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짜증이 최고치를 갱신하며 치솟고 있는 판국인데.

좀 전에 지들이 급하다고 전화를 해 놓고는, 내가 허둥지둥 알아보고 다시 전화를 했는데 그 새 자리를 비우고 유유자적 나중에 전화한다고만 하고 있다. 급한건 댁들이거든? 게다가 일처리도... 하아.

제대로 안되고 있는 건 내가 신경 쓸 필요없지. 댁들 일이니까.

아무튼.

'배신'이 지금 이 페이퍼의 핵심코드가 되어가고 있다. 지들이 급한 일인데 오히려 내가 더 급하게 우당탕 해주고 있고. - 이런 경우는 배신이 아니라 황당,이라고 해야하나? 아, 그쪽일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지.

 

지난 주 주문한 책박스. 굳이 오만원에 맞출 필요는 없는데 어느새 관습처럼 책박스는 오만원을 넘겨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고, 굳이 그걸 나눠 받을 이유는 없어서 그냥 주문. 근데 원래 당일 배송이 없어진 것은 아닐꺼고. 오후에 주문했으니 그건 그닥 신경 안썼는데, 상품이 준비되는 대로 배송하는 것은 마일리지를 빼겠다고 하고, 한꺼번에 다 받는 것은 조금 늦겠지만 - 하루, 이틀 정도겠으니 주말 넘기면 충분히 배송 시작되겠지, 하고 그냥 주문했는데. '주문확인' 페이지를 확인해봐도 모든 상품이 다 준비되었다고 나오는데.

왜 배송이 아니라 계속 상품 준비 중,이라고만 되어 있는걸까. 은근히.. 배신감이 치밀어 오르는 이유는 또 뭘까.

아, 내가 지금 '배신'에 꽂혀있는걸까? 아니, 배신의 화살에 맞은 거.... ㅡ,.ㅡ

 

 

 

 

 

 

 

 

 

세상이 정치판 같고, 정치판이 드러운 세상이고, 졸린 오후에 괜한 짜증을 부리는 나는 히스테릭한 승질 더러운 인간으로 보일 뿐이고.

 

 

 

오늘 데빌스 스타,를 받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노 유 진의 생각해봤어?

너무 술술 읽혀서 사실 별로 남지 않는 것 같다. 이미 한차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 내용들이어서 그런 것인지, 그리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서 하고 있어서 그런지. 역시 쉽게 읽히는 것은 쉽게 잊혀지기 때문인지.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그러는것인지. 아무튼. 재미있기는 한데 뭔가 그냥 생각없이 정신없이 흘려보내고있는 느낌이다.

 

 

 

아침에.

해가 길어지고 있어서 그냥 저절로 빨리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일찍 출근할 것도 아니어서 그냥 느릿느릿 꼼지락대면서 책을 읽거나 출근 준비를 끝내고 연필을 잡고 꼼지락대기도 하고 그러는데... 앉은뱅이 책상이라도 있으면 단 십분이라도 차분하게 뭔가를 해볼터인데,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일없이 멍때리다가 시간만 보내고 만다. 오늘도 일기장에 낙서를 하듯 메모를 잠깐 하고, 연필을 잡고 있다가 나왔는데 평소보다 삼십여분 일찍 일어났음에도 다른 날과 다르게 삼십여분을 뭔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삼십분을 더 잤다면 오히려 '잠'이라도 충분했을텐데. 정말 무엇을 하고있는 것인지.

 

책상위에 책이 여섯권. 옆자리에 계신 분이 출장을 가시는 관계로 일없이 놀아도 된다고 했는데, 딱 지금 만사귀찮아져서 책읽기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있다. 도대체 책을 읽어제끼는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책박스는 재촉하는것일까.

참으로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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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6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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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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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가 쓴 자서전인데 책의 제목이 조지프 앤턴인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해서 만들어 낸 가공의 인물이 조지프 앤턴이며 '악마의 시'로 이슬람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살만 루슈디가 사용하는 가명이 조지프 앤턴이다. 그렇게 이중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세월이 십수년, 그는 "상징적 인물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실존 인물이 되고 싶었다"(476)라고 항변하고 있다. 조지프 앤턴으로 살아야 하는 그 시간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어렴풋이 알 듯 하면서도 나는 온전히 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물론 나의 체험이 아니기에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득 엊그제 읽은 황경신의 에세이가 떠오른다. "삶이란 둘 중의 하나. 이것 아니면 저것. 그런 것들이 쌓여 운명이 되고 인생이 된다"

 

"책은 작가의 책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 놓는다.

