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 끝 바다
닐 게이먼 지음, 송경아 옮김 / 시공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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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의 끝에는 바다가 보이던가?

내가 어렸을 때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던 몇 권 안되는 책들 중에는 빨강머리 앤도 있었는데 어릴때 본 그 책은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나는 앤이 오랫동안 앙숙처럼 지내던 길버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부분에서 앤이 '길 모퉁이'를 돌면 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강렬한 느낌으로 남아있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비밀의 화원에서는 환청처럼 들리던 '화원으로'라는 외침이 있는 부분에서, 그러니까 모든 일의 해피엔딩으로 치닫고 있는 그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화원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나중에 그런 화원을 갖는 것이 소원이 되었었다. 그 어린 시절의 추억때문이었을까? [오솔길 끝 바다]는 닐 게이먼이라는 이름을 보기 전부터 왠지 바다가 들린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오솔길을 지나 햇살에 반짝거리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길의 끝에 있는 바다는 어딘가에 실존해 있는 공간이면서 또 우리가 상상속에서 그려보는 낭만과 멋의 세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동화속' 환상의 세계는 아니다. 청소년 문학 아닌가, 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건 환상문학, 어른들을 위한 판타지의 세계를 그려낸 이야기가 맞는 것이다.

오솔길 끝 바다라는 것은 그 깊이도, 크기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왠지 내게 익숙한 그 오솔길의 끝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 바다속으로 빠져들어가도 안심하게 될 것 같은, 그런 매력적인 바다의 느낌이었다.

 

"아무도 자기 내부의 진짜 모습을 보이진 않아. 너도 그러지 않잖아. 나도 안 그러고. 사람이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해. 누구나 그래.  ......그리고 어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어른들도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의 모습이 아니야. 바깥에서 보면 그들은 크고 배려심도 없고 언제나 자기가 뭘 하는지 알고 있지. 하지만 안에서는,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야. 네 나이와 다르지 않아. 진실은, 어른이란 없다는 거야. 이 넓은 세계 전체에 하나도 없어

나는 어른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말이 진짜인지 궁금했다. 그들은 모두, 사실은 어른의 몸에 싸인 어린아이들일까? 그림도 대화도 없는 지루하고 긴 어른 책들 사이에 숨겨진 어린이 책 같은?" (184-185)

 

판타지가 아이들의 세계같은것은 어른들도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어른의 몸에 싸인 어린아이들이기 때문일까? '오솔길 끝 바다'에는 그러한 어른들의 슬픈 자화상 같은 모습이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솔길 끝 바다는 한 중년의 남자가 장례식에 참석한 후 갑자기 어린 시절에 지내던 집과 근처를 헤매다니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돌아다니다 불현듯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가 일곱살때 집에 세들어 살던 오팔의 광부가 어느 날 아버지의 차를 몰고 가 자살해 숨져있는 것을 봤던 기억, 그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경찰들이 왔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레티가 그를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음식을 주고, 어머니 지니 헴스톡 부인과 오팔 광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모를텐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현실과 마법의 세계를 오가고 있는 듯 한데....

 

사실 실제 이야기는 그 이후에 벌어지는 대양으로의 여행(?)이 주된 줄거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판타지처럼 환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을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의 의미와 무의식중에 받았던 상처들을 하나씩 치유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어렸을 때는 내가 본 장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성인이 되어 불현듯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 의미가 다시 되새겨질 때, 과거의 기억들은 재편성되어가는.. 그런 과정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들이 사실인가요?"

"네가 기억한 거? 아마도 대부분은. 각각의 사람들은 사건을 모두 다르게 기억해.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어도 그것을 똑같이 기억하지는 않을거다. 그 사람들이 같은 곳에 있었든 아니든 말이야. 서로 바로 옆에 서 있는 두 사람도, 모든 것의 의미에 대해서는 대륙만큼 떨어져 있을 수 있지"(278)

 

지니 헴스톡 부인의 말에 의하면 주인공은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곳을 찾아갔었고, 그에 대한 기억은 또다시 헴스톡 노부인에 의해 잘려나가 꿰매어졌을 것이다.

처음 읽으면서 그 의미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런 의미를 찾기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워 어느새 생각하기를 멈추고 그대로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버리며 책을 다 읽었다. 새삼스럽게 책의 내용을 다시 떠올리려하고 보니 바로 엊그제, 금세 다 읽은 책이지만 자꾸만 책장을 다시 뒤적이고 싶어지고 다시 한번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처음엔 오솔길 끝 바다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빠져들어갔지만 이제는 오솔길 끝 바다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 안에는 무엇이 잠겨있을지 궁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레티는 너를 위해 아주 큰 일을 했어. 그 애는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기가 한 일이 가치가 있었는지 알고 싶었을거야. ...... 나는 그때 내 심장에 대해 생각했다. 그 안에 아직도 문의 차가운 일부분이 있는지, 그리고 있다면 그것이 선물인지 저주인지 궁금했다."

