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리는 분수로 걸어가면서 어머니의 팔짱을 꼈고, 자신이 열여섯번째 생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깜짝 놀랐다. 그날은 언제나 그 자리에, 돌리가 성장한 하루로 남을 것이다.
길은 여러 가지라는 사실, 어머니의 방식은 그저 하나의 길이라는사실을 깨달은 날로, 딱히 옳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틀린 길도 결코 아니다. 그저 앞에 놓인 많은 길 중 하나일 뿐인 것이다.
22, 돌리의 어머니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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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런 일게 되더군요. 진실이란." 그가 암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때로는우리가 예상한 것과 완전히 다른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거든요."
일단 공중에 뿌린 향수는 아무리 노력해도 되돌려 담을 수 없는법이니까요. 엘레노어는 머릿속으로 대답했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었다. - P472

데, 하지만 엘레노어가 가장 바란 게 뭐였을까요?"
"진실을 밝히는 거요."
"아뇨. 온 세상에 진실을 알리는 거죠. 엘레노어는 진실을 세상에 알리지 못하고 죽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그녀 대신 진실을 알릴 수 있을 거예요." 그레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랑 같이 가요."
- P519


정말 그랬을까? 그레이스는 생각에 잠겼다. 라켈의 도움을 받아 전쟁부의 기록보관소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레이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밀어냈다. "왜 전쟁이 끝났는데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거죠?"
"다들 과거를 잊고 싶어 하잖아요. 전쟁을 주도한 국가도 주변국도 전부 변했고, 러시아는 갑자기 소비에트연방이 됐고,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만드는 데 일조한 독일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처형당하는 대신 원자폭탄 만드는 일에 투입되었으니까요. 영국 정부에서도 모든 일이 이대로 묻히길 바랐을 거예요."
"엘레노어만 제외하고요. 그녀는 이대로 진실이 묻히는 걸 바라지 않았죠. 그녀가 평생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좌시하고, 의도적으로 독일군이 무선통신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놔둔 거죠. 엘레노어는 그 사실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어요."
- P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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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여자들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레고리가 반문했다.
"남자 요원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는 겁니다. 엘레노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한 일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비밀 메시지를 전하는 급사 역할부터 무선통신기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 외에 파르티잔을 무장시키고 다리를 폭파하는 겁니다." 실제로 여성들은 아이를 돌보는 데서 벗어나 지역 의용군으로 활약하며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대공포 (항공기 사격에 사용되는 앙각이 큰 포 옮긴이)를 담당하고 비행기를 조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여자 요원을 프랑스에 보내자는 개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인가?
- P26

수긍이 됐다. 애초에 여기 온 건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테스가 성장해서 살아가야 할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마리가 여기 온 이유였다. "혹시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봐. 그리고 성인이 된 딸에게 엄마가 전쟁 중에 어떤 일을 했는지 설명하는 모습을 생각해 봐. 아니면 우리 엄마가 하신 말씀처럼 너 스스로 자랑스러움을 느낄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든가."
그 말이 맞아. 마리는 지금까지 아버지 그리고 리처드에게 휘둘리는 인생을 살았고, 그래서일까, 소녀 때부터 자신이 별 가치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머니는 그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지만, 마리가 느끼는 무력감을 뒤바꿀 정도의 힘은 발휘하지 못했다. 이제 마리는, 물론 성공한다고 가정한다면, 딸 테스를 위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기회를 얻었다. 처음에는 테스가 마음에 걸려서 이 일을 해야 할지 주저했지만, 이제는 테스라는 존재가 그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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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다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죽음은 어느 한순간에 들이닥칠 수 있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지금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십여년 전에 퇴근하는데 구급대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해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할 때 계단을 걷다가 순간 다리가 떨려 넘어질 뻔 했던 그때의 감정은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어머니 팔에 뼈를 이어주는 쇠가 박혀있는 것처럼 여전히 그 놀라움은 잊을수가 없다. 그래서 휴가지로 여행을 떠났다가 어느 한순간 가장 친밀했던 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걸 감당해야하는 파비엔느의 마음이 어떨지 절반쯤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별 생각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 그 목이 잘려버린 모습은 지금도 자꾸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서 무섭다. 피가 질퍽한 장면보다 깔끔하게 단면으로 잘린 목이 없는 모습때문에 다른 글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조금씩 또 다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책을 받고 그림이 어떤가 잠깐 들춰보다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느닷없는 충격에 이어 스며들듯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과 위로가 '죽음은 이제 충격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추모하고 슬픔을 견뎌내어 추억하게 되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 그래픽 노블을 읽기 전의 느낌은 그런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약혼자의 죽음, 그것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느닷없이 떨어진 간판에 목이 잘려버린 어이없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살아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생각과는 달리 무표정하게 약혼자의 죽음을 겪지만 그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라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파비엔느가 약혼자 롤랑이 계획한대로 휴가지에서의 일정을 보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머리위에서 냐부끼는 종이 한 장에도 두려움에 떨고 롤랑 없이 숙소에 머물며 혼자 관광을 하고 식사를 하며 보내다 현지인 파코와 마주치게 되고 그와의 만남은 또 다른 위안으로 이어지는데...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의 표현으로 파비안느의 감정과 파코가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마음과 그 변화의 과정들이 다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물론 가장 좋았던 것은 느닷없는 죽음의 충격이 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받아들이는 것의 과정과 느낌이다. 

