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머 에프 그래픽 컬렉션
마이크 큐라토 지음, 조고은 옮김 / F(에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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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에이든이 가톨릭계 사립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심하고 중학교 친구들과의 마지막 보이스카웃 캠프를 떠나 그곳에서의 체험과 성장을 그려낸 그래픽 노블이다. 

고등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곧 그에 대한 자신의 책임감을 가져야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앞으로 펼쳐질 에이든의 고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고 그래서 더 좋았다.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 - 아시아계 혼혈이라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거친 운동보다는 손을 움직이거나 걸그룹댄스를 더 좋아하거나 목소리마저 일반적인 남자애같지 않은 그런 모습때문에 고민이기도 했지만 그런 모습을 놀려대는 아이들에게서 에이든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며 에이든을 좋아하고 그와 친밀함을  맺는 친구도 있다. 

어떤 면에서 에이든을 힘들게 하는 건 그를 놀려대는 친구들이 아니라 오히려 에이든에게 친절하고 그를 감싸주는 마음 따듯한 캠핑메이트 일라이어스다. 자꾸만 일라이어스에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생겨나고 그 감정을 억누르던 에이든은 결국 참지못하고 친구의 뺨에 뽀뽀를 해 버리고 만다. 그 이후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리고, 늘 자신을 응원해주던 펜팔친구 바이올렛마저 에이든의 정체성을 드러낸 편지를 받고 답장을 하지 않는데......


가톨릭교리의 엄격함으로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교육을 받은 에이든이 머리로 이해하는 성정체성과 성장하면서 체험하고 느끼는 성정체성의 차이에서 오는 혼란스러움과 불안감이 잘 묘사되어 있고 친구들과는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고 절친 일라이어스마저 잃게 되었다는 생각에 결국 파멸을 선택하게 되어버리는 과정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빨려들어갈듯이 책장을 넘겼다. 

'플레이머'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던 것은 규범적이라거나 보수적인 전통에 대한 부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 이 이야기가 실제 저자의 체험인것처럼 - 에이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을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이든 또래의 아이들, 부모, 선생님들은 에이든의 이야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만약에 내가 에이든과 같은 아이를 만난다면 말투도 걸음걸이도 행동하는 것 모두가 하나의 일률적인 규범 아래 똑같이 평범해야 인생이 편해진다(185)고 말하는 어른일까...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야 '플레이머'의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찾아 볼 생각을 했다. 이중의 의미로 쓰여졌을까?

흑백으로 이어지는 그래픽 노블인 플레이머는 타오르는 불꽃의 색만을 붉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보니 책 표지에 있는 에이든의 모습이 단순히 스카웃의 인사인 줄 알았는데 세 손가락 인사이다. 불복종과 저항의 의지. 헝거게임에서 유래 된 것 같은데 미얀마인들의 저항의 모습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세 손가락 인사.

이런 것들이 많은 상징과 의미를 짧은 글과 그림에 담아내는 그래픽노블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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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30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픽노블에 진짜 좋은 책들이 많은거 같은데 저는 아직 제대로 본게 얼마 없네요. 이 책도 기억해둬야겠습니다.

chika 2022-05-30 22:09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페르세폴리스,라는 그래픽노블도 사두고는 아직 읽지 않았네요. 좋은 책들이 정말 많아요 ^^

chika 2022-05-30 22:09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나서 찾아봤는데 페르세폴리스,라는 그래픽노블도 사두고는 아직 읽지 않았네요. 좋은 책들이 정말 많아요 ^^
 

˝정착민이셨나요?˝
그녀가 움찔했다. ˝그래, 정착민이었지.˝
˝왜 케냐였죠?˝
그녀는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멈추었는데, 그러고서 다시 말을 시작할 때 보니 집중을 하느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질문을 그런식으로 받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구나. 왜 다른 곳이 아니라 케냐냐고 물으려던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만일 그런 뜻이었다면, 케냐든 다른 어디든 상관없었다고 말해야 할 테니까. 우리는 유럽인이었어. 이세상 어디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지. 네 말은 왜 굳이 가서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것을 빼앗았느냐는 그리고 왜 그것을 우리 것이라고 부르며 이중성과 무력을 앞세워 번영을 누렸느냐는 뜻이겠지. 심지어 우리에게 권리가 없던 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못 쓰게 만들면서까지 말이야.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니? 음,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에게 그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는 권리가, 검은 피부와 곱슬곱슬한 머리를 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던 장소들에 대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여겨지던 시대를 살았으니까. 그것이 바로 식민주의의 의미였고, 우리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게 해준 방법들을 우리가 모르는 척하게끔 회유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어. 215







