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드로잉
버트 도드슨 지음, 오윤성 옮김 / 미디어샘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가끔 틀을 벗어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는 오해를 받을때가 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틀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틀 안에서 시선을 바꾸는 것일뿐이라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 역시 정형화된 인식의 틀을 가진 사람일뿐이라는 생각에 '창의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움츠러들곤 한다. 창조적이고 창의력인 발상을 못한다는 자의식이 자꾸만 뭔가 시도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 드로잉'이라는 책을 발견했을 때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수없이 교차되어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나는 드로잉의 기본조차 모르는데.

그래도 책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해서 그런지 나는 결국 이 책을 펼쳐들었고, 실제 내가 드로잉을 연습하게 되었다거나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는 것과는 관계없이 책 자체로서 읽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어차피 드로잉은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을 쌓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실제 사물이든 풍경이든 보면서 드로잉을 하는 것은 일차적인 것이 노력임을 알고 있으니 그 드로잉을 어떻게 변형시키고 확장시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언과 도움을 얻으며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역시 자신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나와 여러분이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끝이 어디인지 몰라도 시작하는 것입니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 실패를 딛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상상력을 동원하는 드로잉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살아 있음을 경험하는 열쇠일 것입니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랜 세월 드로잉을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8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처음은 간단히 낙서처럼 시작된 선에서도 온갖 다양한 형태의 드로잉을 완성시켜나갈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누들링이라는 표현처럼 밀가루 반죽 덩어리에서 가늘고 기다란 면이 뽑아지듯이 무엇이 완성될지 모르는 무의미한 선에서 입체감을 입히고 명암과 무늬를 넣으며 완전히 다른 무엇인가가 나오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각을 달리하며 새롭게 그린다거나 왜곡하여 그리며 하나의 모습을 여러형태로 변형시키는 방법, 스토리텔링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이미지화하고 패턴을 다양하게 하여 새로움을 주는 것 등 드로잉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기술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독창적인 드로잉을 그려낼 수 있는지 그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이론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드로잉 연습을 어떻게 하면 좋은지에 대한 실전연습의 팁도 담겨있어서 나처럼 드로잉도 기본이라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감탄하며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당장 연필을 잡고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의욕도 강해지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창의적인 드로잉'이라고 하면 왠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라는 막연함이 먼저 떠올랐지만 이제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내가 나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홍창욱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도 없고 조카들도 다 커서 육아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나의 관심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궁금하기는 했다. 언젠가부터 '제주'라는 곳은 단순히 지명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어버린 것 같아 어색하기도 하고 뭔가 특별함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조금은 복잡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제주에 관한 이야기는, 여행이야기이든 제주이주에 대한 것이든 교육, 문화에 관한 것이든 제주 토박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죄다 타지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제주에 살고 있는 토박이로서 가끔은 별다를 것도 없고 현실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외지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제주의 실상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다.

 

제주를 여행한다거나 제주로 이주를 해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있기 훨씬 전에도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제주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은퇴를 하고 노후 생활을 위해 제주에 정착하는 분들이 많았던 그 옛날에 아이가 자연과 벗하며 성적에 얽매이지 않고 여유롭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주에서도 산골 마을로 이사를 오셨다고 하는데, 나는 그분들을 뵙지는 못했지만 성당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행사가 있어서 프로그램 봉사하러 갔다가 그 아이를 만난적이있다. 제주시내에서도 '육지'출신은 티가 나는데 그 시골마을에서는 당연히 육지아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밖에 없다. 그런데 똑똑하고 쾌활한 그 아이는 겸손할줄도 알아서 모두에게 이쁨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관점에서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산골이 집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이 곳 제주에서는 너무 잘 지내는데 서울에서는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소위 '잘난 척'에 대한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어 요즘말로 왕따처럼 지냈다고 한다. 성적과 관련해 친구가 아니라 경쟁상대일수밖에 없고, 친구가 잘하면 상대적으로 내가 못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잘하는 친구에게 칭찬을 하지 못하고 시샘만 하게 되니 깎아내리기 위해 잘난'척'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버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그런 환경과 상관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일까?

 

사실 나는 내가 자라온 환경만 떠올리고 있으니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생활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중소도시가 아닌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출퇴근거리 십여분이라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이런 축복받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겐 그저 평범한 일상일뿐이었던 삶이 누군가에게는 축복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게 된다.

 

'제주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서울에서 결혼생활을 하던 부부가 제주 이주를 결심하고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경험한 4년간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일명 '뽀뇨아빠'라 지칭하며,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강한 소망 하나를 갖고 직장을 얻게 되자 무작정 이주를 해버린 대책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쓴 글을 읽다보면 제주에 정착하여 적응하며 살게 되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제주의 고유한 문화와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제주 이주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않은 일이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며 잘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제주에 정착하기 위한 노하우를 알려준다기보다는 제주에 살면서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이 얼마나 좋은것인지, 휴일도 반납해가며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삶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며 제주에서의 육아란 자연과 벗하며 다양한 체험활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임을 전해주고 있다.

