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06년 4월
구판절판


우리는 때로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야 다른 사람을 제대로 대할 줄 알게 된다. 조금 계산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그런 시험적인 인간관계를 경험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이 공평한 게 아닐까. 나 역시 누군가에게 연습용이었던 적이 있을테니까.-361쪽

이생이 레몬을 주면 그냥 레몬에이드를 만들면 되는데 말이야

찌푸린 얼굴을 뒤집으면 웃는 얼굴이 되는데 말이야-4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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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무섭도록 솔직하고 믿을 수 없이 섹시하다'라는 건 이 책을 광고(!)하고 있는 뉴욕타임즈의 평, 일것이다. 책을 다 읽고 겉장을 덮으니 빨간글씨의 이 문구가 먼저 눈에 띄어버린다. 무섭도록 솔직하다 라는 건 책을 다 읽은 지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데 '믿을 수 없이 섹시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뉴욕타임즈의 평은 무엇이었는지, 그 말을 우리말로 저렇게 옮긴 사람의 뜻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나도 사립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그거야 학교 설립자가 사재를 털어넣었다는 뜻일 뿐 일반 고등학교와 다를 것 하나 없었다. 그래서 굳이 '사립'이라는 것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왜 쟤네들이 말하는 '사립'에는 귀족주의 같은 냄새가 풍겨나오는 것일까? - 아, 이 질문에는 또 긴 대답이 나올듯하니 이제 슬슬 말을 돌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한 소녀의 시선을 통해 그려낸 사립 기숙학교에서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솔직하고 또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었다. 저 소녀취향의 표지그림을 보며 조금은 가볍게 읽어보려고 책을 꺼내 든 내 선입견이 당황스러움을 더 가중시켰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작가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리 피오나'에 대해서도 과장된 꾸밈이나 아무런 환상없이, 아니 오히려 더 지독하게 평범하게 그려냈다. 모든 이야기는 아무런 포장없이 리 피오나의 시선을 통해 나오며, 그 이야기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아니, '판단'이라니, 그런것이 아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는 책을 읽는 독자마다 다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뭐 그런 뜻이다.
물론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아무런 비판없이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일화들에서 비판과 문제제기를 느낄수도 있고, 생각할꺼리가 쏟아져나오기도 한다. 빈부, 인종, 동성연애, 성적, 성 같은 문제에 대해 뚜렷하게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기숙학교 아이들이 겪는 생활이야기에서 뭔가 툭, 하고 던져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심각하기만 한 책은 아니라는 것은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아주 섬세하다. '다큐멘타리' 같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그리고 또 직설적이지도 않아 이 책이 '문학'임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리 피오나의 이야기에는 청춘이 있다. 우정이 있고, 사랑이 있고, 학생으로서 겪는 학교성적이 있고 청춘이 겪게 되는 기쁨과 희망뿐 아니라 좌절, 분노, 실망, 배신도 있다. 이것이 이 두툼한 책을 던져버리지 않고 읽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뱀다리. 내가 사는 곳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몇년 전에 기숙사를 세웠다. 입소 자격은 전교 성적 상위 10%이내. (아니, 상위 몇프로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흘려들었기 때문에. 하지만 성적순으로 입소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통학시간과 쓸데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노닥거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기숙사, 라는 소문이 나 있다. 명문대 진학율에 목숨 걸고 있는 학교겠지. 문득 우리나라에서 입시학교인 공교육기관에 다니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의 청춘이 부럽다는 생각보다 먼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버린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역시 빛나는 청춘,의 시절은 있는것이다. 그렇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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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5-20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땜에 만화인줄 알았어요. ^^
글쎄요. 미국의 사립학교라는게 대부분이 귀족학교가 맞으니까, 선뜻 손이 가지는 않네요. 이것도 선입관이겠죠? ^^
성적순대로의 기숙사라.... 씁쓸합니다. 들어간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거기에 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또....

chika 2006-05-2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표지때문에 읽고 싶은 생각은 별로...였어요. 그런데 귀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간 중산층 주인공 리 피오나의 시선은 전혀 귀족적이지 않아서 괜찮더군요.
참, 한국학생도 나와요. 들러리가 아니라 중요한 에피소드를 이끌어가지요. 미리 말하면 재미없으니, 이 책을 읽기전에 제 댓글을 볼지도 모르는 다른 분을 위해 어떤 에피소드인지는 비밀에 붙이겠슴다. ;;;;

