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거기서 사는 것이다. 물은 너무 적고, 빛은 너무 많고, 온도는 너무 높은 상태. 사막은 이 모든 불편한 조건을 극대화해서 가지고 이"ㅆ는 곳이다. 생물학자들은 사막을 많이 연구하지 않는다. 식물이 인간사회에 가지는 의미는 세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식량, 의약품, 목재.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사막에서는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막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는 정말 흔치 않고, 그렇게 하는 과학자는 종국에 가서는 자기 분야의 비참함에 이골이 나고 만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고통을 날마다 견뎌낼 자신이 없다.

사막에서는 생명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는 위기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순환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의 일부일 뿐이다. 극도의 스트레스는 환경의 일부일 뿐이지 식물이 피할 수 있거나 개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인장의 생존 여부는 치명적인 극도의 건기를 반복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무릎까지 오는 정도 키의 원통 선인장이면 적어도 25세 이상 된 녀석이다. 선인장들은 사막에서 천천히 자란다. 그것도 자랄 수 있는 해에만.

 

'부활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식물은 약 100여종이 있다. 이 종들은 서로 전혀 관련이 없지만, 그들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부활초의 이파리들은 바삭바삭한 갈색으로 말라붙은 채 버티고, 몇 년 동안 죽은 척하다가 수분을 다시 받으면 정상 기능을 되찾는다. 이런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 식물들의 특이한 생화학적 기능 덕인데, 그들 본인이 선택을 한 것이 아닌 우연히 얻은 특징이다. 시들기 시작하는 잎에는 농축된 당이 모이고, 마르면서 높은 밀도의 당이 남는다. 이 시럽으로 인해 이파리들은 엽록소가 다 빠진 후에도 안정적으로 보존된다.

부활초들은 대부분 작아서 우리 주먹보다 크지 않다. 보기 싫은 외모에 작고 쓸모없고, 그리고 특별하다. 비가 오면 부활초의 이파리는 다시 부풀어 오르지만 48시간 동안 초록색으로 변하지 않는다. 광합성을 시작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다시 깨어난 직후 그 묘한 기간 동안 식물은 순수하게 농축된 당을 먹으며 살아남는다. 1년 내내 먹고 살 수 있는 수크로오스가 단 하루 만에 관을 통해 온몸에 퍼지면서 짙은 달콤함이 지속된다. 이 작은 식물이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죽음의 시든 갈색을 뛰어넘어 다시 살아난 위업을 이루었지 않은가. 물론 이 기적은 오래가지 않는다. 하루 이틀 사이에 모든 것이 불가피하게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극적인 인생도 결국은 계속 갈 수 없어서 장기적으로는 부활초마저도 시들고 완전히 죽는 때가 온다. 그러나 잠시 스쳐지나가듯 누리는 영광스러운 그 순간 부활초는 다른 식물은 전혀 모르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누린다. 바로 초록이 아니면서도 성장을 하는 비밀 말이다. (203-205)

 

 

 

 

 

 

 

 

 

 

랩 걸을 읽으면서 자꾸만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 책들이 생각났다. 이렇게 책 읽기가 재미있는데 왜 나는 한동안 책읽기가 재미없다고, 피곤하다고 잠만 잤을까.

 

 

 

 

 

 

 

 

 

 

 

 

 

 

 

 

주문한 책이 도착해야 다음 책을 주문할텐데 지난 주 주문한 책은 일주일을 다 채우고 도착하려나보다. 택배가 많이 밀리는 시기가 아닌데도 왜 이렇게 오래 걸릴까.

책을 주문하고 받으면 바로 읽는 것도 아닌데 책 박스는 꼭 빨리 받고 싶어하는 건 또 뭔지. 아무튼. 이제 놀지 말고 짬이 날때마다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괜한 욕심으로 다 싸안고 있으려 하지 말고 왠만한 책들은 그냥 술렁술렁 넘겨주기도 하고. 오늘도 선물할 책을 골라볼까, 하다가 그냥 집에 갖고 있는 책을 먼저 빼주기로. - 응? 아니다. 벌써 한 권은 주문했구나.

