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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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로펌의 잘나가는 일류 변호사,가 가정부가 되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빤한 스토리의 전개가 눈에 보이는데, 읽을까 말까. 당연히 고민된다. 이런 책은 빤해보이지만 뭔가 감춰진 비밀이 있는 듯 하고 정체가 드러날 듯 말듯한 긴장감이 있어야 하고, 또 재미가 있어야 한번 움켜 쥔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단숨에 읽어제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그럴까?

내가 읽은 워커홀릭은 재미, 라는 측면에서는 대성공이라 생각한다. 문고판보다 조금 큰 크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삼백여쪽이 넘는 두 권의 책을 쉬지 않고 읽었다. 적당히 그럴듯한 이야기에 중독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자꾸 ''영화''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노골적으로 영화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하고 싶다. 너무 지나친 장면의 전환과 이야기 전개에 맥이 빠져버리고 읽는 것이 지겨웠던 다빈치 코드와는 전혀 딴판이라, 나는 워커홀릭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워커홀릭이란 소설에 중독되어버린게 맞나보다.

이야기 자체로는 특별하다고 할 것은 느끼지 못했다. 내가 책을 너무 가볍게 읽어버린건가? 매 시간을 6분 단위로 쪼개어 성공을 향해 ''일'' 이외의 것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일류 변호사 사만타가 어느날 엄청난 실수를 한 것을 알고 도망치듯 길을 나섰는데, 우연하게도 (정말 ''우연''히!) 가정부를 구하는 집에 들어가 그곳의 가정부가 되어 지내게 되고 그 집의 멋진(!) 정원사와 사랑에 빠지고. 이야기의 끝에는 결국.....
아, 이야기를 다 해버리면 책을 읽을 때 재미없어지니 여기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은 중단해야겠다. 축약한 내용으로 보면 정말 어이없게도 너무 기막힌 우연과 사건 전개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런 생각은 사라져버린다.
또 당연하게도 6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일을 하던 사만타는 삶에 있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잠시 창밖을 바라 볼 수 있는, 햇살 좋은 날 잔디에 누워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이 훨씬 더 좋다는...뭐 그런거겠지?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주고 있는 여유로움이 넘쳐 흐르는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나로서는 재미있게 술렁술렁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이 책 한권이 있어 행복할뿐이다, 와 비슷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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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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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어갈 즈음 괜히 울컥해지는 마음은 어쩔수 없었다.
"다음엔 부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행복해 질 수 있는 인생이었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이 이야기는 타인의 기억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이른바 ''스캔''이라고 하는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인 소년과 청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기자와 설핏 끼어든 사랑이야기가 얽혀있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설명은 관두자. 정말 한참을 망설이고 있다.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지 망설이면서 꼭 써야한다는 이 부담감으로 인해 쓰고 싶은 말이 안에서만 맴돌고 밖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금 나는 정식으로 ''서평''이라기보다는 내 안에서 내키는 대로 나오는 글을 적어놓고 말 생각이다.

