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는 가장 친한 친구였어" 네가 거듭 말했다.
"나는 힘든 일이 있으면 클로버한테 다 이야기했어. 클로버는 사람들처럼 날 판단하지 않았어"
네 침대 주변은 동물 사진이 가득하지만 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실제 동물은 클로버였어. 클로버는 너를 동물의 세계로데려다주는 통로였지. 너는 클로버와 함께 자랐고 클로버와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형성했다. 친구들은 너를‘고양이를 좋아하는아이‘로 알고 생일마다 고양이와 관련된 장난감과 옷을 선물했지. 네가 다시 혼자 잠들 수 있게 되고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조금씩 돌아오기까지 걸린 그 길고 긴 2주 동안 너는 반려동물이아닌 하나의 세계를 잃어버린 듯 보였다.
이 시기에 우리는 슬픔에 대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 슬픔은 밀려왔다가잦아들기를 반복하며 결국, 우리는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였지.
"처음 겪는 상실이 가장 힘든 거야" 네가 놀라울 정도로현명하게 말했다. "나는 이 일을 절대 잊지 못할거야"
나는 캐럴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줬다.
"슬픔은 사랑이에요" 캐럴라인이 답했다.
이 말을 전하자, 대프니, 너는 그 의미를 곧장 이해했다. 슬픔이란 외면하거나 어떻게든 끝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그 곁에 멈춰 서서 가만히 품으며 꼭 즐겁지는 않더라도 소중히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클로버에 대한 기억처럼.
이번 일은 네 나이에 겪기에는 너무 끔찍해서 굳이 겪지 않았어도 되었을 경험이다. 하지만 슬픔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은모든 사람이 배워야하는 교훈이야.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너도슬픔을 받아들이고 싶어 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것 같아. 너는 기억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만을 원하지는 않으니까. 캐럴라인은 공동 편집한 책의 한 구절을 내게 보여줬는데, 주디스 앤더슨 Judith Anderson과 리베카 네스터 Rebecca Nestor가 쓴 내용이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서서히 사라져가는 현상에서 비롯하는 기후/생태슬픔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기후 슬픔은 단 한 번의 상실에서 오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기에 남아 있는 삶 내내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그러므로 기후 슬픔은 일상적인 삶의 결 안으로받아들여져야 하며, 어쩌면 우리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될지도 모른다. 206-207

클로버를 잃은 일을 계기로 나는 슬픔을 오래 품고 살아가는 법을 너에게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 대프니. 사람들은기후 슬픔을 직접 마주하기보다 덜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반응하려 한다. 이를테면 현실을 부정하거나,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세상이 반드시 파멸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거나, 실제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정에 관한 책을 쓰는 거야. 슬픔은 사랑의 또 다른얼굴로, 우리에게 누가 소중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기억을 통해 우리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자각하게 하지. 이 감정은 우리를 세상과 타인에게 연결해 주기도해. 캐럴라인은 네게 이 이야기를 전해달라고 했어.

"슬픔은 사랑이야. 정말 깊이 사랑했다면 슬픔도 평생 함께하게 되지. 사랑했기 때문에 슬퍼할 수 있다는 건 영광이자기쁨이란다. 고양이를 잃었다는 상실감보다 고양이에게 향했던 사랑을 생각하렴. 네 슬픔의 크기는 네가 그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주는 척도야. 그토록 깊고 온전하게 사랑할수 있었다는걸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그 사랑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거야"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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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얼굴
아베 코보 지음, 이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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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문장에 담겨진 의미와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생각해보며 읽어야 하는 소설을 숙제를 해 치우듯이 읽었다. 사실 비현실이 현실처럼 이어지는 이야기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서 더 열심히 읽었다는 말이 맞을것이다. 나의 얼굴을 누군가의 얼굴로 바꿔넣기 위해 살인을 서슴지 않고, 이후 타인의 얼굴을 뒤집어 쓴 채 이웃을 속이고 아내마저 속이며 그 모든 것을 기록해나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전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 모든 행동은 실체가 아닌 허상으로만 느껴졌다. 그런데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타인의 얼굴'이라는 것은 '상징적 은유를 통한 본질의 탐구'라는 생각에서 바뀌어 그 행위 자체의 범죄가 어떻게 드러나게 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 페이스오프가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오래전에 이 소설을 먼저 접했다면 '타인의 얼굴'이라는 소재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단지 타인의 얼굴로 바뀐 가면을 썼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리라는 설정 자체가 좀 허술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현대사회에서 얼굴 성형으로 인해 자기만족에 따른 자존감의 상승으로 기본적인 태도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또한 아주 허술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책을 읽는 동안에는 '뷰티 인사이드'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얼굴 인식을 못하는 사람과 비정기적으로 계속 얼굴이 바뀌는 사람의 만남에서 얼굴이 바뀌더라도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본질이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일텐데, 소설 '타인의 얼굴'은 그 모든 것을 다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장르소설의 느낌으로 소설 속 화자인 남편이 어떤 살인 행각을 벌일까 기대하고 있다가, 화자의 심리에 동화되어 가기 시작하고 마지막에 그 모든 것이 허무하게도 남편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좀 충격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타인의 얼굴'이라는 소설에 담겨있는 문장들과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게 된다. 

