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수학 공식 -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18가지 방정식
크리스 워링 지음, 고현석 옮김 / 21세기북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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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수학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뜬금없이 주말에 있었던 마라톤 경기 얘기를 하시며 무심코 티비를 보다가 마라톤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백미터를 몇초쯤으로 달릴까 궁금해 계산을 해봤더니 21초쯤이라 하셨던가.. 달리기를 못하는 나는 그저 내 전력질주가 마라톤선수들은 두시간이 넘는 시간을 평균적으로 달리는 속도구나,라며 감탄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세상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누군가의 전력질주는 백미터도 버겁지만 누군가에게는 두시간이 넘는 시간일수도 있고 그것이 또한 능력의 최고치일수도 있고 또 노력일수도 있고.

아마 '세상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라는 것은 그렇게 수학적으로 낯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걸 배우게 되지 않으려나,하는 기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가장 현실적으로 와 닿는 것은 예금이자의 복리계산식이려나? 아름다운 세상을 이해하는 수학공식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아름다운 수학 공식이니 내게 필요한 부분이라면 그것이 곧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며 웃었는데 사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는 흥미를 갖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뒤로 넘어갈수록 방정식을 이해하고 푸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이론적인 개념만 이해하고 슬쩍 넘어가곤 했다. 달리는 기차를 따라잡는 속도를 계산하는 시간에 이미 기차는 떠나버리고 말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달까. 하지만 계산식의 결과물을 얻는 것과 논리적으로 계산식을 유출해내는 것은 또 다르니까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수학의 방정식은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학을 잘 하는 것과 각도와 거리 힘의 조절을 통해 당구대의 공을 잘 맞추는 것은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 체화된 경험을 통해 쌓은 당구실력만큼 눈짐작으로 수학공식을 이용해 당구공을 치는 것도 좋은 실력이 될 수 있었다는 친구의 말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드니, 수학의 무쓸모를 이야기하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해주고 싶어진다.


피타고라스의 정리외에는 거의 들어본적이 없는 오일러의 방정식, 드레이크 방정식 등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복리이자 계산식이라거나 외계인이 존재할 확률,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각도, 스턴트맨이 가속이 붙은  샌드백을 가장 멋지게 차낼 수 있는 샌드백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등의 이야기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게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방정식과 여러 법칙들을 설명하며 미지수의 값을 구하는 과정이 설명되어 있는데 천천히 잘 읽어보면 수학을 잘 모른다해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책의 앞머리에 수학 방정식의 기본 개념이해가 설명되어 있어서 - 정말 기본중의 기본인데, 나는 수학식에서 괄호를 빼면 무조건 순서대로 계산을 해도 다 맞는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우치며 수학의 기본이 없다며 좀 부끄럽기도 했다. 사실 단순계산은 어렵지도 않고 그 어렵지도 않은 걸 또 계산기가 해 주니 그리 큰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방어선을 뚫고 들어 온 좀비 하나가 한번에 두 사람을 물어 좀비화시켰을 때 인간과 좀비의 대결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방정식으로 풀어내며 결국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는 그 스토리만으로도 재미있었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여러 데이터를 통해 바이러스의 전파 속도와 방어체제애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수학방정식의 쓸모에 대해 더 크게 와 닿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이 바로 "원주율 파이(π)가 생존의 파이(pie)가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유머코드를 확실히 이해하게 해 주고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주율 파이를 생존의 파이로 바꾸고 파이를 나누는 과정에서 틀린 방정식을 들이밀며 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검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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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개정판이 출판되었다고 했을 때 책을 장바구니에 넣어두고는 지금까지 구입하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문득 진짜 내 어머니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 나는 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야금야금 들어보고 싶어져서 책구입을 미뤄두고 있다. 야심차게 정리하며 들어야하는데 도무지 그에 집중하며 시간을 낼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황해도 겸이포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47년 7월에 서울로 오셨다. 짐작한바와 같이 38군사분계선이 그어져있었고 이북에서 넘어올 때의 이야기만 해도 어마무지하다. 할아버지는 1년전 홀로 서울로 내려오셨고 나머지 식구들이 모두 남쪽으로 넘어오는데 어머니는 삼촌 한명과 안내자를 통해 산으로, 할머니는 또 다른 삼촌을 데리고 바닷가길로 새우젓장사를 하며, 큰 삼촌은 만주를 통해 멀리 돌아 서울에서 다 만날 수 있었다고한다. 

