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법학자 - 화가의 날선 붓으로 그린 판결문
김현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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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나에게 미술관에 간 학자 시리즈는 적당히(!) 깊이 파고드는 전문적인 지식이 담긴 시각으로 그림을 색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게 해 주고 있어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주제에 따라 모두 3개의 법정으로 장을 나누고 있는데 제1법정은 노동자의 모습을 그린 카유보트의 그림을 통해 노동자의 기본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전쟁을 반대하고 양심적병역거부가 인정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 등을 언급하고 있다. 솔직히 제1법정으로 나뉜 첫번재 장의 그림을 보면서 낯익은 그림들과 간헐적으로 다른 책들을 통해 접한 작품해설을 읽은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낯익은 이야기도 많아 틈 날때마다 한꼭지씩 그림 감상을 하듯 책을 읽어나갔다. 


제2법정의 이야기는 예술작품을 경매에 올려 가치판단을 하는 수준을 넘어 뇌물과 돈세탁에 이용되기도 하며 시대의 가치관에 따라 똑같은 주제가 전혀 다른 형태의 그림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하는 인간과 예술의 양면성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위작이 많은 이유, 전쟁-특히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예술품 약탈로 인해 소유권 분쟁이 생기기도 하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흥미롭고 재미있기는 했지만 이 모든 것이 다 예술이 예술이 아닌 자본제 사회에서의 자본의 가치로만 판단이 되는 것 같아 좀 습쓸하기도 하다. 


제3법정 예술을 살리는 법, 혹은 죽이는 법에서는 시대에 따라 가치관의 차이에 따라 예술의 경계가 달라지기도 하며 예술작품의 공익성과 저작소유에 대한 충돌, 외규장각의궤를 통해 많이 알려졌는데 약탈된 문화재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문화재 반환에 대한 것은 도둑에게 정당한 소유권을 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까 답답해지기도 한다. 두번째 장에서 이미 나치의 약탈품은 원소유자가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다면 작품을 돌려준다고 했는데 누가봐도 우리나라의 의궤나 파르테논신전의 조각들은 진정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일본이 훔쳐간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다시 우리나라 절도범이 훔쳤는데 우리나라 대법원에서는 그 소유권을 일본에 있는 것으로 인정을 해 줬다. 이에 대한 법학자인 저자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전체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별히 한가지만 언급해보자면 '거장들이 그린 성폭력과 보복의 미술사'에 대한 꼭지글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림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다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던 내게 "비판적 그림 감상'을 생각해보게 하고 있어서 앞으로 그림감상을 하게 될때 또 다른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같은 이야기와 동일한 인물이라도 화가의 가치관에 따라 천양지차의 그림이 완성됩니다. 이때 차별적이고 뒤틀린 시선이 투영된 그림에 대한 '비판적 감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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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내게는 그저 쉬는 빨간날로 보인다. 

여름이 지나 가을로 넘어가나 싶다가 낮에는 여름이고 저녁은 늦가을이 되어버리곤 하는 변덕의 날씨에 아직 반팔티를 담지못하고 있다가 결국 오늘 여름옷을 집어넣었다. 사실, 한 달 후면 떠나게 될 성지순례를 준비해보려고 옷정리를 할 결심을 한건데.

왜 항상 여행을 떠나게 되면 입을 옷이 없다고 느껴지는걸까.

아무튼.

지난 여행에, 몇년만에 꺼낸 캐리어의 바퀴가 녹아내려 당황스러웠는데 그 사이에 바퀴수리를 하지 못하고 또 여행을 가게 되어 너무 늦으면 안될 것 같아 오늘 가방을 꺼내봤다. 흐음... 굴러가기는하는데. 이번까지 그냥 대충 끌고 다닐까? 라는 생각이 올라온다. 보증서도 없고 구입한 면세점에 확인을 하면 바퀴수리는 해줄 것 같다고 하는데 평일에 면세점 갈 일이 없어서 반차를 내면서 갈 성의는 못내고 있으니 비그치면 밖에 나가서 한번 끌어봐야겠다. 

