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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지고 느낀것은 많지만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진정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디아스포라, 라는 개념을 머리에 집어넣고 이해하며 읽어나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아는 것은 피상적인 것일 뿐이었을까?
언제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살아왔고, 그 변방에서도 특이한 환경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주위의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외계어같은 섬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혀 이질감을 느끼게 했던 적은 없다. 가끔 희귀종 보듯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80년대였었나... 한참 이산가족찾기가 TV로 생중계되던 때, 아무런 연고가 없던 사람들도 보면서 눈물 흘리던 그때의 모습들을 어머니는 질리지도 않은지 보고 보고 또 보시곤 하셨다. 그때만해도 나는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몰랐다.
좀 더 어렸던 시절에 외삼촌댁에 계신 아프신 할머니를 찾아뵌다고 어머니를 따라 갔는데, 어린 내가 집에 간다고 칭얼대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왔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한 나는 그게 또 얼마나 큰 불효가 되었는지 몰랐다.
몇년 전,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시던 어머니가 '친척들 이름이라도 물어보려고 했는데...'라며 눈물흘리실 때에야 비로소 그 마음이 조금 느껴졌었다. 어머니는 황해도에서 태어나 아쉬울 것 없는 풍족한 생활을 하다 휴전선이 생길 즈음 가족을 따라 제주로 오셨다. 그나마 삼촌 한 분은 따로 떨어져 만주를 거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제주에 터를 잡고 약방을 차린 후 약재를 구하러 서울로 가신 할아버지는 마침 터진 전쟁통에 행방불명이 되셨고, 그 후로 집안 사정이 나빠졌고 어찌해서 그리 됐는지는 모르지만 막내 외삼촌은 캐나다에서 사셨다. 어린 내게 막내 외삼촌은 항상 '캐나다삼촌'이었었다.
지금, 캐나다 삼촌은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끊겨버렸고, 큰 외삼촌은 돌아가셨고 이제 어머니만 혼자 남으셨다. 가끔 어머니 모시고 금강산 구경이라도 갈까, 라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고향땅에 가는 것도, 혹시나 그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더 마음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선뜻 그러자고 부추길수가 없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나라 땅덩어리 위에서 같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느껴야 했던 이질감조차 나는 공감하지 못한다. 오십여년 전, 변방의 한 섬의 4월 3일에 있었던 일이 그당시 어렸던 어머니와는 전혀 무관할텐데도 심사가 뒤틀리는 날이면 성할아버지에게서 '빨갱이년'이란 욕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의 그 심정을 나는 모른다. 얼치기로 4.3 데모를 할 때 '빨갱이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러는 내가 어찌 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따라 갈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이해하는 척 하지만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한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저명한 큐레이터가 자리나 빔지의 작품을 예로 들어 '그의 작품은 설명을 읽지 않으면 관객에게는 아름다운 열대풍경으로만 보일 뿐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며 놀랍다고 할 때, 그 말은 바로 내게 하는 말인 듯 느껴졌다. 나 역시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따라 한 방향을 바라 볼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작품이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의 경력에 대해 알기 전부터, 폭력의 기억이, 그 냄새며 감촉과 함께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싫은 느낌'이 되어 보는 자에게 전해져온다. 그것이 이 작품이 예술로서 걸작인 이유다. 이 큐레이터에게는 그 '느낌'이 전해져 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감성의 단절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여기에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가까이 있는 디아스포라인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디아스포라 예술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본문 162쪽)
가장 가까이 있는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것, 그것은 아주 커다란 첫 걸음일것이다. 같은 동포인데 우리를 내쫓다니요, 라며 울부짖던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또한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부가 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