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을 예상해야 했는데! 때를 가리지 않고 종교적 발작을일으키거나 신비스러운 열광에 휩싸이는 사람 아닌가, 특히 최근들어 그는 빛 속으로 이끌려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러나 보아하니 콜롬바누스 수사는 땅바닥에 온몸을 맹렬하게 내던지면서도 조금도 다치지 않는 방법을 체득한 모양이었다. 환영으로 인한 것이든 죄악으로 인한 것이든 종교적 발작에 빠져 자신의 몸을 내던지면서도 그는 날카롭고 딱딱한 물체에 부딪치거나 혀를깨무는 법이 없었다. 술 취한 사람을 다룰 때처럼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이 고통에 짓눌린 수사를 살펴보는 동안, 그로서는 마음한 켠에서 일어나는 신랄한 생각을 도무지 막을 길이 없었다. 종교적인 열정의 과잉 또한 과음과 다름없는 도덕적 문제야.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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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시간을 두고 그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겠지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긴 채 카이는 어둠 속으로 터벅터벅 멀어져갔다. 캐드펠은 심란한 기분으로 오솔길을 걸었다. 그래, 하지만 반대로 하느님이 간혹 약간의 도움을 구할 때면 인간은 대개 훼방만 놓지.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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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아닌?

너무 더워서 쉬는 날 새벽 같은 시간에 일어나 앉아있다가 티비를 켰는데 이웃집찰스가 나온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라 그냥 보고있었는데 대화의 자막이 이상하다.

누가봐도 딱 모범생 아니?

이 말뜻은 누가봐도 모범생이다, 인데 자막은 모범생 아닌? 이라고 되어있다.

이러니 또 어제 서진이네를 볼 때 차이니즈푸드, 라는 말이 들린것 같았는데 자막에는 한국음식 만든다 그러고.

괴리감이란 이런건가.
내 귀가 이상한건가.
내 선입견이 센건가.

차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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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잡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화에 담긴 은밀하고 사적인 15가지 스캔들
김태진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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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처음으로 유럽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안내자도 없이 루브르 박물관을 들어가게 되었다. 보고 싶은 작품을 잘 찾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 넓은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봐야하나,하고 있을 때 마침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고 한무리의 아주머니들 옆에서 한국말 설명에 귀기울이고 있으려니 우리의 귀동냥을 눈치채신 분들이 가까이 와서 함께 다니자고 해 주셨었다. 그때 본 모나리자의 실제 모습도 놀라웠지만 그곳에서 처음 그 존재를 알았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역시 잊을수가 없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설명을 해 줬던 가이드는 미술을 전공하는 유학생이라고 했고 유독 그 작품의 배경이 되는 역사 이야기를 유난히 길게 하면서 인물들의 동작과 표정에 대한 설명을 잘 해주어 그런지 그냥 스쳐지나쳤을 그림이 역사적 사건을 담은 대단한 그림으로 느껴진 것이다. 

[명화잡사]는 그렇게 그림을 통해 그림이 담아내고 있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물론 저자가 잡사라고 표현한 것처럼 그림을 그린 화가나 모델에 대한 개인사와 흥미를 일으킬만한 여러 소문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솔직히 그런 이야기로 인해 조금은 가볍게 글을 읽다보면 그것이 곧 당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포인트가 되기도 해 좋았다. 


책의 표지 그림은 '제인 그레이의 처형'의 일부인데 그림이 낯설지는 않지만 자세한 그 배경에 대해서는 들었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묘사하고 있는 제인 그레이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를 살리고 싶었지만 죽일 수밖에 없었던 메리 여왕의 이야기는 그동안 앤 불린을 중심으로 알고 있었던 단순한 치정의 역사를 인문학적으로 다시 살펴보게 해 주고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림으로 시작해 그림 속 인물 개개인의 입장을 스토리텔링하듯 묘사하고 있는 저자의 글을 읽다보니 복잡해보이던 영국 역사의 일부가 좀 더 명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 책을 읽으면서 4개의 장으로 나뉘어있는 글을 별 의미없이 무심코 읽어나가다가 이 개별 그림들이 역사속에 어떤 의미로 언급을 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각 장마다 [인문학까페]라는 글로 시대의 흐름과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어서 전체적인 역사의 틀을 파악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림과 화가들의 생애는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지만 저자의 필력이 좋아서 그런지 간결한 설명이 이해하기 쉬웠고 좀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도 갖게 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림과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그림과 역사에, 특히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흥미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마리앙뜨와네트의 목걸이 사기사건이나 막시밀리안 황제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도 흥미롭기도 했지만 관심이 더 컸던 것은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와 그림이었다. 그림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림이 많지는 않아 아쉬움이 조금 남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인상적인 그림과 설명이 있어서 명화잡사,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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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y
강진아 지음 / 북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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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그딴 건 별것도 아냐. 너 낳고 키운 것에 비하면"(233)