'악마의 시'도 그렇게 집을 떠났다. 그리고 작가의 책상 바깥의 세상에서 이 책은 유난히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었다. (129)

 

나는 '악마의 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비유에 대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학이 전하는 은유의 세계를 이해할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나는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종교의 지도자들이 왜 종교적 금기 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노골적인 신성에 대한 모독은 그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모독처럼 느껴질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때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리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악마의 시에 대한 관심은 아예 갖지 않았다. 호기심에 슬쩍 들춰본 적은 있지만 내 기억에 악마의 시는 이해할 수 없는 긴 연작시같은 느낌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살만 루슈디와 악마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인 조지프 앤턴을 읽다보니 이슬람을 좀 더 이해하고 싶고 악마의 시를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는 분명 이슬람을 모독하려고 글을 쓰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표현처럼 작가의 책상을 떠나 책이 된 '악마의 시'는 바깥의 세상에서 극단적인 변형과 탈바꿈의 과정을 겪으며 그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조지프 앤턴은 파트와 기간동안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자유로움도 속박당하면서 지내야 했던 13년간의 기록이다. 처음 글을 읽을 때는 그 기록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커녕 그저 단순히 살만 루슈디의 자저전이라는 인식조차 별로 없이 막연하게 한 작가의 삶, 정도로만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호기심이 가득한 상태로 재미삼아 읽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집중하며 빠져들기보다는 조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3인칭 화자로 쓰여졌기 때문에 소설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조지프 앤턴은 살만 루슈디 자신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의미로 행동을 하고,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느낌을 갖는지, 특히 세상 사람들의 온갖 편견과 오해에서 어떤 상처를 받고 어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었는지... 그의 마음이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것들이 살만 루슈디 자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고 항변하지 못하고 억눌러야 했던 그 자신의 진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부터 이 책은 단순한 자서전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문학은 우주를 조금 더 열어보려고 노력한다. 인류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의 총량을 조금이라도 증가시켜 결국 인간의 가능성을 확대하려고 노력한다. 위대한 문학은 이미 알려진 세계의 변경까지 나아가 언어, 형식, 잠재력의 한계를 확장함으로써 세계가 전보다 더 크고 더 넓게 느껴지도록 한다"(811)

 

조지프 앤턴을 읽기 전까지는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잠시 해 봤을 뿐이지만 이제는 읽고 있는 책들이 좀 정리가 되면 빠른 시일내에 그의 작품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학의 '의미'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조지프 앤턴의 자서전을 풀어내는 살만 루슈디의 글솜씨로 봐서는 그의 소설들은 정말 흥미롭겠다는 확신이 생겼다는 것도 그의 작품을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한 몫을 하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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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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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무실 화장실에는 좋은 문구가 하나씩 걸려있는데 그 중 한 곳에는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걸려있다. 가끔 되내이곤 하면 왠지모를 위안을 받게 되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로 시작하는 그 시.

정호승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서울의 예수]라는 시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그렇게 서정적인 언어로 단지 감정만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와 '연민'을 느끼게 하는 시인의 시에 충격 비슷한 것을 느꼈고 곧 그의 시에 빠져들었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그의 시는 한편의 짧은 에세이같은 느낌이기도 했고, 삶의 고달픔에 짓눌려 지친 나를 위로해주는 노래 같기도 했다. 차마 위로의 말을 건네기 힘든 상황일 때 나는 정호승 시인의 시를 펼쳐들고 그 시를 옮겨 적어 건네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시는 큰 위로가 된다.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한 송이 들꽃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라/ ...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눈물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새벽에 아가에게)

그러니까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늘이 없는 사람, 올곧기만 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사람조차 용서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는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의 시가 더 좋은 이유는 듣기 좋은 언어로만 포장을 한 이쁜 시가 아니라 그 안에 결연히 일어서게 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슬픔과 절망을 묵묵히 견디어 내어 끝내 굳건히 일어나야 하는 그런 마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박힌 못을 뽑아/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꽃이 인간의 눈물이라면/...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꽃)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 되어야 한다/..... 산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을 내려와야 하고/ 사막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우물이 되어야 한다"(개에게 인생을 이야기하다)