예전엔 여행을 가게 되면 그저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해도 설레임이 먼저였는데 언젠가부터 걱정이 먼저 앞서기 시작한다. 숙소예약도 없이 무작정 떠나기도 했었던 시절에 있던 용감이는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걱정은 걱정인거고.

준비해야하는게 뭐가 있으려나......











언제나 그렇듯 관련 서적을 읽는 것으로부터. 아, 그런데 자페크 책은 도서관에 신청도서로 넣어야하는데 지금 신청해도 11월 여행 직전에나 받을 수 있으니 읽을 시간이 없겠다. 뭐. 성모발현지와 수도원에 가는 거니 그닥 이번 여행과는 큰 연관이 없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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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 - 카렐 차페크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국 여행기 흄세 에세이 5
카렐 차페크 지음, 박아람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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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가 영국을 여행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 1924년이었다고 한다. '대놓고 다정하진 않지만'이라는 제목은 차페크의 영국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것인지 차페크가 느낀 영국인의 태도를 말하는 것인지 딱히 구분지을 수는 없겠지만, 아니 어쩌면 차페크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딱 들어맞는 멋진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의 여행과 비교할바는 아니지만 비록 패키지여행으로 인해 하루 24시간도 머무르지 못한 것일지라도 생경했던 영국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게 머물렀던 시간동안 영국근위병의 열병식을 보기 위해 발끝을 올리며 비어있는 공간을 찾고 어린 조카의 손을 잡아 끌고 있을 때 갑자기 앞쪽에 있던 아저씨가 화난 듯 뭔가 말을 툭 뱉더니 갑자기 아들처럼 보이는 아이와 나를 번갈아보면서 마구 손짓을 했다. 혹시 내가 밀쳤다고 생각하시나? 하면서 눈 부릅뜨고 쳐다보는데 아무래도 아이에게 더 어린아이와 관광객일 것이 분명한 이 사람에게 열병식을 더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자,라는 뜻을 전하는 것 같았다. 아, 정말 별 것 아니야,라는듯한 그 무뚝뚝한 태도에 감사의 인사도 까먹고 열병식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지갑에 있던 한국동전을 기념하라고 아이게게 전해주기만 했었는데 유일한 그 체험 하나로 나는 영국을 딱딱하고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모습이 있는 진국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런 영국 - 아니, 대체로 잉글랜드의 이야기라고 해야 좀 더 맞는 것 같다. 사실 차페크가 여행을 갈 당시 아일랜드는 독립국가가 아닌 테러지역으로 인식되었을 것이고 실제 차페크는 아일랜드에서 편지를 쓰고 싶었지만 그곳으로 갈 수 없었고 아무 문제 없다는 듯 가기보다는 '내가 베일을 벗기지 못한 땅이지'(151)라는 한탄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로 아일랜드를 넘긴다. 


차페크는 영국에 도착하고 난 후에야 영어 한마디도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라고 하는데 말 한마디 못하면서 여행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해설을 읽어보면 런던에서 유학 중이던 체코출신의 보차들로를 만나 두달여동안 여행을 했다고 한다. 사람들과 자연의 모습, 박물관 등을 다니며 체코와 다른 부분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가끔은 차페크가 은근 돌려말하며 영국을 까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고 또 그러면서도 좀 더 깊은 속살의 영국은 그들 나름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칭송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실 영국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 때는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그들의 음식을 타박하는 건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토스트나 치즈구이, 베이컨 구이는 확실히 즐거운 옛 잉글랜드의 유산입니다'(184)라고 하는 걸 보니 얼마 전 티비 예능 프로그램에서 영국인이 영국의 음식을 맛보이면서 정말 맛있는 음식도 있다는 것을 뿌듯한 마음으로 보여주던 것이 생각났다. 

