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터키 나를 부르는 시리즈
송수진 지음, 김진희 사진 / 하나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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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성지순례라는 일정으로 사도 바오로의 전교여정을 따라가는 일정에 포함되는 것 정도로만 이스탄불을 생각하고 있다가 그리스 터키의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읽고 난 후 성지순례와는 상관없이 터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터키의 역사와 문화와 풍경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더 이스탄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니 티비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터키로 여행을 갔고 그 영향으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터키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큼 터키는 엄청난 매력을 지닌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나를 부르는 터키'라는 책을 보고 쉽게 맘이 혹하여 읽기 시작했다. 생각했던것만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정보를 알려주는 안내서는 아니었고 터키의 문화와 역사를 상세하게 알려준다거나 그 풍경에 녹아들어있는 삶의 모습을 성찰하는 그런 에세이도 아니어서 솔직히 처음 읽어나가는 동안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더 가벼운 느낌이랄까 뭐 그런.

그런데 내 기대치를 내려놓고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아무런 부담없이 터키를 즐기는 여유로운 여행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터키로 여행을 가기 위해 일정을 잡다가 결국 가보고 싶은 곳에 대한 마음이 커져서, 그러니까 원하는만큼의 일정이 잡혀있는 여행이 없어서 자유여행을 택했고 여행안내책자를 보면서 그 모든 곳을 욕심내서 찾아다니다가 괜히 힘들어지기만 하는 여행이 되는 듯 해 과감히 모든 것을 덮고 여유롭게 다니기시작하면서 비로소 여행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는 말에는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또한 치안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꺼린다는 터키의 동부지역에도 가서 선입견을 버리고 친절하고 순수한 주민들을 만나고 소박한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쿠르드 족 청년들과의 만남에서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그들의 역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기도 한다. 

사실 그리 무겁지도 않고 깊이있지도 않은, 오히려 조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터키에 대해 속속들이 소개해주는 안내책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매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부분에 대한 여행 팁이라거나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담겨있는 에피소드는 이야기로도 재미있지만 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들이 많다. 터키에서의 화장실 사용, 병원을 이용하는 것, 고속버스의 이용과 비용을 깎을수도 있다는 것, 바자르와 같은 시장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있는 할인마트인 빔마트와 디아마트에 대한 이야기도 실질적인 여행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터키의 맛있는 빵인 에크맥과 아이란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쯤 맛보고 싶어질만큼 맛나게 소개하고 있다.

'나를 부르는 터키'는 상세한 여행정보를 원한다면 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지만 이 책이 여행정보안내서는 아니니 충분히 여행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터키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가질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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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신앙과 이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평생 애써온 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하느님을 오늘날 인류에게 선포하려 애썼다.

 

"우리 시대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느님이 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성서의 하느님에게로 안내하는 것이 교회와 교황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사제 독신제, 여성 사제품, 성 윤리 등이 아니라 서양 사회에서 하느님에 대한 질문이 사라진 일입니다"

 

그는 교회 안에서 보수적인 인물로 여겨졌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애쓴 사람이었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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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님이 되시기 전에 라칭거 추기경의 대담집을 읽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정식 책으로 출판되기 전에 월간지에 실려있는 글을 읽으면서 가톨릭에 대한 생각을 좀 더 깊이해야하는구나 혹은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구나... 등등의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분이 교황님이 되셨을 때 단지 그분을 보수적이라고만 치부할 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후에 여러 매체에서 그분의 발언을 보도하면서 왠지 극우파적인 모습만을 느낄 수 있어 좀 그랬었기도 했다.

 

얼마전 작은예수회에서 온 우편물에서 총장신부의 꽃동네 비판서를 읽었다. 물론 꽃동네에 대한 이야기가 다 거짓을 아닐것이다. 비판해야하는 부분은 당연히 해야겠지만 - 모 신부님의 말씀대로, 박성구신부가 꽃동네를 비난하면서 교황님의 꽃동네 방문반대시위를 하는 그 원천은 장애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꽃동네로만 집중되고 있는 자본의 흐름을, 그러니까 말하자면 엄청나게 어마무시한 지원금을 자기들에게도 돌아오게 해 주라는 욕심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는 정당하지 못하다.

