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죽일 놈의 사랑 : 감독판 박스세트 (9disc) - KBS 드라마
김규태 감독, 정지훈 (비)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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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비가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 매력적이라는 데에는 부인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상두야 학교 가자'와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작가 이경희씨가 극본을 맡았다.

두 작품을 보지 못한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이름에 기대어 상당히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작품의 명성과 기대, 또 배우의 무게 등이 모두 작가에게 부담이 되었나 보다.

뚜껑을 여니, 용두사미?

그럼에도, 거침 없이 별은 다섯 개다.  그게 '매력'의 힘이니까. ^^

줄거리는 상식의 선을 벗어난다.  1회에서 옥상에서 떨어져 식물인간이 되는 형.

그런데 그 옥상에서 어떻게 떨어질까?  난간이 있는데 말이다.

신민아가 일약 스타가 되는 것도 좀 개연성이 없었고...(지극히 신데렐라적이었다.)

그녀가 실장님과 얼떨결에 약혼하게 되는 것도 너무 말이 안 되고...

복구가 복수를 하는가... 보다 했는데, 실은 둘다 너무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렸고,

신민아가 연예계를 떠나 일년 동안 옷장사를 하며 사는 모습 등이 다 설득력이 떨어졌다.

뿐이던가.  다시 만난 그들이 여전히 사랑함에도 형의 존재로 인해 마음을 속이다가 동반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무로 돌아가고, 형이 죽고난 뒤에도 둘은 끝내 맺지 못하고(아니 왜?) 그들은... 얼어 죽는다.ㅡ.ㅡ;;;;;

아마도, 마지막의 황당한 엔딩만 아니었어도 본전은 건졌을 것 같다.

그때 복구가 신민아를 데리고 집안으로만 들어갔어도 둘 다 살았을 것이다.

작가는 멋있게만 쓰려고 했지, 공감이 가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았다.

신민아의 새엄마는 어떻던가?  전형적인 '계모'에다가 사고뭉치였건만, 어느 순간 개심하여 딸을 위해주는 엄마로 둔갑까지 했다.  허헛....;;;;;;

그렇지만, 그 모든 폐단(!)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이 너무 좋았다.  물론, 그건 순전히 정지훈 때문이라는 것을 절대 부인 못한다.(적극 인정한다)

작가도 그걸 노렸겠지만, 신민아가 위험에 빠져 있을 때마다 나타나 멋지게 구해주는 장면은, 유치하지만 여자들의 로망이 아닌가.(위험해지고 싶다는 얘기는 아니다....ㆀ)

정지훈은, 원래 연기 지망생이 아닐까 싶을 만큼 연기를 잘했다.  몰입이 잘 되는지, 딱 그 역할에 맞는 사람처럼 보였다.

신민아는, 음... 연기는 좀 부족했지만, 그래도 풋풋한 내가 나서 좋았다.  너무 자주 나오는 배우라면 그 역할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예를 들자면, 전도연 같은 경우는 연기를 워낙 잘하지만, 좀.. 식상한 느낌이다.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연기를 하지만, 너무 익숙해서 질리는 느낌.  그래서 신민아는, 연기는 좀 별로다 싶었지만, 그냥 그 배역에 나름 어울려 보였다.

실장님은.. 너무 큰 키도 부담스럽지만, 그 대사는 정말 부담스러웠지... 3학년 2학기 국어책???(최근 발칙한 여자들에선 좀 나아졌나 보다. 보진 못했지만...)

이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모든 노래가 다 귀에 박혔던 것은 아니지만 이수영의 노래는 이 둘의 비극적인 사랑에 절절하게 어울리는 음색이었다.  덕분에 그녀가 좋아졌달까.

역설적인 제목의 '이 죽일 놈의 사랑'

사람들은, 한번 쯤은 자신을 온통 지배할, 혹은 뒤흔들, 그런 어마어마한 사람을 꿈꾸지 않을까?  아프고 싶은 건 아니지만, 영화같은 사랑, 드라마같은 사랑... 그래도 조금씩은 꿈꾸지 않을까?