 

내게 있어 레티와 같은 존재가 있었을까? 나의 기억들은 나를 조금씩 더 좋은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을까? 나의 심장이 차가워지지 않고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일까?

책을 읽다 문득문득 떠오르게 되는 물음들에 헴스톡 부인의 말을 빌어 자신에 대한 긍정과 삶의 가치를 다시 새겨보게 된다.

"사람으로 사는 일에는 합격이나 불합격은 없단다"

그러니 나의 심장이 선물인지 저주인지 궁금해하기보다 그녀의 말을 믿자. "넌 지난번에 보았을 때보다 더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무엇보다도, 네 안에 새 심장이 자라고 있어"(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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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만에 출간된 『샤이닝』의 후속작,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3억 독자를 둔 세계적인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의 최신작!

스티븐 킹 신간도서『닥터슬립(Doctor Sleep)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어서와 황금가지 온라인 서점 서평단은 처음이지..?!!)



▶ 도서소개 


광기 어린 아버지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포가 아닌 치유를 보여주는 작품, 『닥터 슬립』 출간!


스탠리 큐브릭 감독, 잭 니콜슨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잘 알려진 소설 『샤이닝』의 후속작으로서, 36년 만에 출간된 속편 『닥터 슬립』(전2권).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브람 스토커 상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며 화제가 되었다. 


『샤이닝』에서 살아남은 소년 대니가 중년이 된 후를 그리는 『닥터 슬립』은 기존의 '공포'에서 탈피하여 초능력을 가진 소녀와 그녀를 죽여 영생의 기운을 받으려는 괴집단과의 쫓고 쫓기는 스릴을 담는 한편, 알코올 중독자로 인생의 끝에 섰던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회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어 재미와 감동을 함께 준다. 


『시녀 이야기』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닥터 슬립』에 대해 "스티븐 킹의 여러 걸작에서 드러난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극찬하면서,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는 너대니얼 호손과 에드거 앨런 포에서부터 이어진 미국 호러 문학의 본질이라고 평했다.



 

 

 

 


 


▶ 줄거리


어린시절 오버룩 호텔에서 겪은 악몽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댄(대니)은 작은 마을에서 호스피스 일을 한다. 그의 특별한 능력 '샤이닝'은 임종을 앞둔 이들이 편안하게 눈감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닥터 슬립'이라 불리운다. 그러던 어느날 오래 전부터 그의 주변을 맴돌던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내며, 도움을 요청한다. 


전국을 떠돌며 샤이닝을 가진 어린 아이를 고문하고 죽여 거기서 나온 기력을 먹고 사는 괴집단 '트루 낫'이 다음 목표로 소녀를 선택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샤이닝을 가진 소녀의 목숨과 영혼을 구하기 위해 댄은 초능력자 집단인 '트루 낫'과 생존을 위한 전쟁에 나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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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역병보다 냉혹한 악마가 되고 싶은가? 그대들이 나를 따르고 신을 숭배하듯 저들도 마찬가지다. 그대들의 아이들과 친구들이 그대들에게 소중한 것처럼 저들도그러하다. 그러니 소중한 인류의 피가 이 땅에 흐르게 하지 말라.

 

그대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때가 오면, 지금 그대들이 살해한 사람들의 망령이 그대들의안식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설 것이다. 잔혹한 이방인들이여, 무기를 버려라. 죄 없는 이들의 피로얼룩진 손을 보라. 그대들의 영혼이 고아들의 절규를 짐지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대들을 격파할 수 있다. 정의가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대들의 얼굴도 하얗게  질리고 있으며, 무기를 들 힘도 사라지지 않았는가? 동포여, 무기를 내려라!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어라! 우리는 그대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죄를 뉘우친다면 우리는 사면과 원조, 동포에 대한 연민을 베풀 것이다. 그대들도 우리처럼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대들은 우리에게 소중하다. 그대들 하나하나가 이곳에서 벗을 찾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적이 인간이어서야 되겠는가? 전 인류의 숙적인 역병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런데도 불필요한 살생을 저지르면서까지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가 역병보다도 동족에게 잔인해져야 한단 말인가?