''추리소설''이라 더 끌렸고, 특히 미야베 미유키라는 이름때문에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더구나 내용이 초능력자에 대한 것이라니!
내 생각은 그렇게 가볍고 진중하지 못했다. 사람이나 사물을 스캔하여 기억을 되살리고 재구성하여 사건을 밝혀낸다는것에만 흥분해있었던 것이다. 초능력, 이라고 하면 나처럼 흥분하여 일종의 부러움과 경이로움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이런 나에게 미야베 미유키는 ''꿈 좀 깨!''라고 외치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진실되고 깨끗하지 않은 이 시대에, 타인의 마음을 여과없이 모두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혼자만 거짓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외눈박이 거인을 구경거리라고만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래, 한번 바꿔 생각해 봐. 외눈박이 거인들의 세상에 나 혼자 던져진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 ''정상''과 ''비정상''이란 것은 무엇이 기준일까?
화학공장의 폭발로 약품 섞인 연기에 목이 타들어가 후천적으로 목소리를 잃은 나나에를 보며 고사카는 생각한다.
"사실 ''정상''이라는 말은 마땅치 않은 표현이다. 정신이 썩은 인간이라도 사지만 멀쩡하면 ''정상''이라는 얘기니까"(349쪽)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작가의 시선이 느껴진다. 차갑고 날카로울 것 같은 선입견을 사라지고 어느새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닿는 그 시선이 너무 따사롭고 인간적인 배려로 가득해 마음이 따뜻해진다. 더구나 누구나 각자 몸 안에 용을 한마리씩 키우고 있으며, 그 어마어마한 힘을 숨긴 불가사의한 모습의 잠자는 용이 깨어나면 부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다, 라고 하는 그녀의 나직한 외침을 듣고 있으면 용을 깨워버린 그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 손을 잡아줘야지...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부디, 부디 네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인생이기를...기도하면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현상적인 하나의 사실에서 시작하여 ''사람''에 대한 시선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초능력이라는 SF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녀의 작가적 재능에 감탄할뿐이다.


용꼬리같은 이야기 하나.
일어를 전혀 모르기때문에 번역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일본 추리소설을 읽으며 익숙해진 역자의 이름은 괜히 더 정감어린다. 그리고 역자 후기에는 항상 번역상 자의 해석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끝에 번역상 오류는 이메일이나 자유로운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웹주소를 적어놓는다. 나는 역자의 그런 열린 마음에 괜히 감동한다. 이런 글 한마디에, 단아하고 깔끔한 글씨체 하나에 나는 권일영님의 번역을 신뢰하게 된다. 이것이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를 서로 보완해주며 살아간다는 뜻이 담겨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러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본문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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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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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저자 후기를 보니 그렇게 쓰여 있다.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희망"이라고. 그 ''희망''이라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 구석에 박혀 있었던 것처럼 절대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을까? 특히 세상에서 등돌리고 살아가려 하는 모든 이들,이 말이다.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제목에서 풍겨나오는 것처럼 어쩌면 이 책의 내용은 빤하게 흘러가고, 굳이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그 흐름을 알 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어디 줄거리로 읽는 것이었더냐.
''자살''이라는 주제를 갖고 이리 유쾌하고 키득거리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니, 이런 주제의 글을 읽으면서 크크큭 거리며 웃고 있는 나 자신이 생소하기만 했다.
저자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쓴 말에 덧붙여 "앞서 읽은 나의 많은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꽤나 유머러스하다고 좋아했다"는 글까지 썼으니 뻔뻔하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유머러스''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니 이 책은 그의 기대만큼, 나의 기대치보다 좀 높게 재미있는 책이기는 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이 그저 유머러스하고 재미있고, 빤한 그런 소설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니다. 자살여행의 전개과정에서 준비와 시작단계인 1부는 조금 경쾌하게 갔는데, 2부로 들어서면서 왠지 좀 경쾌함은 사라지고 책읽는 속도가 더뎌지는 기분을 느껴야했다. 왜냐고? 당연하지 않겠는가.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는 결코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행이 계속되면서 핀란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간간이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흘리고 있는 삶의 모습과 핀란드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는 키득 거리며 웃고 넘겨버릴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지만, 죽을''뻔''한 사건에 얼굴이 백짓장이 되는 사람들의 묘사에는 웃음이 터지지만, 에이즈에 걸려 삶을 포기하려 했다는 동행의 고백에 기세등등 단죄하려는 사람들에게 그의 잘못보다는 난잡한 생활을 한 당신들이 더 감염되고 전염을 일으킬 것이라는 외침은 우리 모두를 멈칫, 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들이 요소요소 담겨 있어 책장을 술렁 넘겨가며 읽을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두의 예상처럼 결국 그들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미리 앞당겨버리지 않고 삶을 지속해나간다. 하지만 저자가 얘기하려고 한 것은 ''그들은 죽지 않았다''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희망''을 발견했다"라는 것임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독서의 기쁨 아니겠는가.

