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다 에프 그래픽 컬렉션
루이스 트론헤임 지음, 위베르 슈비야르 그림, 이지수 옮김 / F(에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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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어느 한순간에 들이닥칠 수 있는 것이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지금 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십여년 전에 퇴근하는데 구급대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전화를 해 어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할 때 계단을 걷다가 순간 다리가 떨려 넘어질 뻔 했던 그때의 감정은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어머니 팔에 뼈를 이어주는 쇠가 박혀있는 것처럼 여전히 그 놀라움은 잊을수가 없다. 그래서 휴가지로 여행을 떠났다가 어느 한순간 가장 친밀했던 이가 사고로 죽었다는 걸 감당해야하는 파비엔느의 마음이 어떨지 절반쯤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별 생각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 그 목이 잘려버린 모습은 지금도 자꾸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서 무섭다. 피가 질퍽한 장면보다 깔끔하게 단면으로 잘린 목이 없는 모습때문에 다른 글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조금씩 또 다른 이야기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책을 받고 그림이 어떤가 잠깐 들춰보다가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다 읽어버렸다. 느닷없는 충격에 이어 스며들듯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과 위로가 '죽음은 이제 충격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추모하고 슬픔을 견뎌내어 추억하게 되는 것임을 느끼게 되었다. 


이 그래픽 노블을 읽기 전의 느낌은 그런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약혼자의 죽음, 그것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느닷없이 떨어진 간판에 목이 잘려버린 어이없는 죽음을 마주했을 때, 살아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생각과는 달리 무표정하게 약혼자의 죽음을 겪지만 그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라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파비엔느가 약혼자 롤랑이 계획한대로 휴가지에서의 일정을 보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머리위에서 냐부끼는 종이 한 장에도 두려움에 떨고 롤랑 없이 숙소에 머물며 혼자 관광을 하고 식사를 하며 보내다 현지인 파코와 마주치게 되고 그와의 만남은 또 다른 위안으로 이어지는데...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의 표현으로 파비안느의 감정과 파코가 자신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마음과 그 변화의 과정들이 다 느껴지는 것이 좋았다. 물론 가장 좋았던 것은 느닷없는 죽음의 충격이 나를 황폐하게 만들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삶을 받아들이는 것의 과정과 느낌이다. 

머물다, 라는 의미가 다른 것이겠지만 내게는 삶에 머물다가 그 의미중에 하나라고 느껴졌다. 급하게 한번 읽은 느낌은 그런것인데 또 다시 이 책을 펼쳐보면 이전에 보지 못했던 한 컷이 또 보일지 모르겠다. 

내 슬픔과 상관없는 세상의 즐거움이 아이러니가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것처럼.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며 책장을 펼치게 되는 그래픽노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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