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고,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물론 충격을 받기는 했다. 모든 이들이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워했으며, 인류가 겪고 있는 수난에 고통스러워했다. 자연은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자연이, 늘 곁에서 벗처럼 위안을 주던

 자연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이 이제껏 힘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내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연이 가진 진정한 힘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자연이 손가락만 가딱해도 우리는 벌벌 떨어야 했다. 자연이야말로 전세계의 주인이었다. 산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공기로 세상을 옭아매며, 인류의 생존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것도 자연이었다. 자연은 그 힘으로 인간들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게 할 수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도 있었다. 자연이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이 세상을 생명이 말라버린 먼 우주로 집어던지면, 인류는, 그리고 인류의 모든 노력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12)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바뀌어가는 2073년. 

과거에 씌여진 책이라는 생각에 2073은 오타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건 과거에 씌여진 미래 소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르귄의 책을 읽을때도 그랬지만 그렇게 먼 미래처럼 느껴지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우리가 바로 맞닥뜨리고있는 현실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생각없이 1권을 읽는동안 이 책의 내용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이제 2권에서 본격적으로 '최후의 인간'이 말하려는 내용으로 들어가려는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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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후의 인간을 읽는 틈새에 읽은 닐 게이먼의 신작. 정신없이 읽어버리면 현실과 대양속 세계의 경계를 놓쳐버릴수가 있어서 급하게 읽어나가면서도 문장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는 아니고. 마법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환상이 아니라 어쩐지 우리의 추악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그렇지만.

"사람으로 사는 일에는 합격이나 불합격은 없다"라는 말에 폭풍같은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저자 이름만 대면 다 알수밖에 없는 작가들의 신간소설들. 아, 물론 두 도시 이야기는 좀 오래전에 나온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번역되어 나온 작품의 출간을 기준으로 신간을 이야기하니가 뭐.

 

 

 

 

 

 

 

 

 

요즘 페북에 들어가면 가자지구에 대한 이야기...가 떠서. 많은 것을 잊고 그저 헤헤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일상에 줄 하나를 그어주고 있다. 그렇게 일깨워줘야만 그렇게 깨어나는 의식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나의 비만과 그들의 기아,역시 비만이 아니라 다이어트라는 허울좋은 건강행위로만 인식하고 있는데다가.

오늘은 개독의 땅박기인지 뭔지에 대해 들었다. 그래, 이거 예전에도 한번 들었던 이야기인데 불교의 성지에 들어가서 땅박기를 하고 되도않는 기도를 하면서 지옥불 운운하던 애들. 걔네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애들인지. 세상은 참.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중에 하나는 책을 많이 읽어도 책 읽은 티가 하나도 나지 않는 사람, 한 권의 책만 읽어서 그것만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 혹 서너권의 책을 더 읽었다 하더라도 자기 사고방식으로만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 독서자에 대한 비판일까, 싶다가도 이건 완전 개독이야기구나 싶은. 하아.

 

 

 

 

 

 

 

 

앤서니 브라운의 신간. 알사탕을 주고 있다니 슬그머니 고민된다. 아침부터 장바구니를 들여다보고 있어서인지 온갖 책들이 더 마구마구마구 보이기 시작. 아, 근데 이거 종일 들여다보느라 다른 일을 못하고 있어. 일단 퇴근까지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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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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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소문을 먼저 들어버렸다. 그리고 '한강을 능가한 한강의 소설'이라는 평까지 읽어버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이 책을 집어들기 어려웠던 것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새로울 것이 없다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아릴수밖에 없는 마음으로 봐야하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이지만 그래서 어쩌면 좀 더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겠지만 그러함에도 역시 그 역사와 마주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회피한다는 것이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올곧게 마주하여 진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역사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아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고 책을 펼쳐든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 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받은 사람들이 잇었고, 그들 중 일부가 그 기억을 지니고 우리들을 죽이러 온 겁니다.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란 것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선생도 인간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인간입니다.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기를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4-135)

80년 당시 광주에서의 삶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떠올릴수가 없다. 무작정 피하고만 싶었던 과거의 역사라고만 생각했는데 '지슬'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제주의 4.3 이나 광주의 5.18이나 내게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피의 역사,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이 가득한 아픔의 역사일뿐이며 그에 대한 역사적 의의만 찾으려고 했던 이야기일뿐이었는데,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여전히 나는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읽은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렵다. 마음속과 머리속이 뒤섞이면서 나의 이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다만 소설을 소설로 읽으면서 그 너머에 담겨있는 진심과 진실을 바라볼 수 있기를 희망할뿐이다. 

 

엊그제 시사인의 기사중에 세월호에 관한 글을 봤다. 유가족의 슬픔을 알고 있고 그 엄청난 사건을 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그 이야기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핑계일뿐이다. 지금까지도 그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보상 이야기를 하고 과거를 되돌릴 수 없으니 그만 끝내자,라는 것은 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왜 수많은 목숨이 한순간에 사라졌어야 하는가에 대한 규명없이 모든 것을 덮고 잊자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제주의 4.3도 그렇고 광주의 5.18도 그렇고, 이제 국가적인 배상이 이뤄진다고 하니 해결되어가는 것 아닌가 라는 말은 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역사를 잊고 살자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 엄청난 사건들을 그렇게 덮어두면 안되는 것 아니겠는가.

