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양장) -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
로버트 D. 퍼트넘 지음, 정태식 옮김 / 페이퍼로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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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는 '빈부격차는 어떻게 미래 세대를 파괴하는가'라는 부제가 적혀있다. 사실 '미래 세대'라고 되어있지만 이것은 1950년대부터 시행되어 온 연구의 결과이니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고 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봤을 때, 빈부의 차이와 환경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신분상승을 하거나 지적 욕구가 더 높게 충족되기도 했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타고난 태생의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인식하게 된다.

사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옛말 취급을 받기 시작할만큼 태어난 가정의 경제적 수준과 부모의 교육 수준에 따라 아이의 삶의 모습도 운명처럼 결정될 뿐이라는 생각은 이미 사회전반에 깔려있는 의식이 되었다. 요즘 흔한 말로 '금수저'와 '흙수저'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에 대한 인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의 포트 클린턴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미국 여러 지역의 다양한 가정을 사례로 들어 가족구성의 변화와 환경과 빈부격차에 따른 2세대, 3세대 아이들의 삶의 변화가 어떠한지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마찬가지로 부모가 빈곤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 이전에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 아이들의 교육이나 일상생활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고, 그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주위 환경에 따라 약물중독이나 알콜중독, 절도범 등의 범죄에 가까워지고 학업성취도가 낮을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부모의 노력에 의해 - 혹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자신이 처한 환경을 바꿔나가고 지적 성취와 신분상승을 이루기도 한다는 것을 예전의 가족 사례에서는 증명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점차 그러한 계급과 계층의 변화는 산업화의 발달로 - 이 책에서는 가족의 해체라는 부분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데, 그렇듯이 가족의 해체, 그러니까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를 가질 수 있고 아이가 있어도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커가면서 계층간의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도표와 수치에 좀 무뎌서 조사 결과인 도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설명을 읽으며 도표를 쳐다보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되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미루어 짐작이 되는 결론에 이르기도 해서 전반적으로 책의 내용이 그리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미국사회의 예를 들어서 그런지 흑인이나 라틴계 가정과 백인가정의 계층간의 변화도 유의미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도 이주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면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솔직히 내가 직접 피부로 느끼는 현실적인 부분은 적어서 그저 이론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의 한국 버전이 나오면 더 깊이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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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서문을 읽는데 세월호 사건과 무참히 희생된 이들이 생각난다. 상대의 아픔을 모른다는 무력감...
사자들의 웅성거림에 귀를 닫은 자본사회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이나 제주 4ᆞ3 양민학살사건,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에서 죽어간 사람들, 지금도 팔레스티나나 시리아에서 무참한 죽음을 맞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자들을 향한 희망의 말을 다듬어가기 위해 이 책이 더 많은 언어로 번역되기를 바란다고.


저는 희망이란 깊은 어둠을 아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아픔을 모른다는 무력감에 기초하지 않으면, 깊은 절망에서 헤매는 타인의 기분을 받아들일 수 없겠지요. 자신의 무력감을 통감할때 인간은 무용한 존재이고 자신도 사자와 다름없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전후 경제 성장으로 들뜬 일본사회는 이런 사자의 웅성임에 귀를 닫아왔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지진에서 제가 무력한 비당사자로서 배운것입니다.사자의 원통함을 끌어올려줄 힘 있는 말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희망의 빛을 가져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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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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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잠시 망설였습니다. 금세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동화책을 잠시 덮어두고 '후와후와'같은 느낌이 들 때 펼쳐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참을수가 있어야지요. 잠시 외근을 나가는 길에 가방에 이 책을 담고 나와버렸습니다. 멍하니 앉아있다가 엄마와 함께 앉아서 장난을 하는 꼬마를 보니 후와후와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 책을 펼쳤지요. 세상의 온갖 고양이를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린 시절 고양이와의 추억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아직 조그마한 꼬마인 나와 늙은 고양이는, 그다지 크기의 (혹은 사고방식의) 차이가 없다. 그의 비슷하다 해도 좋다. 우리 둘은 서로 뒤엉켜 마치 익숙한 흙탕물처럼 조용히 뒹군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오후에는 우리 세계를 움직이는 시간과는 또 다른 특별한 시간이 고양이 몸 안에서 몰래 흘러간다"