어머니는 해주에서 바로 붙잡혀 수용소에 갇히고 - 그곳에서 개밥같은 밥을 줘서 못드셨다고... - 어떻게 풀려나서 (아마 안내자가 돈으로 해결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보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시 남하를 시도하는데 또 걸려 총알이 날아오니 삼촌은 북쪽으로 도망가고 어머니는 안내자와 무사히 산을 넘어 서울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 만주로 돌아온 삼촌의 이야기와 총을 피해 북으로 다시 돌아가 인민군대장 아들을 둔 게모할머니가 숨겨주고 돈을 마련해줘서 남쪽으로 보내주셨다는 이야기까지 하면 더 엄청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오래전에 삼촌들은 세상을 떠나셨다. 


아무튼 다행히 온가족이 서울에서 다 만나고, 당시 협신제약회사 직원이었던 할아버지가 제주파견근무를 하고 계셔서 48년 8월에 제주 입도를 하셨다.















세상에나 48년이라니! 死삶 항쟁의 봉기가 있었던 해가 아닌가. 

물론 어머니는 해안에서 살게 되어 직접적인 접점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폭도'(!)들이 오면 아버지가 이발쟁이라고 말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리 큰 위험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에게 4.3에 대해 물어보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다만 이덕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해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을 때 좀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덕구가 사살된 후 목에 숟가락이 꽂힌 상태로 광장에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이덕구의 시신은 형틀에 묶여 주머니에 숟가락이 꽂힌채 관덕정 광장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4.3에 대해 들어본적도 없다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들었을 때,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말을 꺼냈다가 '속솜허라!'라는 한마디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큰며느리가 맘에 차지 않을 때마다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빨갱이년'이라는 욕을 하셨다는 이야기도.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는 내게 그렇게 다가온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삶으로 먼저 다가왔기에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을 읽으며 한강작가가 이 소설을 '지극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하는 그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시선을 갖고 있기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가 직접적인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데 오랜 세월 빨갱이년이라는 가해자의 시선을 받으며 살아왔고 그래서 또 간접적인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는 생각을 하면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게 되지 않을까.

















20세기를 살아낸 여자들에게 바치는 21세기의 사랑,이라 말하는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는 그 내용자체가 신선함을 넘어서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는데 그 신선함에서 나는 또 어머니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36년생이신 어머니는 6.25때 약품조달을 위해 서울로 가셨던 할아버지가 행불자가 되셔서 서울로 진학할 예정이었던 진로를 바꿔 중등4학년이 아닌 교원양성과정을 배워 교사가 되셨다. 

사실 내가 태어나면서 퇴직을 하시고 밭일만 하셨기때문에 난 어릴적에 그저 무지랭이 밭일을 하는 어머니라고만 생각했었다. 역사도 모르고, 공부에도 관심이 없어보이고 내 학업성적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으시던 어머니라고만 생각했는데.

해방전에는 역사를 배우지 못했고, 북쪽에서는 교실에 스탈린, 레닌 사진이 걸려있었고 영어는 더더구나 배워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을때야 비로소 내 편견의 시선을 깨달았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컴퓨터를 배우시겠다며 한글문서작성하는 걸 배우러 동사무소 교육센터에 등록하시고 나도 작성하지 않는 규정문서작성법을 예습복습하며 가르쳐달라실때는 그저 귀찮기만 했었는데 어느새 또 영어를 배우시겠다며 날마다 알파벳 쓰기 연습을 하시는 걸 보며 나는 어머니를 안닮았나보다...라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알파벳을 처음 배울때 b와 d를 헷갈려하는것처럼 어머니도 똑같이 거꾸로 쓰신 걸 보고 재밌어 웃었더랬는데 어느샌가 알파벳을 읽기 시작해서, 화단에 적혀있는 영어를 읽어 화원 아저씨를 놀라게 하셨었다. 


