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좋다 여행이 좋다 - 위대한 소설의 무대로 떠나는 세계여행 여행이 좋다
세라 백스터 지음, 에이미 그라임스 그림, 이정아 옮김 / 올댓북스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일명 독서만을 위한 휴가,라고 할 수 있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여름이면 셰익스피어 베케이션을 지내고 싶은 소망이 생겼지만 실상 휴가때면 오히려 평소보다 더 책과 멀어지곤 했다. 그래서 딱히 책만 읽는 휴가라기보다는 휴가지와 맞춤형인 책을 들고 가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더블린에 가게 된다면 더블린 사람들을 들고 가는 그런 것 말이다. 지난 늦여름에 조카가 제주 바닷가에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책 '문학이 좋다 여행이 좋다'의 테마가 딱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문학 작품 모두를 읽은 것은 아니기에 그 느낌과 정확히 어울리는 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어서 알고 있는 문학작품의 경우 그 작품속의 실제 거리라거나 모델이 된 풍경이야기를 읽다보면 그곳으로 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어보고 싶어진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글보다 그림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책의 삽화는 영국의 일러스트 작가 에이미 그라임스가 그렸다고 한다. 레미제라블 이야기에서 파리의 지하도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왠지 조화로운 느낌이 아니라서 슬그머니 그림을 대충 제끼며 읽어나가다가 크누트 함순의 '땅의 혜택' 이야기에서는 그 선명한 초록이 너무 맘에 들어버렸다. 일러스트 작가가 그림을 밝게 그린다하니 더 그런 것일까? 장발장이 걸었던 지하도의 모습이나 올리버 트위스트가 살았던 런던의 빈민가의 모습도 안보이지만 그래도 강렬한 색감의 일러스트에 책장을 가볍게 넘겨보게 되는 것이 좋기는하다.


셜록 홈즈의 하숙집 베이커가 221번지의 이야기는 없지만 위대한 작가들이 그려낸 시대와 장소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게 된다.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작가에 대한 에피소드도 담겨있다. 읽은 문학작품의 이야기는 더 깊이 읽을 수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에 대한 이야기는 그 책에 대한 궁금증과 더불어 그 장소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난다. 현실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만들어 낸 가상의 세계 속 상상의 장소라 해도 현실 속에서 오히려 작가의 창조적인 상상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으면 누구든 완전히 다른 시대와 장소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7)라고 말하는데 일상적으로 문학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실제 문학 속 배경의 현실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허클베리 핀처럼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여행을 떠날수는 없지만 마크 트웨인의 고향 해니벌에서 작가의 유년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깊이있게 읽는다기보다 [문학 속 장소로 떠나는 여행 안내서],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한테 형편없는 특징들이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아.˝ 함께옥상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누가 너를.
너의 그런 면을 사랑하자마자 그 특징들이 짜잔 하고 좋은 게 되니까. 사랑받는 순간 너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라 귀여운 사색가가 되고, 동화 속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돼. 터무니없는 데이터에 집착하는 사람이아니라 철저하고 꼼꼼한 사람이 되지. 계속해서 실패하는 사람이아니라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는 거야 알겠어?˝ 그녀는 스테판에게 눈을 돌리며 물었다. 238





"행복해지려면 꼭 알아야 할 네 가지가 있어." 그녀가 말했다. 머리 위로 햇빛이 반짝이며 그녀의 얼굴 전체를 비추었다. "딱 네 가지야. 너를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 네가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도 없다는 것, 너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네게는 사랑할 능력이 있다는 것." -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울프의 내면에는 기민하고도 날카로운 어떤 부분이 남아있었어요.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나서 태평하게 자신에게 만족하며 지내는 사람의 조용한 행복 같은 것이요. 울프가 한 말 중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이거예요. 운명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든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작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벤이 문장을 대신 마쳤다.
오스트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혼자 미소 지었다. ˝맞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로 머그잔을 가져갔다.
오스나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울프의 뜻을 정말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하는 데 집착하느라 자신의 인생이 작다고 느끼죠. 울프가 한 말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큰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었어요. 울프는 ‘맞춤옷처럼 거슬리는 것 없는 삶을 살라는 얘기다‘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높이가 높은 인생이 아니라, 깊이가 깊은 삶을 살라는 뜻이었겠죠.˝

