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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세상을 만나다 ㅣ 카르페디엠 20
시게마츠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긴 휴가를 가기 전, 해야 할 일이 많은데도 이 책을 붙잡고 놓지 못해 결국 다 읽고 나서야 짐가방을 꾸렸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책을 덮으며, 느낌이 너무 좋은데 서평을 쓸 시간은 없고.. 아쉽네,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조차 의심스러울만큼 책에 대한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길 위의 악마'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길 위의 악마인가 하는 것이 중요했던가? 세심하게 그려진 소년의 심리가 아주 인상깊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소년, 역시 세상에 대한 저항과 부적응의 상태로 성큼 다가가 범죄 실행의 충동을 느끼고 전율하던 모습의 묘사가 날카롭고 섬뜩하고 현실적이어서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섣부르게 소년,을 이해한다거나 소년,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거나.. 그런 얘기는 할 수 없지만 뭔가 한 걸음 다가선 느낌은 든다.
<조간 신문을 들춰봤다. '소년'에 관한 사건이 하나, 폭주족에 가입한 열일곱 살 난 소년 세 명이, 그 그룹을 탈퇴하려던 동년배 머시기 군을 집단 구타해서 죽였다. '소년'은 피해자가 되면 실명으로 보도된다. '군'이란 호칭까지 붙어서.
칼럼 기사는 해외 뉴스였다. 고등학교를 1년만에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쪽도 열일곱 살의 머시기 군인데, 스케이트보드 타기 대회에서 3위로 입상했다. 사진까지 나와있다.
구렛나룻이 긴 스포츠형 머리를 한 머시기 군은 스케이트보드를 무슨 방패인 양 세우고 V 사인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내 꿈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라는 멘트도 있었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마친 직후, 속에서 울컥 화가 치민 어떤 놈이 나이프를 휘둘러 그의 등을 찍는 경우도 '있을 순 있는' 일이다. 그건 이제 부정할 수 없는 '가능성'이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352)
이 책에는 사춘기 소년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이 담겨 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을 경험하여 이겨내고 자신을 찾고 세상과 직면하는 소년의 모습일 것이다.
오랜 전, 내가 세상에 섞여들어가버리기 전, 세상을 만나려고 마음의 성장통을 경험할즈음의 내 모습도 슬며시 끼어들어본다. 학교를 졸업하며 몇년동안 기록했던 나의 비밀들, 이라기보다는 내 치열한 고민들을 불태워버린 기억은 그것이 아주 오래전의 희미한 기억이기에 나 자신을 이상화시켜 추억하게 된다. 친구에 대해, 사랑과 우정에 대해, 믿음과 존중에 대해...
예전의 내 모습은 사라졌고, 이제 나는 또 다른 소년의 모습을 바라볼뿐이다. 이제는 성당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아이들이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도망쳐버리지 않게 길을 비춰주고 싶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