내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 한번 쓱 훑고 지나가는 체험 정보들이지만, 오래전에 조카들과 함께 다니면서 경험을 했던 이야기도 많고 실제로 추천을 하기도 했던곳들도 많아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권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 뽀뇨가 아직 4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지만 십대의 아이들에게도 꽤 유용하고 흥미로운 자연체험 학습장이 많으니 어린 자녀뿐만 아니라 온가족이 함께 어울리며 행복한 추억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굳이 제주에서 정착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정보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한 정보, 휴가때 가족이 함께 제주에서의 체험을 하기 위한 정보에서부터 제주 이주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정보까지 많은 부분을 얻을 수 있으니 어떤 부분이든 관심이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 많은 정보와 흥미로움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호박 목걸이는 영국인 메리 린리가 1917년 한국으로 와서 태평양전쟁으로 미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되기 전까지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1948년 남편의 유골을 한국 땅에 묻기 위해 찾아온 것이 마지막 방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생활하던 딜쿠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애초에 왜 그녀의 삶이 궁금한것일까?

사실 우연찮게 티비를 보다가 딜쿠샤라는 낯선 이름을 보게 되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외국인이 거주하던 딜쿠샤 -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의 주인에 의해 독립선언문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집 자체가 역사적으로 문화유산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내용을 본 기억이 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 책 '호박 목걸이'는 우리나라에 선교활동을 하러 온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삶을 기록한 책으로 치부하고 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호박 목걸이'는 메리 린리가 한국으로 오게 된 운명과 같은 매개가 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어린시절 호박 목걸이에 매료되어 버린 메리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호박'을 조선이라는 동양의 나라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아, 물론 그녀가 한국에서 살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남편인 브루스를 따라왔기 때문이지만.

 

이 이야기는 한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평범하고 틀에 박힌 생활을 박차고 나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모험으로  읽을수도 있고 개화기 시대를 한국에서 살았던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펼쳐볼 수도 있는 책이다. 사실 개화기 시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이 글을 쓴 메리 린리가 그러한 관점에서 책을 쓴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은 감안을해야 할 것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모험 가득한 삶의 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해도 이 책은 한편의 소설처럼 읽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쁠것도 없지만.

 

일제시대 개화기의 긴박한 상황에 대해 세세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혹 등장하는 고종의 장례식이라거나 삼일절 독립운동에 대한 이야기등은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새롭게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그녀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긍정적이고 존중하며 이해를 하려는 모습이 느껴져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기미년 삼일절 당시 아이를 출산하면서 병원에 있게 된 것으로 우연히 독립선언문을 숨기는데 일조하게 되고 그것이 그녀의 남편에 의해 전세계에 공표되게 된 것들은 그녀가 우리의 독립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는 아니지만 조선을 미개한 나라로 보지 않고 더 많은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부분은 남편과의 대화에서도 나타난다.

["간섭하지도 말고,동양의 방식에 맞서려고 하지도 말아요."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은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갔다.](135)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가르치려 들거나 우리의 방식이 틀렸다고 고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방식과 문화가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려고 한 메리 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뭔가 새롭다. 딜쿠샤가 지금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단지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라는 것도 느낄 수 있고.

 

책을 읽으면서 메리 린리의 더 많은 그림이 없는 것이 아쉬웠고, 그녀가 만난 많은 한국인의 이야기, 한국의 풍경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아쉬움만을 남기고 있지는 않다. 우리 역사의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딜쿠샤의 주인이었던 그녀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장 슬픈 것은 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는 것. 가장 기쁜 것은 같이 싸워 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거 하나로 행복했어요. 내 옆에 누가 누워 있다는 것으로요"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잊고 지내다가, 일주일에 한 번 날아오는 주간지에 같이 담겨 온 노란 봉투를 받아 본 것이 얼마 전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에게 손배청구액 46억원이 선고되었고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아무 생각도 없었던 나는 그들을 위해 노란봉투 캠페인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잊고 지내다가  한 사람의 몫이라도 해내고 싶어서 사만칠천원의 기부를 했다. 약간의 망설임끝에 선뜻 낼 수 있는 그 금액은 내가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만큼 커다란 돈은 아니지만 아무 생각없이 내놓을 수 있는 금액은 아니라는 생각에 알량한 위안을 가졌었다. 이것 하나로 그들의 기쁨에 함께 하기도 했다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난 후 정말 부끄러움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정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마음을 베이듯 스며들어 와 자꾸만 내 마음을 아리게 하고 있다.