울프의 내면에는 기민하고도 날카로운 어떤 부분이 남아있었어요.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나서 태평하게 자신에게 만족하며 지내는 사람의 조용한 행복 같은 것이요. 울프가 한 말 중에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이거예요. 운명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든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요한 건 작은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벤이 문장을 대신 마쳤다.
오스트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혼자 미소 지었다. "맞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로 머그잔을 가져갔다.
오스나트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울프의 뜻을 정말로 알아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대부분 비교하는 데 집착하느라 자신의 인생이 작다고 느끼죠. 울프가 한 말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라, 자신만의 큰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이었어요. 울프는 ‘맞춤옷처럼 거슬리는 것 없는 삶을 살라는 얘기다‘라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높이가 높은 인생이 아니라, 깊이가 깊은 삶을 살라는 뜻이었겠죠." 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크레타섬에 있는 왕의 피로에 갇힌,
반은 사람이고 반은 황소인 괴수)를 죽이고 영광에 젖어 집으로 함해했습니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에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를 외딴 해변에 버릴 기회를 찾았지요. 그리고는 돛을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꾸는 걸 잊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에게 살해당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테세우스가 아버지한테 자기가 이기면 흰 돛을 달겠다고 했거든요. 이 모든 것으로 보아 눈에 보이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테세우스의 아버지는 상심해서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으니까요. 단지 아들이 천을 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아무튼 테세우스의 배는, 노가 서른 개나 있고 어쩌고 한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배었다는데, 몇 년 동안 아테네 항구에 머물렀습니다. 아테네인들은 빛나는 사랑과 영예를 담아 그 배를 테세우스의 업적에 대한 증거로 보존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널빤지 일부가 썩고 몇몇 나사에는 녹이 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테네인들은 그것들을 빼고 새 널빤지와 나사를 끼워 넣었지요. 몇 년 뒤에는 널빤지 몇 개를 더 갈고 돛대도 갈았어요. 나중에는 로프와 돛도 갈았고요. 끔찍하게 곰팡이가 늘었거든요. 몇 년에 걸쳐 조금씩 교체하다 보니 결국 원래의 부품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르죠.
하지만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그 배가 정말로 이전과 같은 배인지 논쟁하기 시작했어요. 만일 같은 배라면 모든 게 교체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같은 배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 테세우스의 배가 아니게 된 시점은 정확히 언제냐는 거지요. 첫 번째 널빤지가 교체됐을 때? 100번째 널빤지가 교체됐을 때? 혹시 마지막 널빤지가 교체됐을 때는 아닐까요? 무언가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뭡니까?


당신도 알겠지만,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의 배만이 아니에요. 모두가 바뀌지요. 단지 속도가 느릴 뿐입니다. 물건도, 장소도, 사람도, 성격이라는 구조적 판들이 행동이라는 대륙덩어리 아래에서 움직이는 거예요. 모두가 분명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안정감을 느끼고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세상은 변화하고 반응하며 인과의 법칙에 응답하고 있어요. 배에서 태어나 한 번도 그 배를 떠나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우리는 우리가 고정된 채로 남아 있다고 확신하지요. 오히려 다른 모든 것이 우리 주변을 항해하며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어요.
바로 우리가 테세우스의 배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널빤지로 오래된 널빤지를 교체합니다. 사소한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노출된 결과 지속적으로 변하지요. 그러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는 건가요?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글 수는 없는 것처럼, 같은 사람을 두 번 만나는 일은 불가능할까요?
당신은 당신이 정말로 어제의 벤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 전의 그 벤과 말입니다.
어쨌건, 최소한 당신 안의 널빤지 하나는 그때 이후로 교체되었는걸요.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의 ‘나‘가 무엇인지,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그 무엇보다도 우리 내면의 변화입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오직 우리가 인식하는 자신과 달라질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할 때, 우리가 정말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감히 믿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 정체성 내면의 한 부분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어쨌거나 변화를 무척 바라고 있지요.
95-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형이 여성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에 의해 집행되었다는 사실(두 여성에 의한 살해는 실질적으로 이 그림이 유일하다)은 정치적 행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하나라면 개인적인 원한이나 임무일 수 있지만, 살인자가 두 사람이라면 공동체를 대변할 수있다. 폭정으로부터 아테네를 구원하고 고대 그리스 폭군을 살해했던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톤처럼, 플리니와 알베르티는 이들을 시민 정신의 모범이라 칭했다˝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처단한 것은 자신의 민족 공동체를 대신한 정치 행위이지만, 아르테미시아 그림에서의 공동체는 여성이다. 행위의 주체가 남성을 제압하는 강인한 육체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남성 권력에 맞선 여성 저항을 상징하는 은유 단계로 올라선다. 케이트 밀릿이 ‘성 정치학‘(요즘 용어로는 젠더의 정치학)이라 명명했던 것이 전쟁이나 선거만큼 심각하고 근본적인 일종의 정치 갈등임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국정과 마찬가지로 젠더에서도 정치적 싸움은 근본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관점 때문에 생겨나며, 젠더에 대한 태도 역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분화되었다. 1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