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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 - 작고 여린 생의 반짝임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스텔라 황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5월
평점 :
"한사람이 감당해야 할 죽음과 슬픔은 적을수록 좋지않을까. 어느 누구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병원 그것도 신생아중환자실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아기를 잃은 가족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는 나는, 조용히 그들의 손을 잡고 슬픔의 강에 몸을 던진다. 그들을 다정히 안고 같이 흘러간다. 슬픔의 강이 언젠가는 마르기를 바라며, 아기의 회복을 바랐던 이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한다면, 애도의 과정이 아주 조금은 덜 괴롭지 않을까"(166)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며 '결국 세상을 구하는 건 '공감'이라고 말한다' 글을 읽다보면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나는 죽음앞에서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라는 제목때문인지 너무 감성적인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큰 기대없이 책을 펴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한꼭지 한꼭지씩 글을 계속 읽게 된다.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짧게 언급하고 있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은 주제는 그것이 아니므로 세세히 이야기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그녀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좀 다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이 에세이를 읽으며 자꾸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들만 모아놓은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드라마가 지독한 현실만을 보여준다면 그것이 드라마겠는가. 다큐멘터리가 되겠지. 물론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 - 하다못해 의료수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을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문제제기가 될 뿐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지 않는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의료비부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대안이 자신의 월급으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복지를 실천하는 것 정도일뿐이지만 그런 기부마저 쉬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객관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현실에서 미국과 한국의 의료보험제도에 대한 생각이 담겨있는 글을 읽으면서 어느곳이나 돈많은 사람들이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진료비가 없어서 아예 병원에 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보험제도에 대해 처음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나는 현재의 제도에 큰 불만은 없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놀라가듯 병원을 다니며 재정을 갉아먹고 있는 것 등등 몇가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만.
그러다가 문득 의사 총파업에 생각이 미쳤다. 발단은 의대정원 증원으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사가 되려는 것이 의술로 사람을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밥그릇 지키며 호의호식하는 것이었던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주제의 핵심을 벗어나고 있는 이야기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으니.
아무튼, '나는 죽음 앞에 매번 우는 의사입니다'는 그냥 어쩌다보니 미국 유학을 가 의사가 되었고 소아과전문의로서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만나게 된 수많은 아기들과 가족들, 함께 근무하고 있는 이들과 어떻게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논란이 될 것 같은 이야기끝에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자인 스텔라님은 자신에게 온 '나의' 아기에게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란 느낌이고 세상을 구원할 '공감'능력이 크신 분이란 확신을 갖게 된다.
신생아중환자실이라는 것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수많은 죽음에 대한 에세이일까,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죽음에 직면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아기들이 병을 극복하고 중환자실을 '졸업'하고 나가게 되는지, 얼마나 많은 축복속에서 아기들이 사랑을 받고 엄마와의 유대감을 통해 안정을 찾게 되는지 같은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고 아픔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삶은 그 어느곳에서나 빛을 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듯 하지만 저자의 삶의 체험과 이야기에서 내가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할지, 커다란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고 보듬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이렇게 '작고 여린 생의 반짝임의 가르침'은 저자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