 

[그의 슬픔과 기쁨]은 쌍용자동차 선도투 중 스물여섯 명의 구술을 바탕으로 집필된 책,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정혜윤 역시 놀라운 충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내가 느낀 부분은 더욱 커다랬다. 무엇하나 특별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그들은 단지 인간으로서 양심을 지키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고 있을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혼자만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그렇게 기나긴 시간을 복직투쟁을 위해 싸워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산자, 해고되지 않고 그대로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외면하지 못해 파업투쟁에 함께 했고 다른 일을 하면 한달에 오륙백만원을 벌 수 있었는데도 불편한 마음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 동료들의 곁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에는 순수함과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희망뿐 다른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언젠가 미사 강론시간에 신부님께서 대한문에서의 매일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더이상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사제단의 결정에 따라 매일 미사를 드리게 되면서부터 죽음의 행진이 멈추었다며, 그들에게 종교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들이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나승구 신부님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능한 자신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아 준,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천주교 신자로서 기도의 힘과 미사성제의 위대함을 믿는 마음에 괜한 자부심을 느꼈었지만 이제는 신부님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하다'라고 한 그 마음을 더 깊이 깨닫는다.

 

"공장에 안들어가도 된다는 말은 '그런' 공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말이예요. 저런 공장, 영혼 없는 그런 공장이라면 안 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기계처럼 여겨지는 그런 삶을 더 살고 싶지 않아요. 만약 어느 날 정말로 들어가게 되면 그때는 다른 삶을 꿈꾸면서 살겠지만 '오늘만 버티면 장땡이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우리 희망은 소박합니다. 일상을 찾는 겁니다. 길바닥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다시 공구 들고 땀 흘리며 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퇴근길이 있고, 동료가 있고, 이웃을 맘 편히 확인하고, 자식의 아빠이자 노모의 아들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동안 못했던 시간들을 보충해 가는지를 확인하는 것,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 ... 이 투쟁을 운동과 계급에 의해서 했던 사람은 그 생각 안할 겁니다. 일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동지들, 썩어 빠지게 일만 했던 동지들, 운동이 뭔지도 팔뚝질이 뭔지도 모르는 동지들이 남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어느새 "쌍차 투쟁이 이 나라 정리 해고의 문제, 노동자들의 문제다"하고 이야기할 정도가 되었어요. 그럼에도 "또 만들고 싶다. 또 하고 싶다"고 해요. 그것은 가슴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하고 싶은 말, 옮겨 적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저 담담히 흘러나오는 쌍용자동차 선도투 스물여섯분의 이야기, 그리고 그와 연결되는 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측은지심을 알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묵묵히 자기 일, 자기 역할을 하고 자기 삶을 살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은 그러한 그들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지만,

그러나 답을 모를 때 그들은 끝까지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것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기를 택했을 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그중 일부라도 현실로 만들어 보길 선택했을 때,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었고, 너무나 다정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무실 근처에 백년넘은 녹나무가 있다. 녹나무는 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겨울이 아니라 봄이 되면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느라 무수한 낙엽을 쌓이게 한다. 그래서 뜻하지 않게 봄날에 낙엽밟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래된 녹나무 만큼이나 오래된 나무가 옆에 있는데 그 나무는 올라가기 편하게 적당한 높이에서 가지가 갈라져 엄청나게 뻗어있다. 엊그제 그 아름드리 나무의 잔가지들을 잘라내는 작업을 하는 것을 지나치면서 봤는데 잘라나온 가지도 많았지만 그래도 나무는 그 위용을 잃지 않고 굳게 서 있더라. 아무튼. 그 나무를 볼 때마다 위에 올라가 놀고 싶은 충동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집을 짓지 않더라도 그냥 올라가서 머물고 싶은 기분을 갖고 있었단 말이다.

 

한강의 소설은 사두기만 하고 읽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과 그전에 희랍어 시간을 먼저 읽어보고 읽어볼까 싶어지기도 하는.

지금도 주말이 되니. 쌓아놓은 책탑을 정리하라고 잔소리가 심해지고 있는데 나는 책정리할 생각보다 책을 살 생각을 먼저 하고 있다. 사실 옆동네에서 인문서를 반액할인판매하고 있어서 카트를 채워두고 있고, 알라딘에도 쌓여있는 적립금이 많아서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슬슬 구매해볼까 궁리중인데 그걸 살펴보려고 컴을 켜놓고는 또 딴짓이다. 프리모 레비의 책은 이미 읽지 않고 쌓아둔 것만 두 권인데. 꼭 읽어야지...해놓고는 책탑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내 관심사는. 아, 무한도전. ㅡ/ㅡ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