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눈 문학인 산문선 1
서정 지음 / 소명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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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초원에서 어린 낙타의 눈만큼 예쁜 것은 없다고 한다. 까맣고 동그란, 반짝이는 눈. 가장 빛나는 아이가 되리라는 부모의 염원이 담긴, 시원적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이름, 탄생의 빛과 죽음의 통곡이 묻어나는 이름. 뜨겁게 머물다 차갑게 떠나가는 방랑자의 이름. 이제 다시 찾은 오래된 새 이름"(33)


낙타의 눈,이라는 뜻을 가진 카자흐스탄의 그 이름은 '보타고즈'. 소비에트 시대의 마지막 세대이며 미국 가정을 꾸리고 사는 그녀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흐르는 암묵적 가치 또한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널을 뛴다(32)고 하는데 사실 딱히 와 닿지는 않는다. 조선족이나 고려인을 보면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인데 내가 소련을 안다고 해도 그 시대를 살아간 소련인들의 삶을 어찌 알 것인가. 그런 생각의 한편으로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글 중 하나가 자장가이다. "어떤 세대 혹은 시대를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김윤식 선생이 정지용의 예를 들어 '그것이 일본 것이니까 삼가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지적 폭력인지 모른다. 자장가를 불러야 될 자리에 저도 모르게 일본 군가를 불러버리는 경우도 사정은 같다. 그의 세대엔 유년기에 부른 노래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80) 라는 글을 읽으며 어머니가 살아왔던 시대속에서 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 않은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낙타의 눈을 읽으며 가벼운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단면을 통해 사유한 느낌을 적어내려간 글이다. 그래서 순간 멈칫 하게 되지만 낯선 듯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들이 또 다른 사유를 하게 만들어 좋다. 

러시아 연방과 그 국경지역의 독립국가, 유럽뿐 아니라 남미의 곳곳을 다니며 우리에게는 낯선 미술가의 이야기도 좋았는데 특히 핀란드의 화가 헬레네 쉐르벡의 그림들은 인상적이었다. <성모마리아 엘 그레코를 기리며> 라는 작품은 간결해보이지만 자꾸 눈길이 간다. "슬픔에 빠져 있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을 수놓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녀의 그림 속에서 빛난다"(134)

핀란드는 화가 이야기만이 아니라 공공건축가 등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있지만 그래도 역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는 공공도서관, 특히 동네 도서관이다.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서일 것이라며 여러 언어로 된 외국어 도서가 상당수 비치되어 있다는 것은 살짝 부러운 이야기이다. 

그러고보니 벨라루스인가 카자흐스탄에서인가, 러시아인가. 한국에서는 공무원의 비리가 횡령을 통해 형편없는 화장실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곳에서는 화장실을 만든다고 돈을 받지만 화장실의 실체는 없다던가. 어디를 가나 물질적인 욕심과 그에 희생당하는 것은 힘없는 이들뿐임을. 그런데 실체조차 없는 것보다는 형편없지만 그래도 화장실이 있는 것이 나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기는 하네.


벨라루스에서 시작해 러시아, 핀란드를 지나 남미에서의 여행은 문화유산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경제와 문화가 맞물리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쿠스코의 검은 예수 이야기. 볼리비아의 마녀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원주민의 신년축제 알라시타, 완전한 물질의 축제에 대한 이야기들 역시 체 게바라가 추구한 이상향과는 상관없이 자본주의 사회에 시장논리로 이용되고 있는 것과 같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여행 산문집 낙타의 눈은 한꼭지 한꼭지 읽다보면 많은 생각에 빠져들지 않더라도 또 다른 그곳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과 그들을 바라보는 저자와 그를 통해 보게 되는 또 다른 나 자신의 모습이 슬며시 나오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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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네 쉐르의 그림들은 지금 머물러 있는 곳에 있는 나와 이웃들의 ‘지금의 삶‘에 집중하라는 강력한 메시지처럼 들린다. 핀란드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카리아스토펠리우스는
˝슬픔에서 노래가 탄생하지만 그 노래에서 기쁨이 길러진다˝고말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던 마음의 고통이, 삶의 기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존재의 명백한 증거가 될 그 고통이 기록을 통해 비로소 새로운 출구를 얻는다는 것은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한 위로가 된다.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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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플롯 짜는 노파
엘리 그리피스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옆의자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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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 슬슬 습관이 되어가는데 대충 검색하더라도 찾고자 하는 책을 찾아낼 수 있으니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찾아보면서 뭔가 표현 하나에도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 플롯 짜는 노인,이 아닌 살인 플롯 짜는 노파임을 확실히 기억하게 되는 건 소설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노인과 노파라는 단어때문이다. 그리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단어 하나,에 대한 스포일러를 해 보자면 알츠하이머에 걸린 조앤이 페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깜박 잠에 빠져들고 갑자기 깨어 한마디 외치는 데 그 말이 '레드 럼'이다. 사실 이 단어에 꽂혀 뭔가 있으려나 싶었는데 레드 럼 Red Rum을 뒤집으면 바로 '살인'이 된다는 언어 유희 이상은 아닌라는.