비로그인 2006-05-21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입만 했었는데.. 아이궁.. 한국학생이 나온다면 어서 읽어야겠슴다..;;;;

chika 2006-05-21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학생, 신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제가 보기엔 멋진 삶, 으로 결론지은 듯 해 괜찮더군요^^
 
사립학교 아이들
커티스 시튼펠드 지음, 이진 옮김 / 김영사 / 2006년 4월
구판절판


메뉴판의 아랫부분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매일 메뉴판을 새로 인쇄한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동안 부정해왔지만 나는 돈이 인생을 훨씬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는 것, 물욕 때문이 아니라 안락함 때문에 돈을 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이 있으면 딸과 딸의 친구들을 위해 리무진을 보내 줄 수 있고, 예쁘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뚱뚱하지만 멋진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엄마의 친구 중에도 맥스웰 부인만큼 뚱뚱한 아줌마가 있지만 늘 헐렁한 바지에 작업복 같은 것을 걸치고 다녔다.-15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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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6-05-1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순간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이순간의 나 역시. 그리고...
 
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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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자연적 공간을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만드는 강력한 접착제와 같다. 사람이 집단으로 모여 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서로 오가기 시작했다는 것과 같다. 그곳에 길이 있다. 문화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자연조건을 만들어 가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렇게 터를 잡고 길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오가기 시작하면서 문화는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무르익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튼실한 끈이며 그 끈의 시작이 길인 셈이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또 다시 나에게로 이어지며 나에게서 그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골목이 가장 최소 단위이다. 그러니 나의 집과 너의 집을 이어주는 것은 골목이고,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나누며 또 이어주는 것은 길인 셈이다.
그것은 길고 짧음이다. 길이 짧을수록 같은 문화를 누리며, 너와 나의 길이 멀수록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니게 된다......
문화는 묶음이다. 골목은 나와 너의 집을 그리고 너와 그의 집을 이어주며 전체를 묶어 마을을 만드니까 말이다......-3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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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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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고 싶다. 용서받고 싶다. 빗살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 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 남에게 바랄 뿐이다. 남에게 해 주고 싶은 것 따위는, 뭐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96쪽)

그런 마음때문에 더욱 더 웅크리고 앉은 니나가와의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혼자, ''나는 외롭지 않아''라고 당당히 말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무방비 상태로 보여지고 있는 나의 뒷모습은 한치의 거짓도 없이 외로움과 쓸쓸함이라는 고독을 보여줘 버린다. 그 뒷모습은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이라 말하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따뜻하게 꼬옥 안아주고 싶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춘기를 지나는 소녀의 섬세한 마음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 자꾸만 고통을 주고 싶다고, 발로 차주고 싶다고 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주고 싶다.
발로 차주고 싶다.
사랑스러움이라기보다, 뭔가 더욱 강한 느낌" (150쪽)

뭐라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왠지 알수있을 것만 같은 느낌, ''사랑스러움이라기보다, 뭔가 더욱 강한'' 느낌을 나는 그렇게 표현한다. ''나와 같은, 또한 나와 같지 않은''
어딘가 쓸쓸하게 움츠린, 무방비한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와 똑같지는 않지만 무리에 섞일수도 없고 완전히 동떨어진 나머지, 가 되지도 못하고 있는 나의 움츠린 등이 떠올라 괜히 발로 차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아니, 내 마음속은 그런것이다. 정말은 그 외롭게 움츠린 무방비한 등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은.
하지만 청춘, 이라 할 수 있는 그 시절의 나 역시 하츠처럼 마음의 실체를 알지 못하고 감정의 색깔과 형태가 어떤것인지도 알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그저 발로 퍽, 하고 차버리고 말았으리라.
어쩌면 이리도 섬세한 마음을 지독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을까. 마치 내가 겪어왔던 그 시절을 돌아보는 듯 하다.
그래서인가. 나와 같은, 또한 나와 같지 않은 하츠의 마음과 쓸쓸히 움츠린 니나가와의 등돌린 뒷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형태를 알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세심히 그려낸 어린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다, 라는 생각은 책을 덮고 한참 되새김질 할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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