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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뭐라고 -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
사노 요코 지음, 김영란 옮김 / 늘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에세이를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읽어보고 싶은 에세이는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일본 작가들의 에세이는 호불호의 느낌이라기보다는 너무 비슷한 문화적 환경에서 너무나 일본스럽다 라는 느낌때문에 괜한 거부감이 생길때가 있다. 이 모순적인 느낌을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쨌거나 나와 감성코드가 맞는지 먼저 간을 보듯 한 권을 읽어보는 것이 아니라, 사노 요코의 에세이는 모두 읽어보겠다는 욕심에 한꺼번에 너댓권을 구입했다. 이미 베스트 셀러가 된 책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검증된 글보다는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이 담겨있는 추억이 뭐라고, 가 가장 먼저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유년기는 악마의 시절이다"(32)
어린날의 '소중한' 일상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녀의 유년시절 이야기 속에서 나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나의 유년 시절을 너무 많이 떠올렸다. 잘난 것도 없고 오히려 극단적으로 내성적이고 소심한데다 못생겨먹은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그닥 잘하지 못했다. 청소당번날이 달라 서로가 서로를 기다리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한참을 기다리던 나를 못본척하고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집으로 가버렸을 때의 기억은 왜 잊혀지지도 않는 것인지. 나는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채 그저 어린 시절에 왕따였을까,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또 기억을 떠올려보면 반에서 인기있었던 친구들 - 초등학생 시절에는 남자애들까지 포함해서 그런 친구들과 내가 꽤 친하게 지냈다는 느낌의 기억도 있다.
담임선생님이 특별히 이뻐하는 아이들 틈바구니에 내가 같이 있었다는 기억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있다. 물론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수업시간에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화가난 선생님의 지목에 놀라 일어섰다가 수업내용의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서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기억이다.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버리는 내게 벌은 못주고 그저 더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당황스럽기만 하다. 사노 요코가 기억하는 에피소드의 선생님이 수학선생님이었든 내 기억속의 선생님도 수학선생님이셨는데. "따지고 보면 소학교 때는 언제고 이유도 없이 얻어맞았던 아이가 있었다. 그것은 편애의 반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좋고 싫음이 있는 법이다"(150)
애교가 없어서, 인사성도 없어서, 사회성도 없어서 유년 시절 친구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유년시절의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내 성격으로 인해 그 많은 친구들과 스스로 멀어져버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를 왕따 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해 스스로 떨어져 나온 탓이 있기도 하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하다. 사노 요코의 에피소드는 나의 유년과 닮아있기도 하고 전혀 다르기도 한데 그 무엇이든 나만의 추억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하아. 어찌해야하나. 자꾸만 마음이 기억하는 어린 날의 소중한 일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사노 요코의 에세이를 다 읽고 싶은 마음과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이 뒤섞이고만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