이웃의 어린아이조차 알아챌 수 있는 가면의 모습을 소설 속 화자 스스로만 모두를 완벽하게 속이고 타인으로 변신했다고 믿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때, 당연한 결과인 줄 알면서도 당황스러워 했던 나를 떠올려보면 나 역시 가면을 쓰고 세상 밖으로 나가볼까 라는 마음이 어느 한구석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타인의 얼굴'을 갖는다는 것은 내 안에 타인의 존재와 나의 부재가 같이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그걸 갖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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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핵전쟁처럼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위협이 아니야.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미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폭력과 파괴와 상실의 과정이지. 미래의 기후온난화는 이미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생물다양성 또한 충격적인 수준으로 이미 사라졌어. 이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이미 발사된 미사일이다. 다만 그 미사일이 어느 정도 파괴적일지, 언제 우리에게 도달할지 모를 뿐이지. 핵전쟁 비유의 또 다른 한계는 단 한번의 핵 공격이 파멸로 이어진다는거야. 기후 변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기에 우리 모두, 특히 너희 세대가 수십 년에 걸쳐 견디며 살아가야하겠지. 문제를 파멸로 결론짓는 사고방식은 지적으로 게으른 태도야. 기후 변화에 적응하는 건 인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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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 전부터 전화를 해 대고는 돈 십만원을 보내라고 한다. 그러면 또 바로 보내준다고.

이건 분명 뻔하다. 마이너스로 쓰다가 돈 갚을 때 되었는데 통장 잔고가 부족하니 돈 메꾸기 위해 계좌송금하라는 소리겠지. 그러고는 또 바로 마이너스. 그리고 또 다음달 반복.

나이 처 먹고 그러고 싶을까.

금액의 문제가 아니다. 몇년 전 소액조차 없다고 자르지 않았다면 지금도 매달 백만원 단위로 돈을 써댔을테니까. 

자기 카드값 메꾼다고 내 돈을 임시 빌린다고 해 놓고는 내 카드결제일까지 돈을 안주니 나 역시 신용불량으로 뜰뻔했다. 그래놓고는 미안한 마음 하나없이 또 돈을 빌려주라고 하니 믿을수가 없다.


친구가 언니때문에 잠깐 쓴다고 해서 거액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하고 마이너스로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하니, 대뜸 하는 말이 그래서 저축할 필요가 없다나. 돈을 모아봐야 딴 사람들이 다 빌려가서 써버린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게 미쳤나, 싶더라. 

자기는 몇천만원을 빌려가도 달마다 조금씩 갚지않냐고.

그래봐야 십년을 갚아도 다 못갚을 금액인데, 그에 더해 연금 받기 시작하면 직장도 그만두겠다는 소리를 해대니 내 돈을 갚을 생각이 없는건가 싶었다. 하긴 얼마전에 말을 하다가 은연중에 가족한테 빌린돈을 누가 갚냐,라고 하더라.

혈연관계라고 하지만 성인이 되어 금전거래를 하면 그때는 가족이 아닌거 아닌가. 내가 여유있어서 기부한셈 치고 준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돈을 융통해줬는데 그걸 갚을 생각을 안하면 그게 가족이라 생각할수있는건가 싶다.


아침부터. 기분이 확 상하는데.

또 이런 식이면 다음부터는 아예 전화를 받을 생각을 하지 않겠지. 맘을 좋게 쓰려고 해도 그럴수가 없다.

돈이 없으면 쓰지를 말아야지. 본인이 필요한 사치품은 다 사면서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지.

내 저축은 너를 위한 돈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 나이가 되었어야 하는데 이건 죽을때까지 모를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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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어제까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했을까. 인간의 본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낯가죽 따위에 힘들어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이리저리 핑계를 대본 것은, 결국 선입견에 의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 P149

자, 나가보자! 새로운 타인의 얼굴을 통해서 새로운 타인의 세계로 나가보자! - P150

나는 신이 났다. 난생처음 혼자 기차를 타는 아이처럼 기대와 불안으로 가슴 설레었다. 가면 덕분에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완전히 새 단장을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기대의 소용돌이에 떠밀려서 속 끓이던 꺼림칙함도 잠시 어딘가 바닥으로 가라앉은 것 같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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