이 작품은, 그 '한번은 해보고 싶은 사랑'을 그리고 있다.  좀 더 탄탄하게 스토리를 짰더라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내게는 좋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난 가수 비보다, 연기자 정지훈이 더 매력적이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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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1-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훈이 그렇게 연기를 잘 하나요? 재주가 많은 친구군요
그리고 신민아는 연기가 좀 서툰 듯 하면서 풋풋한 게 매력 같아요^^

마노아 2006-11-03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콧물범벅인데도 개의치 않고 눈물 연기 하던걸요. 자세가 되었달까요^^;;;

늙어가는e 2006-12-28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훈씨 연기 좋았지만 아쉬움도 남습니다.
후반처럼 초반에 힘을 좀 뺐더라면 하는 아쉬움.. 하지만 취중연기와 콧물연기 그리고 목소리연기등등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더 많네요. 개인적으로 신민아씨 연기 좋았어요. 왜 신민아연기에 대해 지적이 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몸으로 하는 연기가 좀 아쉽기는 했지만 사랑스럽게 은석이를 잘 표현해준 것 같아요. 왜 복구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되더군요. ^^

마노아 2006-12-28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 눈과 목소리에 힘이 꽤 들어갔었지요. 신민아씨는 풋풋하니 좋았어요. 이 작품의 문제는 작가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 무튼, 둘이 도로변에서 죽으려고 했던 그 순간에 깔리던 노래와 화면은 참 인상적이었어요.지금도 종종 꺼내어서 보거든요^^
 
태릉 선수촌 (2disc) - MBC 베스트극장 - 8월 MBC 드라마 할인
이윤정 감독, 이민기 외 출연 / MBC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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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이 맞다면 이 작품은 엠비씨의 베스트 극장이 침체일로에 빠져 있는 나머지 한동안 방송을 중단했다가 다시 야심차게 시작했던 신호탄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 작품 말고도, 그 기간 중에 방영된 베스트 극장은 모두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전개와 영상, 반전 등을 보여주었다.  물론 내가 다 챙겨보진 못했지만. ^^

 

우리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스포츠를 다 좋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에는 엄청 열광하는 것은 사실이다.  올림픽의 경우, 평소 전혀 관심 갖지 않았던 '양궁'에 환호하고, 체조 경기를 찾아 보고, 유도의 한판승에 열광한다.  우리한테는 4년에 한번 돌아오는 임팩트에 신나는 게임이지만, 그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에게 4년은 전쟁일 것이다.  이 작품은, 그 전쟁 속에서 젊음과 열정, 또 좌절과 실망을 묻을 수밖에 없는 청춘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보를 보니, 연출은 이윤정으로 MBC 최초의 여성 드라마 감독이라고 한다.  그 동안 그렇게 여성 드라마 감독이 없었다는 게 놀랍지만, 확실히 여성 감독의 작품은 좀 더 섬세한 무언가가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건 최고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특별한' 이유는 될 수 있다.

 

주인공은 유도선수 홍민기(26), 양궁선수 방수아(26), 체조선수 정마루(17), 수영선수 이동경(27)으로 구성되어 있다.

 

민기는 태릉을 가리켜 계급사회라고 한다.  신라의 신분제도에 비유하여, 일단은 들어왔으니 귀족은 귀족이나 계급이 다르다고 한다.  제일 많은 게 노메달 국가대표선수.  불쌍한 6두품이라고 한다.  메달은 따기는 했지만 색깔이 안 이쁜 애들을 진골이라고 했다.  그리고 제일 높은 것을 금메달을 딴 성골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처럼 전망 없는 2진 선수를 천민이라고 표현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그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는 메달이고 또 대표선수에 들어가는 것일 테니, 그의 표현은 틀린 게 아닐 것이다.

 

각각의 주인공들은 저 계급사회에 어느 정도 들어찬다.  양궁선수 방수아는 올림픽 2관왕으로 천재 대접을 받으니 성골중의 성골일 것이고, 체조선수 정마루는 체조계의 기대주며 유망주고 현재 최고의 실력을 겸비하고 있으니 성골과 진골 진입이 눈앞에 있다.  수영선수 이동경은 국내 최초 8강 진출의 기록을 세워 국내 최고의 수영선수로 이름을 높였지만, 세계권에서는 여전히 명함도 내밀 수 없는 6두품 출신이고, 국가대표에 들지 못한 민기의 입장은 그들 모두보다 조금 쳐져 있다.