라는 것이 일단 지금 나의 생각이다. 일치와 평화를 이야기하기에도 모자랄판에 자기들이 돈을 못받는다고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그는 잘못된 것이니까.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으면서, 종교생활이라고는 주일미사만 하고 있는 발바닥 신자가 주절주절 말을 많이 늘어놓는다한들.

모 신부님께서 시복미사에 왜 안가냐고 하셨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는 어쨌거나 핑계일테고. 신부님의 말씀이 또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현장에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 아하!

교황님이 오셨을 때, 시복식의 현장에 함께 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고. - 세계청년대회때 교황님이 미사를 하는데 제대와 너무 멀어서 솔직히 미사를 하는 중인지 그저 앉아서 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 시간을 보냈던 나로서는 그 '현장'의 의미가 또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얼마나 많은 '현장'에 함께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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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4-08-13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교황님이라 칭하지 말고 교종이라 칭하는 것을 권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우리 옛말에도 원래 교종이라 지칭했었댔나?
뭐 이유와 근거가 어떻든.
확실히.
황제를 떠올리게 하는 교황보다 교회의 종을 떠올리게 하는 교종이 훨 낫다.
 

 

 

 

 

 

 

 

더 있지만. 아주 오래 전. 제르미날이 에밀 졸라의 작품인 것을 모르고 있을 때, 영화 제르미날 포스터만 보고 언젠가 이거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기억.

책 주문할까 해서 억지로 컴 켜고 로그인을 했는데 도저히 정신을 차릴수가 없다. 일단. 모든 것은 내일로. 미루자.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바로 이거. 교황과 나.

아직 도입부분이라 프란치코 교황에 대한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성프란치스코에 대한 이야기. 포르지웅쿨라에도 갔었고 수바시오 산에서 패러글라이딩하는 걸 구경하느라 시간을 놓쳐 프란치스코 성당의 프레스코화는 못봤지만 아씨시에 머물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또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종교생활은 하고 있지만 신앙생활과는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는 나의 일상이 조금 많이 부끄러워졌다.

수바시오 산, 프란치스코가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던 그 자리. 그의 삶의 모습을 떠올리기보다는 가만히 드러누워 하느님과 자연을 찬양했다는 게으름만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고 있는 나 자신은 지금 뭔가, 싶어지기도 하네.

 

잠이 조금씩 깨는 듯하다. 다시 책을 읽어야할까?

 

 

 

 

 

 

 

 

 

 

 

 

 

 

이스라엘은 상황이 안좋아 성지순례를 당분간 못간다 하더라도. 터키 그리스에는 갈 수 있겠지. 성지순례라기보다는 바오로 사도의 전도여행을 기준으로 일정을 잡기는 하던데. 나는 그냥 터키와 그리스에 가보고싶은 것.이다. 물론 이제 혼자서 자유여행으로 가는 것은 엄두도 나지 않고 이것저것 신경쓰면서 가는 것도 쉽지 않고. 그닥 맘에 들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드는 패키지는 선택하기가 선뜻. 아니, 그래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거야 뭐야?  한국인에게 특별한 세계여행지는 여행,에 대한 것보다는 문화와 역사가 얽혀있는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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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슬립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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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룩 호텔을 알고 있었든 그렇지 않든 이 작품은.