126-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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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고,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물론 충격을 받기는 했다. 모든 이들이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워했으며, 인류가 겪고 있는 수난에 고통스러워했다. 자연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자연이, 늘 곁에서 벗처럼 위안을 주던

 자연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이 이제껏 힘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내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연이 가진 진정한 힘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자연이 손가락만 가딱해도 우리는 벌벌 떨어야 했다. 자연이야말로 전세계의 주인이었다. 산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공기로 세상을 옭아매며, 인류의 생존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도 자연이었다. 자연은 그 힘으로 인간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었다. 자연이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이 세상을 생명이 말라버린 먼 우주로 집어던지면, 인류는, 그리고 인류의 모든 노력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12)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뀌어가는 2073년. 

과거에 씌여진 책이라는 생각에 2073은 오타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건 과거에 씌여진 미래 소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르귄의 책을 읽을때도 그랬지만 그렇게 먼 미래처럼 느껴지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우리가 바로 맞닥뜨리고있는 현실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생각없이 1권을 읽는동안 이 책의 내용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이제 2권에서 본격적으로 '최후의 인간'이 말하려는 내용으로 들어가려는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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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후의 인간을 읽는 틈새에 읽은 닐 게이먼의 신작. 정신없이 읽어버리면 현실과 대양속 세계의 경계를 놓쳐버릴수가 있어서 급하게 읽어나가면서도 문장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아니고. 마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 어쩐지 우리의 추악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사는 일에는 합격이나 불합격은 없다"라는 말에 폭풍같은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저자 이름만 대면 다 알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신간소설들. 아, 물론 두 도시 이야기는 좀 오래전에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번역되어 나온 작품의 출간을 기준으로 신간을 이야기하니가 뭐.

 

 

 

 

 

 

 

 

 

요즘 페북에 들어가면 가자지구에 대한 이야기...가 떠서. 많은 것을 잊고 그저 헤헤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일상에 줄 하나를 그어주고 있다. 그렇게 일깨워줘야만 그렇게 깨어나는 의식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의 비만과 그들의 기아,역시 비만이 아니라 다이어트라는 허울좋은 건강행위로만 인식하고 있는데다가.

오늘은 개독의 땅박기인지 뭔지에 대해 들었다. 그래, 이거 예전에도 한번 들었던 이야기인데 불교의 성지에 들어가서 땅박기를 하고 되도않는 기도를 하면서 지옥불 운운하던 애들. 걔네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애들인지. 세상은 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에 하나는 책을 많이 읽어도 책 읽은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 사람, 한 권의 책만 읽어서 그것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 혹 서너권의 책을 더 읽었다 하더라도 자기 사고방식으로만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 독서자에 대한 비판일까, 싶다가도 이건 완전 개독이야기구나 싶은. 하아.

 

 

 

 

 

 

 

 

앤서니 브라운의 신간. 알사탕을 주고 있다니 슬그머니 고민된다. 아침부터 장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어서인지 온갖 책들이 더 마구마구마구 보이기 시작. 아, 근데 이거 종일 들여다보느라 다른 일을 못하고 있어. 일단 퇴근까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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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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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소문을 먼저 들어버렸다. 그리고 '한강을 능가한 한강의 소설'이라는 평까지 읽어버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 책을 집어들기 어려웠던 것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아릴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좀 더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겠지만 그러함에도 역시 그 역사와 마주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회피한다는 것이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올곧게 마주하여 진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역사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고 책을 펼쳐든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잇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기를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4-135)

80년 당시 광주에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떠올릴수가 없다. 무작정 피하고만 싶었던 과거의 역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의 4.3 이나 광주의 5.18이나 내게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피의 역사,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이 가득한 아픔의 역사일뿐이며 그에 대한 역사적 의의만 찾으려고 했던 이야기일뿐이었는데,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여전히 나는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마음속과 머리속이 뒤섞이면서 나의 이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다만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서 그 너머에 담겨있는 진심과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할뿐이다. 

 

엊그제 시사인의 기사중에 세월호에 관한 글을 봤다. 유가족의 슬픔을 알고 있고 그 엄청난 사건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 이야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핑계일뿐이다.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보상 이야기를 하고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니 그만 끝내자,라는 것은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왜 수많은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졌어야 하는가에 대한 규명없이 모든 것을 덮고 잊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제주의 4.3도 그렇고 광주의 5.18도 그렇고, 이제 국가적인 배상이 이뤄진다고 하니 해결되어가는 것 아닌가 라는 말은 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역사를 잊고 살자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엄청난 사건들을 그렇게 덮어두면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항쟁 당시 게엄군에 맞서 싸우던 현장의 모습을 중학생 소년 동호의 눈에 비춰진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을뿐이지만, 과거의 일이 현재에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으며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깨달음을 너무 가슴아프게 헤집어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대로 이미 각오를 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괴롭고 슬프고 아픈 마음을 어쩔수가없다.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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