살인 플롯 짜는 노파,여서 사건의 범인을 찾는 명탐정의 역할인 줄 알았는데 그 노파는 등장하면서 바로 사망자가 된다. 이미 나이가 많아 자연스러운 심장마비의 노인사라고 생각했는데, 추리소설 매니아인 듯 요양원에서 사망한 노인 페기의 책 속에서 이상한 메모가 발견되고 '살인 컨설턴트'라고 명시된 명함도 발견된다. 하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페기의 사망이 살인이라고 할만한 증거는 없고 장례식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뚜렷하게 이상한 점이 없었던 페기의 죽음은 그녀의 집에 침입한 무장강도가 페기의 책 한 권을 훔쳐가는 사건이 생기면서 사건담당 형사 하빈더와 페기의 친구(!)라 할 수 있는 나탈카, 베네딕트, 에드윈 세 사람은 아마추어 탐정이 되어 페기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시작한다.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거운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특히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중인 지금 이 소설 속의 인물들과 내용이 이야기의 흐름속에 조그은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역사'라는 부분을 떠올리게 된다. 돈바스 지역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고, 소설 속 내용에서 사건을 추적하며 지역을 이동하는데, 내게는 낯선 도시이지만 역주의 설명을 읽으니 비행기 테러로 인해 사고가 나고 지역주민들까지 다수 사망한 지역이 나오니 이 소설은 그냥 '범인 찾기 놀이'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유색인종, 동성애자, 다양한 종교까지 여러 이야기가 뒤섞여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결국 해피엔딩의 느낌이라는 것이다. 

피튀기는 잔혹한 죽음의 묘사가 없는 것도 좋은데 미스터리 이야기보다는 사랑이야기가 더 기억에 남고 있으니 이 책은 코지미스터리느낌의 러브스토리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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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가드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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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난 후에야 왜 표제작이 '라이프 가드'일까 궁금해졌다. 어떤 소설이든 집중하지 않으면 그 행간에 담겨있는 은유를 놓쳐버리게 되겠지만 특히나 단편인 경우 단 한문장, 한 단어를 무심코 넘겨버렸을 때 그 이야기를 이해하는 핵심을 알아채기 힘들어버리게 된다. 표제작인 '라이프 가드' 역시 소설 속 인물인 유지가 라이프 가드 였다는 것도 이 짧은 소설을 다시 읽어보며 알게 되었다. 


천천히 다시 한번 더 훑어보면서 첫번째 읽었을 때 떠올렸던 섬뜩함과는 또 다른 삶의 비극적 감정이 느껴진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소설들이 힘들다. 

표제작 라이프 가드에서 엄마를 따라 낯선 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야하는 유지에게 낯선 동생 진희는 어떤 존재였을까. 바다를 유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았음을 깨달았고 그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 진희의 시체가 발견이 되었다. 그 다음 여름에 라이프 가드인 유지는 바다를 지켜보며 거짓일까 진실일까 고민하다 결국 바다로 뛰어들고 그 속에서 '거짓은 거짓이고 진실은 진실'(89)일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결국 유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넓은 방과 많은 물건을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지는 진희의 죽음을 부추긴것일까, 방관한 것일까. 어떤 형태이든 유지는 진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일까? 유지의 죽음은 진희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라는 생각에 잠겨있다가 내 물음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삶과 죽음에 거짓과 진실이 있을까?


솔직히 이 소설집에 실려있는 작품들은 나의 현실과는 많은 괴리감이 느껴져 읽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이상으로 어려운 것은 이 이야기들의 끝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실려있는 단편 '전망 좋은 방'의 경우 그 방에서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편안히 잠들 수 있다,라고 하는데 붉은 카펫이 깔린 어둠의 계단으로 걸어가면 그것이 절망의 끝인지 희망의 시작인지 애매해진다. 지금도 나는 그 무엇도 자신할수가 없다. 


버진블루라군이든 조니워커블루든 도서관의 유령들이든 이 단편들을 생각해보니 삶의 다양한 변주가 아니라 모두 결국은 '죽음'과 연결이 되어있다. 소설집의 제목은 '라이프가드'인데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곧 절망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있어서 또 멈칫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가고 있다,인 것일까.


한가지 좀 걸리는 부분은 단편 '조니워커블루'에서 현기는 관광지에서 만난 여자의 제안으로 고사리를 꺾으러 가는데 어둠이 내려앉을때까지 숲에 머물며 고사리를 뽑는다. 초보자라면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기가 힘들 것이고, 고사리꾼이라 하더라도 해가 뜨면 피어버리는 고사리를 꺾기위해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까지 숲에 남아있는 것이 쉽지는 않다. 아니, 소설 속 현기는 오히려 처음이라 저녁까지 남아있었던 것일까? 왠지모를 괴리감에 소설의 디테일을 살펴보다가 그만 대충 넘겨버리고 만다. 다리에 시멘트를 굳혀 바다로 던져버린다는 내용의 괴리감과 비슷하달까.

작가는 "누군가의 삶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단편소설을 읽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나는 오히려 더 헷갈리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런데 왠지 가만히 되새겨보고 있으려니 삶에 대한 절망의 끝과 희망의 시작은 다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이 또한 이상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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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릴케인가. "릴케의 시에는 답이 없다. 인간의 언어로 제기된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어디엔가 이렇게 쓴적이 있는데 이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답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답이 있기는 하되 그것이 질문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적어도 시에서는 그렇다. 위대하다는 시인들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의 답에 놀라본 적이 별로 없다. 그답은 너무 소박하거나 반대로 너무 거창했다. 그러나 누구도 시인들만큼 잘 묻기는 어렵다. 나는 그들로부터 질문하는 법을, 그 자세와 열도와 끈기를 배운다. 그것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이유다.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만 살아지기 때문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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