 

'소년이 온다'는 5.18광주항쟁 당시 게엄군에 맞서 싸우던 현장의 모습을 중학생 소년 동호의 눈에 비춰진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을뿐이지만, 과거의 일이 현재에까지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남겼으며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깨달음을 너무 가슴아프게 헤집어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대로 이미 각오를 하고 글을 읽기 시작했지만 괴롭고 슬프고 아픈 마음을 어쩔수가없다.

 

"그 경험은 방사능 피폭과 비슷해요, 라고 고문 생존자가 말하는 인터뷰를 읽었다. 뼈와 근육에 침착된 방사성 물질이 수십년간 몸속에 머무르며 염색체를 변형시킨다. 세포를 암으로 만들어 생명을 공격한다. 피폭된 자가 죽는다 해도, 몸을 태워 뼈만 남긴다 해도 그 물질이 사라지지 않는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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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과거가 어쨌든 간에, 나는 현재의 인간에게 문학이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책이 알려주는 광범위한 지식 없이 어떤 인간도 자신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없으며, 문학을 전제로 하지 않고선 인간의 어떤 도덕적 원칙도 확대되거나 진일보할 수 없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내게 책이란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세계였다. 책이 알려주는 지식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작가들의 철학적 견해를 비교하고, 책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실을 파고들었다. 각국의 서적들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책과 관련된 것들은 내게 취미일 뿐 아니라 인생의 진지한 목표가 될 수 있었다. (289)

 

 

 

 

 

역시 관심이 가는 건 헤세의 여행. 방금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로스트캣에 대한 이야기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 한여름에는 미스터리가 최고라는데 어째 올해는 그닥 많은 작품이 나오는 것 같지 않...은게 아니라 내가 많이 안읽고 있는 것이겠지. 한여름의 방정식도 여태 안읽었으니말이다. 그리고 사랑과 상실. 글쓰기. 그리고 또...

 

 

 

 

 

 

 

돌베개에서 나온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은 이렇게 긴 시리즈인 줄 몰랐다. 요즘 차를 닥치는대로 대중없이 마구 마셔대는 중이라 그런지 관심이 가기는 하는데. 물을 많이 마시면 좋다지만 너무 과하게 마시는 것도 그닥 좋은 듯 하진 않고. 차를 많이 마시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나는 조금씩 커피카페인이 몸에 안좋아지고 있어. 물론 정신을 각성시키며 말똥거리레 하는 힘은 더 강해졌지만 그 다음날 출근하고 저녁에 이르기까지 정신을 못차리니 그게 문제지. 잠을 몰아쳐자고 나면 며칠은 잠이 줄어들고 그 다음은 또 피곤해서 한꺼번에 몰아쳐서 잠만 자게 되고. 그러고보니 내 일상이 보이는구나.

 

 

 

 

 

 

 

 

책표지를 한꺼번에 모아두니. 이 책은 어떤 재미가 있을까 궁금하다. 반값,이라고 해서 얼마전에 테메레르를 덥석 구입했는데 이건 벌써 몇년째 연재중인것일까. 이젠 읽고 있는 책이 늘어지면 앞부분의 내용조차 가물가물해지는 형편에 몇년동안의 연재가 기억이 날리가 있을까. 사실 며칠전에도 명탐정 코난 83권을 주문했는데 도착한 책을 보니 82권이어서 .... 그나마 다행인것은 래핑을 벗겨내기전에 그걸 알아채고 반품했다는 거. 내 실수니 배송료를 물고나면. 아, 정말 주의력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도대체 왜 이러는건지. (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면서 모든 기능이 늘어지고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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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 6개국 30여 곳 80일간의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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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국 30여곳, 80일간의 고양이 여행.

말 그대로 이 책은 고양이를 찾아 떠난 세계여행이다. 고양이와 함께,도 아닌 고양이를 찾아서 세계여행을 떠난다니 얼마나 한가로운 것일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이름을 보면 괜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실 나는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어린 시절의 기억때문에 고양이가 무서웠다. 가만히 쳐다보는 눈동자도 그렇지만 소리없이 쓰윽 지나치며 높은 담장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것도 무서워 기겁을 했었다. 그런데 저자의 고양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면서 고양이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바꿔나가게 되었고 이제는 길을 걷다가 길냥이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쳐다보며 꼭 한번씩 불러보고 가곤한다. 그러다보니 예전이었으면 보지 못했을 고양이들의 인사도 볼 수 있었다. 앞서가던 고양이를 쳐다보다가 좁은 문틈으로 고개를 내민 고양이를 발견하게 됐는데 길을 걷던 고양이가 그 앞에서 고개를 돌려 코를 맞대고 지나치는 것을 봤는데 처음엔 내가 뭔가 잘못본 것인 줄 안 것이다. 그런데 그게 바로 고양이들의 인사법이었다니.