머물다, 라는 의미가 다른 것이겠지만 내게는 삶에 머물다가 그 의미중에 하나라고 느껴졌다. 급하게 한번 읽은 느낌은 그런것인데 또 다시 이 책을 펼쳐보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한 컷이 또 보일지 모르겠다. 

내 슬픔과 상관없는 세상의 즐거움이 아이러니가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것처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며 책장을 펼치게 되는 그래픽노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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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지친 몸과 마음을 셀프가드닝하기 위해, 12개국 10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1cm 시리즈> 김은주 작가와 유럽, 미국, 호주를 넘어 전 세계 65만 팔로워의 사랑을 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워리 라인스가 국경과 시차, 언어의 장벽을 넘어 콜라보로 만났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어떤 책인가 다시 들여다봤더니 1센티미터의 작가와 호주 작가의 콜라보로 완성된 가드닝 책이라니!! 가드닝과 은유가 담긴 삶의 이야기가 참 좋을 것 같은데 그림도 좋고.








여름은 장르소설의 계절인데 내눈에만 안보이는걸까? 아니면 예전만큼 책읽기에 전념을 하지 않아서일까. 아무튼 마음이 널뛰듯 왔다갔다 열정에 넘치려 하다가도 금세 식어버려서 책,이 다 뭔 소용인가...하게 되기도 하고. 그냥 그렇네.

"파괴의 역사에서 굳건히 살아남은 건축물은 '생존자'로 마땅히 불려야 한다"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책을 읽고 싶기는 했는데. 관광명소로만 알려진 건축물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이라니. 더.  근데 이번호 시사인은 신간소개보다 검찰과거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진상조사 결과보고서 - 김학의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이라 되어있는 커버스토리가 더 관심간다. 이건 집에 들고가서 읽어봐야겠다.








반듯한 정원을 가꾸는 장점도 있지만 베란다라서 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식물의 세계도 있다. 우왕좌왕하며 원예에 실패한 기록을 통해 자연스레 원예란 무엇이고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 주는 충만감이란 무엇인지 알려준다. 

안그래도 요즘 시들거리는 다육이들을 모두 옥상으로 올려서 옥상정원을 꾸며볼까 고민중이었는데. 옥상으로 올리면 딱 문제되는 건, 자주 볼 수 없다는 거? 집안에서 오며가며 식물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느껴야하는데 옧상으로 올려버리면 물 주러 가거나 일부러 올라가지 않으면 못보는 거 아닌가. 마당이 조금 더 넓었으면, 하는 생가은 욕심일지. 뭐 아무튼. 체르노빌 히스토리는 이미 읽은 책이라 더 반갑.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전 해야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불편함이라, 그건 제 몫이 아니에요."

"이런 질문이 적절한지는잘 모르겠지만"이라고 운을 뗀 질문은 "자신의 작업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생각은 안 해보셨나요?"라고 끝맺는다. "아니요, 단 한번도" 라고 단호하게 입을 연 이정식 작가는 "불편함은 듣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행. 혹은 듣지 않는 자들의 몫이거나"라고 대답한다. HIV감염인 당사자인 이정식 작가는 '죽어서도 이름을 밝힐 수 없어 김무명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에;도 김무명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들은 모두 같은 검은 얼굴이었어. 어둠도, 그림자도 아니야.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유령들인거야"









나라가 당신 것이니.

칠순 노인이 된 첩보요원인 주인공에게 생애 마지막 임무가 주어지고, 왕년의 동료들과 함께 시간을 거스르는 기이한 여정에 나서는 내용의 장편소설. 지나간 시대의 인물둘이 지금의 누추한 현실 탓에 자꾸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펀 오브 잇.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후 세계일주 비행에 도전하다 실종된 전설적 비행사의 자서전. 하늘로 날아오르는 도전에 나섰던 항공 역사 초기 여성 비행사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유쾌하고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세계를 움직인 돌,을 꽤 흥미롭게 읽었는데 최근에 그 두번째 이야기로 세계를 매혹한 돌이 나왔다. 아니, 실은 지금 책을 읽으려고 펼쳤다. 요즘 눈건강이 안좋아져서 그런지 자꾸 글이 아른거려서 책을 읽으려면 안경을 벗어야하는데 그게 또 사무실에서는 편치 않아서 대충 슬쩍 펼쳤는데.

이제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가서... 또 집에 가면 잊어버리고 다른 책을 집어들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피곤하지 않고 일이 바쁘지 않은 요즘 닥치는대로 책을 좀 많이 읽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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