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소문을 먼저 들어버렸다. 그리고 '한강을 능가한 한강의 소설'이라는 평까지 읽어버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 책을 집어들기 어려웠던 것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아릴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좀 더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겠지만 그러함에도 역시 그 역사와 마주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회피한다는 것이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올곧게 마주하여 진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역사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고 책을 펼쳐든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잇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기를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4-135)

80년 당시 광주에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떠올릴수가 없다. 무작정 피하고만 싶었던 과거의 역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의 4.3 이나 광주의 5.18이나 내게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피의 역사,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이 가득한 아픔의 역사일뿐이며 그에 대한 역사적 의의만 찾으려고 했던 이야기일뿐이었는데,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여전히 나는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마음속과 머리속이 뒤섞이면서 나의 이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다만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서 그 너머에 담겨있는 진심과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할뿐이다. 

 

엊그제 시사인의 기사중에 세월호에 관한 글을 봤다. 유가족의 슬픔을 알고 있고 그 엄청난 사건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 이야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핑계일뿐이다.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보상 이야기를 하고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니 그만 끝내자,라는 것은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왜 수많은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졌어야 하는가에 대한 규명없이 모든 것을 덮고 잊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제주의 4.3도 그렇고 광주의 5.18도 그렇고, 이제 국가적인 배상이 이뤄진다고 하니 해결되어가는 것 아닌가 라는 말은 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역사를 잊고 살자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엄청난 사건들을 그렇게 덮어두면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항쟁 당시 게엄군에 맞서 싸우던 현장의 모습을 중학생 소년 동호의 눈에 비춰진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을뿐이지만, 과거의 일이 현재에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으며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깨달음을 너무 가슴아프게 헤집어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대로 이미 각오를 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괴롭고 슬프고 아픈 마음을 어쩔수가없다.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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