아, 그러고보니 여기에 그 표현이 있다. "영국 요리에서는 말하자면 가벼움과 화려함, 삶의 기쁨, 흥겨움, 또는 죄책감이 드는 쾌락주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국인의 삶에도 이런 것들이 결여돼 있는 듯합니다. 영국의 거리에서는 향락을 느낄 수 없죠. .... 대놓고 다정하게 윙크를 건네는 이도 없을 겁니다"(184)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웨일스...를 여행하고 - 아일랜드에는 직접 가보지 못했으나 언급은 하고 넘어갔다 - 차페크의 사유와 그림이 담겨있는 글을 읽고 나니 지금 그가 영국을 여행한다면, 아일랜드에도 가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궁금해진다. 여행기를 읽고난 후 이 한권의 책에 담겨있지 않은 다른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한 것도 내게는 좀 낯선 느낌이지만 그것이 나쁘지는 않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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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리는 훌륭한 것과 보통의 것, 두 종류로 나뉩니다. 훌륭한 영국 요리는 한마디로 프랑스 요리입니다. 보통의 영국인을 위한 보통 호텔의 보통 요리를 맛보면 영•국의 우울함과 과묵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죠. 압축한 소고기‘에 맛없는 머스터드를 발라 씹어 먹으면서 어느 누가 환하게 웃고 떠들 수 있겠어요? 이에 붙은 타피오카 푸딩을 떼어내면서 어느 누가 큰 소리로 기뻐할 수있을까요? 분홍빛 덱스트린에 담근 연어를 먹다보면 누구든 지독하게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죠. 살아 있을 때는물고기였다가 식용이라는 우울한 상태가 되면 ‘신발 밑창 튀김‘으로 돌변하는 것을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먹고, 가죽을 우린 듯 시커먼 홍차로 하루 세 번 위를 그슬리고, 칙칙한 데다 미지근하기까지 한 맥주를 마시고, 특색 없는 만능 소스와 절인 채소, 커스터드와 양고기를 먹으며 살아왔다면 보통의 영국인에게 주어진 육체적 쾌락은 다 누린 셈이니 이제는 과묵함과 진지함, 엄격한 도덕성을 포용하기 시작합니다. 반면 토스트와 치즈 구이, 베이컨 구이는 확실히 즐거운 옛 잉글랜드의 유산입니다.
그 옛날 셰익스피어는 타닌 같은 차를 목구멍으로 흘려넣지 않았고 디킨스 역시 통조림 소고기로 인생의 대부분을 버티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존 녹스‘는 어땠을지 모르겠네요.
영국 요리에서는 말하자면 가벼움과 화려함, 삶의 기쁨,
흥겨움, 또는 죄책감이 드는 쾌락주의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영국인의 삶에도 이런 것들이 결여돼 있는 듯합니다. 영국의 거리에서는 향락을 느낄 수 없죠. 흥겨운 소란이나 다양한 냄새, 각종 볼거리가 보통의 평범한 삶에 섞여 들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우연이나 웃음, 뜻밖의 사건이 될 만한 계기가 보통의 나날을 장식하지도 않고요. 거리나 사람들, 떠들썩한 목소리에 어우러질 수도 없습니다.
대놓고 다정하게 윙크를 건네는 이도 없을 겁니다. 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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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와 같은 집에서 이 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사실, 즉 그와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을 변명의 자료로 주장할 생각도 없어. 그리고 고아인 데다 여자이고 거지였던 내가, 보호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하루 세끼의밥을 단 하나뿐인 혈육인 죽은 언니의 남편에게서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사실을 변명거리로 내세울 생각도 없어. 의지할 곳 없는 스무 살 나이의 고아 처녀였던 나는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더럽혀진 일이 없는 우리가문의 명예를 옹호하기 위해서, 또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의 정식 결혼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니까 누구에게서도 비난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변명할 생각은 없어. 한 젊은여자가 부모와의 안정된 생활과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대학살로부터 살아남아서, 그때까지 그녀에게 산다는 의미를 가져다주었던 모든 것이 남자의 모습을 가진, 영웅이라는 이름과형상을 가진 몇 안 되는 남성들의 발아래에 짓밟혀서 파괴되는 것을 보았지. 내가 말하는 한 젊은 여자는 한때 그가 무엇이었든, 그가 무슨 짓을 했다고 믿거나 혹은 그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그녀가 태어났던 남부의 땅이나 영광스러운 전통을 위하여 사 년 동안이나 훌륭히 싸운그들 남성 중 한 사람과 날마다 시간마다 접촉하지 않을 수 없게 던져졌어.  26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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