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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평점 :
나는 사실 '카파'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문구가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그의 사진이 얼마나 포토저널리스트들 사이에 전설적인지, 그의 사상이 어떤지...도 모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포착해낸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이라는 카피라이터를 봤을 때 막연히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이라는 것만을 떠올리며 책을 펼쳐들었다. 이렇게 나는 막연히 듣기만 했던 '로버트 카파'라는 사람에 대한 것을 그 자신이 직접 쓴 그의 2차대전 종군기,를 통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뿐이다.
한편의 소설처럼 극적이고 반전이 뒤엉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읽으며, 이거 소설 아닐까? 라는 의심으로 자꾸만 저자를 다시 확인해보게 될 만큼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시작되었고, 종전 소식을 알리는 45년까지의 3년간의 기록은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그가 말해주는 전쟁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꾸며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죽음을 비껴나가며 전장을 누비고 있는 카파의 모습에선 '전쟁영웅'이라는 말은 전혀 떠올릴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연합군의 진군, 이탈리아 프랑스 탈환, 진군, 진군... 승리를 알리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전쟁은 지속되고 있고 죽음은 전쟁의 승패를 떠나 어느 누구에게나 오고 있음을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확률이 반반이라면 나는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길을 택하겠어" 라고 말하는 카파는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그 유명한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말은 단지 기사의 카피가 아니었다. 포격이 뒤엉켜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가는 전장에서 사진을 찍고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떨리는 손을 주체할 수 없었고, 두려움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음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전장에서 도망치듯 나와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가슴을 치며 슬퍼하고 '비겁한 놈은 나야'라는 말을 하는 그는 결코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 아닌것이다.
그런 그의 사진에는 거짓이 없다. 먼 발치에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며 사진 몇 장 찍어대고 영웅인척 하는 거짓은 카파에게서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승리를 향해 진군하고 있는 아군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적의 총탄에 숨져버린 앳된 군인의 죽음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그의 사진은 '전쟁'이 무엇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말이 더 마음을 친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 한복판에서 "공중을 날며 노래하는 것이 새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머리 바로 위로 포탄이 날아다녔다. 박격포탄은 휘파람 소리를 내고, 순양함은 쇳소리를 내고, 장갑차는 삑삑거리는 고음을 내며 서로 불협화음을 만들고 있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독일군 박격포도 휘익 하는 소리를 내며 내게서 불과 100미터도 안되는 언덕 위에 떨어졌다. 나는 덤불 속으로 더 낮게 머리를 파묻었다. 태양이 내 등을 비추어 따뜻한 온기가 전해왔다. 불현듯 '아! 공중을 날며 노래하는 것이 새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