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한 초콜릿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정지현 옮김 / 낭기열라 / 2006년 2월
구판절판


굉장한 날이 왔다!
수많은 날들이 천천히, 느릿느릿, 더디게 지나갔다. 힘든 일 분 일 분이 지겹도록 죽 늘어서야 한 시간이 지나가는 그런 날들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수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마치 세상이 정지해버린 것 같은,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덩어리에 갇혀 질식해버리기라도 한 것 같은 날들이었다. 자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단조로운 일상 외에는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찬란히 빛나는 것도 없고, 칙칙한 잿빛 위에 한 점 화사한 부분도 없고, 눈길도 없고, 웃음도 없고, 스쳐가는 말들도 없고, 부드러운 손길도 없었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드디어 굉장한 날이 왔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아니었다. 오히려 음산하게 구름이 드리운 날이었다. 하지만 창밖으로 이 잿빛 아침을 내다보았을 때 에바는 벌써 피부가 근질거리는 느낌, 여름날 아침의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를 느꼈다....... 하늘과 집이 같은 색깔이었다. 물론 그 농도는 달랐지만, 그걸 구별하려면 자세히 눈여겨보아야 했다. 보기 드문 잿빛이었다.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 안는 잿빛이었다.-187-188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2-08 0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