 

네명의 주인공은 성격 따라 또 분류된다.  제멋대로 기분파에 거칠 것 없고 닥치는 대로 덤비는 민기는, 제 잘난 것을 알고, 그래서 버릇 없게 굴고 왕따를 당해도 여전히 당당할 수 있는 마루는 기질적으로 서로 통하는 게 있다.  그에 비해서 수아와 동경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지극히 이성적인 존재들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동경과 수아가 연인이었고, 민기는 마루와 잘 통하는 (잘 놀아주는) 파트너였는데, 그 자리에 균열이 생긴다.  이성적 존재 수아는 동물적 감각의 민기와 가까워지고, 초이성을 자랑하던 동경은 끝내 수아를 잃고 나서야 감성적 인간의 자리를 찾는다.  마루는 부상으로 체조선수로서의 생명을 잃고 폭주하지만,  원래 영민했던 만큼 빠르게 자신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해 나간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각 인물들의 뚜렷한 성격 차이 안에서 서로가 자신의 한계점을 찾고, 또 나름대로의 돌파점을 찾아내는 데에 있다.  그토록 다른 입장과 성격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 사이에는 묘하게 조화가 잡혀 있다.

스스로 유도복 등판에 '베스트 홍'이라고 적어놓고 온갖 폼을 잡았던 민기는, 그런 행위가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이름을 떼어낸다.  그렇지만 그 근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이종격투기로 종목 이전을 해보려고도 했고, 금메달을 따보아도 월 백만원에 불과할 박봉임을 알면서도 녀석은 그 자리로 돌아와 다시 도전한다.  그래서 이제 그 스스로 등판에 '스페셜 홍'이라고 적어도, 이제는 뭐라할 사람이 없다.  그 스스로 스페셜해 졌음을 주변사람들도 알게 되었으니까.

올림픽 2관왕이지만 국대 선발에 떨어지고 좌절을 겪었던 수아는 스스로 쿨한 척하며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웃고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척을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민기는 위태롭게 여기고 끝내 수아를 울게 만든다.  수아는 울고나서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제서야 바닥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된다.  국대선발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우리나라가 워낙 양궁강국이다 보니까, 10점 만점을 계속 명중한 선수들한테도 제일의 목표가 뭐냐는 인터뷰에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 '국가대표 선발'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놀라운 대답이 나오는 우리나라의 특별한 상황이 적용됐음이다.

민기가 이종격투기 쪽으로의 스카웃 제안을 버리고 멋지게 유도판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관중석은 여전히 텅텅 비어 있었고, 올림픽 시즌이 아닌 이상 이 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드라마는 과감없이 보여준다.  뿐인가.  동경도, 자신이 한국 최고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은 현재 계속 기록이 떨어지고 있고, 어차피 국제 무대에선 명함도 못 내밀 실력임을 알고 있다.  그의 최선의 선택은 지금 떠나서 수영부 코치 자리라도 유지하는 것이다.  그건 민기가 지금 의욕적으로 유도판을 지켜도 나중에는 현실적인 위험에 더 당면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현실성'을 보여준다.

작품은, 그렇게 네 젊은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 그들의 열정과 목표와 한계와 좌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넓은 화면과 네 계절이 다 들어간 영상미와 적절한 음악과 또 표제마저도 작품을 맛깔스럽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배우들을 썼지만, 다들 제 몫을 제대로 해낸 듯 보인다.  각각의 배우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으니까.

극본은 홍진아가 썼는데,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아직 모르지만, 좀 더 관심있게 지켜볼 수 있겠다.

작품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곡 두 곡의 노래를 함께 추천한다.