 

 

아, 어쨌거나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원래부터 그런 환경에 살도록 되어먹은게 아니라는 이야기. 사막에서 나와 잘 자라는 식물이 될 수 있게 하려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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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제목때문에 일단 제일 먼저 쳐다보게 된 책. 평소 이런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었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하루 종일, 주말 내내 뉴스와는 담을 쌓아놓고 지내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티비를 켰을때 - 마침 뉴스 특보 화면이 나오고 나름 알찬 주말을 보내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던 마음이 싹 바뀌어버렸다. 지금 이 판국에 저렇게 웃음짓고 싶을까.

정말 무뇌충도 아니고.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설문 써주고 고쳐주던 사람이 구치소에 있으니 더 이상 연설문도 못쓰고 아무말도 못하는건가, 생각하고 말았었는데 저렇게 기만한 표정으로 웃음짓고 있다니. 세상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래. 지금 당신은 어떤 세상에 살고 싶습니까, 라는 물음에 소박한  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두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궁금해졌어.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촛불 다음에 우린 어디로 가야할까?"

 

이대로 5년이 흐른다면 한국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저자들은 똑같은 질문을 들고 우리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 11명을 만났다. 헬조선 담론이 바닥을 치던 2016년 상반기였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전직 부총리(이헌재), 뇌공학과학자(정재승), 리버럴 사회학자(조한혜정), 탈북자 출신기자(주성하) 처럼 평생 같은 자리에서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 통하는 키워드가 있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국가 모델(박저희모델)과 시장만능주의국가모델(IMF모델)이 우리 과거를 규정했고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인식이 그것이었다. 11명 인터뷰에 대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미래의 키워드가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과정이 흥미롭다.

 

 

"회의적인 실망이 아니라 대담한 꿈이 삶을 지배하는 것 말입니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지구인들이 쏘아 올린 성단선이 연료가 부족하면 행정의 중력 궤도를 따라 '위성'이 되어 구조선을 기다리면 된다고 묘사했다. 소설이 완결된 해인 1957년,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렸다. 상상은 재빨리 현실이 되었다. 별들이 간직한 지식을 찾아나선 우주탐험가들. 외계에서 만난 미지의 생명체와 공포, 과학이 이룩한 새로운 경지의 예술들. '안드로메다 성운'은 고전적 SF 소설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고 있다. 소설이 그리는 세상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 사회다. 폭력과 전쟁은 사라지고 생명에 대한 사랑과 희망이 가득한 세계. 우주를 횡단하는 것보다 대담한 상상이다.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도시, 문명의 꽃]

해외여행 일정의 대부분은 사실 도시를 즐기고 오는 것이다. 유적을 둘러보면서 도시의 화려한 과거를 되짚거나 클럽이나 바에서 역동적인 현재를 즐기거나 아니면 새로 들어서는 웅장한 건축물을 보면서 도시의 미래를 예측한다. 이 책은 동서고금의 도시가 생성, 발전, 쇠퇴하는 양상을 설명한다. 어떤 맥락으로 도시가 형성되었고 그 도시가 이룬 성취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본다. 위대한 도시 뒤에는 위대한 철학이 있다. 로마는 시민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바실리카(공회장), 타블라리움(공문서보관소), 콜로세움(경기장), 상설극장, 신전을 건축해 시민의식을 키웠다. 이 가운데 건축물의 상당수는 개선장군들이 전리품을 기증해 지었다.

 

노년예술수업

'문제'로서의 노인이 아니라 '존재'로서의 노인을 생각한다.

 

 

 

 

 

 

 

 

 

 

 

 

 

 

 

 

 

 

 

 

 

 

 

 

 

 

 

 

 

 

 

 

 

 

 

 책정리를 하고 또 그만큼의 책을 사들이고 쌓아놓는다. 읽은 책이 훨신 더 많기는 하지만 이제 머잖아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책이 더 늘어날것이다. 책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니, 그보다는. 너무 졸려서 일이 안될 것 같아 엄청난 딴짓을 하고 있는 중인데, 이 와중에도 나는 졸고 있다.

