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둥글고 푸른 배를 타고 컴컴한 바다를 떠돌다 대부분 백년도 되지 않아 떠나야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나.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우주의 나이에 비한다면,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지구의 나이에 비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은 너무도 찰나가 아닐까. 찰나에 불과한 삶이 왜 때로는 이렇게 길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나무로, 기러기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인간이었던 걸까.
원자폭탄으로 그 많은 사람을 찢어 죽이고자 한 마음과 그 마음을 실행으로 옮긴 힘은 모두 인간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인간이다.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인간이 빚어내는 고통에 대해, 별의 먼지가 어떻게 배열되었기에 인간 존재가 되었는지에 대해 가만히 생각했다. 언젠가 별이었을, 그리고 언젠가는 초신성의 파편이었을 나의 몸을 만져보면서,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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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은 책의 서문을 읽기도 전에 찾아온다. 편안하게 책읽을 시간을 마련했다는 뿌듯함, 괜찮은 책 한 권의 묵직함에 기댄 안락함, 책 속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보충하는 감각적인 디자인의 즐거움. 첫 장을 다 읽기도 전부터 이미 한 권을 다 읽은 것 같은 만족감을 넘어선 포만감마저 느끼며 감각 충전으로 충만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쉼을 찾기 위해서라도 종이책을 손에 쥐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가장 흔한 노력 중 하나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여기저기 보이는 곳에 두거나, 어디든 들고 가보는 것이다. 여행 가방 속에, 잠자리 옆에, 사무 공간 어디든 놓아두고 자투리 시간을 내어 한두 장이라도 들춰보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완결되지 않은 쉼의 시간은 생활 곳곳에 툭툭 흔적을 남긴다.
읽기 매체로써 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것은 활자 외의 여러 매체가 생겨나면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독서 인구로 알 수 있다지만, 사물로써 종이책은 자신만을 위해 준비된 비밀스럽고 안락한 공간과 시간을 떠올리는 매개체로 여전히 사랑받는다. 책이 없는공간은 마감하지 않은 공간처럼 여겨질 정도다. 분명한 건 이 휴식과도 같은 사물이 허락한 시간을 우리는 늘, 어디서든 찾으려 애를 쓸 거라는 것이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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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4-20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 책을 손에 들고 표지를 만져보는 기쁨. 책장을 휘리릭 넘기면서 안에 쓰였을 이야기들을 어림짐작해 볼때의 기대감....독서의 즐거움은 책의 서문을 읽기도 전에 온다는 것 동감입니다. ^^

chika 2022-04-20 16: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는... 읽지도 못하면서 자꾸만 새 책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때문이라며 위안을 얻고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점점 공간을 채우는 것들과의 관계와 그 중요성에 대해 생각합니다. 애정하는 것들로 채워진 공간에서의 정서적 안정감과 휴식의 정도 등의 삶의 질은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의 그것과큰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가구는 비교적 부피가 크고 사람과의 접촉면적과 빈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공간과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사용자의 정서에 크게 관여합니다. 접촉이라는 측면에서 촉감과 질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사람과 사물 간에도 일종의 스킨십, 애정의 교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나 좋아하는 향 하나로 기분이 좋아지듯 가구가 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서 삶의 즐거움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63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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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이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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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와 서인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 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진우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서수진, 골드러시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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