퀸의 Don't stop me now와 이승환 8집의 "물어본다" 강력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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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UE - [할인행사]
로만 폴란스키 감독 / 스타맥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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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련된 책을 보게 되면,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게 되면 어떻게 묘사될까?  배우는 어떻게 연주를 할까?  음악가가 연기를 해야 할까?  뭐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는 에이, 연주 실력이 없어서 영화로 못 만들거야... 라고 혼자 상상하고 혼자 체념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유대계 피아니스트인 주인공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을 받고 숨어지내게 된다.  영화가 중반까지 흐르는 동안에는 그 음침한 분위기와 긴장된 음악과 불안해 보이는 인물들 덕에 보는 나까지도 통 편하게 숨을 쉴 수가 없었다.(당연하다.  화려고 쌩쌩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면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독일군 장교와 맞닥뜨리는 장면은 임팩트가 몹시 강했다.  겨우겨우 목숨 부지하며 숨어지냈는데 독일 장교에게 딱! 걸려버리다니... 얼마나 암담하고 절망스러웠을까.  자신의 신분을 피아니스트라고 밝히자, 뜻밖에도 독일 장교는 연주를 해보라고 한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어디 연주가 되겠는가 싶지만, 주인공은 일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피아노 연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연주에 마음이 녹았던 것일까.  원래부터 유대인을 동정했던 독일인이었을까.  아무튼 그의 호의로 주인공은 목숨을 유지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전쟁은 끝이 나고, 이제 입장은 뒤바뀌는데... 안타깝게도 독일 장교는 자신의 선행으로도 목숨을 구하지는 못한다.  작품의 말미에 자막으로 이렇게 뜬다.

"스필만은 2000년 7월 6일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바르샤바'에서 계속 살았다. 그 독일 장교의 이름은 'Wilm Hosenfeld'였으며 소비에트 포로 수용소에서 1952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주인공을 맡은 배우는 실제로는 피아노를 '체르니 30' 정도의 수준을 쳤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찍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중학교 때 역시 체르니 30까지만 쳐보았던 나로선 억! 소리가 났다.  안 되는 것도 되게 하는구나....  놀라웠다.

그런 노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작품이 더 예술적으로 승화된 것 같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같이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2001년도 작 '피아니스트'와 헷갈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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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연 (靑燕) LE
윤종찬 감독, 장진영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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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혼란스러울 때는 꿈꾸는 것조차 위험해지기도 한다.  아직은 억압받는 여성이 더 자연스럽던 시절에 여류비행사를 꿈꾸었던 박경원.   그녀의 꿈은 조선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었고, 고학을 통해 여류 비행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지만, 식민지 조국은 그녀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질 뿐이다.

그녀는 대리운전을 해주다가 지혁을 만난다.  친일파 아버지를 둔 까닭에 호의호식을 하지만 의식은 늘 방황하고 있던 청춘.  지혁 아버지의 수양 딸로, 경원을 동경해서 비행사로 지원하게 된 정희는 지혁을 좋아한다.

기베는 일본 최고의 모델이자 외무대신의 든든한 배경을 지닌 비행사인데 처음엔 경원의 라이벌이었지만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그녀의 비행을 위해 아낌 없는 후원을 해준다.

지혁은 경원에게 청혼하지만, 비행 이외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경원은 거절하고, 그 뒤 지혁의 친구가 지혁의 아버지를 처단하는 바람에 지혁은 한순간에 불순분자로 몰려 고문을 받게 된다.  정희 역시 끈 떨어진 갓이 되어 공장에서 일하게 되고, 경원 역시 공범으로 몰려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  지혁(김주혁)의 고문 장면은 정말 잔인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마 그 시절의 고문 장면은 그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되었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원 역시 고문을 당하지만 그 장면에 있어서 성적인 수치심을 유발하는 씬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개 그런 씬이 등장하면 으레 짐작되어질 부분이었음에도 감독은 과감히 그런 장면들을 찍지 않았다. 

지혁은 경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살리는 조건으로 죄를 뒤집어 쓰고 사형 당한다.  이로 인해 정희는 경원을 원수 보듯 대한다.

모든 멸시와 설움, 또 사랑을 잃은 슬픔까지도 하늘에 떨쳐내고자 경원은 고국방문 비행을 단행하고, 악천후 속에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거부한 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그녀를 미워하고 악담을 퍼부었던 정희가 모르스 신호로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매달리는 장면은, 한지민 스스로 자신이 연기자가 되었다고 생각한 최고의 명장면이기도 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그랬듯이 경원은 그 비행에서 추락하여 목숨을 잃게 된다.

