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티네이션 아트 - 전 세계 505곳에서 보는 예술 작품
파이돈 프레스 지음, 이호숙.이기수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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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티네이션 아트,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설치미술, 조형미술의 한 범주겠거니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데스티네이션 아트란 "장소, 특정적 예술 site-specifc atr, 즉 작품의 구성요소가 배경으로서 자연을 보충하거나 특정 장소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계획되고 배치된 미술 작품을 소개하는 안내서'라고 되어 있다. 

내가 생각했던 그 미술작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의 나오시마 섬을 떠올리게 하기도 해서 관심을 갖고 보고 싶었다. 더구나 전세계 곳곳의 5백가지가 넘는 작품이라니!


그런데 솔직히 나의 기대와는 달리 첫장을 펼치면서부터 줄곳 낯선 작품들만 나와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조형물들은 도대체 어디쯤 나오게 되는걸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재미로 이 책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있어야 온전히 이 책을 즐길 수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세상 아닌가.


술렁거리며 책을 넘기다가 그나마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나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나고시마뿐 아니라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뉴욕에도 있고 제주에도 있으며 이 책에서도 다른 작가에 비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제주의 본태 박물관에서 작품을 직접 봤기때문에 더 반가운 마음에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만 눈에 띈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작품들에 대해 짧게 설명하고 있는 것도 조금은 불만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다보니 내가 이 작품들에 대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고 즐기는 것 - 실제로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해보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에 사진으로나마 보며 즐길 수 있고 또 언젠가 직접 볼 수 있는 기대를 해 보며 책을 읽는 것이 지금 이 순간 독서의 즐거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작가와 작품, 장소와 간략한 설명 정도가 더 반가워지고 있다.

사실 브리스틀 지역의 사우스미드 병원 응급실 입구에 있다는 로라 포드의 '참을성 있는 환자들'은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팔에 붕대를 하고 있고 머리에 얼음찜을 대고 있는 원숭이들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안타까움을 갖게한다. 


바티칸 내에 있는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구체 내의 구체'는 아주 오래 전에 그 앞에서 어린 조카들과 휴식의 시간을 가졌었기에 더 반가웠다. 솔방울청동이 있고 지구의 평화를 상징한다는 청동조형물인데 어린 조카들이 그 앞 잔디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있고 내가 햇살을 막아 그늘을 쳐주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추억으로 남아있어서 그런지 작가와 작품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나름 의미있게 다가오고 있다.


사실 지금은 그저 스치듯 책장을 넘기며 이런 곳에 이런 것이 있구나 정도의 생각뿐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 본 곳에서 직접 봤던 작품들이 기억에 남듯이 앞으로 조금씩 더 많은 작품들에 애정이 생길지 모르겠다. 엊그제 티비에서 파리의 '궁전 Palais Royal' 내부에 설치된 높이가 다른 260개의 줄무늬 대리석 기둥으로 구성된 다니엘 뷔랑의 작품은 언젠가 파리에 가게 되면 꼭 가서 인증샷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곳인데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괜히 '데스티니' 같은 말장난을 하고 싶어진다. 

기분내킬 때 세계여행을 하듯 한번씩 펼쳐보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 마음은 이 특정 예술 작품들을 직접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예술은, 특히 자연적인 배경과 조화로움을 보여주는 데스티네이션 아트는 직접 보는 맛이 더 크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면 당연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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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큼한 번역


직역과 의역을 두고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옮긴 번역을 의역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사실 직역도 충분히자연스러울 수 있다. 자주 드는 예로 킬러의 보디가드 2: 킬러의와이프에 이런 문장이 있다.
•소니아한테 입만 뻥끗해봐. 아주 참신하게 조져줄 테니까.˝
(You say one word to Sonia about this. I‘ll invent new ways to killyour ass.)

보통은 의역이라고 생각하는 이 문장도 직역에 가깝다. 혼히 원문과 번역문의 주어, 술어가 일대일로 상응해야 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문장 구성요소의 의미를 희생하지 않고 온전히 같은 의미로 옮길 수 있다면, 심지어 뉘앙스만 동일하게 옮길수 있더라도 그 역시 직역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문장에선
˝invent (발명하다, 개발하다)‘라는 동사의 뉘앙스만 가져와 ‘참신하게‘라는 부사로 옮겼다. 반드시 동사를 동사로 번역해야 직역이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자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원문의 의미를 번역문에 담아야 한다. 그렇지만 그게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경•우는 원문의 의미를 직역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 오히려 내 능력의 한계를 느낄 때 의역을 도모하는 편이다.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I don‘t know why it is that I find it so very difficult, justbeing here on this earth.˝