나도 작가처럼 괜히 하나 덧붙여보자면, 소소한 마지막의 반전 이야기 하나는 경쾌하게 시작한 이야기가 교훈을 주는 도덕책으로 전락할지도 모르는 이 책의 묘미를 살려줬다는 것에 보이지 않는 별점 하나를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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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6-1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완전 리뷰 쓰나미로군요! ^^ 대단하십니다.

chika 2006-06-1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쓰나미...^^;;;;;;;
 
PING 핑 - 열망하고, 움켜잡고, 유영하라!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 지음, 유영만 옮김 / 웅진윙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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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꾸는 가장 유일한 방법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미래란 현재의 성공적인 헌신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175)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순간들 중 하나는 바로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 우물을 벗어나기 위해 힘찬 도약을 하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겠지. 하지만 나는....
나는 진작에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간혹 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폴짝거리는 척 해보지만, 정말 속 마음은 ''이 우물 밖의 저 세상은 두려워'' 인 것임을 숨길수가 없다. 아니, 모두에게 숨겼지만 나 자신에게만은 그걸 숨길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잠시 짬을 내면 이 책은 약간의 흥분을 일으키며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어쩌면 지금까지 많이 읽어봤던 책들과 그닥 다를 것이 없다. 미래를 위해 움츠러들지 말고, 나 자신의 진정한 발견을 위해 힘껏 도약할 수 있는 힘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믿어라...등등등.

그래도 이 책이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우물 밖의 세계를 무서워하고 변화를 두려워 하는 마음에 대해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두려움이 부끄럽고, 나 자신이 비참해지려 하는 순간에 핑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상태입니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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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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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가난한 사람들! 그런 혐오스러운 종족이 있는데 먼데서 찾을 필요가 있습니까? 가난한 사람들, 체! 얼마나 혐오스런 인간들인지! 왜 가난한 사람들이 미움을 받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까? 그 사람들은 가책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못생긴 여자나 정신병자와 마주칠 때 죄의식을 느끼게 되지는 않습니다. 못생긴 여자는 그냥 못생긴 여자이기 때문이고 정신병자는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내 재산의 절반을 준다면 그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게 또한 논리거든요.

- 토할 것 같아요

- 왜요? 새삼스럽게. 그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다 싫어했잖습니까?

- 다 그러지는 않았어요.

- 진짜 예외는 아주 드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몇 푼 던져 주는 것으로 할 도리 다했다고? 그걸로는 안 되는 것이죠. 22세기 중반에 한 부류를 희생시켜야만 했을 때 사람들이 오래 망설인 게 아닙니다. 그리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134-135쪽)

아멜리 노통의 책을 읽다보면 왠지모를 지독함이 느껴진다. 그것이 오후 네시를 읽을 때는 참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머 그런 느낌에 뭔가 지독한 불편함이 느껴지면서도 손에서 책을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시간의 옷은? 토할 것 같은 지독함이 느껴지지만... 전부 거짓은 아닐꺼야, 라는 생각에 더 불쾌해진다. 외면하고 싶어지고, 뭐라 반박하고 싶어지지만 선뜻 그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혐오스런 감정과 뒤섞인 나약한 인간의 심성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는 것 처럼 노통은 자기가 내뱉고 싶은 말을 다 내뱉어버린다. <내가 내뱉는 말에 대한 느낌은 내 책을 읽는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지, 안그래?> 하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아멜리 노통의 소설은 '다 거짓말이야. 그녀의 상상력일뿐인걸?' 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을 불편하게 하네. 그녀의 절묘한 언어 유희,를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탓에 불편한건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아멜리 노통과는 당분간 안녕.

아, 그리고 본문을 인용한 저 말에 대해서, 노통이 역설적으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려 한 것인지 그 진의를 알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지독한 표현이다. 사실 요즘... 몇몇 사람들에게선 '가책'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몇 푼 던져줘야 할 존재들에 대한 귀찮음을 느껴봤기 때문에 더 지독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그들을 <인간>에 포함시켜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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