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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6집 - The War In Life - 재발매
이승환 노래 / 티엔터테인먼트/코너스톤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내일은 고대하던 환타스틱 데이(Hwantastic Day) 이승환 9집 신보가 나오는 날이다.
일년 전에 고장난 시디피를 대신할 새 시디피를 장만하고, 오늘은 나를 그의 광팬으로 만들게 했던 6집 음반을 듣고 있다. 인생의 전쟁이라는 타이틀(The war in life)에 맞게, 이 앨범은 두가지 느낌으로 분류되어 있다. 앞부분 정상(正常)을 먼저 들어보자.
인트로부터 웅장한 반주에 맞춰 성가곡 같은 분위기의 나래이션을 닮은 곡조 "대예언"이 펼쳐지고, 이어 타이틀곡 "그대는 모릅니다"가 나온다.
이 노래에는 사연이 많다. 내가 이승환의 팬이 되게 했던 절절한 가사가 있고, 그 가사가 그토록 마음에 부딪쳤던 것은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내 첫사랑이 있음이고, 또한 그로 인해 알게 된 나의 친구와의 인연 때문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차은택 감독의 뮤직비디오가 너무 인상적이었고, 이 좋은 노래들을 공연장에서 듣고 싶은 충동에, 한달 여를 점심을 컵라면으로 떼워가며 공연비를 모았던 때가 1999년이다. 그렇게 8년 동안 나는 그를 더욱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그랬기에, 6집 The war in life는 특별하다. 그 제목만큼이나 현실적으로 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타이틀곡 "그대는 모릅니다"는 '천일동안'의 슬픔을 승화시키는 의미로 만든 곡이다. 애석하게도 대중의 반응을 크게 사지 못했다. 사실, 나 역시 원곡 버전은 공연장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오로지 앨범 안에서만 들을 뿐(편곡 버전은 무수한 가지 수로 많이 들어봤지만..^^.)
내가 참 좋아하는 "문장형"의 제목이지만, 정작 이 제목은 노래 가사 중에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든다. 무척이나 시적으로 느껴져서.
그 다음 곡은, 지금까지의 진지함과 절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아주 발칙하고 경쾌한 "애인간수"다. 사실 이승환의 곡들은 거의 대부분이 라이브 버전이 훨씬 더 좋다. 그래서 이 노래 '애인간수'도 무적전설의 라이브가 훨씬 더 역동적으로 들린다.(김진표의 랩 역시!)
지금 노래 들으면서 느끼는 건데, 아무래도 어떤 매체를 통해서 듣는 가도 노래의 감흥을 전달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나 보다. 너무 센 압박으로 오래 착용하면 아프다는 것 빼고는 소리가 참 좋은 내 헤드폰을 오랜만에 쓰고 있는데 사운드의 감동이 흐뭇하다. ^^
다음 곡 "세가지 소원"은 타이틀곡의 실패를 만회해 주며 어린 것들의 사랑을 흠뻑 받게 해 준 곡이다. 게다가 그 아기자기 예쁜 뮤직비디오는 또 어땠는가. 클레이메이션을 활용한 익살스러운 캐릭터도 우수했지만, '형을 18세 소년으로 보이게 해주겠어!'라는 차은택 감독의 다짐 대로 정말 큐티하고 어린 이승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동 백만 배다.
세가지 소원도 공연을 통해서 무수히 많은 버전을 접했지만, 일단 원곡 버전의 사운드가 가장 풍부하다. 라이브에서는 원곡에 사용한 그 악기와 그 소리를 다 재생할 수는 없으니까. 다른 이유로는 화려함을 버리고 좀 더 소박하게... 어쿠스틱하게 접근한 까닭도 있다 하겠다.
"첫 날의 약속"은 우리가 개학식날, 개업식 날... 무수한 첫 날에 다짐했던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잊어가고 있는 것을 반성하는,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곡이다. 2000년도의 공연이었는데, 자신의 6집 앨범 인기도에서 끝에서 두번째 곡이었다며 우스개소리를 날리며 불렀는데,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깃발 휘두르며 다시 재생하기를 반복한 퍼포먼스가 기억난다. 자료 화면이 비디오로 있는데 오래도록 보지를 못했다. 나중에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감상해야지. ^^
"고(告)함"은 공연장에 와서 번호판이나 든다는 각오로 즐기지 않고 심판만 하는 류의 사람을 비판한 노래다. 굳이 공연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예에서 그같은 사람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꽤 흥겹고 재미난 곡이지만 동시에 뼈있는 곡이라고 하겠다.
"나는"은, 마음이 버거울 때 들으면 참으로 위로가 되는 곡이다. 누군가 용기가 필요로 할 때 내가 많이 들려주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오래도록 라이브로 듣지 못했는데, 작년부터 "꿈꾸는 음악회"에서 들려주고 있다. 그 자신은 집안 대대로 불교 신자지만, 이 노래는 "씨스터 액트"를 연상케 하는 가스펠적이고 부흥 성회 온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이런 말 미안하지만, 정말 '은혜'스럽다.
그리고 '정상'의 마지막 곡 "오늘은 울기 좋은 날"이 이어진다. 이 노래도 꿈꾸는 음악회에서 처음으로 라이브로 들어봤다. 그 자신은 좋아한다지만 팬들로부터 외면 당했다던 그 노래. 역시 삶의 한 부분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가사가 인상적이다.(이승환은 앨범의 85% 정도를 직접 작곡하고, 95% 정도를 직접 작사한다. 내일 나오는 9집은 한곡 빼고 12곡을 직접 작사했다.)