꽃을 기다리다, 를 기다리고 있기는한데. 책은 언제 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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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우리는 모두 단 한번의 기회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들이다. 모두 우거진 나무의 시작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은 씨앗이었다.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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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7-03-15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한 이유가 그것이 해결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해결책이 관습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대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고 있는 일이고, 내가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생각이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를 사랑할 것이고, 그도 나를 사랑할 것이며,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어쩌면 이건 내가 어떻게 해도 망칠 수 없는 100만 년이 넘게 지속되어 온 실험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바라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아기가 나를 나보다 더 큰 또 하나의 무언가에 닻을 내릴 수 있도록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자라는 것을 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내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내 인생의가장 큰 특권 중의 하나가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도와줄 사람이 있고, 충분한 돈이 있고, 사랑이 있고, 직업이 있고, 필요하면 먹을 수 있는 약이 있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정말로 기쁨으로 거두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나도 이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326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지.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0






생각했던것과는 조금 다른 전개이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어린시절 엄마와 문학공부를 하고 대학진학도 문학을 전공으로 했지만 결국 과학자의 길을 걷고있다는 저자의 글은.

그나저나 연구자의 길은 어디서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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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뭐라고 -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
사노 요코 지음, 김영란 옮김 / 늘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읽어보고 싶은 에세이는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일본 작가들의 에세이는 호불호의 느낌이라기보다는 너무 비슷한 문화적 환경에서 너무나 일본스럽다 라는 느낌때문에 괜한 거부감이 생길때가 있다. 이 모순적인 느낌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와 감성코드가 맞는지 먼저 간을 보듯 한 권을 읽어보는 것이 아니라,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모두 읽어보겠다는 욕심에 한꺼번에 너댓권을 구입했다. 이미 베스트 셀러가 된 책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검증된 글보다는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이 담겨있는 추억이 뭐라고, 가 가장 먼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유년기는 악마의 시절이다"(32)

 

어린날의 '소중한' 일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녀의 유년시절 이야기 속에서 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나의 유년 시절을 너무 많이 떠올렸다. 잘난 것도 없고 오히려 극단적으로 내성적이고 소심한데다 못생겨먹은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닥 잘하지 못했다. 청소당번날이 달라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한참을 기다리던 나를 못본척하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가버렸을 때의 기억은 왜 잊혀지지도 않는 것인지. 나는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채 그저 어린 시절에 왕따였을까,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또 기억을 떠올려보면 반에서 인기있었던 친구들 - 초등학생 시절에는 남자애들까지 포함해서 그런 친구들과 내가 꽤 친하게 지냈다는 느낌의 기억도 있다.

담임선생님이 특별히 이뻐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내가 같이 있었다는 기억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있다. 물론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수업시간에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화가난 선생님의 지목에 놀라 일어섰다가 수업내용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기억이다.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버리는 내게 벌은 못주고 그저 더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사노 요코가 기억하는 에피소드의 선생님이 수학선생님이었든 내 기억속의 선생님도 수학선생님이셨는데. "따지고 보면 소학교 때는 언제고 이유도 없이 얻어맞았던 아이가 있었다. 그것은 편애의 반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좋고 싫음이 있는 법이다"(150)

 

애교가 없어서, 인사성도 없어서, 사회성도 없어서 유년 시절 친구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유년시절의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성격으로 인해 그 많은 친구들과 스스로 멀어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를 왕따 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해 스스로 떨어져 나온 탓이 있기도 하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하다. 사노 요코의 에피소드는 나의 유년과 닮아있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데 그 무엇이든 나만의 추억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하아. 어찌해야하나. 자꾸만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다 읽고 싶은 마음과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이 뒤섞이고만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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