이 좀 애매한 방송국이다. SBS처럼 상업방송으로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고, KBS처럼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매번 지키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가끔 매니아 성향의 드라마를, 시청률은 나오지 않더라도 참 괜찮은 드라마를 만들 때가 있다. 네멋대로 해라, 아일랜드, 다모, 별순검 등등이 그랬다.
괜찮은 드라마를 곧잘 만드는 엠비씨지만, 진짜진짜 짜증나게 '편성'을 제대로 못한다. 별순검처럼 괜찮은 아이템을 가진 드라마도 토요일 저녁, 다른 방송국이 쇼프로로 도배할 시간에 편성해 놓고 조기종영하는 짓은 진짜 머리 나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 엠비씨가 '편성'의 실패를 맛본 게 바로 이 작품 "떨리는 가슴"이다.
6명의 작가가와 피디가 2부작씩 총 12편의 연작 드라마로 제작되었는데, 이 작품은 주말 8시에 편성되었는데, 가족 드라마로 보기엔 무리인 내용들이, 또 너무나 파격적인 설정등이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했고, 철저한 외면 속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런 작품들은 월화/수목 미니시리즈 정도로 기획했어야 되지 않을까. 아니 왜 스스로 무덤을 팔까.ㅡ.ㅡ;;;
아무튼, 그렇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참으로 괜찮았던, 그리고 아름다웠던 작품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화의 주제는 "사랑"이다. 배두나, 김동완 주연인데 생각 외로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던 김동완이 인상적이었고, 그 둘이 서로 사랑에 빠져가는 진행의 모습도 참 이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랑에 시련이 없다면 말이 안될 터, 배두나는 사실 말못할 비밀이 있다.(극 중 이름도 배두나다. 언니 배종옥과 함께 본명을 써도 상관 없다. ^^;;;) 그건 바로 첫번째 결혼에 실패한 이혼녀라는 것. 김동완이 부모님을 서울로 오시게 하는 바람에 그녀는 어려운 고백을 한다. 김동완이 충격 받은 것은 당연! 하루 동안의 방황과 투정, 용서의 과정이 오가고, 그 둘은 옛 과거를 잊고 새출발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게 왠 일! 김동완의 아버지는 배두나의 첫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셨던 교장 선생님. 김동완은 그 자리에서 배두나를 자신이 결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하지 못한다. 둘은 결국 헤어지게 되고, 서로 방황하게 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중에 고백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그때 왜 말 못했느냐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고백하지 못했냐고 한다. 오히려 아들보다 더 넓은 마음을 보여주신 아버지.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맺어지지 못한다. 사랑은, 그렇게 상처를 남기고 져버린다.
2화의 주제는 "기쁨"이다. 하리수가 트랜스 젠더로 나오고 신성우가 그녀에게 구애했다가 그녀의 정체(?)를 알고는 도망치는 내용이다.(신성우는 앞 이야기에서 배두나에게도 구애했었다. 그러나 하리수의 미모에 반해 배두나는 싸그리 잊어버린다. 그는 이혼한 아내로부터 아들도 있다.ㅡ.ㅡ;;;;)
이 이야기에선 하리수가 트랜스 젠더로서 사회적 편견과 불평등으로부터 학대당하는, 그리고 형이자 오빠인 김창완으로부터도 배척 당하는 이야기가 주로 나온다. 그럼에도 왜 이야기의 제목은 "기쁨"일까. 예상되겠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며 당당한 자신으로 일어서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사회는 여전히 차갑다. 그녀는 여전히 소외된 사람이다.(학교에서 "천하장사 마돈나" 이야기를 하다가 하리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건 그들의 시각이기 보다 그들의 환경에 해당하는 어른들의 시각이 아닐까...ㅡ.ㅡ;;;) 먼저 그녀를 받아들여주고 일으켜주는 사람들은 '가족'이었다. 지금은 가족 외에는 울타리가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 울타리는 더 커질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이 이야기의 제목은 '기쁨'이 맞다. ^^
3화의 주제는 "슬픔"이다. 주인공은 배두나와 김창완의 딸인 고아성이 주인공이다. (여기선 김보미로 나온다.) 어리지만 예쁜 사랑을 하는, 어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는, 또 비겁해지지 않기 위해서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순진하고 천진한 이들의 이야기가 슬픔인 것은, 남주인공 찬이가 멀리 이사를 가서 둘이 헤어지게 된 것이고, 또 찬이의 어머니가 배종옥과 동창인데 그 둘이 대립하면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지극히 사실적이면서 슬픈 이야기기 때문이다. 괴물의 고아성이 얼마나 자랐는지 비교할 수 있는 모습이 되겠다. ^^
4화의 주제는 "바람"이다. 주인공은 남편 김창완과 최강희. 최강희는 김창완의 회사 식당에서 식권을 접수하는 일을 하는데 본업(?)은 가수다. 원래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했던 김창완은 어리고 귀엽고 또 당당한 그녀에게 흠뻑 빠져들게 된다. 제목이 '바람'인데, 여기선 바람피운다~ 할 때의 바람의 의미도 있지만 인생에 부는 '바람'의 느낌도 들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최강희가 참 맑게 나오는데, 김창완 역시 참 순박하게 그려졌다. 6개의 주제 중에선 재미도는 가장 떨어지지만 몇몇 생각할 분위기를 주는 점에선 역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5화의 주제는 "외출"이다. 배종옥과 지성이 주인공인데, 지성은 과거 대학생 시절 사랑했던 남자 친구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이미 시간은 20여 년이 흘렀음에도. 환타지 풍의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과거의 모습 재현을 배두나가 배종옥 역할을, 고아성이 배두나 역할을 한다. 사랑하지만 그를 따라갈 수 없는, 가족을 내버리지 못해 족쇄가 되었던, 그러나 감수했던 배종옥의 지난 이야기들이 나온다. 지성은, 이십 년 전 그 인물로 삶에 치여 자신을 잊고 기쁨을 잊고 매몰되어 가는 배종옥에게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6화! 내가 정말로 기대했던 "행복"은 작가 인정옥이 집필하였다. 떨리는 가슴 전체 이야기의 완성 편이기도 한 이 이야기는 배종옥의 어머니 김수미씨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오래전에 풍 맞아서 쓰러진 아버지와 두 딸을 내버리고 도망간 어머니가 딸을 찾아왔다. 배두나는 죽은 거라고만 알아왔던 어머니의 존재를 기뻐하지만 배종옥은 매섭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게 차갑게 대한다. 그 어머니란 자는 배종옥으로부터 돈을 얻어가기 위해서 돌아왔던 것. 그러나 실상은 그 후로 알게 된 남편의 병수발을 위한 돈. 배종옥은 돈을 주지만 결국 그녀는 돈을 받지 않고 자기 남편에게로 돌아간다. 병든 남편에게 그녀는 자신이 행복하며 여전히 웃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이 이야기에선 '어머니'로서의 행복이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당연히 손가락질 할 것 같은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인정옥씨가 썼던 까닭에 말투가 아일랜드 이나영 말투와 똑같아서 웃기기도 하고 또 여전히 신선했다. ^^
주말 가족 드라마로 보기에는 좀 불편할 수도 있고, 사회적 금기일 수 있는 파격적인 내용을 선보였는데, 곳곳에 새겨진 메시지들과 아름다운 영상미, 또 놀라운 연기력 등등은 이 작품을 참으로 고급스럽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1화와 5화, 그리고 6화가 참 좋았다.
품절이라 구하기 힘들겠지만, 아무튼 기회가 된다면 많이들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