 

고양이와의 추억은 커녕 고양이를 가까이 해본적도 없는 어린시절의 나와는 전혀 달라서 그냥 그렇게 스치듯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마음이 끌립니다. 그저 대충 그려넣은 것 같은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은 처음 보는 순간에는 이쁘지가 않잖아, 라고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 역시 묘하게 마음이 끌립니다. 아니, 그래도 역시 '사랑스럽다'라고 말은 못하겠네요. 그냥 묘하게 마음이 끌린다, 정도로만 해 두기로 합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후와후와를 읽고난 후 한마리의 길냥이를 만났습니다.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왠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야기하는 그 고양이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모두가 좋아할만한 귀염성이 있다거나 털에 윤기가 흘러 폭신폭신함이 느껴지며 쓰다듬어 보고 싶다거나 눈에 확 띠게 이쁜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끌립니다. 슬그머니 지나가다가 내가 핸드폰을 꺼내드니 자리에 앉아 가만히 포즈를 취합니다. 뭐야, 내가 사진찍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이야?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옵니다.

 

  

 

"나와 고양이는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고양이의 시간 덕분에 하나가 되었다. 나는 그런 고양이를 좋아한다.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

 

"고양이털은 이미 해의 온기를 잔뜩 머금은 채, 생명이란 것의 (아마도) 가장 아름다운 부분에 관해 내게 가르쳐준다. 그런 생명의 일부가 무수히 모여서 이 세계의 일부 또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준다.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분명 다른 공간에도 존재한다"

 

고양이, 툇마루, 따사로운 봄볕처럼 포근한 기억이 내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봄날에 마주친 길냥이의 저 사랑받고 싶은 듯한 애교어린 몸짓은 왠지모를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나와 마주친 길냥이의 저 시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지 무척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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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2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6-03-23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품종묘 같은데 어쩌다가...

chika 2016-03-24 09:3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냥 길냥이 같지는 않더라고요. 사진찍을 때 포즈 잡는 것도 그렇고.. 왠지 먹을 걸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
 

 

 

아직 문을 열어두기엔 좀 쌀쌀한 바람이 들어오지만, 그래도 봄,이 느껴지는 3월이 되었다. 마당에도 꽃, 길을 걷다가도 꽃, 들려오는 노랫소리도 봄...

그렇게 봄기운을 느끼고 있는데, 문득 눈에 띈 책. 비둘기 피리꽃,이라니. 게다가 미미여사라니. 어? 하며 보니 북스피어네? 왠지 봄기운이라고 하기엔 좀 어색한 느낌이야.

그러니까 뭔가 좀 그냥 어색해.

 

 ㅎㅎ 구적초의 개정판이니, 사실 어색할만하지 않은가? 아니, 나만 그런걸까?

뭐 어쨌거나 새로나온 책의 표지색은 실물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맘에 드는 분홍이니 일단 개정판이 맘에 드는 것으로.

올 유행이 분홍분홍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개정판이 나오면서 핑크로 바꾼 책 한권 더.

 

 

우리집 마당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올리는 것은 히야신스이지만 화사한 봄을 느끼게 하는 건 역시 앵두꽃. 꽃망울이 이렇게 피는 것만큼 앵두 열매도 실하게 많이 열리면 좋으련만, 작년에 겨우 열방울도 따먹어보지 못한 걸 떠올리면 올해도 그닥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저리 이쁜 꽃을 피워 보여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