어린시절엔, 굴곡의 역사속에서 어머니는 어쩌면 그냥 무난하게 잘 지내오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손꼽히는 부잣집에서 험한일해보지 않은, 더구나 아들부잣집의 막내딸이었으니 오죽했겠나, 하지만 현대사 속에 녹아든 삶의 모습은 결코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겠다. 

이렇게 얼렁뚱땅 술렁거리면서라도 어머니 이야기를 한조각 적어놓으니 오늘은 좀 마음 한구석이 편해진다. 병원에 다녀올때마다 점점 소멸되어가시는 듯한 어머니 생각에 마음 한켠이 불안했었는데... 긴 세월을 강건하게 잘 살아오셨다는 생각을 하니 뭐가 두렵고 뭐가 아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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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배우는 의학의 역사 - 개정판 한빛비즈 교양툰 14
장 노엘 파비아니 지음, 필리프 베르코비치 그림, 김모 옮김, 조한나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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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를 책 한 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화로 그려진 이 책은 가벼운 의학의 역사 개론서로 읽기에는 딱 좋은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그 의학의 역사 일반적인 내용뿐 아니라 예상치못한 법의학, 사회보장제도와 병원의 역사, 교회와 의학의 관계, 간호사, 식이요법에 이르기까지 의학과 관련된 과학의 발전과정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제도까지 다 아우러 설명하고 있다. 

해부에서부터 시작해 절단에 의한 감염예방, 혈액순환의 이론에서 시작된 장기의 기능과 헌혈, 장기이식의 역사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 연구와 우연히 발견한 방사선 등의 내용은 현대의학에서는 정말 당연하게 생각되는 치료가 어떻게 지금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있으며 살려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때 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하는 삶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는데 - 물론 지금도 역시 그러겠지만 험하고(!) 힘든 수술을 해야하는 외과의사는 줄어들고 있는 현재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과거 외과적 의술이 이발사들의 역할이었다는 것이 좀 이해가 된다. 라틴어를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이발사들이 폄하되기는 했지만 칼 사용을 가장 잘하는 그들이 모든 외과 수술을 하고, 가톨릭 교회내에서 수도사들의 의학적 외과수술을 금하게 되면서 의학에서 외과수술이 완전히 분리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고 보면 외과의사들은 한편으로 정말 뛰어난 기술자(!)라고 할수도 있을까, 싶다. 


베살리우스는 집 앞의 교수대에서 교수형을 당한 시신들이 까마귀밥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인체의 분해 과정에 흥미를 갖고 의학을 공부하여 인체의 해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1543년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여 학술적으로 '해부학'을 학문으로 승화시켰다고 한다. 사실 이렇게 인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부터 의학의 발달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런 업적을 가진 그 역시 살아있는 사람을 해부했다는 혐의로 처형되고 말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병원을 자주 다니다보니 아무래도 관련있는 내용을 더 자세히 보게 되기도 했는데 신장의 장기 이식에 대한 내용이라거나 와파린에 대해서는 또 새롭게 알게 되었다. 마침 오늘 어머니 모시고 정기검사를 했는데 한달동안 와파린을 전혀 안드신 수치가 나온다며 약을 제대로 복용하고 있는지를 거듭 확인하였다. 매일 챙기지는 못하지만 약은 잊지않고 드시는 걸 알고 있기에 혹시나 이제 와파린의 약효가 전혀 없게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불안해지고 있다. 그보다 백배는 비싼 약에 대한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아마 어머니에게는 고려되는 범위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고보니 이 책은 알고 나면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의학의 역사 개론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화로 대충 그려 쓴 글 같지만, 곱씹을수록 대단한 내용이 담겨있다. 