그대로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그저 이 땅에 존재하는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당시 내 1차 번역본은 이러했는데 자막을 올리고 감상해보니 감흥도 없고 무슨 뜻인지 전달도 잘 안 됐다. 특히 ˝그저 이땅에 존재하는게(just being here on this earth)˝라는 부분이 퍽 어색했다. 문장이 구어처럼 자연스럽길 하나, 의미가 잘 들어오길 하나. 결국 다 뜯어고치기로 작정했다. 직역으로는 원하는 만큼의효과적인 전달이 불가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그래서 이 문장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를 파악하는거다. 화자의 상황에서 ˝그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부터 찬찬히 고민한다. 화자는 그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고말한다. 그렇다면 화자의 판단에 그저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원래는 ‘누가 봐도 힘들지 않은 일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저 이 땅에 존재하는 것, 일도 사랑도 그 어떤 것에도 엮이지 않고 그저 아메바처럼 존재만 하는 것. 원칙적으론 힘이 들지않아야 한다. 에너지를 쏟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화자는 힘이 드는 거다. 그렇다면 아무런 에너지를 쏟지 않고 그저 존재만 하는상태를 문장으로 어떻게 쓰면 좋을까. 한국어에 그런 표현은 뭐가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만들어진 문장은 다음과 같다.

˝숨만 쉬어도 살아지는 삶인데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

물론 숨만 쉬어도 살아지는 삶˝과 ˝그저 이 땅에 존재하는것의 간극은 꽤 크다. 다만 화자의 의중을 깊이 추론했을 때 치환할 수 있는 수준의 문장이라고 판단할 뿐이다. 이 문장을 좋은 번역의 예로 꺼내온 것은 아니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직역문을 내놓지 못해 필사적으로 우회한 결과물에 불과하니까. 다만 때로는의역이 직역보다도 더 우리에게 밀착된 번역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마냥 자연스러운 번역이 의역이 아니라 번역가들이 특정한 목적을 위해 쓰는 이런 식의 번역이 의역이다. 물론 그 목적이 마구잡이식의 자의식 전시가 될 때는 문제가 커지기도 하겠지만. 의역은 오역의 여지도 있고 월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리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번역의 재미와 묘미가 숨어 있는 지점은 이런 원문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이다.

응큼하게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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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대사란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다. 그러니 실제 대화에서 타인의 말을 사람마다 다르게받아들이듯, 번역가마다 서로 다른 뉘앙스를 살린 다양한 번역이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영화번역가는 대사의 전달자가 아니라 대사에서 풍기는 뉘앙스의 냄새를 판별해서 전달하는 사람인지도모르겠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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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일을 겪은 후로 사람을 대하는게 조금은 달라졌다. 모든 사람에게 살갑게 대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일부러 상대를 아프게 할 필요는 없더라.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과의 마지막날이 있다. 다만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그래서라도소중한 사람에겐 물론이고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마지막 인사는 무던히 하는 게 좋다. 억지로 상냥하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상처를 줄 필요도 없다. 그저 덤덤하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은 인사하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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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인류의 관심사가 달라져 지금과 같은 과학적 호기심이 멈추고 전혀 다른 것들이 인간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약간은 위안이 돼.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뿐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현존하는 무시무시한 핵전쟁의 가능성이 더 끔찍한 것으로 바뀔지도 모르겠네. 문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우리가 설 공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어. 마침내우리는 지구의 유한한 실제 크기가 미치는 영향을 심각하게 느끼기 시작했네. 기술이 무르익어 찾아온 위기지. 지금부터 다음세기 초반까지 세계에 불어닥칠 위기는 이전 양상보다 훨씬 더심각할 거야. 언제, 어떻게 끝날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 언젠가 인류의 관심사가 달라져 지금과 같은 과학적 호기심이 멈추고 전혀 다른 것들이 인간 마음을 차지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약간은 위안이 돼. 결국 기술은 인간의 배설물일 뿐 대단한 ‘무언가‘로 간주되어서는 안 되거든.
거미줄이 거미의 일부이듯 기술도 우리의 일부일 뿐이니까. 하지만 기술은 갈수록 빠르게 진보하면서 불가피한 특이점으로,
우리가 아는 인류 역사가 더는 지속되지 못할 티핑 포인트로 나아가고 있는 듯해. 이제 진보는 이해를 초월할 만큼 빠르고 복잡해질 걸세. 기술력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진 성과이고, 과학은 지극히 중립적이어서 어떤 목적으로든 쓰일 수 있는 통제 수단을 제공할 뿐 모든 사안에 무관심하지. 어떤 특정한 발명품의 비뚤어진 파괴력이 위험을 초래하는 게 아니야. 위험은 원래부터 내재해 있지. 진보를 치유할 방법은 없어."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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