고양이에 대해 알게 되면서 길에서 마주치는 고양이가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미워해야할 녀석들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생존이 가능한 상태로 살아가면 되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덧 이제는 고양이에 대한 책을 찾아 읽으면서 그들의 습성과 모습에 조금씩 빠져들게 되기 시작해버렸다.

그래서 냉큼 집어든 이용한 작가의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는 똑같은 고양이 이야기 같은데 또 새로움이 있어서 단숨에 쑥 읽어버렸다.

 

고양이 사진은 다 똑같지 뭐, 라는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보니 뭔가 익숙한 듯 하면서도 새롭다. 그걸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로코, 터키, 일본, 인도, 대만, 라오스... 이곳에서는 도심의 골목 깊숙한 곳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그곳에서도 자연스럽게 고양이들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 괜히 새롭게 느껴진 것이었다. 특히 모로코의 온갖 푸르름을 배경으로 찍힌 고양이 사진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물론 다른 책들과 달리 귀엽고 앙증맞은 녀석들의 근거리 사진이 그리 많지 않아서 아쉬운 것도 있었는데 책을 읽다보니 전혀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너무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와버려서 사진 촬영이 쉽지 않아 그런것같았다. 그래도 열댓마리씩 한꺼번에 여유롭게 늘어져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 사람들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발라당거리고 음식을 구하는 모습들 역시 좋았다.

내가 모로코로 여행을 간다면 다양한 빛깔의 블루를 사진에 담았을텐데 저자는 다양한 빛깔의 블루를 배경으로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을 담아왔다. 이건 정말 고양이 세계일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고 타박하거나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 고양이들의 천국과같은 그곳에서의 모습을 보니 우리가 얼마나 고양이를 터부시하고 있는지 새삼 느껴지게 되었다. 이 세상은 인간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자연세계의 모든 것과 공존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며 고양이와 사람이 어울려사는 당연한 풍경들이 가득한 책을 한번 더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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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하우스 - 나무 위의 집
코바야시 타카시 지음, 구승민 옮김 / 살림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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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만화를 보다가 엄청 부러워하곤 했었던가? 정말 무엇때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나는 커다란 나무만 보면 그 나무 위에 올라가고 자연스럽게 나무위에서 일상을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마당 한켠에도 꽤 오래된 나무가 굳건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적당한 높이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길고 굵게 뻗어있어서 - 여기서 '굵게'가 중요한데, 그 정도의 나무위에 한번쯤 올라간다고 해서 나무가 부러질 염려는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 아무도 없을 때 한번 슬쩍 올라가보고 싶어지곤했었다. 물론 담장이 있다가 사라져버려 사방이 탁 트여버렸기 때문에 이제 그곳에 올라가보리라는 소망은 슬그머니 사라져가고 있는데 지금 난데없이 '트리하우스'라니.

사실 이 책을 읽기전까지는 실제로 트리하우스를 건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여름에 수박밭의 땡볕을 막아주는 원두막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트리하우스는 어린시절 내가 동경하던 바로 그 숲속의 집이 아닌가.

 

첫장에 실려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트리 하우스라고 할 수 있는 주머니나방을 모티브로 한 트리하우스를 봤을때까지만 해도 현대의 트리하우스라는 것은 그저 장식이 되었나, 라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계단을 이용해 오를 수 없다니 무용지물이라고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멋지고 탐나는 트리하우스가 계속 나오는 것이다. 공공시설의 트리하우스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이와의 추억을 새기고 싶어서라든가 하는 개인용 주택의 트리하우스도 건축이 되고 있다.

사실 번화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심 한복판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선뜻 상상이 되지 않는 집이기는 하지만 왠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우리집 마당에도 커다란 나무가 한그루 있었지만 자그마한 마당에 그대로 두기에는 너무 큰 나무라 지난 겨울에 잘라버렸다. 실제로 그렇게 큰 나무가 두어그루 있다면 자그마한 다락방 같은 트리 하우스 - 물론 트리하우스라기보다는 나무 판자를 얹어 나무위의 평상 정도는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끝에는 부록처럼 각종 연장에 대한 설명과 자신만의 트리하우스를 만들기 위한 제작 과정이 실려있어서 여건이 되고 도전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시도해보고 싶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무와 한 본체처럼 어우러진 트리 하우스를 보니 한번쯤은 트리하우스에서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생겨난다. 숲속의 나무에 못을 박아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얼핏 생태를 파괴하는 것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나무의 성장을 억제하지 않고 그대로 나무가 자라면서 트리하우스 자체도 함께 올라가는 구조라면 그것이아먈로 숲과 공존하는 자연의 집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정말 숲속의 트리하우스는 실제로 어떤 느낌일지, 사진이 아니라 그 실물을 보고 싶어진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자연과 어우러져있는 트리하우스를 꼭 방문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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