드라마 속 지지리궁상인 엄마에게 진저리치며 말하는 딸에게 내뱉을만한 대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 이 대사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마이마이는 예전에 한때 유행했던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말한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공부를 재능으로 여기며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반장이다. 어느 날 미화부장의 새 마이마이가 사라지고 범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평소 체벌을 전혀 하지 않던 담임선생님은 반 전체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한 후 교실을 떠나버린다. 그 다음 날 엄마가 다니는 축산공장 사장의 딸인 변민희가 나 혼자 있는 교실에 들어와 미화부장의 마이마이를 돌려놓고 떠난다. 못본척 해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변민희는 사라졌고 변민희의 가출 신고 이후 나는 그날 학교에서 변민희를 본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심지어 담임인 한정철과 변민희가 사귀는 사이였다는 소문을 퍼뜨리기까지 한다. 

변민희의 아빠가 끈질기게 딸을 찾아 헤매지만 변민희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선생 한정철은 뚜렷한 증거가 없지만 온갖 소문에 의해 학교를 떠나게 되고 나는 그 모든 것과 상관이 없는 듯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이어간다. 엄마의 가게운영을 위해 목돈이 필요한 나는 횡령을 하게 되고 결국은 회사에서 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 즈음 고향의 공사현장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학창시절 종적을 감췄던 그 변민희가 시체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는데......


뭔가 악의가 없어보이는데 한번 더 생각하면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악의가 느껴지고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일까, 싶어진다. 소설의 중반까지는 도무지 예견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단 한문장으로 변민희를 죽인 범인을 예상하게 하는데 그 이후 또 단 한마디 말로 다른 전개를 떠올리게 하는 이 소설은 엄청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아니, 그렇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좀 섬뜩한 느낌이다. 아, 이걸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어서 답답한 것은 나뿐일까?


후반부로 갈수록 범인 찾기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범인 숨기기의 치밀한 구성에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지는데 솔직히 뭔가 불편하다. 어제 티비에서 본 이야기 하나가 느끼게 했던 그런 불편함같은 그런 것처럼. 초등학생이 같은 반 친구인 지적장애아를 간식사먹자고 데리고 간 후 화장실에서 옷을 벗기고 거리로 내쫗는 모습이 그대로 동영상으로 녹화된 모습을 보는데 끔찍했다. 지적장애가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고 있던 아이이고 알몸이 부끄러운 것도 인지하고 있는 아이인데 같은 반 친구라면 그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이 되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태연하게 엘리베이터 타는 모습까지 확인하고 돌아갔다니, 얘는 촉법소년으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끔찍하다. 나는 이 소설의 뒷맛이 그와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는 한가지 희망이 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사과해. 많이 늦었지만 니가 사과하면 받아줄게. 쇳소리가 섞인 변민희의 목소리가 뒤로 감기 후에 다시 플레이되었다. 너 나한테 잘못했지? 사과해. 많이 늦었지만 니가 사과하면 받아줄게"(253) 그걸 떠올리고 옛 담임인 한정철을 찾아가 사과를 한다. "머릿속에서는 경보처럼 제발, 제발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커다란 위험에 처한 것만 같았으므로 최대한 진실한 마음으로 반복했다. 제발, 제발, 제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두 손은 기도할 때처럼 가슴 앞에 모여 있었고 고개는 푹 속여져 있었다. ...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엄마를 쏙 빼닮은 나의 딸은, 아직은 따뜻한 나의 딸을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258)

엄마와 나의 삶이 아닌 나와 딸의 삶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의 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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