인생의 길을 가다 넘어지는 내게 따뜻한 손을 내밀고만 있는 것 같은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정호승 시인의 시이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나의 마음을 울리는 시 한편을 넘길수가 없다.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꽃을 보려면, 전문)

봄 지나 꽃이 피었다 져버리기 전에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먼저 볼 생각이다. 아니, 올 봄에는 꽃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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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부 시리즈. 민망하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중에 내가 갖고있는 책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책을 갖고 있기만 하고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을 읽었다면 당연히 어느 책 한 권이 빠졌는지 알 수 있을텐데. 게다가 이제는 이렇게 헷갈리는 책들이 많아져가고 있다는 것이고, 시리즈를 구입만 하고 있어서 나중에 책을 사려고 하면 그 빠진 책을 찾아내기 위해 방을 뒤져봐야 한다는 것. 실제로 그렇게 뒤적거리다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책을 구매했더니 어느 순간 두 권의 책이 나타나기도....

그러니까 말이다. 도무지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도 벌써 해를 넘기고 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대청소 하기 딱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귀차니즘의 당당한 승리로 인해 그저 빈둥거리다가 주말을 다 보내고. 그렇게 또 다시 한 주간이 지나가고 한주가 시작되고. ㅠㅠㅠㅠㅠㅠ

근데 이 박스세트는 왜?

사실 전집 완결인 만화책은 박스세트로 구입하면 정리하기도 쉽고, 책장 위에 올려놓기도 편하고 좋긴 한데 연작으로 나오는 것은 박스가 조금은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낱권으로 꼬박꼬박 구입하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이벤트이기도 하고. 나는 굳이 이 작은 박스가 필요없으니 아직 구매하지 않은 책...이 아니라 아직 읽지 않은 책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가볍게 읽을거리를 찾는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집에도 아직 읽지 않은 장르소설책이 수십권이다. 지금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책만 해도... 해를 넘기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 미미여사의 책조차도!

민망함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걸까?

4월이 가기 전에 책정리를 하겠다는 굳은 결심은 여전히 유효한데 책이 더 늘어가기만 하고 줄어들지는 않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할지.

 

 

 

 

 

 

 

 

 

 

나도 작업실을 갖고 싶다, 라는 것보다도 온전한 나의 책 공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 맞겠지. 넘쳐나는 책을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한 대응책으로 집 옥상에 조립식 컨테이너 박스를 하나 올려 그곳에 책을 보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 위에 뭔가를 올리려면 하중을 고려해야 하고, 책만 두면 책이 상할수도 있다고 해서 또 다른 뭔가를 더 고민해야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그냥 박스 하나 올려놓는게 아니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나도 좀 모냥새있게 책장을 정리하고 그 공간에서 모냥새나게 책을 읽어보고 그랬으면 좋겠다만서도.

일단 현실적으로 그런 사치스러움을 가지려 하지말고 일단은 지금 갖고 있는 책 정리를 먼저 해야할 것 같은데, 하이고. 어쩌나. 정말 쉽지가 않다. 어떻게 보면 책 읽을 시간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집에 가서 저녁 식사하고 정리하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리니. 그나마 요즘은 해가 길어져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삼십여분에서 한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그나마 책을 좀 읽는다고 할 수 있는데. 겨우 그 속도로는 어림도 없다. 오늘도 벌써 세 권의 책이 도착했고. 4일동안 가방속에 들고다니면서 읽어야지, 하고 있는 책 한 권은 진도가 하나도 나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책 펴놓고 읽는 것도 이제는 쉬운 일이 아닌게 되어버려서... 근데 왜 내가 자꾸 눈치를 보게 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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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15-04-17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전부시리즈 있는데 한권이없네요, 덕분에 장바구니에 넣었어요,,ㅎㅎㅎㅎ

chika 2015-04-1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부 시리즈 찾아야겠는데... 꼼짝도 하기 싫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두 사람의 거리 추정.

요즘 책 제목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외워두기가 쉽지 않다.

집에 있는 책,이 무엇인지도...

헉, 나가야 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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