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릴적부터 모진 삶을 살아왔다. 처음 마지못해 이 피난처로 들어오기 전까지, 궁핍과 잔인함과 고통은 그에게 가까운 벗처럼 친숙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달랐다. 죽음은 너무도 소름 끼치고 너무도 어두운 것이요, 유예의 가능성도 없이 즉각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학대당하고, 못 먹고, 쉴 새 없이 일만 하며 사는 삶도 여전히 삶이었다. 하늘이 머리 위로 보이고,
나무와 꽃과 새들이 주변에 있으며, 색채와 계절과 아름다움이있었다. 살아 있는 한, 삶은 친구요 죽음은 낯선 것이었다.
"이보게. 죽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네." 마크 수사를 지켜보던 캐드펠이 말했다. "작년 여름 마을에서 아흔다섯 명이 죽있지. 살인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그저 편을 잘못 들었다는 이유로 죽은 게야. 죽음은 전쟁 중엔 죄 없는 여인들에게 떨어지고, 평화로울 땐 악인에 의해 저질러지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적이 없는 아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며 살아온 노인들에게, 잔인하고 무분별하게 떨어진다네. 하지만 저세상에는 균형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돼. 자네가 보는건 완벽한 전체에서 부서져 나온 조각에 불과하네." - P258

어쨌거나 나라가 두 파로 갈려 있으면, 양쪽에서 이익을 챙기느라 다투고, 사람을 팔고, 경쟁자들에게 복수하기 마련이지요. 그 와중에 다른 사람의 토지를 제 것으로 취하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요. 어떤 악마가 이 일을 꾸몄는지는 몰라도, 이제 그 결실은 영원히 맺지 못하게 됐습니다." -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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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력이란 얼마나 신묘하며, 그 보상은 또 얼마나 갑작스럽고도 과분하게 돌아오는가! 캐드펠은 생각하며 떡 벌어진입을 다물었다. 아니, 과분하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제 일을 하던 마크 수사에게 이런 보상이 떨어졌으니 말이야.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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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피를 흘린다고 이 세상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하지만 자네의 손과 힘과 의지. 자네 안에 아직 남아 있는 그모든 미덕은 세상에 큰 쓸모가 될 걸세. 무슨 벌이든 달게 받고 속죄하겠다고 했지? 그러면 죄 갚음을 하라는 명을 내리겠네. 알으로 자네의 삶을 살되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을 배려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감으로써 자네의 부채를 갚으라고 명령하겠네.
자네가 행한 선의 총계가 악행을 모두 합친 것의 수천 갑절이 되도록 노력하게나. 이것이 내가 자네에게 내리는 벌일세."
메이리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캐드펠을 올려다보았다. 그의얼굴에 떠오른 것은 환희나 안도의 표정이 아니라 당혹감 그 자체였다. "정말입니까? 그게 제가 받을 벌이라고요?"
"그렇다네. 그것이 자네가 해야 할 일이야. 회개하게 살아가면서 죄지은 자를 만나면 자네의 잘못을 떠올리고, 죄 없는 사람을 만나면 경의를 표하며 힘닿는 만큼 그를 돕게. 자네가 할 수있는 것을 모두 하고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기게나. 성자라도 그이상은 못 할 걸세." - P308

하느님, 제가 소년에게 먼저 제안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캐드펠은 신실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미고결한 행위를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선의를 강요받는 것만큼 젊은이의 짜증과 분노를 자아내는 일도 없으리라. - P328

그는 문간에 서서 멀어지는 두 소년을 지켜보았다. 뜰을 가로질러 문지기실 쪽으로 가면서도 둘은 여전히 팔을 걸고 아웅다웅 다투느라 정신이 없었다. 저 또래의 아이들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압박 속에서도 영웅적인 충성심과 용맹함을 보이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가 싶다가도, 온 세상이평화로워지자 순식간에 어린 강아지로 돌아가 싸우며 뒹구니 말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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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법이 절대 오류를 범하지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캐드펠은 이 소년에게 당당하게 법정에 나가 무죄를 주장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행정관은 자신의 수사 방향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 다른 가능성은 일절 염두에 두려 하지 않을 터였다. 캐드펠의 증언에 귀를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경멸스럽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노인네가 교활한 어린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비꼬지 않겠는가. 130

만일 법이 절대 오류를 범하지않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캐드펠은 이 소년에게 당당하게 법정에 나가 무죄를 주장하라고 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다.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행정관은 자신의 수사 방향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 다른 가능성은 일절 염두에 두려 하지 않을 터였다. 캐드펠의 증언에 귀를기울이기는커녕, 오히려 경멸스럽다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노인네가 교활한 어린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비꼬지 않겠는가.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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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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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것 같지만 실제로 캐드펠 수사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추리소설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시리즈의 첫째권을 읽으면서 당시 시대상과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책을 읽는데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이 시리즈를 역사추리소설이라고 하는만큼 시대적 배경을 알고 책을 읽으면 더 풍부한 내용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슈루즈베리의 수도원에서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갖고 오기 위해 수사들을 보내면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중세시대에는 성인의 유해 한조각이라도 보관을 하고 거기에 성인의 기적에 대한 증언이 더해지면 그 수도원의 위상이 높아져, 캐드펠 수사가 소속되어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해리버트 수도원장의 명으로 캐드펠 수사는 부수도원장을 수행하여 귀더린으로 향한다. 수도회의 콜롬바누스 수사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지만, 십자군 원정에도 다녀 온 사전수전 다 겪은 캐드펠 수사의 시선으로 본다면 신의 계시라기 보다는 그의 병증은 간질이 아닐까 싶은데.

어찌되었든 지역에서는 별다른 추앙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수도회로 옮기기 위해 웨일즈 출신의 캐드펠 수사도 함게 떠나게 된다. 별 무리 없이 성녀의 유골을 수도회로 갖고 갈 수 있다 생각했지만 뜻밖에 영주 리샤르트를 비롯해 마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치고 서로의 의견 조율을 위해 만나기로 약속한 그 날, 리샤르트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시신에 꽂혀있는 화살촉의 주인은 마을의 이방인인 엥겔라드로 밝혀지고, 리샤르트의 딸과 가까이 지내는 그를 음해하기 위해 일부러 그의 화살을 쓴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엥겔라드가 죽인 것인지 밝혀야 하는데......


캐드펠 수사는 약초에 대해서도 잘 다루는 것으로 나오는데 관찰력도 좋고 무엇보다 시신이 발견된 후 살인사건인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히 그가 수사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건의 흐름에서 캐드펠 수사가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고 범인을 추론해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소설적 재미를 느끼게 하고 있는 부분이라면 행간에 담겨있는 묘사들은 맛을 더 풍부하게 해 주는 양념처럼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하느님께서 시간을 두고 그 모든 것을 해결해주시겠지요." 의미심장한 대답을 남긴 채 카이는 어둠 속으로 터벅터벅 멀어져갔다. 캐드펠은 심란한 기분으로 오솔길을 걸었다. 그래, 하지만 반대로 하느님이 간혹 약간의 도움을 구할 때면 인간은 대개 훼방만 놓지."(87)


인간의 훼방을 이겨내고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는 캐드펠 수사의 활약상이 궁금하시면 이 책을 펼쳐보시라. 오래 전 소설이지만 여전히 흥미로움이 가득한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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