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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 되풀이되는 연구 부정과 '자기검증'이라는 환상
니콜라스 웨이드.윌리엄 브로드 지음, 김동광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2월
평점 :
<지구상의 완두콩 Pease on Earth>
태초에 멘델이 있었다. 그의 외로운 생각이 외롭게 여겨지더라. 그래서 그는 '완두콩이 있으라' 하셨다. 그러자 완두콩이 태어났고, 보기에 좋더라. 그리고 그는 완두콩을 밭에 심고 "늘어나고 증식하라. 형질이 나뉘고 스스로 구색을 맞추어 분류되어라"라고 완두콩에게 말하셨다. 그러자 완두콩이 그렇게 되었고, 보기에 좋더라. 이제 멘델은 콩을 거둬들이게 되었고, 둥근것과 주름진 것으로 나누었더라. 그리고 그는 둥근 것을 우성, 주름진 것을 열성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부르기에 좋았더라. 그런데 멘델은 450개의 둥근 완두콩과 102개의 주름진 완두콩이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것은 보기에 좋지 않았더라. 법칙에 따르면 주름진 완두콩 하나에 3개의 둥근 완두콩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멘델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셨다. '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시여! 적들이 이런 짓을 했습니다. 적이 밤의 어둠을 틈타 내 밭에 나쁜 완두콩을 뿌렸습니다' 그리고 멘델은 격노해서 탁자를 세게 내려치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저주받고 사악한 완두콩들이여, 나를 떠나라. 그래서 저 바깥의 어둠 속에서 게걸스러운 쥐와 생쥐에게 먹히라' 그러자 그대로 이루어졌고, 300개의 둥근 완두콩과 100개의 주름진 완두콩만이 남았더라. 그것은 보기에 좋았더라. 아주 아주 보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멘델은 논문을 발표했더라. (47-48)
뜬금없이 책의 인용문을 길게 적어놓은 건, 그저 이 이야기가 재밌어서만은 아니다. 성경의 창조설화를 빗대어 쓴 이 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면 이 책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뜻을 파악하게 될 것이다. 과학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일 것 같지만 성공을 위한 과학자들의 처세술로 많은 데이터가 조작되고 연구도 없이 논문이 작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 책을 무의식적으로 읽으며 왜 자꾸 오래전 이야기만을 사례로 늘어놓는건가, 생각하다가 책의 출판연도를 확인해봤다. 1982년에 씌여진 책이었다. 25년전에 쓰인 책인데, 구체적인 사례들의 연도만 빼면 이건 완전히 황우석사태(?)를 겪은 후 2006년도에 출판되었다고 해도 별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니, 사실 몇백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과학이 발전한만큼 그 안에서 자기기만 행위와 세상의 성공을 위한 처세로 논문을 조작하고 베껴쓰고, 연구결과를 조작하여 과장하고,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연구원의 연구성과를 훔치는 행위 역시 발전해왔고 정화작용없이 점점 더 방대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한숨짓게 하는 것이다.
보고서야 믿는 세대인 21세기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조차 '복제된 줄기세포가 있느니라'라는 말 한마디에 아무런 검증없이 '믿습니다'를 외치는 어리석음을 땅을 치며 억울해하거나 분노하기는커녕 여전히 믿습니다만을 되풀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걸치고 있다고 해서 삶의 다른 영역에서 그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열정, 야망, 좌절에 초연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과학은 직업이다. 그리고 이 직업에서 경력을 쌓고 출세하기 위한 수단은 과학문헌 형태로 발간된 논문이다. 성공을 거두려면, 연구자는 가능한한 많은 논문과 정부 지원금을 확보하고, 대학원생을 고용할 수 있는 실험실과 재원을 구축하고, 논문발표로 성과를 높이고 과학상을 수여하는 위원회의 관심을 끌 수 있어야 하고,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정되고, 훗날 스톡홀름으로 초대받는 희망을 가져야한다'(28) 이것이 또한 오늘날 출세가도를 달리는 과학자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성공의 길인 것이다. 정말 과학은 객관적인 것인가?
사실 이 책을 몇년전에 그냥 읽었다고 한다면 조금은 충격적이라고 느끼면서도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 사는 그들의 거짓은 분명 밝혀지겠지..라는 생각만 하고 술렁 넘겨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저 멀리 딴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현실감을 못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얼마전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라는 책을 읽었고 그래서 더욱 더 이 책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 현재도 버젓이 활개치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름없는 연구원이던 헬레나 바쉬리히트 로드바드는 자신의 논문이 도용되고 연구성과를 뺏긴 채 소리없이 묻힐뻔 했지만, 적극적으로 끈질기게 사실 조사를 의뢰해 결국 진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그녀는 연구원을 그만두고 내과의가 되어 병원을 개업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예전만큼 연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252)
진실로 과학은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인류를 위한 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논문의 질보다 양이 높이 평가되고, 연구성과의 결과물인 논문이 먼저 발표되어야 하고, 지위상승을 위한 권력관계에서 공동연구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박사들에게 밀려나 초라해져버리는 연구원들의 연구성과....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더 언급하려니 점점 더 비참한 몰골로 변해가는 과학적 업적들이 무너져버리고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하는 것 같아 이쯤 끝내야겠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한 사례들은 개인적인 사기 행위와 과학계의 관행들,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언급일 뿐이다. 모든 연구자들과 모든 과학자들이 다 자기기만 행위를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나마 위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좀 씁쓸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