한가지 사족을 붙이자면 여성의사에 대해서도 하나의 장을 할애하여 말하고 있는데 최초의 여의사로 알려진 아테네의 아그노디케는 그 유능함을 알아본 시민들에 의해 의술을 계속 행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모든 것을 다 의미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일반인인 나로서는 사회보장제도와 인간중심의료와 병원의 역사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있는데 의학의 발달이 인류모두에게 이로운 것이 되기 위해서는 특히 더 보완되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에 살면서 백신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확실한 치료제가 개발되었다고 했을 경우 일부 부자들, 부자 나라만 치료제를 점유하고 제약회사가 이익을 위해 고액판매만을 하게 된다면 의학의 발달이 무슨 의미가 되겠는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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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사에서 외과의사까지

중세 초기 의학은 성 베네딕토의 뜻에 따라 주로 성직자가 맡았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수도사들은 몸이 아닌 정신을 구원하는 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피가 싫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1130년 클레르몽 공의회, 1131년 랭스 공의회, 특히 1163년 투르 공의회와 1215년 라트랑 공의회), 실제로 가톨릭교회는 의학교육을 받은 종교인들의 외과수술 행위를 금지했다.
이후 당시 유일하게 칼날을 사용할 수 있던 이발사들이 외과수술을 맡았고, 이시대의 유명한 수술도 전부 이들이 해냈다.
이처럼 의학과 외과수술은 오랫동안 분리되었다. 의학은 학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외과수술은 라틴어도 못 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기술 노동자의 몫이었다.
수 세기 동안 수많은 투쟁을 거친 뒤에야 이 외과의사들은 ‘수술하는 의사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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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
아쿠쓰 다카시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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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가게'라는 말은 생소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의 말이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 도서관은 책을 빌리거나 자료를 찾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곳, 북까페는 책이 있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까페의 성격이 조금 더 강한 곳이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대놓고 '책 읽는 가게'라니, 어떤 공간일지 궁금해졌다. 사실 내게는 북까페가 익숙하고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비슷하기는 하지만 '책 읽는 가게'라는 것은 좀 더 책을 읽는 데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 휴가철에 북까페가 좀 밀집해있는 거리를 걸으며 구경을 했었는데 - 말 그대로 구경이었다. 그때 확실히 서점과 북까페의 구분은 마실 수 있는 차를 판매하는지 아닌지에 따라 할 수 있는 것 같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강하더라도 그저 좀 더 조용한 북까페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떠올려보니 그곳이 이 책에서 말하는 '책 읽는 가게'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자릿세라 표현되는 비용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이 책은 실제로 책 읽는 가게인 후즈쿠에를 운영하고 있는 아쿠스 다카시가 쓴 글이다. 1부에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책을 읽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커피 한 잔을 시켜도 손님이 시간을 신경 쓰지 말고 편히 보냈으면 한다. 그것을 온 힘을 다해 환영하겠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라는 데서 멈춰버리는 현실에 대한 도전장"(132) 같은 느낌으로 후즈쿠에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후즈쿠에의 운영방침에 대한 안내서가 실려있는데 열람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운영에 필요한 직원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외에는 오롯이 책을 읽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지"(242)를 만들어보겠다는 뜻으로 개인적인 프로젝트인 후즈쿠에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와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비슷한 형태의 책 읽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좋다. 


책을 읽는 것이 비생산적으로 보인다,라고 했지만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생산활동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다른 의미에서 책읽기는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책을 읽다 졸음이 오면 잠을 자고 맘껏 편한 복장과 자세로 책에 집중하는 것이 좋아 가장 최적의 장소는 내 방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새로운 분위기에서의 집중을 위해 까페나 다른 트인 공간을 찾기도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재미있는 책을 잡으면 어떤 공간에서든 못읽을 일은 없는 것이겠지만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늘 한결같지는 않을테니 후즈쿠에처럼 책 읽는 가게가 있다면 일부러 찾아가 볼 생각이 있다. 어쩌면 언젠가 내가 공공의 영역처럼 그렇게 편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들어 맘껏 책을 읽고 싶은 이들을 초대하게 될지도 모르지않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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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12-04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찔리네요...

책 닑는 기계라 -

chika 2021-12-05 09:28   좋아요 0 | URL
어머나, 책읽는기계라니, 그렇다면 최첨단 인공지능이실까요? 사실 그보다 더 뛰어나시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