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구판절판


굉장한 날이 왔다!
수많은 날들이 천천히, 느릿느릿, 더디게 지나갔다. 힘든 일 분 일 분이 지겹도록 죽 늘어서야 한 시간이 지나가는 그런 날들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수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마치 세상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덩어리에 갇혀 질식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날들이었다. 자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단조로운 일상 외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찬란히 빛나는 것도 없고, 칙칙한 잿빛 위에 한 점 화사한 부분도 없고, 눈길도 없고, 웃음도 없고, 스쳐가는 말들도 없고, 부드러운 손길도 없었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드디어 굉장한 날이 왔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아니었다. 오히려 음산하게 구름이 드리운 날이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이 잿빛 아침을 내다보았을 때 에바는 벌써 피부가 근질거리는 느낌, 여름날 아침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를 느꼈다....... 하늘과 집이 같은 색깔이었다. 물론 그 농도는 달랐지만, 그걸 구별하려면 자세히 눈여겨보아야 했다. 보기 드문 잿빛이었다.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 안는 잿빛이었다.-187-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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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8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의 높이 8,848 미터 - 16세 소년의 에베레스트 등반기
마크 페처.잭 갤빈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06년 1월
절판


"왜 그 애를 말려야 하는 거죠? 어떻게 말릴 수가 있겠어요? 그토록 불타는 소망이 있는데 그 아이의 꿈을 방해해야 하는 걸까요?"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엄마의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나를 말리는 대신 무슨 일이 있더라도 훈련 스케줄은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토록 춥고 비가 내리는 밤에 내가 집에 있으려고 하면, 아버지는 병원 계단에서 달리기를 하도록 날 태워다 주시기 위해 자동차 키를 돌리셨다. "산에선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아버지는 말씀하시곤 했다.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한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가지 말거라" ......
모든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꿈을 이루도록 허락해주고, 자신들이 감히 시도해보지도 못 했던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어야 한다.-137쪽

나는 이 산에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내 위로는 우윳빛 별들이 눈부시게 총총 박힌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아래, 훨씬 아래쪽으로는 라피라(에베레스트와 네팔 쪽의 작은 산들 사이에 난 통로) 근처에 조용한 번개폭풍이 번쩍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 그렇다. 팀을 이루었다고 해도, 등반해서 정상을 정복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다. 모두 자신과의 싸움이다. 아무리 팀에 균열이 생긴다고 해도, 누가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정상을 향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신중하게 모든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나의 몫이다. 다른 사람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변명도 필요 없다. 모두 나에게 달렸다.-148-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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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구판절판


모든 뿌리에서, 그 뿌리를 키울 토지에서조차 떠나 있는 나는 온갖 시대를 둘러보아도 좀처럼 드문, 참으로 그런 인간이다. 나는 1881년 하나의 거대한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곳을 지도 위에서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그곳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2000년에 걸쳐 국가를 초월해 존재해온 수도 빈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읍이 독일의 일개 지방도시로 떨어지기 직전에 나는 마치 범죄자처럼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내 문학작품은, 나의 책이 몇백만 독자에게 기쁨을 줬던 바로 그 나라에서 불태워져 재로 돌아갔다. 그러기에 나는 이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모든 곳에서 이방인이며, 기껏해야 지나가는 객이다. 내 마음이 택한 진정한 고향 유럽도, 다시금 동포끼리의 전쟁이라는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과 다름없이 제 몸을 찢은 이후로 내게는 잃어버린 존재가 되었다. 내 뜻이 아니건만 나는 온갖 시대의 연대기 가운데 가장 무서운 이성의 패배와 가장 흉포한 야만적 승리의 증인이 되었던 것이다.-188-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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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2-05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아스포라 기행 - 추방당한 자의 시선
서경식 지음, 김혜신 옮김 / 돌베개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아지고 느낀것은 많지만 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내가 진정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디아스포라, 라는 개념을 머리에 집어넣고 이해하며 읽어나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아는 것은 피상적인 것일 뿐이었을까?

 

언제나 중심이 아닌 변방에서 살아왔고, 그 변방에서도 특이한 환경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주위의 수많은 삶을 떠올려보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외계어같은 섬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혀 이질감을 느끼게 했던 적은 없다. 가끔 희귀종 보듯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80년대였었나... 한참 이산가족찾기가 TV로 생중계되던 때, 아무런 연고가 없던 사람들도 보면서 눈물 흘리던 그때의 모습들을 어머니는 질리지도 않은지 보고 보고 또 보시곤 하셨다. 그때만해도 나는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몰랐다.

좀 더 어렸던 시절에 외삼촌댁에 계신 아프신 할머니를 찾아뵌다고 어머니를 따라 갔는데, 어린 내가 집에 간다고 칭얼대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왔는데 바로 그날 저녁에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한 나는 그게 또 얼마나 큰 불효가 되었는지 몰랐다.