그러니까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닥터 슬립의 전작인 샤이닝을 읽었거나 읽지 않았거나 닥터 슬립이 주는 그 충격은 대단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솔직히 말한다면 샤이닝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36년 전의 오버룩 호텔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가 더 궁금해졌다. 닥터 슬립의 이야기는 샤이닝이 출간되고 36년이 지나 그때 살아남은 아이의 이야기가 이어진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닥터 슬립은 샤이닝 능력을 갖고 태어난 대니가 오버룩 호텔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샤이닝 능력을 가진 대니의 어린 시절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중년의 어른이 된 대니의 모습은 아버지처럼 알콜중독자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과는 달리 알콜중독에 빠져 직장에 해고되고 떠돌이처럼 방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처럼 샤이닝 능력을 갖고 있는 딕이 대니에게 보이는 끔찍한 유령들을 가둬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지만 여전히 자신의 샤이닝 능력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인해 술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취업을 하고, 알코올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또다시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고... 대니가 그러한 반복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강력한 샤이닝 능력을 지닌 아브라라는 아이가 태어난다. 그녀의 놀라운 능력은 부모를 놀라게 하고 대니와의 접촉도 가능하게 한다.

여전히 힘든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 마을에 정착하여 마을주민들의 도움을 받으며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가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대니와 자신의 강력한 샤이닝 능력을 감추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아브라에게 어느 날 트루낫의 존재가 등장한다. 샤이닝을 빨아들여 생존하는 그들은 샤이닝 능력이 있는 아이들을 잡아 그들의 샤이닝을 빨아들이고 처참하게 죽이는 것으로 생명을 유지해나가는데 그들이 한 소년을 고문하고 그의 샤이닝을 빼앗는 장면을 아브라가 목격하게 된다. 그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트루낫의 존재를 알아채고 그들이 끔찍한 일을 벌이는 것을 알게 된 아브라는 가끔 접촉을 하곤 했던 대니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닥터 슬립은 이야기 구성 자체가 독특하고 놀라운 sf의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한번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하면 도대체 그 다음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서 손에서 놓을수가 없었다. 지금의 시점에서도  샤이닝이라는 초능력의 이야기는 놀라운데 36년전 이미 샤이닝의 이야기가 있었다니... 정말 닥터 슬립을 읽는 내내 더 궁금했던 것은 전작 샤이닝이었다. 하지만 또 그것과는 별개로 샤이닝 능력을 가진 이들과 샤이닝을 빨아들여 생존을 하는 트루낫의 존재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이들이며, 그들의 치열한 생존을 위한 두뇌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닥터 슬립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개인적으로 호러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닥터 슬립은 솔직히 공상과학소설이라기보다는 상상력이 넘쳐나는 호러물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만큼 흡입력있게 읽히는 이야기였다.

차마 샤이닝의 세계로 들어오라는 환영의 인사는 하지 못하겠고, 다만 스티븐 킹이 구축해놓은 샤이닝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즐거운 두려움은 느껴보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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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라는 말에 굳이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 그 '즐거움'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슬그머니 다르다는 것을 배재하고.

주말,이라기보다는 성당에 가야하는 일요일을 빼면 늘어지게 맘 편히 늦잠을 자고 바닥에 드러누워 맘껏 오전 티비를 즐길 수 있는 날은 토요일. 그런데 티비광인 나도 토요일 오전에는 그닥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굳이 티비 채널을 돌리기 귀찮아서 보게 된 것이 책읽기 프로그램. 책을 보다.

 편히 누워있고싶은 토요일 오전에 사람들이 나와서 자분자분 토론하듯이 이야기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눈길이 갈리가 없는데, 우연찮게 '걷기'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게다가 그날의 낭독 초대손님은 박기영. 나는 그녀의 산티아고 여행기를 읽은 사람이 아니던가. 그래서 괜히 더 관심이 갔을 것이다. 그녀의 경험담을 듣고 있으려니 오래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렇게 한 주를 보고 나니 그 다음에는 일부러 그 시간 즈음에 채널을 돌리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된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

 

십년 후의 생활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는 누군가를 보면서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봤다. 십년 후,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 분명 하고 싶은 것들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차분히 하나씩 뭔가를 이뤄나갈 수 있는데도 그저 무식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현재의 게으름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지금 현재의 삶에 안주하며 편히 살아가고 싶은 욕심 때문일 것이다.

 

 

 

 

 

 

 

 

 

 

 

 

 

 

 

 

역시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고, 즐겁지 아니하면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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