여기부터는 속지를 거꾸로 뒤집어서 봐야 한다. "비정상(非正常)" 부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사진이지만 앞의 사진이 무심한 듯 허무해 보인다고 한다면, 이쪽 앨범의 사진은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는, 도전하는 듯한 느낌을 갖고 있다.
시작은 "귀신소동"이다. 전작 5집 앨범에서 뮤직비디오에 귀신이 찍히는 바람에, 그는 흥행을 위해 뮤비를 조작한 사람으로 몰렸다. 그게 억울하고 분해서 6집 앨범을 끝으로 가수 생활을 그만두려고 했던 그는, 그때의 심정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으니, 바로 이 곡이다. 심각한 그의 심정과 달리 노래는 흥겹다. 가사에선 한 순간에 사람 바보로 만들고 나쁜 놈 만들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그것을 정면에서 비판하면서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코러스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그의 너스레가 유쾌하면서도 아프다.
그 다음은 "못 말리는 봉팔이"라는 곡인데, 가사가 유치 찬란하다. 자뻑으로 무장한 봉팔이의 원맨쇼를 보는 듯한 가사인데, 곡 자체는 심오하다. 그의 지적처럼 가사가 유치하면 노래를 제대로 듣지도 않는 풍토가 안타깝다. 이 노래, 같이 불러보면 엄청 웃기다. 그리고 신난다. 나? 해봤지. ^^
그 다음은 Rumor라는 곡인데, 이 노래를 같이 작사한 인은아가 드라마 "궁"의 대본을 썼다. ^^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이 사회의 폐단을 지적한 사회 고발적 내용을 닮고 있다.
그리고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let it all out
가슴을 뻥 뚫어줄 것 같은 가사가 시원해서 늘 좋았다. 후렴구에서 여음구를 주며 팬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도 공연장에서 느낄 수 있는 매력인데, 원곡 버전 말고 '무적전설'에서 느낄 수 있다. 앨범 나왔을 당시에는 국민체조 버전에 맞추어 관객과 함께 춤을 추었다지. ^^
이어지는 곡은 대곡 스타일의 "나의 영웅"
4집의 "너의 나라"에 이어지는 스케일의 곡이라 하겠다. 실제로 공연에서는 두 곡을 이어서 부르기도 한다. 두 노래를 같이 이어 부르면 거의 20분이 소요된다.(절대 방송 탈 수 없는 노래라지.)
이 노래에서 나오는 '그녀'가 누구일까 팬들은 의견이 왕왕했지만, 그는 제대로 짚어주지 않았다. 분노에 차서 만들었던 곡이라고.... 우린 절대자/엄마 기타 등등... 아직도 말이 많다지..^^
그리고 이 앨범에서 참으로 특별한 노래 "당부"
이 노래는, 제목만 떠올려도 가슴이 미어진다. 얼마 전 기사에서 이 노래가 팬들과의 이별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고 가사를 들으니 너무 처연하고 슬펐다. 그러나 가사대로 우리가 헤어지지 않아서 어찌나 다행인지.. ^^
이 노래 역시 뮤직비디오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역시나 차은택 감독 작품이며 아시아권에서 대상의 영예를 쥔 작품이기도 했다.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제1회 대상이기도 하다. ^^ 작품 속에서 신민아가 참 앳되게 나왔는데 지금과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이 노래에는 '얼후'가 쓰여졌는데, 대만의 국보급 연주자(溫金龍)를 만나 직접 녹음을 해왔다. 나의 지인은, 이 노래에 감동 먹어 이승환의 팬이 되었는데, 현재 두달 때 얼후를 직접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녀가 당부를 속히 연주해 줄 그 날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
그 다음엔 히든 트랙이 나올 때까지 빈 트랙이 계속 넘어간다. 참을 성 있게 기다리면 숨겨진 노래를 만날 수가 있다. 그 노래의 정체? 6집 앨범과 그리고 serious day 앨범에서 찾을 수 있다. 직접 들어보기를... 꽤나 파격적이다. ^^
지금이야 앨범 디자인이 워낙 다양하지만, 이 앨범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식의 이중 케이스는 흔치 않았다. 그리고 사은품 형식으로 들어 있던 빨강/초록 액체는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약'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그 정체는 그냥 알아서 판단해야 할 듯 싶다. 그냥 재밌으라고 넣어준 것 같으니까. 지금은 초판이 다 팔리고 재발매된 앨범이라서 아마도 없을 게 분명하지만.. ^^ 앨범을 열어보면 안쪽에 거울 비스무리한 화면이 나오는데 모처럼 얼굴을 비춰보니 약간 일렁이는 게 재밌다.
씨디피 없이 일년을 살았던 지라 씨디를 직접 듣는 것은 오랜만이다. 갖고 있던 앨범을 mp3로 변환해서 줄곧 들었기 때문인데, 확실히 엠피의 조잡한 음질을 씨디에 갖다댈 수가 없다. 이 감동을 잊고 그 동안 어찌 살았나 싶을 만큼.
내일은 교보문고 핫트랙에 그의 음악이 두고두고 울릴 거라 짐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기둥 뿌리 뽑아 만든 명앨범을 꼭 귀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그는 더 이상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그냥 불행하지만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나, 나는 이 앨범을 비롯한 그의 음악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 역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꿈같은 내일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