 나는 그들의 자신감에 놀랐고, 내가본 것이 엘레케가 자신의 부모님이 케냐에서 보였다는 자기 연민의 오만함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다른 무엇, 그러니까 그들이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여긴 신념의 가치에 대한 느긋한 확신 같은 것이었는지 궁금했다. 심지어 식민주의의 추악함을 겪고도, 나치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비인간적 행위를 겪고도, GDR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기인한 수모를겪고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던 신념에 대한 그 지속적인 열정을 지금의나라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고, 그들의 태도를 드레스덴의 그 아파트의 축소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매력적인 기이함으로만 여겼다. "삶은 우리를 그렇게 끌고 다니지‘
한번은 엘레케가 말했다. "우리를 이렇게 끌고 가다가, 우리를 뒤집어서는 또 저렇게 끌고 가지." 그녀가 말하지 않은 것은,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가 합리적인 무언가에 매달리게 된다는 말이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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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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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녀를 내가.. 죽였던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책을 읽은 것 같은데 그런 나의 기억력을 의심하며 책을 펼쳐들다가 익숙한 듯한 전개에 그저 일본 가옥 구조의 보편성으로 인해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거라 위안하며 계속 읽었는데 결국 그 위안마저 거짓이 될판이다. 

짧은 기록이라도 있을까 몇몇 페이퍼를 뒤적여보기는 했지만 증거가 될만한 기록은 전혀 나오지 않고 다만 내 기억속에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는 몇가지의 에피소드는 점점 뚜렷해지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내가 이 책을 읽은 것 이라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까마득히 몰랐다. 소녀를 죽인 범인이 ......


예전에는 하라 료의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에 선뜻 적응이 안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읽으며 사와자키 탐정의 이야기가 왜 이리 좋은가 하고 있다. 아마도. 어줍잖게 범인이 누구일까,에만 몰두하여 책읽기를 하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사와자키 탐정의 행동과 말 모두 의미있는 것이라 여기며 문장을 곱씹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이야기의 시작과 중심은 언제나 그렇듯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이다. 탐정사무소로 걸려 온 사건 의뢰 전화를 받은 사와자키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의뢰인을 찾아 간다. 그런데 뜻밖에도 의뢰인은 요구대로 6천만엔이 담겨있다며 트렁크를 그에게 전하며 딸을 돌려달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는 그에게 경찰이 들이닥치고, 의뢰인이라고 전화를 건 사람의 딸이 유괴되었으며 몸값을 와타나베 탐정사무소에서 온 사람에게 전해야 무사히 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이며 사와자키는 그런 사건에 휩쓸리게 된 것이다. 이후 유괴범의 몸값 전달에 응하는 심부름꾼으로 사와자키가 지명되었고, 유괴범과의 공범 의심을 받는 사와자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몸값을 운반하다 폭행사건에 휘말리며 몸싸움을 하는 와중에 돈가방을 분실하게 된다. 유괴된 소녀의 생사여부도 파악할 수 없고, 몸값은 분실되었으며, 공범의 누명을 벗기는 했지만 범인의 행방을 찾을 수 없는 사와자키는 유괴된 소녀의 외삼촌으로부터 또 다른 사건 의뢰를 받는다. 자신의 자식들이 혹여 금전적인 이유로 유괴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통해 사와자키는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유괴된 소녀의 행적을 추적해가는데......


내가 죽인 소녀는 서둘러 가지 않고 천천히 관련된 인물들과 그에 얽힌 사연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전체적인 이야기의 틀을 볼 수 있는 짜임새가 있는 탐정소설이다. 문장속에서 냉소적이면서도 재치있는 사와자키를 느낄수도 있으며 오래 전 작품이라 전화를 통한 사건과 실마리, 쪽지, 미행, 종이비행기 통신(!) 같은 것들이 나오는데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시 읽으면서도 범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해 마지막까지 긴장감으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 축복받을만한 기억상실일지니!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범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탐정놀이보다는 어떻게 범인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사족(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서평쓰기를 미뤄두다가 마침 드라마 그린마더스클럽의 최종회를 보다가 범인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공통점을 발견해 둘을 연결해보고 싶었지만 이건 스포일러 없이는 얘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포기했다. 이제 소설도 다 읽어버리고 드라마도 끝나버리고 이번 주말에는 어떤 재미를 찾을까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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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형식적인 권유를 못 본 척했고, 대신 값나가는 가구로 가득한 그 방을 무례하게 둘러보았다. 편안한의자, 양탄자, 양각한 청동 장식이 달린 검은 알미라, 금박 거울. 그 물건들은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과 용도를 지닌 것들이었지만 그 방에 난민들처럼 서 있었고, 자부심과 위엄의 요구로 가만히 서 있긴 했지만 다른 곳에 있었을 때 더 활기찬 삶을 누렸을 것같았다. 누군가의 영리함과 부를 기념하기 위한 환하게 불을 켜고 로프를 친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물건들처럼 보였다. 약탈품처럼 보였다.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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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는 짓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모두 잘못이지만, 적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잘못을 선택하려는 노력은 해야겠죠.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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