화분에 심어져 해마다 봄소식을 알려주던 매화와 벚나무가 얼어 죽어버린 후 봄이 되면 아쉬웠었는데 그 자리를 앵두나무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집 마당에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봄, 옷차림에도 봄... 대청소를 하는 봄 ㅠㅠ 이 되었다. 한차례 정리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바닥과 책상 여기저기 쌓여있는 책과 노트, 메모지들로 인해 정말 창고처럼 되어있는 이 상태를 좀 바꿔보고 싶은데, 막상 물건을 쌓아놓고 버리려고 하면 꼭 금세 필요해서 찾을 것 같고,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것 같고... 그래서 여전히 내 방은 엉망이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깔끔하게 지낼 수 있다는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이래저래 눈에 띄는 책들을 마구 담다보니 중구난방이기는 하지만 매일 저건 언제 사볼까,하게 되는 책은 역시 그래픽노블. 당장 읽어야할 책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번 외면당하고 있기는 한데... 그러니까 어쨌든 책도 역시 이론서보다는 당장 해보고 싶은 것부터 눈길이 먼저 가고 손이 먼저 끄집어내는 것처럼 이 중에서는 드라이플라워가 먼저 눈에 띄기는 한다. 이미 드라이플라워에 대한 책을 한 권 갖고 있기는 한데 비슷한 구성일지도 궁금하고. 이럴때는 책의 실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대형서점이 아닌 한 이런 책들의 실물을 서점에서 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동네 서점에 안가본지 오래되기도 했지만 이미 인터넷서점의 신간을 너무 빨리 접하다보니 서점에 가면 왠지 구간도서만 잔뜩 쌓아놓은 느낌? 거기에다 왠만한 대형출판사책과 베스트셀러로 밀고 있는 책들이 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뭐...

 

 

 

 

 

 

 

 

 

 

 

요즘 유시민은 티비에 나오는 것 같던데.

노유진의 첫번째 책 생각해봤어?는 생각보다 좀 가벼운 느낌이라 휘리릭 읽고 말았는데 '할말은 합시다'는 어떨까 모르겠다.

정치에 그닥 관심이 없는데 - 갈수록 더 정치에 관심이 없어져서 우리 동네에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판에 뉴스에서 각 정당의 경선자들을 보여주는데. 하아. 아무래도 지역이 좁다보니. 학교 다닐때 조금은 익숙한 사람들이. 산너머 저쪽에는 학교 생활을 잠깐 같이했던 선배도. 정당에서 경선을 하거나 말거나였지만. 그래도 나름 내 짧은 소견과 가장 의견이 맞는 그 누군가가 후보가 되기를 바랬는데 안되어버렸다. 이제 선거일이 되면 어찌해야하나. 예전에도 투표할 사람이 없어서 무효표를 만들기 위해 투표장에 갔었는데. 아, 쫌.

정당투표의 당위성도 점점 희미해져가버리고 있어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건 먹고 살만하기 때문일까?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아침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면, 누구처럼 투표일이 임시 공휴일이 되어 쉬는 것도 아니고 그날도 일을 하러 가야하고, 부재자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또 절차를 밟아 신청을 해야하고. 모르겠다. 내가 회의적인데, 다리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내 걸음으로도 십분은 넘게 걸리는 투표장까지 갈 수 있으려나 싶다. 휠체어를 끌고 갔다 오는 길은 대략잡아도 한시간. 투표권 행사하기 위해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만한 후보자가 있다면 참 좋겠다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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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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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의 광고에 사용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과는 상관없이 의구심 반 호기심 반, 아니 사실 그렇게 나눈다기보다는 사형수의 가족이 말하는 가족의 일대기, 죄의 근원과 그에 대한 보속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해서 책을 집어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대체 마이클 길모어라는 인물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일까에 대한 호기심 정도였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중반정도 읽었을 때까지도 그저 그랬다. 이 길모어 가족의 불행한 인생여정기, 게리 길모어의 통제되지 않는 감정분출에는 그 가족의 불행과 폭력이 담겨있을 것이라는 보통의 생각들...

