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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증명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7년 5월
평점 :
사실 작가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서 '악마의 증명'이 왠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별생각없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아, 그런데 이거 왠 기시감이지? 하고 잠시 생각해보고 검색을 해 봤더니 역시 몇년 전 무척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에서 다뤘던 에피소드가 이 책의 표절시비로 잠시 화제가 되었었던 바로 그 원작 소설이었다. 아, 그래서 책 제목도 작가 이름도 왠지 낯익은 느낌이었구나. 당시 드라마의 인기로 인해 표절시비 문제는 소리소문없이 사그라들어버린 것 같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에피소드를 떠올릴 수 있을정도니 표절에 대한 것은 딱히 뭐라 결론 내리기가 힘들 것 같다. 법에 대한 부분이나 구체적인 사건 정황의 차이가 다르다고 하지만 일반인인 내가 느끼기에 쌍둥이의 범죄에 대한 모티브는 하나의 줄기처럼 보이기는 했다.
악마의 증명은 동일 제목을 표제작으로 하여 도진기 작가의 단편이 실려있는 단편집이다. 사실 한국작가의 미스터리를 찾아 읽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작가의 전직 판사라는 이력이 작품을 홍보하는데 더 무게감을 실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조금은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편 한 편 읽어나갈 때마다 놀라운 이야기의 전개는 - 사실 환상문학이나 호러쪽은 딱히 내 취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를 찌르는 듯한 이야기의 전개는 한번 잡은 책을 쉽게 놓지 못하게 했다. - 그가 결코 전직 판사라는 직업을 등에 업고 얻은 작가의 명성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작품들이긴 하지만 글을 읽는 동안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가 너무 일본 소설만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외딴집에서'를 읽었을 때는 사실 일본 작가의 호러물같은 느낌이 더 강하기는 했다. 악마의 증명을 읽고 정글의 꿈과 선택을 읽을 때까지는 조금은 약한 미스터리의 느낌이 있었는데 외딴집에서는 그 결말이 좀 섬뜩해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8편의 단편을 다 읽고난 후 다시 한편씩 떠올려보면 일본 소설같다는 느낌은 전혀 없고 이것이 도진기 작가의 작품이구나, 라는 생각만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사건 자체만을 그려내거나 사건의 해결만을 이야기하려 한다기보다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성향이나 심리, 성격에 대한 이야기가 더 인상깊게 다가온다. 그건 어쩌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에서 중심은 사람이며, 우리 역시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한다.