영화는 영상미라던가 그밖에 스토리의 전개 구조 등은 나무랄데 없이 드라마틱했다.  그러나 보는 내내 나를 혼란스럽게 했던 것은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식민지 시대에 그 정도의 '출세'를 가지려면 '친일'의 행적을 비켜나갈 수 없었던 게 지금까지의 역사였다.  박경원, 그녀는 어땠을까.  이 작품이 상영할 당시에도 친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초'의 여류비행사라는 말과 함께.

영화는 특별히 그녀가 친일했다고 보여주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었다고 보여주지도 않는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녀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해 꿈을 이루었다.  한 톨 쌀을 구하기 어려워 굶고 있던 시절이었고, 독립군들은 목숨을 잃어가며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고, 모두가 숨죽여 살던 그 시절에, 그녀만큼의 꿈을 이루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인가, 아니면 수치스러운 일인가.  나라가 어수선하니, 민족이 고통을 받고 있으니 개인의 꿈은 그대로 접혀져야만 하는가...

그런 질문들에는 대답하기가 참 어렵다.  한쪽의 눈으로는 그녀의 행적이 돌맞을 만하고, 또 한 쪽의 눈으로는 박수를 보낼 만하니...

그녀의 능력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쓸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걸 강요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누구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말하기는 더 쉽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제작비도 많이 들었을 것이고, 제작 기간도 꽤 길었다고 알고 있는데 생각보다 스포트 라이트를 많이 못 받은 영화 같다.  아무래도 민감한 '시기'의 소재를 선택한 까닭이지 싶다.  어쩌면 그 민감한 부분도 이겨나갈 수 있는 마음바탕이 이젠 우리에게도 필요한 듯 싶다.  단죄할 것은 단죄해야 하지만, 또 포용해야 할 부분들은 받아들여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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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22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화가 시나리오 쓰고 제작비도 많이 쓴 영화인데 친일논란때문에 흥행에 실패했죠.저는 영화는 보지 못해서 어떤 내용인지 모르겠는데 경쟁영화사에서 소문을 퍼트린거라는 말도 있었죠.
그당시 비행기면허를 딸려면 집한채값이 들었고, 고이즈미 조부와 친했던것은 사실인데, 친일을 했다거나 고이즈미 조부의 첩이었다는 기록은 없거든요. 친한거하고 비행기면허를 따기위한 돈을 여자가 어떻게 벌었을까 하는것을 연결시키셔 첩이고 친일했다고 소문이 난거죠..그런식이면 당시 사람들중에 남아날 사람 없을거 같은데요.

마노아 2006-10-2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인화가 시나리오를 썼군요. 그 시절에 친일논란으로 자유롭기는 참 힘든 것 같아요. 생존 자체의 문제였으니까. 적극적 친일인가, 방임적 친일인가의 차이는 분명이 두어야 하겠지만. 영화는 참 괜찮아요. 사운드가 받쳐주는 곳에서 보아야 더 제맛일 것 같아요. ^^
 
Mr.히치 -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 (1disc) - [할인행사]
앤디 테넌트 감독, 윌 스미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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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게 보았다는 친구가, 연애를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극구 강조하길래, 속는 셈치고 보았는데, 역시 속고 말았다.  나로선, 별로 공감이 안 가던 터였다.

로맨틱 코메디 장르 영화가 주로 그랬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메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제목 맞던가?)  이 영화로 카메론 디아즈는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스타로 확 띄었는데, 미국에선 그게 먹혔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 감성에는 별로 재밌는 것을 못 느꼈다. (설마 나만 그런 것인가? ㅡ.ㅡ;;;)

아마, 우리나라 개그 콘서트나 웃찾사 등을 외국인에게 보여주어도(자막 달아서) 정서 상의 차이로 동일한 재미를 못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개념으로, 이 영화 하치도 나는 고민을 하며 보아야 했다.  웃길 때가 되었잖아?  혹은 바로 저거야! 하고 공감 가는 부분이 나와야 하지 않아? 라고 마구 따지면서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나는 작업의 정석도 참 아니었는데, 어쩌면 내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그나마 하치는 '진실'의 소리가 이기기라도 하지만, 작업의 정석은 끝까지 작업남녀의 연애질로 마무리를 했었지.

아무튼, '코미디' 영화는, 그게 정석 코미디든 로맨틱 코미디든 웃기지 못하는 순간 성공하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윌 스미스를 좋아하지만 영화는 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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