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브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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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는 바다로 가볍게, 조용히, 편안히 흘러간다. 이제 더는 운하도 경계도 레귤레이션도 없다. 강물은 자신을 활짝 열고 전 세계의 물과 대양에, 그 깊은 곳에 사는 피조물들에게 자신을 내맡길 뿐이다. 마린은 시에서 노래했다. ˝주여, 나의 죽음이 거대한 바다로 들어가는 강물의 흐름 같게 하소서.˝



이것이 끝은 아닐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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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4.3으로 시작해서 4.16과 만난다. 무고한 삶들이 이유도모르고 무력하게 떠난 날들이다. 동시에 오해받고 통제되고 혹은 감추어진 삶이자 죽음들이다. 그들의 참혹한 아픔을 어루만지고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시선은 존재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삶과 세상을 떠난 모든 죽음들에게 그들의 삶을 그들의 것으로 돌려주고 지켜주는 봄이었으면 좋겠다. 천지에 흐드러진 꽃조차 자기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자기 이름으로 저물지 않던가. 154


내용을 보지 못하는 사물에게 시간은 그저 단순히 흘러가는 사물일 뿐이다. 흐르는 시간을 그냥 흘리지않고 무언가로 만드는 알림은 내 안에서 울려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시간은 내 것이 된다. 시간예약 알림이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러하다. 171




*******

시간은 흘러. 또 다시 봄이 오고 있는데
나는 나의 시간을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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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
에리카 산체스 지음, 허진 옮김 / 오렌지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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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인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사고사인 줄 알았지만 거기에 또 다른 무엇인가 숨겨있다 라는 내용에 무조건 장르소설인가보다 하고 책을 읽어보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언니의 얼굴을 봤을 때 그 얼굴에는 웃음기가 보였다니. 훌리아가 그런 언니의 죽음에 담겨있는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것일까, 싶었는데 이 책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미국의 멕시코계 이민가정에서 자라 부모님 곁에서 집안일을 도우며 착실하게 살아가던 스물두살의 올가가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죽어버린다. 늘 엄마의 완벽한 딸처럼 보인 언니의 죽음에 가족 모두가 힘들어하지만 훌리아는 그 이상으로 일상이 힘들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곁에서 정숙하게 지내며 가정에 도움이 되는 이쁜 언니와 많은 것이 대조되는 훌리아는 언니 올가를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언니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쏟아지는 엄마의 또다른 관심이 힘들다. 


짧게 이야기한다면 멕시코계 이민가정의 십대 소녀의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소설 안에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의 삶의 애환에서부터 동성애자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 부모와는 다른 문화에서 태어난 자녀세대와의 문화차이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훌리아를 둘러싼 가족, 친구, 친척, 학교.. 그녀의 일상 범위안에서 생활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한두문장씩 툭 튀어나오는 표현들을 읽을때마다 솔직히 흠칫하고 놀라게 된다. 훌리아는 세상에 적응하기 힘든 가난한 불법이민가정의 못난 여자애,여서 세상만사 불평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온갖 부조리함과 불평등에 대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당당해보이는 훌리아 역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지않아 부모를 떠나 대학교에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기 힘들어하지만.


좀 쌩뚱맞을지 모르지만, 훌리아가 상류층 백인 코너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서, 나는 이 이야기의 배경이 시카고라는 것에서 놀랐다. 시카고는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의 도시,라는 내가 가진 편견이 떠올라서였다. 부자동네에 부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는 그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산다는 것을 잊어버린 나의 편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소설은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용이 산만해지지는 않는다. 훌리아를 중심으로 그녀가 어떻게 성장해가는지, 또 다른 의미에서 어떻게 완벽한 멕시코 딸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고 있을뿐이다. 훌리아의 성장 이야기는 그녀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가 완벽한 멕시코 딸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순간만큼은 그저 평온한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고 싶을뿐인 것인지도. 

성장소설을 읽으며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은 해피엔딩이 불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더 좋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래도 역시, 희망을 갖고 살아갈만한 곳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으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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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돌아가시고난 후,
마당에 화사하거나 소박하게 피어나던 꽃들이 절로 피어난것이 아님을 깨달았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느날 어머니마저 병원에 몇달 입원하신동안 더 많은 집안일들이 저절로 해결되는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언젠가 어머니의 부재를 느끼게 될 날이 오리라는 생각은.
회피하고만싶지만. 그럴수록 더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할텐데 오늘도 여지없이 피곤하다며 잠만자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출근해서 화분을 들여다보니 드디어 꽃받침이 맺혔다. 이제 노랗게 해바라기 피어날 것이다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에게 들고 가서 나도 이렇게 잘 키운 식물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데,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아버지가 밥상에 풋고추 따서 올려주던 것처럼 꽃봉오리 맺힌 날 무덤가에 올려놓으면 기뻐하시려나.
나이 먹어 처음 식물을 기르면서 그리움을 배운다. 해바라기를 다 키우고 나면 제대로 된 화분에 씨앗을 심어볼까. 조금 더 용기가 나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베란다에 고추 모종을 심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그리운 것 있는 분들은 화분에 씨앗 한번 뿌려보면 어떨지. 어떤 그리움은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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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골목에는




이제 그 길은 없다. 나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살고 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길은 거미줄처럼 가늘게 얽히고 꼬인 길을 툭 터서 하나로 만든 길이다. 한 사람도 지나가기 어려웠던 길을 이제는 자가용 두어 대가 나란히 달리기도 한다. 공중변소앞에서 다리를 꼬고 줄 설 필요도 없다. 칸칸이 늘어선 방들이모두 층층이 올라가 아파트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미로 같은 골목에서 길 한 번 잃지 않고 살았던 나는 눈 한 번 휘두르면 끝이 보이는 넓은 길에서 오히려 막막하다. 꿈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좁아 담벼락이 어깨를 스치는바로 그 길이다. 걸을 때마다 길 위에서 길이 그리워 나는 더러 눈물이 나기도 한다. 42









어렸을 때는 눈이 내리면 마냥 신나고 즐겁더니 나이를 먹으면서는 마음이 애틋해진다. 그게 "괜찮다" 소리를 듣고 난 이후부터 생긴 감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소리와 함께내 서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누구도 듣지 못하는 소리를 비로소 들으면서, 내 삶도 한결 깊어졌다. 춥고 흐린 날, 그게 창밖의날씨는 내가 처한 인생이든 마음을 낮추면 세상 모든 만물은, 그 안에 깃든 마음은 다 괜찮아질 수 있다. 나는 우선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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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06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