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형이 여성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에 의해 집행되었다는 사실(두 여성에 의한 살해는 실질적으로 이 그림이 유일하다)은 정치적 행위를 뜻하기 때문이다. 살인자가 하나라면 개인적인 원한이나 임무일 수 있지만, 살인자가 두 사람이라면 공동체를 대변할 수있다. 폭정으로부터 아테네를 구원하고 고대 그리스 폭군을 살해했던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톤처럼, 플리니와 알베르티는 이들을 시민 정신의 모범이라 칭했다˝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를 처단한 것은 자신의 민족 공동체를 대신한 정치 행위이지만, 아르테미시아 그림에서의 공동체는 여성이다. 행위의 주체가 남성을 제압하는 강인한 육체의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이 그림은 남성 권력에 맞선 여성 저항을 상징하는 은유 단계로 올라선다. 케이트 밀릿이 ‘성 정치학‘(요즘 용어로는 젠더의 정치학)이라 명명했던 것이 전쟁이나 선거만큼 심각하고 근본적인 일종의 정치 갈등임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국정과 마찬가지로 젠더에서도 정치적 싸움은 근본적 이슈에 대한 다양한 관점 때문에 생겨나며, 젠더에 대한 태도 역시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분화되었다.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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