그런데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생각해보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사형수'에 대한 것. 그의 죄와 그 죄에 대한 댓가 정도로만 생각을 했던 내게 그 이상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 자신도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있고, 게리 길모어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어린아이의 말, 사형당하지 말고 평생 감옥에서 그 죄에 대한 벌을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여덟살 꼬마의 글 - "난 사람들이 아저씨를 어디다 가두어놓고, 아저씨가 거기서 영원히 살도록 벌을 줬으면 좋겠어요. 아저씨는 죽을 권리가 없어요. 아저씨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아무개 - 은 순간적으로 생각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게리의 말은 더욱더 나 자신을 밑으로 가라앉게 해 버렸다. "넌 마음속에 미움을 담기에는 너무 어려. 내가 어릴 적에 미움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날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렴"

 

"넌 어떻게 생각하니? 만일 게리가 22년동안 감옥에서 지내지 않았더라면, 그가 과연 한 인간의 머리 뒤통수에 총을 쐈을까? 그것도 그의 임신한 아내와 어린 자식이 지켜보는 앞에서 말이야. 또 다른 사람에겐 어땠을 것 같아? 그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 있었대. 그러니까 그 사람은 몇 시간 동안 죽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을 쳤다는 얘기야. 그 짐승 같은 감옥 사회에서 받은 교육이 게리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 난 확신해. 그 짐승 같은 사회가 그런 비극을 저지르게 만든거야.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그는 더 비열하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변해갔지. 그건 마치 22년동안 베트남 같은 전쟁터에 있었던 셈이야. 그 수없이 많은 악랄한 짓에 희생자가 되기도 했고, 가해자가 되기도 했어"(589-590)

 

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갔고 또한 그 자신도 제도에 의해 죽음으로 몰아간 게리 길모어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형 프랭크가 '마치 22년동안 베트남 같은 전쟁터에 있었던 셈이야'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저 막연하게 타인의 인생에 대해 무엇이라 판단한 자격이 내게 있는가,라는 물음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책을 다 읽고난 후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다시 보니 그가 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낌이 온다. "인간에 대한, 아니 어쩌면 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철학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지금 나 자신에게는 아직 '혼란스러움'뿐이기는 하지만.

너무 짧은 시간에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겨우 일주일을 붙잡고 휘리릭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서 스쳤던 생각들을 미처 정리할 여유도 없이 끝까지 왔는데 그 느낌을 정리하기가 너무 힘들다. 사형수 게리 길모어와 그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동생 마이클 길모어의 이야기를 십여년전에 읽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1년후쯤에 다시 읽게 되면 또 어떤 마음이 들까. 여전히 나는 자신이 없다. 그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모든 이들의 불행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형 게리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감옥을 드나들었고, 동생 마이클은 도둑질을 하다가 걸렸을 때 가게 주인이 그에게 일을 시키고 그 노동의 댓가로 그가 훔치려던 물건을 주었으며 그를 붙잡은 경찰은 그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며 그같은 죄를 다시는 짓지 않게 해 주었다. 책의 말미에 그들의 사촌 브렌다가 게리가 죄를 지었을 때 그를 경찰에 고발한 이유, 그러니까 그녀는 게리를 아끼고 늘 그를 걱정했는데 그를 감싸고 돌면 게리가 사람들을 더 죽일거라고 판단을 해 그를 감싸거나 보호해주려 하지 않았고 마이클은 그녀의 행동이 옳았다고 한다. 게리의 아버지가 그에게 가한 폭행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태도가 달랐다면, 그들의 가족의 역사가 달랐다면.... 이런 것들은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한번쯤 떠올리지 않을수가 없다. 거창하게 피의 역사에 세워진 미국의 역사 속에 또한 피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신화같은 종교의 이야기와 가족사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한번 생각의 물꼬를 트기 시작하니 너무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다시 자꾸만 책을 뒤적거려보게 하고 있다. 지금의 이 혼란스러운 생각과 시끄러운 마음으로는 그저 책을 뒤적거리는 것밖에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만 접어야할 것 같다.

국가의 법제도로 인해 또 하나의 살인, 게리 길모어의 최후의 살인이 일어난 사형은 그 하나만으로 큰 이슈가 되었겠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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