몇년 전, 외삼촌이 돌아가셨을 때 슬퍼하시던 어머니가 '친척들 이름이라도 물어보려고 했는데...'라며 눈물흘리실 때에야 비로소 그 마음이 조금 느껴졌었다. 어머니는 황해도에서 태어나 아쉬울 것 없는 풍족한 생활을 하다 휴전선이 생길 즈음 가족을 따라 제주로 오셨다. 그나마 삼촌 한 분은 따로 떨어져 만주를 거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제주에 터를 잡고 약방을 차린 후 약재를 구하러 서울로 가신 할아버지는 마침 터진 전쟁통에 행방불명이 되셨고, 그 후로 집안 사정이 나빠졌고 어찌해서 그리 됐는지는 모르지만 막내 외삼촌은 캐나다에서 사셨다. 어린 내게 막내 외삼촌은 항상 '캐나다삼촌'이었었다.

지금, 캐나다 삼촌은 언제부터인가 소식이 끊겨버렸고, 큰 외삼촌은 돌아가셨고 이제 어머니만 혼자 남으셨다. 가끔 어머니 모시고 금강산 구경이라도 갈까, 라는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고향땅에 가는 것도, 혹시나 그곳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더 마음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선뜻 그러자고 부추길수가 없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나라 땅덩어리 위에서 같은 경험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느껴야 했던 이질감조차 나는 공감하지 못한다. 오십여년 전, 변방의 한 섬의 4월 3일에 있었던 일이 그당시 어렸던 어머니와는 전혀 무관할텐데도 심사가 뒤틀리는 날이면 성할아버지에게서 '빨갱이년'이란 욕을 들어야 했던 어머니의 그 심정을 나는 모른다. 얼치기로 4.3 데모를 할 때 '빨갱이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러는 내가 어찌 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따라 갈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이해하는 척 하지만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특히 한 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저명한 큐레이터가 자리나 빔지의 작품을 예로 들어 '그의 작품은 설명을 읽지 않으면 관객에게는 아름다운 열대풍경으로만 보일 뿐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며 놀랍다고 할 때, 그 말은 바로 내게 하는 말인 듯 느껴졌다. 나 역시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나는 노력할 것이다. 추방당한 자의 시선을 따라 한 방향을 바라 볼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작품이 역사적 배경이나 작가의 경력에 대해 알기 전부터, 폭력의 기억이, 그 냄새며 감촉과 함께 딱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싫은 느낌'이 되어 보는 자에게 전해져온다. 그것이 이 작품이 예술로서 걸작인 이유다. 이 큐레이터에게는 그 '느낌'이 전해져 오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감성의 단절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여기에 일본 사회 전체의 문제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가까이 있는 디아스포라인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디아스포라 예술을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본문 162쪽)

가장 가까이 있는 디아스포라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것, 그것은 아주 커다란 첫 걸음일것이다. 같은 동포인데 우리를 내쫓다니요, 라며 울부짖던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는 또한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부가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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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2-05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근사합니다.
어느 분 책 선물 하면서 땡스투도 눌렀어요.^^

chika 2006-02-06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사이토 미치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삼인 / 2006년 1월
구판절판


저는 어떤 분한테서 행복이라는 것은 뭘까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행복이란 '지금 기쁘고', '지금 즐거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만약 정신장애라는, 전혀 바라지 않았던 이 현실과 마주하면서 또한 행복해지려고 생각한다면, 사회 복귀를 위한 종합적인 치료와 훈련을 받아 좋아지고, 다시 말해 치료를 받아서 낫고 일자리를 찾아 일하고, 만약 이런 것이 행복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수많은 정신병자들은 행복이라는 건 포기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
장애인만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서로 마찬가지다'라는 감각을 가질 수는 없을까, 병을 치료하는 것에만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려는 데서 좀 더 넓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하고 말이다.
"같이 해보자고, 서로 배워보자고, 서로 교육해보자고, 저는 옛날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친절함도 없어진 의사가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이 세상에서 행복을 붙잡기 위해서는 말이에요, 특히 제 배려나 선의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며, 그런 쓸데없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오히려 그런곳에 (환자를) 가둬두고, 갑갑하고 옹색한 곳으로 몰아넣는,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자신도 (역시) 막다른 지경으로 몰아넣는 일에서 졸업하고 싶다는 것이 지금 가장 마음을 써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142-143쪽

- '베델의 집'의 장점은 어떤 건가요?
"뭐라고 할까요, 차별하지 않는 점이라든가, 모두들 서로 격려해주거나 도와주고 또 조언해주고 하는 점이랄까, 그런 것들요. 그리고 절대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도요. 아무리 병이 심하고 폐를 끼친다고 해도 다시 함께해 줄 수 있다는 것이랄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봐주는 그런 점이요"-208쪽

-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은 어떻게 된 거죠?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라고 할까,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생기고, 그래서 순순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 거지요. 역시 시간, 인생, 여러 경험을 하고, 사람은 정해진 것처럼 살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어떤 사람이나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고, 또 그래서 자기 의견도 말할 수 있게 된 거예요.-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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